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2013. 10. 19 (토) 산길 : 해인사~마애불~상왕봉~칠불봉~서성재~극락골~해인사 거리 : 10.8km
Cartographic Length = 10.8km Total Time: 05:00
2013대장경문화축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1,200년만에 일반에 공개된다는 마애불에 두 귀가 솔깃해져 지난주에 한번 가보려고 지도까지 챙겼다가 옆길로 빠져 버렸다.
뉴스와 남의 블로그 그림으로 끝내나 싶던 것이, 마눌님의 백련암 택배 오더를 받고 보니 바로 거기가 거기라. 성철스님 20주기 추도식이란다. 벌써 그렇게 됐나. 세상을 돌리는 시계는 내 관심사항과 상관없이 돌아간다.
그렇다고 1,200년이라는 숫자에 내가 꼽힌건 아니다. 중국의 진시황 무덤처럼 땅속에 묻혀있던걸 파낸것도 아니고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 길을 개방한다는 것이다. 즉, 통제구간을 일시개방한다는 말이다. 통제구역 -국립공원의 비지정등산로- 어디 한 번 두 번 가봤나.
그렇다하더라도 정확한 위치도 모르면서, 안내해주는 대로 합법적인(?) 길을 따라 맘편하게 가보자는 생각이다. 어차피 택배하러 백련암까지 가야하고, 더구나 입장료도 굳는다. 산청의 한방엑스포도 그렇고 여기도 대장경축전이라 하면서 입장료를 만원이나 받는다. 어찌보면 최근의 각종 축제들이 지자체의 입장료 장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다음 주에 부산에서 하는 불꽃축제는 개방된 바닷가에서 하다보니 입장료수입은 전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부산시는 전혀 돈 안되는 축제를 하고 있는기라. 광안리 불꽃축제 이제 고만했으면 좋겠다.
새벽에 일어나 못골시장 떡집에 가서 떡을 가득 싣고, 보살님 한 분 더 태우고 해인사로 갔다. 매표소 통과시는 “백련암!” 콜하니 안에 탄 보살님들 확인하고는 통과를 시켜준다. 입장료는 물론 승용차는 아예 입장을 안 시켜주는 상황이라, 가쁜하게 올라간다.
해인사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백련암. 해발 720쯤 된다. 1966년 운달산 김룡사에 머물던 성철스님이 가야산으로 들어와 열반에 이를 때까지 머물던 곳이다. 삼천배를 해야 스님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곳이다. 12년산 내 차가 헐떡거리며 겨우 올라간다.
택배를 완료하고 다시 내려와 일주문 올라가는 삼거리 적당한곳에 차를 숨겨놓고 산행시작이다.
백련암에 우리집 보살님 택배해 주고,
해인사 비림(碑林)
성철스님 사리탑 길목에 있는 해인사 비림(碑林)이다. 사리탑은 나중에 보자 비림 =비석거리는 사적비, 공덕비를 모아놓은 곳이다.
마애불 표기가 있다.
한국의 삼대사찰 : 법보종찰 해인사,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
海印 팔만대장경에 나오는 ‘海印三昧’에서 해인사 이름이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海)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해인사 일주문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오늘, 뭔가 깨달음이 있어야 될낀데...
해인총림 봉황문에서 해탈문까지 33계단.
아직은 조용하다
개장시간은 10시부터라 하나 따로 통제하지는 않는다. 절 왼쪽으로 '마애불 가는길'을 안내한다
마애불 가는 길 절 안쪽 길이라 평소에는 일반인들이 못 들어가는 곳이다.
이 길은 평소에는 스님들만의 공간이다.
이런 길은... 셋이서 가면 아주 좋고 둘이서 가면 더 좋고 혼자서 가면 가장 좋다.
극락골
[해인사에서 마애불까지 2.7km] 해인사 어느 지점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절 뒷문으로 나와 등산로 시작점부터 마애불까지 2.5km에 40분 걸렸다. 고도는 640에서 970까지, 서서히 오르다가 계곡 물길을 벗어나면서 바짝 쳐 올린다.
계곡따라(직진) 올라가면 상왕봉이나 서성재로 가고, 마애불은 우측 0.3km
꾸준히 극락골 물길을 따라 오르기를 30분, 2km정도 왔다. 고도는 860 정도. 정면 계곡으로는 [샛길 출입금지] 경고문이 걸려있고 우측으로 [마애불입상 0.3km]을 가리킨다. 놓여있는 흰색의자에 지금은 안보이지만 내려올 때는 지킴이가 앉아 있었다.
여기부터 코가 박히는 급경사가 시작된다. 앞에 가던 처자가 “깔딱고개 나왔다” 비명을 지른다.
흙이 패여 뿌리가 다 드러난 길. 이 길이 비개방구역이었다고라고라? 말이 말 같아야 따르기를 하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 등이 걸려있고, 전부 꼬리표가 달려있다. 어디사는 누구, 건강기원, 합격, 화목, 사랑... 바램의 문구가 함께 적혀있다.
매표소(!)에는 젊은 처자가 등을 팔고 있다. 같은 등이지만 등을 거는 위치에 따라 가격이 매겨졌다. 마애불 주위는 3만원, 길에는 1만원. 정면 마애불 뒤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지킴이가 있어 못감) 이 매표소 뒤(왼쪽)로도 길이 있다.(등 파는 처자 안볼 때 잽싸게 잠입)
드디어 다왔다.
보물222호
암벽에 새겨진 불상으로 짐작했는데, 일부러 세운 듯한 독립적인 돌판이다. 뒤에는 마치 바치기라도 하는듯 작은 돌판이 나란히 서있고, 불상이 향하는 방향은 우측 남향이다.
1200년산 마애불
'1200년만에 개방' 이라는것은 이 마애불이 생기고는 처음 개방한다는 말일 것이다. 서기 813년이면 신라 흥덕왕 시대.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대였고, 신라멸망 100년쯤 전이다. 1200이나 813은 추측일 뿐이고 '통일신라말기 작품'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보물 제222호인 이 불상의 공식 이름은 '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이다. 가야산 중턱 중봉에 있다 해서 '중봉 마애불'로도 불린다. 돋을새김한 마애불의 키는 약 7.5미터, 넓이는 약 3.1미터이다. 들리는 이야기에는 해인사의 지형이 마치 물위에 떠가는 배의 형국인데, 이 마애불은 그 배의 선장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전문가의 표현을 빌어보자.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고 높직하며 이마는 좁다. 미소가 없는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에 눈꼬리는 위로 치켜졌으며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두껍고 턱주름이 있다.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고 목에는 3개의 주름(삼도)이 뚜렷하다. 얼핏 보면 아이의 얼굴 같아 보이나 귀엽지는 않다. 둥근 어깨는 넓고 당당하다. 양 어깨에 걸친 옷(통견)은 아주 두꺼워 몸의 굴곡이 적혀 드러나지 않으며 발등까지 흘러내린다. 왼쪽 어깨에서 매듭을 지어 고리를 만들었다. U자형으로 연 가슴에는 내의가 보이고 띠매듭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검지와 중지를 구부려 가슴에 대어 손등을 보이고 있다. 특히 몸에 비해 작은 두 손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처리하여 생동감이 느껴진다. (오마이뉴스 김종길기자) 빌고 또 빌고...
서성재로 올라가는 길
국공파가 지킨다
마애불 뒷쪽을 보니 뚜렷한 길이 나있다. 처음 올라섰을 때만 해도 아무도 없었다 -그 때 들어갔으면 되었는데 사진 찍으며 둘러보는 사이, 국공파가 도착하고 안내요원 한 사람 더 포진을 했다. 무전기 통화내역을 무단감청해보니, 윗쪽(서성재) 근무자와 통화를 하는데 근무 시작을 알리면서 양쪽에서 서로 사람 못들어가게 단디이해라...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무작정 올라간다해도 저 윗쪽에서 검문을 받을게 뻔하다.
빨간 화살표 : 실제 진행코스. 파란 점선 : 마애불 뒤로 올라가는 길(추정) 마애불입상 : 지도표기 위치는 조금 틀린다
일단 후퇴하고, 저 아래 삼거리까지 내려가서 계곡을 타고 올라가자 생각을 했는데, 마애불 입구 등 접수하는 천막 뒤에 빤질빤질한 길이 보인다. 여기는 국공파 사거리 밖이고, 저 판매원 처자에게 시비만 안걸리면 되겠다. 잽싸게 잠입... 철계단을 내려가 도랑을 건너니 아주 조은 길이 나온다. [가야 02-05] 구조목이 있고, 저 아래 국공파가 지키는 삼거리 [마애불 0.3km] 이정표 지점에서 계곡따라 올라 온 길인데, 통제구간이라 아무도 안다닌다. 곰이나 어슬렁 거릴 길. 가야산에 곰 풀었다는 야그는 아직 없었재...?
이 길을 따라 10분 올라가니, 해인사에서 올라온 정규등산로와 합류한다.
[가야 01-05]
10분만에 주 등산로에 합류. 해인사에서 올라온 정규 등산로다. 앉아 쉬고 있던 사람들이 간판 뒤에서 튀어나오는 나를 보고 웬놈이냐는 듯 쳐다본다. 간첩 아니니 오해마쇼.
들어가지 말라면서, 마애불 가는 길임을 살짝 알려주는 센스~.
주 등산로가 오히려 썰렁하다
가을은 벌써 왔으나 단풍은 아직 덜왔다.
석조여래입상도 있었네...!
110m 라 적혀있지만 실제는 50m도 안된다 정규등산로 만나고 30분, 해발 1,250m
보물264호
역시 통일신라대로 추정을 하고, 목과 발 아래가 떨어졌던지 이어붙인 흔적이 남았다. 커다란 자연석 바위를 병풍 두르듯 배경으로 삼았고, 평탄한 터에 자리를 잡아 기도처로 적당하다.
오늘 보물을 두 개나 만났으니 횡재를 한건가.
회나무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보니 기도터가 있고, 물도 있어 야영도 되겠다.
해발 1300쯤 되는 암봉에 오르니 주위가 안개로 덮힌다. 정상부에 걸린 구름 속으로 들어온거다.
상왕봉으로,
1,400고지는 구름속이다.
가야산 상왕봉 (×1,430m)
아, 흐~~ 눈에 뵈는게 없다
たちいりきんし(다찌~리 낀시?) 발음도 어려버요...
국립공원 안내문에 처음보는 일본어가 '출입금지'다. 여기까지 올라 온 일본넘이 있을까봐, 그렇더라도 환영한다, 수고했다는 소리나 적어놓지. 어느 니혼징이나 차이니즈가 줄 막아놓은데로 넘어 간단 말이고? 그게 걱정이 되는 모양이재.
'출입금지 공단'으로 아예 이름을 바까라~ 앞으로 일본인에게 우리나라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소개할 때, 出入禁止 公團 (다찌~리낀시 고당) 이라하믄 되것다.
올라온 길 도로 내려갈 수야 있나. 서성재로 가보자. 뭔 수가 나것지.
1,432.6m (△가야26) 칠불봉은 고시지명이 아니다.
경북 성주군 가천면과 수륜면, 경남 합천군 가야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이다. 이미 예전부터 합천군에서 가야산 우두봉(상왕봉)에 정상석을 설치해놓고 가야산 정상임을 알리자, 경북 성주군에서는 이 봉이 더 높다고 하면서 칠불봉을 가야산 정상임을 주장하면서 정상석을 새로 설치했다.
높이는 이 봉이 상왕봉보다 2.6m 더 높은게 사실이나(지형도 표기) 성주군에서 칠불봉 오르는 길이 있기나 한지. 어디나 그렇지만 경계에 있는 산은 주 등산로가 나있는쪽으로 가게 마련인데, 가만 있는 산을 두고 니꺼니 내꺼니 따지는게 우스운 일이라.
서성재에서 올라오는 인파
상왕봉에서 서성재 1.4km
서성재 좌, 직진은 백운동 / 우측은 울타리를 둘렀다
서성재 바로 앞봉(×1136.1)에서 우측으로 능선타고 내려가면 마애불로 딱맞게 떨어지겠다 싶지만, 마애불에 국공파가 지키고 앉았는걸 뻔히 알면서 우에 내려가겠노.
울타리를 타넘어 극락골로 내려간다
아무도 없는 길
서성재에서 서쪽(백운동 반대쪽)으로 내려가니 산죽 사이로 길이 나있다. 낙엽이 덮혔긴 하지만 어렵지않게 식별이 되는 길이라. 여유롭게 20분을 내려오니 아까 마애불에서 올라가던 길을 만난다.
깊은 가을 속으로 빠져든다
아까 올라 온 길을 만난다(극락골)
길은 잘 다듬어놨네.
마애불 아래 삼거리 [마애불0.3km]
그대로 내려왔으면 노랑잠바(지킴이) 뒤에서 나오게 되는데, 옆으로 살짝 돌아 나왔다.
극락골 지킴이 (국공파는 아니고 마애불 안내요원이다)
절 마당이 조용하더니 한 순간 행렬로 가득찬다. 스님들을 뒤따라 도는 행렬
What concept?
성철스님 사리탑
비라도 오면 우짤라꼬.. 맨땅에 이불을 깔고...
조계종 제7대 종정 퇴옹당 성철대종사 20주기 추모식 (10.24)
24일 추모식 끝나야 마누라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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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은산 원문보기 글쓴이: 조은산
첫댓글 ㅎㅎ 하루 먼저 다녀가셨군요..
마애불에 적당한 훼손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서성재나 토신골갈림에서 가고싶은 분들은 드나들게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하긴.. 해인사 스님네들의 입김이 워낙 세니...^^
참 좋은 코스 소개 해주셨읍니다 감사 합니다
후기 짭짤하게 감상하고 갑니다,~~
음~ 마당에 이불깔고 계신분들은 열~이 많은지 그냥 반소매 바람으로 앉았네요.. 머리띠 까지 동여매고 무슨 전투 나가시는분들 맹키로
지가 하고픈일은 힘이 안들지요, 매사에 이해가 가는 문구가 가슴에 닫슴니다... 사진 잘 봤슴니다...
몇넌전에 마애불 지나 정상 다녀 왔는데 전혀 통제 없었습니다.
이글을 읽고나니 해인사 가고픈 마음이 새록새록 나네요
평일 하루라도 놀아봐 ?
'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 앉아서 봅니다. 다시 한 번 가보고픈 충동을 느끼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후기글 잘보았습니다.
멋진 후기네요
2031년까지 출입금지라니 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