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하, 이구용 교수 등 우리나라의 유수한 역사학자들은 대략 1980년대 중반부터 1910년대까지를 ‘한말’ 또는 ‘구한말’ 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면 ‘구한국’은 어느 나라를 일컫고, ‘구한말’이라는 시대구분은 어느 시기를 말하는가?
우리 역사에서 ‘한’이란 국명을 사용한 경우는 [한단고기]등의 정통 사서류에 서술된 ‘환국’(桓國)과 고조선의 국가조직 체계인 ‘삼한’(三韓) 그리고 사국(四國)시대 이전의 ‘삼한’(중삼한)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조선조 말기의 ‘대한제국’이 있었다.
그러므로 시기적으로 보아 1897년부터 1910년 사이에 존재했던 ‘대한제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구한국’이라는 용어가 쓰여지지 않은 반면, 희한하게도 일제의 [조선총독부시정년보](朝鮮總督府施政年報)와 같은 공식문서에서 일정한 원칙 하에 가지고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제는 통감부 시절인 1910년 이전의 우리나라를 ‘한국’(韓國) 혹은 ‘구한국’(舊韓國)이라 표현하고, 1910년 이후에는 ‘조선’이라고 확실하게 구분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한국’이란 용어는 일제가 만들어낸 용어이고, ‘구한말’이란 1905년부터 1910년 기간 정도를 가리키는 시대구분 용어인 셈이다. 일인들이 우리를 가리켜 ‘한’이라고 칭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삼한 출병설이나 18, 19세기 ‘정한론’, ‘멸한론’을 거쳐 당시까지 이어진 일본인들의 조선인 멸시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거꾸로 고대 일본의 문헌에서 우리를 ‘한’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우리 겨레의 바탕에 ‘한’의 요소가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었는 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유야 어쨌든 일제에 의해 사용된 역사적 시대구분의 용어를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한제국 시기’ 등으로 바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