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가을 금강산은 풍악산(楓嶽山)이라고 했다.
이때의 풍은 단풍나무를 뜻하는 게 아니라 온산이 붉게 물드는 현상을 말한다.
양반들은 스케일이 약간이 아닌지라 쪼맨한 나무가 아니라 산 전체를 두고 감상했것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때까지 양반네들이 즐긴 것은 후자를 뜻하기 쉽다고 본다.
오늘날 한국인이 나들이나 산행을 제일 많이 하는 때는 가을, 이름하여 단풍놀이이다.
그런데 이때의 단풍은 두가지 의미를 띤다.
온산이 붉게 물드는 것을 즐기는 것과, 내장산 단풍에서처럼 단풍나무에 집중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런 애매함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일본어에는 단풍(紅葉)해당하는 단어는 두가지로 고요(こうよう)와 모미지(もみじ)가 있다.
고요는 조선식으로 풍악산을 일컬을 때의 단풍이고, 모미지는 단풍나무의 단풍을 뜻한다.
일본인들에게 단풍놀이는 모미지가리(もみじ狩り)라고 한다.
그들에게 단풍놀이는 단풍나무가 주이다보니(추정), 우리처럼 굳이 멀리 산을 찾을 필요는 없고,
대신에 시내에도 신사나 공원 등 잘 조성된 단풍놀이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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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근대 등산과 근대여행이 시작되면서 한국인에게도 단풍놀이에 일본의 '모미지'가 들어왔다.
이런 식이었다.
유명한 1929년 조선박람회를 소개하는 7월 11일자 동아일보 광고이다. 더 읽으시려면
조선의 궁궐과 일제 총독부 건물이 단풍에 둘러 쌓여 있다.
풍악산에도 모미지가 들어왔다.
일제 때의 금강산 구룡연 사진엽서 한장.
정비석이 "산정무한"에서 명경대에서 스탬프를 찍었다고 하고 있듯이, 뒷면엔 당시 유행따라 스탬프가 찍혀 있다. 스탬프에는 찍는 장소가 적혀 있는데 여기에는 없다. 오른쪽부터 해금강, 만물상, 구룡연, 내금강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 비로봉 정상에서 찍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여기에 '모미지',단풍나무가 들어있다.
조선시대때에도 단풍을 보는 걸 관풍(觀楓)이라고 했다.
여기서 풍은 단풍나무가 아니라 홍엽(紅葉)이었다.
일제 때부터 단풍이 단풍나무를 뜻하기 시작하는 걸로 보인다.
일제때 유행했던 '조선팔경'중 내장산 백양사를 담은 스탬프이다.(더 읽으시려면)
내장산이 조선시대때부터 단풍이 유명했을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단풍나무 중심으로 내장산이 조성된 것은 일제때라고 추정된다.
해방후에도 뉴튼의 법칙에서처럼 경향성이 유지되면서 등산 기념품에 다수 등장한다.
열쇠고리나 벽걸이 기념품에도 적지 않고,.
페넌트와 뺏지에도 단골 모델이 되었다.
이런 경향성은 유럽이나 중국에서는 보기 어렵고,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다.
그 이유는 위에서 본바와 같다.
유일한 예외라고 하면 단풍나무가 거의 국기 수준인 캐나다가 있겠다.
캐나다의 한 열쇠고리이고, 뒷면에는 이렇게 단풍나무에 대한 예찬이 적혀 있다.
그들에게도 단풍은 대체로 Maple,그러니까 단풍나무를 뜻하는 걸로 보인다.
네이버나 구글에서 '단풍'이라고 검색하면 6:4 정도로 붉게 물든 산이 아니라 단풍나무가 우세해 보인다. 지난 100년 동안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변화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해서 가을 금강산인 풍악산의 '풍(楓)'의 변천사를 한번 풍(風)^^쳐 보았습니다.
우리네 산은 깊고 높아 생각하잣드면 또 생각할 꺼리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덧붙여,
부악팔경에 등장하는 단풍은 -----> 여기를
소나무는 한국의 나무인가? 일본은? -----> 여기를
금강산 기념품에 등장하는 단풍잎은.....---> 여기를
벚꽃이 도둑이라면 단풍은? ------> 여기를
단풍과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 여기를
1980년대 부산, 단풍잎은 어디에서 날아왔을까요? ----> 여기를
첫댓글 단풍나무 풍자에 그런 뜻이 있어요?
근거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새론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이 땅은 가을이 젤 알흠답지여.
가실엔 늘 창덕궁 후원엘 갔었슴다. 설악을 못 간 후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