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 공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세종도서 우수문학도서’ 운영방침에는 현 정부의 문학에 대한 몰이해와 구시대적 발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한국작가회의와 한국출판인회의는 정부가 제시한 방침이 헌법에 보장된 사상·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음을 엄중히 경고하고자 한다. 문화부가 이라는 문건에서 밝힌 문학분야 우수도서의 선정 기준에는 2014년도에는 들어 있지 않던,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작품”, “인문학 등 지식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며,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라는 항목이 올해 새로 추가되었다. 2014년도 세종도서-문학나눔사업을 진행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에 의하면 2014년에는 “예술성과 수요자 관점을 종합 고려하여 우리 문학 저변 확충에 적절한 작품”만이 선정 기준으로 제시된 바 있다. ‘특정 이념’과 ‘국가경쟁력’이 올해 사업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우수문학의 새로운 기준인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은 최근 한 달간 ‘우수문학도서사업’과 관련해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은미 씨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에세이에서 시작된 종북몰이, 총리의 ‘우수문학도서 사업’에 대한 유감 표명, 신은미 씨의 앞의 책 우수문학도서 취소 결정, 이어서 나온 문화부의 ‘2015년도 세종도서-문학나눔의 선정 기준 강화’와 ‘선정 작품 사후 취소와 배포작품 회수를 가능하게 한 규정 신설’ 등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그야말로 문학작품을 정권의 방침에 맞게 규제하고 제한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작품”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라는 잣대 속에는 국가 기관의 사상 통제와 검열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선정기준에서 지난날 폭력적인 억압으로 우리의 입과 귀와 생각을 규제한 군부독재시대를 떠올리는 것을 누가 문학의 지나친 상상력이라 할 것인가. 어떤 문학이든 그 작품의 기반에는 작가가 세계를 보는 관점과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이 각인되어있다. 그것을 일러 우리는 세계관이라 하기도 하고 사상이나 이념이라 하기도 한다. 그 세계관과 사상 덕분에,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능력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정신문화의 소중한 자산으로 보호하려 하며 작가를 예술가로 존중하는 것이다. 모든 작가는 자신이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이념과 세계관’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문화부의 이와 같은 운영방침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인 ‘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작가들의 상상력을 미리 제한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저변을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 선정 기준은 출판의 가이드라인을 은연중에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담은 작품들을 출판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독자들과 공유할 출판인들의 자유와 권리마저도 원천적으로 봉쇄하게 될 것이다. 저 선정기준에서 제시한 ‘순수문학’이라는 용어는 우리로 하여금 1950년대의 ‘순수주의 문학’으로 위장한 반공문학, 1960년대의 철지난 ‘순수·참여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강압적 반공이데올로기가 기형적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정부가 문학과 출판을 마음대로 통제하던 시절에 문학을 ‘순수’와 ‘참여’로 나누어 재단하고 규제하던 낡은 논리이다. 문학은 ‘순수’와 ‘참여’로 나눌 수 없으며 좋은 작품이란 그 자체로 ‘순수’하다. 문학작품이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에 개입하며 ‘참여’한다는 것은 이제 건전한 의식을 가진 독자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이다. 이처럼 화석화된 ‘순수문학’이라는 용어가 좋은 작품의 기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요즘과 같은 민주화, 정보화의 시대에는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국가경쟁력’ 운운하려면 문학에 대한 정부의 후진적인 인식과 가치관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한국문학은 다양성의 가치와 의미를 존중하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분투해 온 문학인과 출판인들이 힘겹게 쌓아 올린 자산이며 역사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처럼 소중한 우리의 문학적 성과와 출판의 역사를,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돌연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리려 한다. ‘우수문학도서 지원사업’은 10여 년 동안 지속되면서 상당한 문학적 성과를 보이고 있는 사업이며 문학과 출판 양쪽으로 미치는 파급력도 적지 않다. 그러니만큼 그 운영의 기본 원칙은 국민의 세금으로 좋은 문학을 지원하고 그 지원의 혜택이 수요자인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중소 출판인들의 사업을 보호함으로써 출판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사업기조일 것이다. 세종도서 사업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방식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의 보편적인 상식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 ‘특정이념’이나 ‘국가경쟁력 강화’ 같은 자의적 기준과 후진적 발상으로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수문학’의 선정이 독자의 기대와 관심을 받을 수 있기를, 그래서 ‘우수문학’ 선정이 출판인과 문학인들에게도 명예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수문학’의 기준을 정부가 미리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 문학, 출판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그렇게 선정된 ‘우수문학’은 결국 독자에게 외면당할 것이며, 출판인과 문학인들에게도 불명예로 남을 것이다. 명예로운 ‘우수문학’을 위해 우리는 문화부의 시대착오적 운영방침과 발상의 철회를 강력히 요청한다. 강압적 군사독재 시대에나 통용되던 통제의 칼날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라. 국민의 저항만 자처할 뿐이다. 우리에게 오직 필요한 것은 어떤 사상과 이념이든 논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그 사상과 이념의 가치를 독자가 지혜롭게 판단하고 선택할 자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