반 달
김 나 영(김 지 영)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는 경기도 일산의 밤은 한적하기만 하다.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을 하고 꼬박 이틀을 보낸 병실에서의 갑갑함을 해소하기위해 산책을 나갔다. 한낮에 내리 쪼이던 따스함은 간데없고 살 갓에 닿는 바람이 싸늘하다. 조명을 받은 흔들리는 단풍잎에도 어느새 가을이 내려앉았는지 알록달록 색이 들었다.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지는 밤공기를 맞으며 걷다보니 까만 하늘에 달빛마저도 차갑게 다가온다.
두 달 간의 편두통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정밀검사를 했다. 뇌혈관 질환을 잘 본다는 효성 병원에서 대학병원급 이상으로 가라는 말과 함께 지방보다는 수도권에 있는 전문병원을 추천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일산 국립암센터에 예약을 했지만 5일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을 다투게 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기에 그나마 암센터가 있는 충북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 판독을 의뢰했다. 그 결과 급성 종양인지라 수술이 불가피하고 종양이 악성에 가깝다는 것이라 했다. 조직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수술을 하고 치료만 잘 하면 삶의 희망이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뭘 그리 잘못했기에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나름대로 양보하고 이익 생각지 않고 살아온 것 같은데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아른거리고 자유롭게 살다가 애들 셋과 부대끼며 힘들어 할 남편을 떠 올릴라치면 눈물이 절로 나고 흐느껴 졌다. 다른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아무런 일 없을 것이라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정작 곁에 있던 남편의 얼굴은 새카맣게 굳어져 혀가 굳은 사람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 치 건너 두 치라는 말이 이럴 때 적절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 남편을 마주할 때는 무덤덤한 척 더 많이 웃었고 더 많은 말을 했다. 바쁜 와중에도 천안 파주를 오가며 밤에는 병실을 지켜 주었다. 새벽녘 두통이 시작되어 일어났다. 좁은 간이침대에 옆으로 누워 잠들어있는 어깨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혹여나 잠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병실 밖으로 나왔다. 간호사 실에 들러 진통제를 투여 받고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 쪼그리고 앉아 고생을 하는 그이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깊은 숨을 쉬어 본다.
국립암센터에서 MRI 판독을 한 결과 두 경부에 종양이 있으나 급성인지는 알 수 없고 신경외과와의 협진을 요청했다. 그동안 겪었던 두통은 전형적인 편두통과 유사하며 종양으로 인한 두통이 아닌 것을 천만 다행으로 여기라 했다. 편두통으로 인해 두 경부 종양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그 마저도 감사하라는 말이었다. 두 경부 종양이라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뇌를 제외한 아래 부분부터 목 부분까지 생긴 종양을 말한단다. 내 경우는 코와 오른쪽 눈 뒤에 많은 신경조직들이 지나는 자리에 생긴 덩어리였다. 혹여 미세한 신경조직을 잘 못 건드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반신불수나 중풍을 수반하는 더 큰 모험을 해야 한다니 가능한 수술은 피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고자 했다. 뇌 다음으로 힘들고 까다로운 곳이라니 적을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으므로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입 안 잇몸을 절개하여 뼈 조직을 절단해야 하는 수술이라서 슬슬 현실감이 들면서 겁이 났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커진 동공은 감출 수 없었던가 보다. 걱정하지 말라며 어깨를 토닥거려 주는 남편의 얼굴은 위험을 감수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한 시름 놓은 듯 보였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손을 잡고 걷는 남편의 체온이 포근하게 전해져 온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했는데도 한 발짝 뒤에서 그 이의 옆모습을 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혹여 눈치라도 챌까봐 몰래 닦느라 조심스럽다. 슬퍼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더 아파할 남편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해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것이 쉽지는 않아도 그것이 남편에게 위안이 된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싶다. 저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은 보름이면 채워지겠지만 이제껏 살아온 인생 사십여 년에 빗대어 보는 것은 약해진 마음이 감상에 젖어 들어서인가 보다. 지나간 삶이야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머지 사십여년 그 생을 고운 그림으로 그려 넣으려면 무슨 색으로 채색을 해야 할까. 마저 채우지 못할까봐 낙심하고 있다가 허송세월 보낸 뒤에 후회하는 못난 삶이 되지 않도록 밝은 색으로 채울 수 있게 느슨해 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첫댓글 다행입니다. 아픔을 겪으면서도 남편의 대한 배러가 돋보입니다. 인생이라면 누구나 닥칠수 있는 일, 아픔과 고통의 숙제를 하고 있으니...이 담에 완제품 수필책 한권을 쓰기 위함이라 생각하시오~
잘 알겠습니다.그렇게 위안을 삼아 보겠습니다.
고통을 겪고나면 인생길도 달리 보입니다. 이십대의 젊은 시절에 대수술을 받아야 했던 남편의 일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지금이야 의술이 발달한 좋은 세월이지만 사십오년전의 그시절엔 난생처음듣는 질병의 두려움앞에서 공포에 질렸던 생각이 새삼 떠오르네요. 분홍빛 색갈로 앞으로의 삶이 채색 되리라 믿어지네요.
네.사는 동안의 경험이라고 생각해 봅니다.물론 겪지 않았으면 더 좋을 것이지만요.고맙습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의술이 달나라 가는 세대 아닌가요? 반드시 완쾌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실겁니다.
그러게요!밝은 모습으로 뵙기를 빌어욤
어느날엔가 오늘의 힘든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 그때의 힘든 시간을 잘 이겼네'라고 자신을 대견해 할 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게 해달라고 기원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자중하면서 하루 하루 보내고 있답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희망의 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금까지의 그림보다 더욱더 아름다운 색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선생님의 열정과 끈기를 믿어요.
고맙습니다.자꾸만 열정이 식어 가려 하네요.소선님의 뚝심을 빌려 주셔욤.
ㅎㅎㅎ 뚝심요?~ 회장님은 과묵하다고 소개하셨는데요.~~~
선생님! 희망은 마음에서 다가옵니다.. 씩씩한 선생님! 좀 힘드셔도 참고 인내하셔서 빨리 아름다운 색으로 채우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요즘 너무나 고운 단풍이 설렘을 주네요.
이제야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많이 힘드시지요. 그러잖아도 병원에 가신일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했는데....... 힘내세요. 선생님 남편과 세아이들이 선생님의 힘입니다. 가족의 사랑으로 이겨낼 겁니다. 가족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반드시 회복할 겁니다. 늘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네.고맙습니다.그래야겠지요.선생님의 밝은 웃음이 선하네요.
아픔을 딛고 일어서실때의 표정은 한충더 높은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음일것입니다. 더욱더 새로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라 믿습니다. 화이팅
한단계 성숙하기 위한 시련이라 생각하면서 위안삼아 봅니다.감사합니다.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푸른솔 문우님들이 함께 이겨내시고, 또~ 좋은 결과가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아자아자!여러분들의 격려에 힘내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기도 하겠습니다. 건강을 다시 찾은 뒤에 삶을 생각하시며 환한 희망이의 친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이 절로 납니다.열심히 운동하고 섭생 잘 하고 있답니다.고맙습니다.
김나영 선생님 힘내세요. 하루 속히 완쾌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부디 몸조섭 잘 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선생님!아침 저녁 기온차가 심합니다.선생님께서도 건강조심 하셔요!
입안에 침이 마르는걸 느끼며 끝까지 읽어 내려갔습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이겨 내시길 바랄께요. 화이팅 ~~~!!
그럼요.열심히 살아야지요.아자아자!
한줄 메모장에서 글을 읽고 어디가 아프셨나보다 했었는데 이제야 선생님 글 을 한줄한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도 제가슴이 조마조마 하면서 읽었습니다.많이 놀라셨겠어요 어렵고 힘든 시련이 있을때 가족에 힘 이크지요.그래도 곁에서 위로 해주는 가족의 위안과 선생님 건강을 생각 해주는 푸른솔 가족의 희망찬 바램으로 건강 해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