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육에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 국외 동포 및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교육을 중심으로
1. 다문화 시대에서 사회통합을 위해 한국어 교육이 중요하다.
인구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최저로 2005년 말 1.08명에 달하자 각 언론에서는 집중적으로 이에 대한 대책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서울신문5월 11일자 사람&사람 면에 “저 출산 이대론 안 된다.”는 특집가사를 게재하였는데, ‘2050년 생산인구 53%로 감소’라는 기사에 의하면, “저 출산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넓고도 깊다. 우리나라 저 출산 현실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든 문제로는 생산인력 감소, 부양부담의 증가, 국가경쟁력 약화, 사회복지 부담 증가, 교육계 판도 변화 등이 꼽힌다."고 보도하고 있다. 만약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다른 변수가 없다면, 2100년에는 남한 인구가 1,400만 명으로 줄어들게 되어 심각한 인구 및 노동력 부족현상이 일어나게 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인구감소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자 대통령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에서는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검토하였으며, 법무부의 국적제도 T/F팀도 출생지주의 검토, 영주권제도 확대, 귀화제도 간소화, 이중국적 허용 등 파격적인 안을 논의하고 있다.
생산인구의 절대적 감소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인들이 3D업종의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IMF 경제위기 당시 해고된 실업자들을 생산직으로 유인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지난 인력채용박람회에서 서비스업 등에는 수만 명이 응모했지만 생산직은 고작 6명 응모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생산인구의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주민을 받아들여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현재 40여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머지않아 일백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2005년 결혼 통계에 의하면 외국인과의 혼인은 13.6%나 된다. 남자와 여자의 성비가 100대 125로 남자 4명 중 한 명은 한국여성과 결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국제가정 사이에서 태어난 많은 자녀들이 한국사회에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외국인 1%시대에 접어들었다. 결국 우리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단일민족’의 상은 깨지고 다민족, 다문화사회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주민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훈련을 통해 첫 단추를 잘 꿴다면 좋으려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프랑스의 인종폭동사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한국어라고 본다. 두통약 펜잘과 소독방부제 벤졸을 잘 못 발음해서 두통약을 지으려고 약국에 갔다가 벤졸을 받아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태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이주민에게 한국어의 토대를 굳건히 쌓을 때가 되었다.
2. 곶감만 빼 먹으려고 하지 말고 대가를 지불하자.
얼마 전 우리나라와 미국 간에 간호사 송출과 관련한 협약이 체결되었다. 대한민국은 간호사 인력의 실업 해소를 위해 간호사를 송출하고 미국은 미국 내에서 3D업종으로 분류되어 간호사가 부족하니 한국에서 간호사를 수입한다는 것이다. 간호사 중에는 그동안 영어능력이 부족하여 미국간호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진출하지 못했던 이들이 많다. 이번에는 시험에만 합격하면 3개월간 교육 후에 인턴으로 선발하여 1년 6개월 동안 일하게 한 뒤 영어시험을 거쳐 정식 간호사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이미 미국 뉴욕 주 병원들은 향후 5년간 한국 간호사 1만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근무조건은 주 25시간 근무에 월급 250만원이고 자녀 동반도 가능하고 시험에 통과하면 영주권도 주기로 하였다. 지금까지도 열기가 높았던 미국간호사시험에 많은 이들이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일각에서는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대한민국에 의료 공백이 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사람을 간호사로 키우기 위해 한국사회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는데, 미국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우수한 인력을 데려가니 ….
그런데 우리나라도 노동력을 수입하면서 그 대가를 지불하기는커녕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까지 그 비용을 모두 이주노동자에게 떠맡기려고 하고 있다. 새로운 고용허가제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한국어시험을 보아야 한다. 물론 한국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울 여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재정 부담을 해야 한다. 한국에 오도록 선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그렇게 전문적인 일이 아닌 소위 육체적 노동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 지망생들에게 그렇게 막대한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도덕적이라고 본다.
한국사회가 이들의 노동력을 도입함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 있으므로, 이들의 한국어 연수를 위해 곶감만 빼먹지 말고 그 대가를 지불하여 한다. 현재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사설 한국어 학원에 한국어 교육을 맡겨 놓고 시험만 볼 것이 아니라 송출국에 실비로 운영하는 한국문화원을 널리 설립하여 한국어를 보급해야 할 것이다. 또는 한국 이주노동자로 선발된 후 이들에게 일정기간 한국어나 한국문화를 교육시켜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하였을 때 독일정부에서는 이들은 국내에서 1개월, 독일에서 2개월간의 훈련기간을 가졌다. 그 기간 동안 한국어와 한국문화,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익히게 함으로 독일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와주었고, 높은 산업재해율도 예방할 수 있게 하였다.
3. 한국어 교육에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오랫 동안 해온 본인으로서 오늘 토론에서 중요하게 제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어 교육에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언어는 사람을 위해서 있지, 사람이 언어를 위해서 있는 존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것이 전도된 정책을 세워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국외동포 및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서는 주인공은 한국어 교육을 받는 국외동포나 이주민이다. 한국어 교사나 한국어 정책을 세우는 이들은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재외동포나 이주민에게 한국어를 교육하는 것은 “한국어 향상을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함으로써 문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터를 비롯한 한국생활에 적응력을 높이고 문제 해결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우선이지 전문 언어능력을 키울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전문언어영역은 각 대학 한국어학당에서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어의 미래를 위한 토론회”라는 제목 자체가 본인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이기에 쉬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한국어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무나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말을 한다고 하여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주민들은 대부분 상황이 열악하여서 전문적인 한국어 교육을 받기에는 시간이나 재정이 너무 어려운 형편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매일 노동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에만 한국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 한 학기 동안 꼬박 한국어를 배워도 학습시간이 고작 40시간 이내이다. 국제결혼여성의 경우에도 일주일에 하루씩 집에서 마음 놓고 나오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 한국어 교사 연수과정을 이수한 전문적인 교사들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다년간 센터에서의 한국어 교실 경험에 의하면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전문적인 능력보다는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이주민들은 본인들의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수업에 절반 이상을 출석하면 출석률이 높은 편이다. 매일 10시간 이상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몸이 지치고 그리고 때로는 일요일에도 특근을 해야 하고, 그리고 중요한 볼 일(예 결혼식 등)이 생겨서 부득이하게 결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렇게 쉬고 싶은 것을 무릅쓰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우겠다고 오는 이주민들을 계속 오도록 하는 것은 교사의 열의와 성실이다. 이주민들은 교사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성실히 하느냐에 따라 열심히 공부도 하고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실지로 자원교사와 학생간의 친밀도가 수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자격증을 갖고 있더라도 학생들과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면 효율적인 한국어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주민과 교사와의 관계는 기존 학교처럼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도움을 주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우리 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한글교사 박연경 님의 글은 이 점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달 말이면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국어를 공부한지 1년이 된다. 그 시간은 돌이켜보면 참 많이 웃었고 기뻤던 시간이었다. 사실 내가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것보다는 그들에게 배운 것이 더 많다. 스승의 날이라고 꽃을 사다가 수줍게 내밀던 베트남학생, 함께 산에 갔을 때 자기 몸도 안 좋은데 나를 챙겨주던 방글라데시 학생, 새벽 5시까지 일하고 2시간이나 걸려서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인도네시아 학생, 그들은 내가 무심코 쓰던 한국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고 늘 보고 겪던 한국의 문화를 새롭게 보게도 하고 내가 몰랐던 한국의 문화에 눈뜨고 자랑스러워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그들은 나의 학생이면서 나의 스승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한국어 교실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자기 나라의 날을 정해 소개하고 자기 나라 음식을 하서 함께 나누어 먹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나라에 대해 잘 모르다가 더 가깝게 느끼게 되고 그들이 왜 한국에 왔는지, 그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 비록 나라와 언어, 민족, 문화가 다르지만 서로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시간이어서 특히 좋았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어교실 교사를 하면서 내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 노동자'도, '그들'도 아닌 친구가 되었고 비로소 타자가 아닌 우리가 된 것 같다. 마음을 나누는 우리. 이런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내겐 소중하다. 함께 보낸 그 1년의 시간이 내게 좋았던 것처럼 그 친구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4. 한국어 교육사업과 교사자격시험에 자원활동가의 경험을 살리자
최근 정부에서 펴는 한국어 교육정책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어연구원을 통하여 ‘국제결혼 이주여성 한국어교육’이란 사업을 공고하고 신청을 받은 바 있는데, 이 사업을 하고자 하는 단체에 대해 너무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공고에 의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연․출자하여 설립하거나, 법인에 의해 설립된 또는 법인인 관련 연구기관, 각종 법령 및 대학 학칙에 의거 설치된 대학 부설 연구 기관 및 교육 기관’이거나 ‘민법 제32조에 의해 설립 허가된 한국어교육, 한국어 및 어문학 관련법인․단체’ 또는 ‘언급한 두 공동수급체의 대표자’로 명시되어 있어서, 이 분야에 오래 동안 일을 해왔고, 경험과 의지, 조직력이 있는 외노 지원단체들은 참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주민의 한국어교육은 ‘한국어 교육’이란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사업대상인 ‘이주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에만 사업참여를 한정하여 이주민에 대해 종합적인 지원을 해온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막은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주민에 대한 이해 없는 사업은 형식 또는 성과위주의 사업으로 흐를 확률이 매우 크다고 본다.
또한 현재 문광부에서는 국어연구원을 통하여 제1회 한국어교원 자격 심사 신청서를 접수한다고 공고한 상태이다. 이는 국어기본법 제19조, 국어기본법 시행령 제13조, 동 시행령 부칙 제2조에 따라 시행되는 것으로서 처음으로 한국어교원자격 심사를 국가기관이 진행하는 것이다. 그동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어교육이 시급한 문제임에도 나서지 않고 뒷짐을 져온 정부 당국의 자세를 볼 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자격심사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는 대상에서 이주민에게 아무 보수도 없이 열심히 한국어를 가르친 자원활동가들이 제외된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주민 한국어 교육의 현장에서 갖은 수고를 감내하며 봉사한 분들이 없었다면 그동안 이주민들이 어떻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겠는가? 한국어교육 능력과 함께 교육대상인 이주민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여 앞으로 이 분야에 필요한 교재와 교육방법 등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이들이야말로 실제적인 한국어교사 자격을 갖추고 있다. 정부는 속히 보완조치를 하여 이들도 자격인정을 받는 길을 열기를 촉구한다.
만일 정부나 국어연구원이 이주민의 현실이나 이주민에게 한국어교육을 실시하는 각 센터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틀의 자격 위주 한국어 교육을 고집한다면, 일선 이주단체에서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선 이주단체는 이주민에 대한 애정을 일차적인 자격으로 꼽기 때문이다. 현재 이주단체에서 한국어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고, 대부분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정부나 국어연구원이 규정해 놓은 교육시간을 이수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들 센터의 자원교사들에게 월별로 또는 주간별로 자원교사들의 시간을 고려한 한국어교사교육을 실시해서 이들도 한국어 교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배려하기를 바란다.
한국어 전문교사가 이주민에 대한 이해 없이 능력만을 앞세워 센터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전문교육을 받은 이들은 자원교사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특정 교육기관에서 파송될 경우 그 교육기관에 소속감을 갖지 센터와 교감을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센터의 입장에서는 전문가의 파송이 때로는 일을 어렵게 하고 피곤할 때가 있다.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정책을 세울 때는 이런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법률과 기타 문제점에 대한 센터 최의팔 소장님 칼럼입니다 (이 글은 이화여대 한국어문화연구소 주최로 2006년 5월 29일 열린 '한국어의 미래를 위한 제 1차 토론회에서 발표한 원고임)
첫댓글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정책이 속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의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좋은글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