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산
12월16일
서해 최북단 섬 명소 여행 백령도
사곶해변 끝섬전망대 물범바위 심청각 두무진 콩돌해안
백령도의 하이라이트인 두무진. 기암 천국이란 말이 어울리는 기념사진 명소이자, 해넘이 명소다.
효녀 심청이 실존 인물이라 한다. 설화의 내용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중국 상인들은 배에 있던 비단으로
심청의 몸을 꽁꽁 싸서 바다에 빠뜨렸다. 이 비단 덕분에 심청은 가라앉지 않고 바다에 뜬 채 조류에 밀려
덕돔포라는 포구에 이른 것.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사또에게 알렸고, 측은지심이 생긴 사또는 심청을 이곳에 정착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사또의 아들과 심청이 눈이 맞아 혼인을 하게 되었고, 시아버지인 사또가 맹인잔치를 열어 아비인
심 봉사를 만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부풀려져 지금의 '심청전'이 되었다고 한다.
장촌포구 끄트머리에 있는 고운 빛깔의 해벽을 걷는다. 포구 서쪽 모퉁이 해안선을 넘어가면 드러난다.
하늬해변을 걷는 트로트 가수 백장미씨와 매니저인 남편 이태희씨. 철조망 옆을 지나며 최전방임을 실감한다.
저녁이 되면 민간인은 해안선 출입이 통제된다.
심청전 배경에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고려시대 황해도와 부속 섬 일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라는 것이 정설이다.
예부터 전해오는 판소리 심청가는 "옛날 옛적 황주(황해도 황주군)땅 도화동에 한 소경이 살았는데…"로 시작
한다.한국민속학회의 향토사학자와 교수들이 1995년 백령도를 찾아 심청전의 배경을 조사한 후 '단순히 허구
적 설정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심 봉사가 공양미를 바친 절이 있었다는 절터가 백령도 중화동
산기슭에 있으며, 연화리와 연꽃바위 같은 지명도 심청전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지명과 구전설화,
옛 상인들의 이동 경로를 종합했을 때 백령도가 심청전의 발상지로 유력하다고 주장한바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콩돌해변. 파도가 빠져나갈 때마다 콩처럼 귀여운 돌이 "찰그르르르"하고 귀여운 소리를 낸다.
사곶해변의 소나무숲. 백장미·이태희 부부는 100명산을 완등한 등산 마니아다.
옹골찬 산줄기, 장산지맥의 위용
지도를 볼 때마다 '헉'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북위 37도 52분, 쉽게 말해 북한 땅 개성보다 더 북쪽에
있다. 말이 서해 최북단이지, 북한 깊숙이 박힌 군사적 요충지다. 인천에서 230km 떨어져 있으나 북한 황해도
땅은 12km 거리에 불과하다. 울릉도, 가거도, 못지않게 멀고 희귀한 섬인 것.
쾌속선으로 4시간, 편도 뱃삯 7만 원, 쉽게 올 수 없는 섬이다. 꼼꼼히 예습하여 찾고 싶었으나 접경 지역답게
정보가 적었다. 차량을 렌트해 즉흥적이지만 최대한 많이 둘러보기로 했다. 백령도 여행의 주인공은 트로트
가수 백장미씨와 남편이자 매니저인 이태희씨다. 백장미씨는 여자 가수 중 유일한 BAC 명산100 완주자다.
가수 데뷔 후 호흡량을 늘리기 위해 남편 손에 끌려 뒷산을 오르기 시작해 등산에 재미를 느낀 백장미씨는
2019년 100명산을 다 올랐다. 남편이 수억 원 사기를 당해 100명산 도전 중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압류
딱지가 살림살이에 붙는 와중에도 산행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텐트로 야영하며
전국을 누빈 집념의 '등산 가수'와 함께한다.
비행기가 착륙할 정도로 단단하고 넓은 사곶해변. 여백의 미가 있는 담백한 해변이다. 멀리 대청도와
소청도가 작은 능선으로 뻗었다.
파도처럼 배에서 내리고 타는, 군복 입은 청년들에게서 최전방 분위기가 실감난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명소
부터 하나씩 둘러보기로 했다. 끝섬전망대라 불리는 해발 136m 용기원산 꼭대기를 차로 올랐다. 곧장 북한이
펼쳐졌다.
이토록 쉽게 북한땅을 볼 줄은 몰랐다. 길게 뻗은 육지는,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한 마리 용 같은 산줄기였다.
망원경에 눈을 대자 희끗한 바위산의 진면모가 곳곳에 드러난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맛깔스런 산줄기. 해서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장산지맥이 옹골찬 산세로 힘 있게 뻗어
있었다. 해발 300~400m의 지맥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파르게 솟은 산줄기는 압도적이었다.
갯바위를 날렵하게 뛰어넘는 백장미씨. 경쾌한 댄스 트로트를 추구하는 그녀의 성향처럼 발놀림도 빠르다.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사곶해변을 찾았다. 모래해변임에도 바닥이 단단해 수송기
이착륙 장소로 쓰이는 3km의 거대한 해변은 그 자체로 천연기념물이다.
광활한 해변을 맨발로 걸었다. 젖어 있으나 발에 흙이 묻지 않았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 투명한 파도
는 깊은 산 얼음골마냥 차가웠다. 썰물보다 밀물이 더 강해 밀려온 모래가 축척되었다고 한다. 모래의 주성분
인 석영이 매우 단단해 마모되지 않는데다 바닷물이 접착제 역할을 해서 해변이 단단해진 것.
쓰레기 하나 없는 순수한 해변, 마침 관광객도 없다. 멍하니 밀물을 기다렸다. 북위 37도의 바람이 재킷을
헤치며 다가왔다. 담담히 밀려오는 파도, '얼마든지 밀려오라'고 내뱉었으나 워낙 차가워 버틸 수 없었다.
차를 몰아 물범바위로 갔다. 내비게이션과 포털지도의 정확도가 떨어져, 이정표와 인터넷 정보를 종합해 길을
찾아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 작은 안내소에서 박찬교 지질공원 해설사가 나와 알던 사이인양 친근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범이었다. 야생 물범을 본 건 처음이다. 바닷가 암초에 터를 잡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일행들은 망원경에
눈을 대는 족족 작은 탄성을 질렀다. 13마리 정도가 살고 있는데 3월부터 11월까지 이곳에 살고, 이후에는
더 북쪽인 중국 대련 해안으로 간다. 섬에서 6km가 건널 수 없는 NLL이며, 물범바위는 3km 떨어져 있는데
눈으로는 1km 거리인양 가까워보인다.
고봉포구의 사자바위를 배경으로 걷는다. 포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바라만 볼 수 있는 바위다.
다시 차를 탔다. 명소만 빠르게 보고 지나치는 가성비 관광객 같아 서운했지만, 시간 관계상 이것이 최선이었
기에 쫓기듯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큰 섬에 속할 정도로, 스케일이 있는
섬이다.심청각은 북한 전망대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장산곶을 향해 뻗은 산줄기가 잘 보인다. 백령도와 북측
장산곶 사이의 바다는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로 여겨지고 있어, 인당수가 잘 보이는 진촌리에 심청각을
세웠다고 한다.인당수는 이토록 넓고 거친 바다였음을 눈으로 확인한다. 효심이 있다고 하여 죽으러 바다에
뛰어들 수 있을까. 눈 먼 아버지를 위한 딸의 마지막 선물, 눈물 나도록 가난했던 세상살이의 단면이 결국
설화가 되었다. 마지막 목숨 쏟아내어 아비를 살리려 했으니, 설화가 될 만한 효심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닿으려 빠르게 차를 몰았다. 조선 중기 의병장이던 이대기는 백령도로 유배 와서 이 해안을
보고 '이 세상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그의 저서 <백령지白翎誌>에 적었다. 백령도의
백미로 꼽히는 두무진頭武津이다.
창바위가 있는 사곶해변 서쪽 끄트머리. 모래사장에 창처럼 박힌 독특한 바위와 단순 명료한 풍경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 해변
두무진은 선착장이 있는 용기포 정반대에 있다. 섬 북서쪽 해안 4km 정도에 펼쳐진 기암 해안선이다. 두무진
바위들은 하나하나가 전설 몇 개쯤 지녔을 법한 거인들이다. 선대암, 장군바위, 형제바위, 코끼리바위 등
갖가지 형상을 띤 바위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원래 머리털이 솟은 듯 바위가 생겼다 하여 두모진頭毛鎭으로 불렸으나, 러일전쟁 때 일본 병참기지가 꾸려진
이후 장군들이 회의하는 광경을 닮아 두무진으로 바뀌었다.
포구 끝에서 데크를 따라 기암 천국으로 향했다. 짧은 해안선을 지나 산길로 들었다. 모처럼 밟는 흙길에
이제야 고향에 온양 안도감이 들었다. 해안선 꼭대기 전망데크에 닿자 신선이 놀았다는 선대암이 있었다.
거대한 바위벽에 새겨진 10억 년 세월의 나이테,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세도나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겨울 북풍에 맞서는 막강한 힘의 방어막인양 든든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계단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서자 누구라도 기념사진 찍을 법한 구멍 바위가 있었다. 그 옆 해변에는 쌍검처럼
솟은 형제 바위가 잔뜩 날을 세운 채 카리스마 있게 서있었다. 마침 두 바위 사이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종교
가 없는 이도 경외심을 가질 만큼 대자연의 장엄함이 바다를 뜨겁게 달궜다. 적당히를 모르는 혼신을 다한
해넘이가 마음을 움켜쥐었다. 마음이 흐물흐물해지며 누군가 그리워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언덕 꼭대기에 있어 실제로 천안함이 침몰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백령도의 백미인 두무진. 왼쪽 쌍봉이 형제바위인데, 운이 좋으면 두 바위 사이로 태양이 저무는 광경을 볼 수
있다.넋 놓고 바라보는데, "나가셔야 합니다!"하는 외침. 오후 5시가 넘자, 병사들이 칼같이 민간인을 내보내고
있었다. 백령도는 저녁이 되면 모든 해안선 출입이 통제된다.
숙소에서 1박 후 BAC 인증지점부터 찾았다. 백령호수 귀퉁이에 있는 대형 비석. '서해 최북단 백령도' 글귀
에서 세상 끝 아득한 곳에 온 것 같은 낯설음이 실감났다. 길 건너 제방에 올라서자 살바도르 달리의 바다였다.
아무도 없는 해변은 꽤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린 듯했다. 단단한 모래와 물, 바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단순
명료함의 극치. 초현실 공간에 온 듯, 시간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곶해변 서쪽 끄트머리.
창바위는 신이 떨어뜨린 창이 백사장에 꽂힌 듯했다. 치열한 신들의 전쟁이 끝나고, 지상에 꽂힌 창. 살육에
진절머리가 난 듯 고요하고 싶어했다. 바람과 파도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해변, 붉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전화기의 신호단추를 누르면 안전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라는 문구에
서해 최북단 섬으로 화들짝 돌아온 기분이었다.
차를 몰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변을 찾았다. 규암이 물결에 닳아 콩만 해진 돌이 해변을 메우고 있었다.
해설사가 해안 입구에서 "해변의 돌은 몰래 가져갈 수 없다"고 주의를 주고 있었다. 그만큼 돌은 앙증맞았다.
파도가 빠져 나갈 때마다 "찰그르르르"하는 귀여운 소리를 냈다.
인천으로 가는 배 시간이 임박했다. 한 군데 들를 시간만 남아 있었다. 천안함 위령탑으로 향했다. 이 먼
바다에 잠든 장병들을 보고 싶었다.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 위에 46용사의 위령탑이 있었다. 안내판에
천안함이 피격된 위치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유독 바람이 차고 바다는 울분에 차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혼이 있는지, 바람이 애절한 소리를 내며 스쳐갔다. 오래도록 곁에 있고 싶었다.
백령도 BAC 인증지점인 '서해 최북단 백령도' 표지석. 백장미·이태희 부부는 사기를 당해 집이 경매에 넘어
가는 와중에도 등산으로 몸과 마음을 다졌고, 지역 방송 리포터와 행사 가수로 부지런히 활동해 빚을 청산했다.
백령도 가이드
현지 버스가 있으나 불편하다. 차량을 렌트해서 둘러보거나, 자전거나 전기 자전거를 이용해서 둘러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용기포선착장에서 시계 방향으로 둘러볼 경우 사곶해변, 백령도 서해최북단 인증 비석, 창바위,
콩돌해안, 천안함 위령탑, 두무진, 사자바위, 심청각, 물범바위, 끝섬전망대 순으로 돌 수 있다. 45km 정도
거리다.
군사 요충지라 해안선은 오후 5시 넘어서면 통제된다. 관광명소나 해수욕장 가릴 것 없이 민간인은 머물 수
없다. 해변에서의 야영도 불가능하다. 백령면사무소가 있는 진촌리에 식당과 숙소가 밀집해 있다. 최전방이라
내네비게이션이 정확하지 않으므로, 현지 안내판과 포털 지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운전해야 한다.
교통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에이치해운 하모니플라워호가 오전 7시 50분 출발, 고려고속훼리 코리아프라이드
가 오전 8시 30분 출발, 코리아프린세스호가 12시 30분에 출발한다. 백령도까지 4시간 걸리며 요금은 편도
7만 원 내외. 다만 하모니플라워호는 수리 관계로 올해 12월 31일까지 운항하지 않는다.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나오는 배는 코리아프라이드 13시 30분, 코리아프린세스 아침 7시에 출발한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 주차료
1일 1만 원.
BAC 인증지점
'서해 최북단 백령도' 표지석 N37 93986 E124 70438
숙식
플러스 가이드 기사 참조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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