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담사 ‧ 봉정암 순례를 다녀와서
8월 8일 새벽 설렘과 기대 그리고 초행길이라는 두려움이 교차되는 마음을 추스르며 집을 나섰다. 7시 30분에 비엔날레 주차장에 도착하여 회장님과 여러 도반님들의 반가운 얼굴일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7시 45분 출발 시내를 빠져 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산과들 아담한 마을들이 내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산은 마을을 안고 자장가를 부르듯 하고 동네는 그 품에 안겨 고요히 늦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과 산, 들 모두 푸른 옷을 입고 있어 내 몸과 마음도 꽉 짜내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잠시 후 회장님의 사회로 자기 소개와 이번 수련회 과정에서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광주전남 교사불자회 회장님의 해박하고 차분한 도움말은 수련회에 참가한 도반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어느 전문 가이드보다 폭넓고 탁월한 견문과 지식에 놀랐다.
점심은 휴게실에서 해결하고 출발한지 약 7시간 경과하여 백담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백담사 까지 운행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좁고 위험한 길을 15분쯤 달려 드디어 백담사에 도착했다.
곧바로 짐을 풀고 바로 수련회 개회식에 참석했다. 전국 교사불자회 회장님의 말씀을 들었다. 여러 말씀 중 오래 전 경험담 중 한 부분이 마음에 바로 들어왔다. 회장님 처녀 시절에 백담사에 며칠 묵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할머니들이 시멘트 1포대를 머리에 이고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시고 감탄했다는 말씀과 함께 그것은 아마 부처님에 대한 신심(信心)이 두터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다음은 조계종 포교 국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식이 끝난 후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저녁 공양을 했다. 공양 후 후배 선생과 함께 백담사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으로는 넓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사이에 정겨운 징검다리가 놓여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내에도 작은 시냇가에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그 고향의 징검다리를 보는 것 같아 더욱 더 정감이 갔다. 나는 어느덧 어린 시절 소년이 되어 그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돌다리 가운데 앉아 물장구를 치고 있는 모습이 이른 봄 양지바른 언덕에 있는 살얼음이 봄바람에 날려 속살을 드러내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눈을 들어 바라보니 누군가 정성들여 쌓아올린 돌탑들이 제법 구색을 갖추고 허공에 서 있었다. 아마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돌 하나하나 올리고 그 때마다 부처님께 서원 빌었으리라. 간절한 원(願)이 저 많은 돌탑에 서려 있다고 생각하니 단순한 돌탑이 아니라 소원탑처럼 느껴졌다.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모두 원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6시 40분 저녁 예불에 참가하였다. 저물녘 산 깊은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법고 소리는 내 온 몸을 회오리바람처럼 감싸고돌았다. 그 법고 소리는 시원한 소나기가 되어 내 온 마음과 몸을 씻어주었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만남의 시간을 가진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낯선 잠자리 그리고 천둥 번개를 치는 듯한 어느 도반님의 코고는 소리에 자는 듯 깨어있는 듯 하다
새벽 3시 예불에 참가하기 위해 일어났다. 아침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마친 다음 경내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선생님께서 머물렀던 유서 깊은 절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은 1917년 12월 3일 오세암에서 득도 하셨다 한다.
남아란 어디에나 고향인 것을 / 그 몇 사람 객수 속에 길이 갇혔나 / 한마디 큰소리 질러 삼천 대천 뒤흔드노니 / 눈 속에 복사꽃 붉게붉게 피네 (한용운 선사 오도송)
백담사 한쪽에 만해 기념관이 있었다. 천천히 메모를 하며 둘러보다 마음을 탁 두드리는 시를 발견했다.
사랑
한용운
봄물보다 깊으니라 / 갈산 보다 높으니라 / 달보다 빛나리라 /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뭇너니 잇거든 / 이대로만 말하리.
만해 선생님의 따뜻하고 정겨운 가슴을 느끼는 것 같아 매우 좋았다. 기념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오면서 만해 선생님의 삶의 발자취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백담사 경내 곳곳에는 많은 시인들의 시비(詩碑)가 있어 나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저녁 무렵
김시습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 한 조각 구름 빛 새가 돌아 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 다음에는 어느 산 향해 떠나 갈꺼나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어리고 / 향 스러져 스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 버리니 /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에 남아 있으리
정처 없이 떠돌던 나그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산 높고 골 깊은 이 고요한 산사에서 매월당 김시습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매월당은 어디로 가고 그의 시만 이렀게 남아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고 은
내려갈 때에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꽃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고은 시인이 본 그 꽃은 깨달음일까? 진아일까? 삶의 진리일까? 선문답 같은 시의 의미, 아무리 몸부림쳐도 시인의 심연(深淵)을 알 수가 없구나!
강물
오세영
무작정 / 앞만 보고 가지마라 / 절벽에 막힌 강물은 / 뒤로 돌아 전진 한다 / 조금도 서두르지 마라 / 폭포속의 격류도 / 소(沼에)선 쉴 줄을 안다 /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 텅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무심, 마음을 비우고 살면 어떤 깨달음에 이른다는 의미일까? 비우면 비울수록 꽉 채울 수 있다는 말일까? 종종 삶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외침인 것도 같다. 시인의 마음속은 깊은 샘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정화수, 그것은 곧 시, 그래서 시를 읽는 것은 정화수를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절을 둘러본 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난 다음 주먹밥 두개를 받고 9시 20분에 백담사를 출발하여 봉정암으로 향했다. 조금 올라가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간 비옷을 꺼내 입고 계속 산행을 했다. 길 아래로는 백담계곡이 있어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백 개의 못이 있어서 백담이라고 한다는 말을 어느 도반이 해주었다. 그런데 정식 명칭은 수렴동계곡이라고 한다. 이 계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중의 하나라 한다. 넓은 백담 계곡의 바위와 흐르는 명경지수에 내 입은 쉴새 없이 아, 소리를 무의식 적으로 내고 있었다. 조물주는 어떤 신기한 힘이 있어 이렇게 자연을 설계했을까? 세차게 흐르는 물과 넓은 소(沼)를 잠시 들렸다가 숨을 돌린 다음 다시 연녹색의 구슬을 이루어 고요 속에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넓은 바위 위를 흐르는 물은 흡사 용이 꼬리를 흔들며 가는 것처럼 사그락사그락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마도 용이 한가로이 산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수십 개의 철다리와 몇 개의 나무다리를 건넜다. 중간쯤일까? 눈앞에 작은 암자가 보였다. ‘영시암’ 이었다. 약수를 세잔 마시고 다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 올라가니 봉정사 1㎞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여기서부터 갑자기 길이 급경사로 변했다. 때로는 손으로 바위를 잡으며 소나기처럼 땀을 쏟으며 힘든 발걸음을 옮겼다. 옆에 있던 도반 선생님이 하는 말이 이 고개는 숨이 넘어갈 만큼 힘들다 하여 ‘깔딱고개’라 한다 했다. 그 말이 실감이 나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드디어 봉정암이 눈앞에 보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시였다. 약 다섯 시간 이십분 만에 봉정사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비와 땀으로 젖은 몸을 차가운 물로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샤워를 했다. 샤워 후에 그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잠시 쉬고 있으니 대청봉에 오르자는 도반들이 있어서 함께 갔다 올까 하다가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그냥 쉬기로 했다. 여기서 약 2시간 30분 정도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인데 아쉬웠다.
그 대신 봉정암 주변을 둘러보고 사리탑에 가서 삼배한 후 서원을 빌었다. 사리탑 주변에서 내려다보는 설악산의 정경은 장관이었다. 시원스럽게 확트인 공간,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위풍당당한 바위산들이 여기서 불끈 저기서 쑤욱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바위봉우리는 젖가슴처럼 둥그럽게 또 다른 것은 날선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이 거대한 자연의 정경 앞에 내가 진정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가 꿈인가를 구분할 사고력마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시선을 봉정암쪽으로 돌렸다. 바위들 가슴에 꼭 안겨 있는 봉정암의 모습은 단아했다. 마침 저녁 공양 시간이 되어서 절로 내려왔다. 이미 공양간 앞에는 저녁 공양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내 앞에 어머니와 아들이 둘이 함께 온 가족이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여기 봉정암까지 함께 오면서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을까? 평상시 못했던, 또는 말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사연들이 실타래에서 실 풀려 나오듯 풀어져 나왔을 것이다. 때로 힘이 들면 아무 말 없이 서로 손잡아 이끌어 주면서 모자간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우리는 자식교육에서 얼마나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고 있는가? 어머니의 자식 교육의 방법은 어느 교육 전문가보다도 나을 것 같다.
공양은 밥과 미역국 그리고 오이무침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밥 한 알 미역 한 가닥 오이무침 한 조각이 정말 보석덩이처럼 다가왔다. 한 숟가락 소중히 먹으며 이 음식이 내 입안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정성 그리고 온 자연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니 모든 것이 감사 할 따름이었다.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난 뒤 밥그릇에 붙어있는 깨 한 알까지 정성스럽게 먹었다. 공양을 마치고 저녁예불에 참석했다.
예불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상상의 날개를 펴보았다. 먼 옛날 스님은 부처님 사리를 가지고 이 높고 깊은 산까지 어떻게 오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부처님의 가피력과 스님의 넓고 큰 신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스님의 크신 발걸음 소리가 지금 되살아나 나의 가슴을 둥둥 울리고 있다 .
시나브로 봉정사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절 문지방을 넘나드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예불과 회향식이 끝나고 공양을 마친 다음 6시 40분쯤 하산을 시작했다. 소청봉까지 오르막길로 오십분이 걸렸다. 아침부터 가파른 돌길을 오르니 다리도 아프고 힘이 몹시 들었다. 소청봉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과 천불동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였다. 우리는 천불동 계곡으로 길을 잡았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가파른 돌과 바위로 이루어진 길을 내려오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눈 아래 펼쳐지는 천하절경을 보니 힘듦과 피곤함이 저만큼 달아나 버렸다. 누가 저 거대한 바위산을 창조했을까? 바위산만 있으면 단조롭고 외로워서 군데군데 친구 삼아 소나무를 심어 놓았을까? 조물주의 깊은 마음이 눈물겹다. 어찌 저리 큰 산이 바위로만 이루어졌을까? 초록의 나무와 우윳빛 바위들의 어울림이 정말 마음을 거세게 흔들어 놓는다. 발아래 펼쳐진 장관을 보니 왜 이렇게 어깨가 우쭐거리는지 이 기분으로 양어깨에 깃털 몇 개만 달면 저 창공 속으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다. 한참 내려오다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춰졌다. 오연폭포였다. 양폭사이의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 사이에 5개의 폭포가 연이어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한개 아니 세 개로 부족하여 다섯 개 씩이나 내 마음은 다섯 번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 놀라고 놀라 눈을 몇 번씩 비비며 그 위용을 보고 또 보았다.
조금 내려오다 보니 귀면암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가파르게 솟아오른 기암이 마치 귀신의 얼굴처럼 생겼다는데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곳이 천불동 계곡의 정수인 것 같다. 중청봉에서 시작되어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천불동 계곡은 천태만상의 바위 봉우리가 천개의 불상을 이루고 있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창공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와 천길 깊은 계곡 그리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천하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내려오면서 우연히 만난 어느 대학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신이 세계 30 - 40여개 나라를 여행했는데 설악산 천불동계곡 만큼 큰 감격을 느껴 본 곳이 드물었다고 했다. 정말 행복함과 큰 자부심을 느꼈다. 온 몸에 활기가 넘쳐나서 피곤한지를 모르겠다.
선경속의 신선이 되는 듯 거닐다 보니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철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직으로 우뚝 솟은 절벽 옆에 놓여진 철다리였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디디며 올랐다. 옆을 보면 숨이 멎을 것 같아 차마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걸었다. 이런 수직 절벽 중간에 철다리를 만들다니 인간의 위대한 힘일까? 아니면 무모한 자연에 대한 도전일까? 계단을 내려와서 발을 멈추고 눈앞을 보니 천당폭포, 거대한 바위 절벽 사이로 거침없이 수직 낙하하는 폭포수 눈물이 날 것 같다. 좋아서 가슴 저린다는 말이 여기에서 실감이 난다. 감동의 울림을 간직한 채 조금 더 내려오니 철다리 아래에 폭포가 있었다. 나는 폭포위에서 폭포를 내려다보는 내 생애 첫 경험을 했다. 저 아래에서 폭포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하니 아주머니 세 사람이 밝은 미소로 응해주었다. 계단을 다 내려오니 양폭폭포가 단아한 자태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 폭포가 천불동 계곡의 대표적인 폭포라 한다.
비경에 취해 내려오다 보니 어느 새 비선대, 잠시 넓은 바위 위에 앉아 눈을 들어보니 90도 직각으로 창공에 우뚝 솟은 바위 들이 장군의 위용처럼 위풍당당하다. 눈을 내려 아래를 보니 커다란 소(沼에)는 영롱한 연록색 비취 보석이 구르는 듯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비선대에서 신흥사까지는 평탄한 길이었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신흥사에 도착했다. 13시 50분 봉정암을 출발한지 약 7시간 10분 만이었다. 신흥사 경내를 둘러보고 설악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리며 쉬였다가 16시 30분쯤 설악산을 출발했다.
잠시 횟집에 들려 싱싱한 강원도 오징어회를 맛 보았다. 부드럽고 쫄깃한 맛에 피로가 싹 가신 듯 했다. 오징어회가 매우 감칠맛 나서 한 도반이 부족하다고 하자 회장님께서 그럼 내가 옷 벗고 바다에 뛰어들어 오징어를 잡아 오겠다고 하여 웃음바다를 이루었고 옆에 있던 여 총무님께서 옷 벗고 접시위로 올라가겠다고 해서 폭소의 바다를 만들었다.
오는 버스 속에서 2박3일간의 체험담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회장님의 덧붙인 말씀들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풍족하게 해주었다. 도반님들의 감칠맛 나는 체험담으로 버스 속은 화기애애했다, 어느 여선생님은 철계단 끝에서 발을 헛디디어 추락할 뻔 했는데, 마침 옆에 있는 나무에 옷이 걸려 큰 사고를 면했다며 이것도 다 부처님의 가피력이라고 말했고, 어떤 선생님은 예불시간의 장엄함과, 함께하는 수행이 매우 좋았으며, 숙소에서 바라본 사리탑의 모습이 매우 장엄했다는 회향담을 해 주셨다. 몇 분의 선생님들은 잠자리가 부족하여 범종각 아래에서 잠을 청했다는 이야기를 유머스럽게 풀어나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회장님께서 회향담 마무리를 해주셨다. ‘삶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나쁜 짓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하시며, ‘평상시 염불을 많이 하라고’ 하시면서 회향담을 마무리 지으셨다.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있으니 어느 새 잠이 들었나보다. 회장님의 말씀에 눈을 떠보니 버스는 벌써 동광주 근처에 와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광주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밤 열두시가 넘고 있었다. 아쉬운 작별 인사하고 집에 도착을 하니 새벽 1시가 다 되었다.
이번 2박3일 수련회와 성지순례를 회장님과 도반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좀 더 부처님께 가까이 가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 굳은 신심(信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자비와 지혜로 삶을 살아가겠다.
첫댓글 몇 년 전, 불교단체인 자비신행회의 일원으로 우리 나라 사찰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곳(1200m)에
자리잡은 청정도량인 봉정암을 갔을 때 썼던 기행문입니다.
백담사에서 1박하고 봉정암에서 2박을 하고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1708m)에 올랐던 추억이 떠오르기에....
지금은 물팍이 안 좋아서 높은 산을 등산하기가 쉽지 않지만, 2012년 10월 6일-7일(1박 2일)로 지리산 천왕봉을 새벽녘에
올라가서 해맞이를 해볼 생각입니다.숙박은 법계사에서 하고....
원규칭구 잘 보내시게...
사찰 기행문 잘 읽어 보았네....
어찌나 자세하게 썼던지 마치 내가 그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그 그림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것 같구만....긴글 쓰느라 수고 했네...
건강하고
꼼꼼하게 잘도 기록해놓았네소식이 깡통이드랑게
몇해전에 광주 여친덜 한테 같이 가자고 했던 기억이 난것같은데
그 여행지가 아닐련지....
이번 기회에 같이 동행 했으면 좋겠는데 그때쯤도 바쁠것이여
원규칭구 어제는 우디로 잠적했능가
성민이가 광주칭구들 얼굴본다고 모이자 해서 콜 했는디
설악산 자락에 위치한 백담사와 봉정암의 경치가 워낙 좋기에 우리 벗님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네.
지금은 내가 물팍이 많이 안 좋아서 장거리 산행이 힘들다네.
만약에 무릎이 좀 좋아지면 언젠가는 동참할 수 있는 친구들하고 항꾼에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네.
백담사에서 1박하고 봉정암에서 2박하고 오르면 그렇게 힘들지 않게 대청봉 정상(1708m)에 오를 수 있다네.
하산할 때는 설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인 천불동 계곡쪽으로 내려오고....
성민 친구가 추석전에 광주에 들렸을 때는 핸드폰을 테니스 가방 속에 넣어놓고 운동하느라고 몰랐다네.
테니스 끝나고는 일행들하고 막걸리 한 잔씩 하느라고 몰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