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들판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김제. 끝없이 펼쳐진 호남평야의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하다.
● 흙처럼 거짓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터전
걸어도 걸어도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 바라보면 그저 아득할 뿐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 곡창으로는 김제땅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 북으로는 군산과 경계를 이룬 만경강이, 남으로는 부안과 맞닿은 동진강이 흐른다. 평야를 가로질러 흐르는 원평천과 두월천, 금구천이 너른 들을 적셔 풍요를 일궈낸다. 동쪽에 홀로 솟은 모악산이 샛바람을 막고, 남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마파람을 걸러준다. 서쪽으로 간간이 야산이 있긴 하지만 모두 100∼200m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는 구릉이다. 오랜 농업지역인 전북에서도 가장 중요한 농경 유적으로 첫손 꼽히는 벽골제가 있는 김제시에 가면 마치 잘 정리된 바둑판처럼 기름진 논들이 평평한 들판 눈닿는 데까지 펼쳐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들판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끝없이 펼쳐진 호남평야의 탁트인 시야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야산 하나 없는 광활리 들, 1만 경(300만 평)은 족히 된다는 만경평야, 벽골제 옆자락에 놓인 부량리 평원. 이름만 다를 뿐 하나의 지평선으로 이어져 있다. <징개맹개 외야미는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라는 옛말 그대로다. 징개와 맹개는 김제와 만경, 외야미는 너른 들의 사투리. 김제·만경을 합쳐 금만평야라고도 부른다. 논이 7000만 평. 한 해 생산량이 176만8000 가마.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의 2.5%가 김제 들녘에서 나온다. 강원도 전체 생산량보다 많다. 김제사람들은 이 평야를 김제만경 외애밋들이라고 부른다. 외애밋들은 너른 들, 곧 평야를 일컫는 말이다.> 동으로 호남의 명산이라 일컬어지는 모악산이 우뚝 솟아있고, 호남평야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이 광활한 들판을 교차하는 곳이라 예부터 김제는 호남평야의 노른자위로 불려왔다. 그래서 김제는 살기 좋은 곳으로 양반과 농민이 많은 고장이었다.
● 광활리, 대하소설 <아리랑> 무대
《동국여지승람》은 김제를 가리켜 ‘인심이 순후하며 농사일에 부지런하다’고 전한다. 또 《택리지》는 ‘모악산 서쪽에 있는 금구 만경 두 고을은 샘물이 맑고 살기를 벗은 산세가 들판 가운데로 감돌아 있다. 게다가 두줄기 물이 감싸서 정기가 모아졌다’고 적고있다. 김제에서도 가장 너른 들은 광활리. 광활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니 오죽할까. 탁 트인 들판 가운데는 하늘과 맞닿아 있다. 양쪽에 봉곳한 야산 자락은 바다 너머 부안의 계화도다. 1925년 일제 때 바다를 메워 육지와 연결됐다. 성덕면 심평리에서 광활면 창제리까지 들을 관통하는 논둑길만 15㎞. 20여 분을 달려도 좌우로는 논뿐이다. 간석공사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피땀을 흘려 만든 농토로 갯벌에서 옥토를 일구느라 온갖 고생을 한 사람들을 ‘개땅쇠’라고 불렀다 한다. 천황에게 좋은 쌀을 바친다고 조선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하면서 철조망을 치고 농장을 직영했던 일제시대의 아픔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광활리는 바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김제쌀을 공출해가기 위해 전북에서 최초로 만경∼군산간 도로를 뚫었다. 김제 들판은 한민족 농경역사의 중심이나 다름없다. 김제는 삼한시대에는 볏비리국, 백제 때는 볏골군이었다. 신라 때부터 김제로 불렸다. 노랗게 물든 황금들녘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사금이 많아 김제라고 했다고도 한다. 김제 사금은 한때 국내 생산량의 30%를 차지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추수가 끝나면 포크레인을 동원해 금맥을 찾는 노다지꾼들로 밤새 불야성을 이뤘다. 국내 최초의 저수지 벽골제도 볏골에서 나온 이름이다. 벽골제는 농경문화의 상징이 되는 유적. 둑이 3.3㎞, 둘레만 44㎞. 학자들은 1700여 년 전 백제가 국운을 걸고 대형 토목공사를 벌여 만든 저수지로 보고 있다. 신털미산, 되배미, 제주방죽 등 벽골제에 얽힌 지명으로 당시의 공사를 짐작할 수 있다. 신털미산에는 벽골제에 동원된 수많은 일꾼들이 짚신을 털었더니 산이 됐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앉은자리에서 풀 한 포기 안 날 사람. 문단에서는 작가 조정래를 이렇게들 얘기한다. 십몇년 째 집에 들어앉아 날이면 날마다 꼬박 글쓰는 데 하루를 바친다. 매일 원고지 30장. 달력엔 이 노역의 결과가 빠짐없이 기록된다. 소설을 위해 태어난 사람, 글감옥에서 한없이 자유롭다는 아름다운 작가 조정래.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취재를 위해 지구 세 바퀴는 족히 돌았다는 그.
● 민족의 역사와 삶을 찾아
그가 <태백산맥>에 이어 출간한 <아리랑>은 해방 50주년을 맞는 우리 문학이 드디어 완성한 민족의 대서사시로 평가받는다. 전통사회의 붕괴과정에서부터 식민지시대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파헤치면서도 그 속에서 살아있는 민족의 힘을 다채로운 서사적 담론으로 집결시켜 놓았다. 폭넓은 상상력과 소설적 진실이 함께 빚어내는 이 작품의 감동은 수난의 역사를 정신적으로 극복한 우리 소설문학의 또 하나의 자부심이다. 이 소설에는 가공의 인물만 450여 명이 등장하고, 소설 공간은 군산과 김제에서 출발, 만주 연변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일본열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반도와 섬나라와 대륙과 대양을 거칠 것 없이 넘나들고 있다. 머슴에서 출발해 항일무장독립군이 된 사람, 친일파 모리배, 연약한 여인 등 수많은 인물과 일제의 악랄한 토지조사업, 고문, 중국땅에서의 항일무장투쟁 등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다. 400여만 명의 생명이 죽어가면서 소망한 것은 나라를 온전하게 되세우는 것이었는데, 해방 50년이 되도록 반쪽짜리 나라에서 살고 있음에도 어디에서도 죽어간 사람들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려는 전민족적인 각오와 계획 마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전시적인 기념행사로 시끌벅적한 것이 그에게는 통한의 현실이다. <아리랑>에는 풍부한 자료와 해외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의 증언을 통해 그의 이러한 시각을 증명하는 사실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일제시대의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맹목적인 배타관계가 아니라 민족을 위해 언제든지 결합했던 사례를 들고, 학계에서도 미완으로 남아 있는 항일무장투쟁의 실체를 발로 뛴 취재결과를 통해 웅변하고 있다. 소설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를 테마도시화하려는 계획이 김제시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4월 조정래씨를 초청해 강연을 갖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 김제시는 1단계로 오는 9월 열리는 지평선축제 이전에 문학캠프를 설치하고 2단계로 드라마와 영화제작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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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9일 김제시에서 열린 조정래 초청강연회(왼쪽)과 벽골수리민속박물관에서 |
● 작가와 함께 하는 ‘아리랑 투어’
올해 초 김제시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중심배경인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 외리마을을 중심으로 김제를 소설과 연계한 테마도시로 만들겠다는 내용의 ‘소설 아리랑 이벤트화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김제시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 추진으로 문학마을을 만들어 지역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고 체류형 관광권을 개발하고 문학캠프를 통해 문학의 도시를 승화시킨다는 기본계획 아래 조정래씨의 취재노트와 증언, 사진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달 말께 구체적인 협의를 가질 김제시는 부량면 용성리 벽제초등학교에 문학캠프를 설립, 운영할 계획으로 부지를 매입해 아리랑관, 토론장, 숙소 등을 만들 예정이다. <아리랑>의 작품원고 2만 장, 책상과 걸상, 취재노트 20권, 현장 사진 200여 장 등을 시가 인수해 벽골제 등에 전시하는 방안도 고려 중에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tri.re.kr%2Fdatabase%2Fbokji%2F80%2Fimages%2F351877-005302.jpg) ▲ 김제벽골제(왼쪽)과 쌍용놀이
작가와 함께 하는 ‘아리랑 투어’는 김제시가 이 사업을 관광상품으로 연계하기 위해 구상중인 사업이다. 하시모토, 백종두, 송수익, 감골댁 등 등장인물별 성격과 활동사항을 정리해 현재 작가가 검수하고 있으며 주인공이 살던 집이나 간척사업현장, 사금채취현장, 포교당, 철길 등 작품 속의 배경을 오는 6월까지 심포에서 금산사에 이르는 20∼30여 개를 확보할 예정이다. 올 지평선축제에서는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였던 보성과 동시에 문학비를 제막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김제시는 현재 집필중인 <한강>을 마무리하는 대로 김제 벽골제를 배경으로 한 소설 <단야>를 집필하기로 작가 조정래씨와 약속을 마친 상태다. 이밖에도 벽골제 역사스페셜 제작 시 <아리랑>의 기본이념과 연계될 수 있도록 조정래 씨가 직접 참여하게 되며 명예시민증과 문화대사 위촉 등을 올해 지평선축제에서 가질 계획이다. 김제시청 관계자는 “아리랑의 발원지인 김제를 문학과 역사의 고장으로 승화시키고 근대사의 중심에서 활약한 김제인의 민족혼과 뿌리를 찾아 지역의 새로운 이미지와 부가가치 창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첫댓글 저는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문학관이 생길 줄 알았는데, 되려 김제에서 '아리랑'으로 먼저 움직였더군요. 지금 순천에서 준비중인가 하던데 맞나 모르겠어요. 보충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