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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왜 부르는 데? "
"그냥요! "
봄이님이 글을 쓰신 것은 어제 새벽 4시 28분이었습니다.
어저께 집에서 늦게 잠을 자다가
어제 아침 새벽 5시 25분경에 눈이 딱 떠졌습니다,
보통은 7시쯤일어나는 데 말이지요
컴퓨터를 확인 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서 딱 열었는데
봄이님이 방금 전에 긴장문의 글을 쓰신 것이 올라와 있더군요
전부 읽고 바로 어본존님에게 다가가서 제목을 부리기 시작 했습니다.
집사람도 일어나서 왜 이렇게 일찍 제목을 부르냐고 하더군요.
제목을 부르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엤날 20대 때 서울 명륜동 북부총합본부가 있었습니다.
남의 회관이지만 거기서도 제목을 불렀는데
어느 날 옆에 초등학교 4~5학년 된 아이가
제목을 열심히 부르고 있었습니다.
회관에서 제목을 부르는 초등학생 아이
흔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대체 저 어린 꼬마가 무슨 어려운 일이 있어서
저렇게 제목을 열심히 부르는 것일까?
그래서 제목을 부르다 말고
“예! 잠깐만 물어보자”
“왜~여?” 하고 고개를 돌렸는 데
제목에 너무 집중 한 나머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습니다.
제목은 왜 부르는 데?
라고 물었더니
정말 대답이 가관입니다.
“그냥요”
하더니 그 애는 다시금 제목을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마치 10대의 아이콘이였던 “김연아”의 어록에
나와 있는 대답처럼 말이죠
* 김연아 어록 ( 2008년도 어록 )
기자의 질문 : "김연아 선수 왜 개를 기르죠?"
"그냥, 원래 기르던 거니깐.."
그 애는 분명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얼굴이 벌개져서 제목을 부르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꼬마애가 열반의 경지를 득하는 것을 본 것은
저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고
진정 전무후무한 경험이었습니다.
꼬마가 집중하여 끌어 올렸던 무분별의 세계!
어본존님과 하나가 되는 사(事)의 일념삼천의 경지!
유불여불 내능구진의 경계!
오로지 신(信)과 순수함과 제목을 통해서 만이 만킥할 수 있는....!
그리고 대우주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최고의 개방성!
동시에 마음 밑바닦을 살펴보면 전혀 찍그럭지가 전혀
잡히지 않는 마음 바닥이 완전히 깨끗한 경지....
그리고 정정 당당함
마음의 밑둥에서
소심함이 전혀 올라오지 않는 화창한 세계
이 느낌을 그 소녀는 한마디의 말로 표현 하여
“그냥요”라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 제목을 부르면서 봄이 님의 글을 읽고
그 애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봄이님은 초등학교 그 당시 분명히 이와 같이 “대환희”심을 느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목을 부를 때는 20대-30대 때 당연히
그와 같은 “대 환희”심을 느끼곤 하였는 데
활동을 할 때도 그런 기분을
기가 막히게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쯤 3월 회관에서 실내장식을 하고 있었는 데
물감이 필요하여 알파문구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밖에는 약간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나가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가랑비가 살살 내리는 데
갑자기 몸에 무언가가 온 것입니다
“쿠궁 딱” 치고 들어 오는 것이
법계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온것입니다.
추운 기온과 가랑비는 감기 들기
딱 좋은 날씨인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원하고 어깨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온몸은 열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곤 앞에 묘법연화경이라는 큰글씨가 나타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법락을 느꼈읍니다
지금도 그때의 법으로부터 오는 희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젊었을 때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이 생명상태는 어린 꼬마애의 생명을 표현한 것과
동일한 상태일 것입니다.
활동 속에서 느낀 “대환희심”의 경험입니다.
이야기를 바꾸어서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그 부인이 어느 날 간부님들에게 포교가 되어서
제목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닥터가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제발 그 종교 믿지 말라고 하면서
하루가 멀다않고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수술하다가 피곤하여 집에 들어가 보면 부인이 벽을 보고 앉아
제목을 올리고 있으니 정말 괴로운 것입니다.
부인이 의사에게 설명을 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동네 창피하다고 그만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고 나서
어느 날 그는 몸이 점점 말라가고 먹은 것이 얹히고 해서
정밀 조사를 하였는 데
위암 말기인 것입니다.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시름시름하다가 집사람 몰래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병원 지하실로 내려가
의자를 갖다가 놓고
무릎을 꿇고서 부인이 하는 제목을 불러 본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안 해지고
무언가 희망이 생기는 것 같고
밥도 입에 잘 들어오는 것 같아
아무도 모르게 매일 매일 지하실로
가서 제목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날은
제목을 부르는 데 너무나 잘 불러져서
엄청난 피치를 올리고 몰아의 경지로 올라가다가
갑자기 피를 와락 토하면서 무언가를 뱉어 냈습니다.
그리고 기절하여 쓰러졌습니다.
한참 만에 깨어나서 바닦에 뱉어진
큰 피덩어리를 가지고 올라가
조직검사를 해보니 암덩어리 였습니다.
진행과정은 이렇습니다.
암세포가 점점 한쪽으로 몰리더니 혹으로 되어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친구 닥터에게 정밀 검사를 의뢰하였는데
암세포 완전 근절이고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분은 그날로 입신하여 그 이후론 광포에
앞장서서 움직이기기 시작합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나라 불교회 제2대 조대철 이사장입니다.
바로 80년대를 책임졌던 우리들의 대표주자 이사장 말입니다.
이런 충격적이고 센세이셔녈한 체험담이 즐비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봄이님이 초등학교시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 아마 이런 확실한 체험담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제3대인데
이땅에 사제불이를 수입하여 그 사제불이를
도서 인간혁명을 통해 앞장섰던 분...
그분은 그 사제불이로 양날의 칼날에 도륙을 당하여
그의 진용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사람들
반대파로 몰린 사람
사회에 비참하게 낙오가 된 사람들로
불교회 내분의 주역들의 장(長)입니다.
이들이 그 분란의 90년대를 책임졌던 사람들입니다.
아마 불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 전부 거의 없다시피하고
제널레이션의 단절을 가지고와
오늘날 불교회를 이렇게 허약하게 만든 분들입니다
바로 동점서환의 이땅에 요상한 사제불이를 끌고들어와
사제불이로 망한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그 패러다임은 단절되지 못하고
요상한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인 사제불이"
로 도를 더하여 판을 치면서 한반도에 홍통되었던 묘법이
거의 묘법이 아닌 것 처럼 변질되어 버린 안타가운 현실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입니다.
그러니 그 과보로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봄이님과 같은 걱정이 있습니다.
그때의 그 대환희심이 1990년대 이후로는
거의 없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단지 상쾌하다는 느낌만이 있습니다.
(어찌 이렇게 표현을 잘하시는 지)
그리고 대환희심은 생명으로 위험을 느껴서 임종을 다하는
감각적인 세계관을 간신히 열었을 때나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작업은 인위성이 들어간
고도의 초감각의 세계로
일반화가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절복을 좀 하는 데
한명을 절목을 하고 나왔을 때 환희심이 올라오긴 하지만
그 엤날의 대환희심에 비하면 비교적 약하고
생으로부터 오는 본유의 불안감이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 뒷끝이 없는 느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저도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엄청난 활동과
7년간의 매일 조기근행을 하였섰는 데
마음속에서 남을 어찌해야 되겠다라는 “타화자재천”의 마음이
엄습해오는 것을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자기자신을 느낄 때가 많았고
그 마음씨 수더분한 동네아저씨 같은 박덕현이사장님...
그는 90년대 들어서서 이사장이 되고난 다음에
항상 남을 의심하는 병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바로 자기 다음에 있는 분들이 자신을 어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이렇게 저렇게 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꽉차게 된 이상한 성격으로 변한 것입니다.
지역이상 간부들의 얼굴을 보면 전부
이것에 안 걸린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보였습니다.
특히 부인부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얼굴에 드러나든지 아니면 애써 감추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이상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총체적 수라성”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것입니다.
원래 부처옆에는 마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매일매일 제목을 부른 다는 것은
종국적으로 마를 극복한 모습인데
왜 그런 심성이 나올까요?
오랜 신심을 하신 방면간부님들을 보면
왜 그냥 허당으로 보일까요
다 같은 맥락들입니다.
90년대부터 사람들의 심성이 흡사
괴물로 바뀐 것 같았습니다.
역직만 맡으면 이상하게 성격이 바뀌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참회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엤날 활동을 열심히 할 때 전권을 휘둘르다가
상처준 일들이 떠올라서요
그리고 저는 여러 가지 방법의 흐름이 제 몸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봄이님은 상당히 센서티브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몸으로 느끼고
대환희심과 그것보다 못한 상쾌한 심정,
역직자가 갖는 “만심과 욕심”에 대한 거부감 등을 세밀하게
느끼니까 말이지요
그때부터의 역직자들은 자신들이
그런 심성이 몸에서 올라오는 줄 잘아는
사람들이 정말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지역이상간부들의 역직자들의 심성과 표정이
저의 90년대 거대 화두였었습니다.
도대체 저런 마음씨와 억압적 표정은 무엇인가
말이지요.
불교를 믿는 자들이 왜 저런 심성이 나오는 것일까? 말이지요
거의 십년간을 고민 한 사항입니다.
다음은 "나눔의 철학"에 대한 저의 법론입니다.
우리불법은 숙명전환, 일생성불, 광선유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善)도 대선, 중선, 소선중에서 대선(大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도다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이것을 시사적으로 말씀 하셨습니다.
티글모아 태산이라고 하지만 절대로 티글이 모여서 태산이 되지는 않는다.
지각변동을 이루어야 태산이 된다고
여기서 티글은 소선을 말합니다.
대선은 지각변동을 말합니다.
바로 숙명전환이지요
법화경은 사람들에게 소선을 베풀 것을 명하지 않습니다.
대선을 베풀어서 그의 인생의 지각변동을 시키라고 말이지요.
대성인님의 어서전체를 뒤적거려도
“육파라밀다”를 수행할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개목초 하> 에서
무량의경(無量義經)에 가로되
「아직 육파라밀(六波羅蜜)을 수행(修行)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육파라밀(六波羅蜜)은 자연(自然)히 재전(在前)함이라」
법화경을 수행하면 보시행을 포함하고 있는
육파라밀 이 전부 구족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남한테 무언가를 주라는 교시가 전혀 없습니다.
단지 법보시(화타행)를 강조 할뿐입니다.
또한 <동일함미어서>에
아울러 여러 보장(寶藏)이 있다 함은
제불보살(諸佛菩薩)의 만행만선(萬行萬善)․
제파라밀(諸波羅蜜)의 공덕(功德)이 묘법(妙法)에
포함(包含)됨을 비유함이라.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울러 대성인의 불법은
“근본의 인과”를 그 수행의 바탕으로 하지
“통상의 인과”를 수행의 근본으로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근본의 인과란 근본선(제목과 절복행)은
백천만가지의 “통상의 선”의 결과을 얻게되는 것을 말하고
근본악(정법비방)을 저지르면
백천만가지의 통상의 악의 결과를 얻는다라는 것입니다.
* 통상의 악의 결과 : 일(一)에는 혹피경이(或被輕易) 이(二)에는 혹형상추루(或形狀醜陋) 삼(三)
에는 의복부족(依服不足) 사(四)에는 음식추소(飮食麤疎) 오(五)에는 구재불
리(求財不利) 육(六)에는 생빈천가(生貧賤家) 칠(七)에는 급사견가(及邪見家)
팔(八)에는 혹조왕난(或遭王難)( < 사도어서 >중 반니원경의 글을 인용하심)
통상의 인과는 1회의 선으로 1회의 선의결과를 얻고
1회의 악으로 1회의 악의 결과를 얻는다는 것인 데
이런 통상의 인과로는 그동안 쌓아놓은 숙업을 갚기도 전에 현세에서
더 많은 죄를 짐에 따라
숙명전환을 할수 없게 된다는 도리가 형성되어 이런 인과론으로는
절대 숙명전환을 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왜믿는 가
숙명전환과 일생성불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종교에 입신한 것은 숙명전환을 목적으로 입신 한 것이며
대환희를 느낄수 있는 일생성불을 위해 믿게 된 것입니다.
대성인의 불법은 그것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법의 나눔이 법화경의 근본이고
"재의 나눔" 즉 "통상의 선"은 근본이 아닙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사회에
내가 어떤 공헌을 하였는가
나의 삶의 일부분은 남을 위한
봉사와 헌신을 위해 할애를 하였는가?
이것은 인간이라면 갖추어야 할 인격이고
바른 생활의 표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인간품성의 도리상 그런 것을 갖추는 것은
교양이고 지성이며 인류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단언 하건데
대성인의 신심의 영역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가지고 마음이 흔들리시면 안됩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봄이님께서 말씀하시는 대환희심과 관련하여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법화경에 와서는 제법이 실상입니다.
삼라만상이 실상(극 진리)이라는 것입니다.
제법하나하나가 전부 실상이다라고 깨닫는 것을
법화경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총감문초에서
일체(一切)의 법(法)은
개시불법(皆是佛法)이라고 설(說)하셨을 때
그 좌석(座席)에 열석(列席)하였던
모든 사중(四衆)․팔부(八部)․축생(畜生)․외도(外道) 등(等),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다 망상(妄想)의 벽목(僻目)․벽사(僻思)․즉좌(卽座)에서 산지(散止)하여,
본각(本覺)의 생시(生時)로 돌아와서 모두 불도(佛道)를 이루었다.
(통해)
일체의 모든 것은 모두 불법(실상)이라고 설하셨을 때
그 법화경회좌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이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미혹의 눈과 생각들이 즉시 사라지고 멈추어지어
깨달음의 생시로 돌아와서 성불을 이루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전경에서는 나쁜 것은 버려라.
좋지 않는 생각은 없애버려라
남한테 베풀어라
무소유를 즐겨라
가진 것 노나 주어라
그렇게 끝 다을 때 까지 추구하니 성불은 오지 않더라도
인간성은 대책없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 대책없다는 말 : 스님들이나 신부들은 공양이나 헌금을 통해 호구지책
을 마련하나 일반인들은 호구지책에 대한 대책 없음
그리고 언급하시고 있는 돈과 연결된 “물질적인 체험담”에 대하여는
생명의 환희가 없는 체험담은 체험담이 아니라고 봅니다.
환희 그결과 공덕이라는 인과관계가 형성되는
체험담이 별반 없다는 것입니다.
공덕은 육근 청정의 과보라고 했습니다.
그런 집 몇채, 10배라는 결과가 나왔으면
그만한 환희도 있어야 되는 데
그러면 오십전전의 역동성이 느껴져서
그것이 이상하게 들리기 보다는 봄이님에게 깨달음을 주었을 텐데
봄이님이 역겁게 느껴졌다는 자체가
그 가시화의 원동력이 “신심”이 아니라
길흉화복에서 나타난 원인이라고 생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회원님들이 집을 사게해주세요
아니면 아들이 취직되게 해주세요
수능 잘치게 해주세요 라고 기원하면
1차원적으로는 어찌 그런 기원을 할 것인가
너무나 이기적이다라고 반드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화경은 이전경처럼 인간의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실상임으로 “살려나간다”라는 철학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중생이 무엇을 이루는 데 목표를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위해 제목을 부르고 활동을 함에 따라 얻어지는
깨달음과 육근청정, 성불을 전리품으로 거두어 들이는 데에 있습니다.
중생은 그것을 잘 모르고 열심히 욕망을 쫒아 기원을 하다보니
어느 새 높은 위치의 경애로 불구자득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존님의 위대한 방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원님들이 고차원적인 것을 위해 기원을 하든
낮은 차원을 위해 기원을 하든
도달지점은 같습니다.
이것은 법화경이 위대함으로
어본존님이 위대함으로 얻게 되는 눈물나게 고마운 법력, 불력입니다.
그러니 물질의 공덕이 나왔다고 하면 그 생명 속에는
엄청난 경애변혁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공가중 삼제를 통해서 살펴보아도 쉽게 알수 있습니다.
가시적인 결과(가) 그 뒤편에 숨어있는 생명상의 청정성(공)
그리고 대경애 변혁(중)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일신즉 삼신, 삼신즉 일신이신 어본존님을 대경으로
제목을 불러서 그 공덕이 나왔다면 공가중삼제가
총동원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있습니다
* 삼신 : 부처의 입장에서는 "법보응"삼신을 말함. 세상의 이치로는 공가중삼제를 말함
그러니 법화경을 통해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봄이님께서 이런 신심의 자세를
왜 이상하게 보고 환멸을 느꼈을 까요
제 생각에는 그들의 기원과 결과사이에
불법의 혈맥이 흐르지 않은 가운데
체험담이 발표되었고
그렇게 역동성이 떨어지는 체험담속에는
법정신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물질만 추구하는
그리고 돈과 연결되어 있는 체험담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일 것입니다.
1990년대 이전에는 물질적인 공덕을 받았다고 하면
그 체험담을 하시는 분의
체험담 속에 엄청난 힘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펑”하고 감전을 받아서
그런 생각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결국 봄이님이 느끼시는
소선의 아름다움이나 타종교인의 인물됨을
높이 생각하고 그쪽으로 마음의 우열이 가는 것은
이 학회의 불법에 혈맥이 미미하게 흐르는 결과라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대환희심을 불러일으키기 힘듬과
현증이 메말라 가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상당히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 와중에 있습니다.
저도 상당히 감각적인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몇배 예민합니다만
이런 현상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정말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봄이님이 말씀하시는 대환희심을 그리고 현증을
불러일으키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할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가정하는 학회의 형질변경 이후
일본의 국운쇄락과 우리의 현증미약이라는
허약한 체질속에서 어떻게하면 올바른 수행을 할것인가?
과연 아무리 개인적으로 신심을 잘한다고 보더라도
전체가 탁해 있으면 자신도 결과적으로
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구성의 오류)
어서 말씀대로
스승이 방법자이면 제자도 방법자인가
조직이 잘못되면 일체불이로 그 집단 전체는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런 가정속의 조직에서 개인의 자행화타의 수행은
제대로의 결과를 가지고 올수 있는 것인가?
반문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백육개초 869쪽에는 대성인님께서
말제들은 이론없이 진미래제까지
나의 생존시와 같이 닛꼬 적적 부법의 상인을 가지고
총관수로 모시라 하시고,,
이께가미 상승서 1600쪽에는 거역하는
재가 출가는 비법의 중이라고 하는
어유명에 반하는 학회에는 혈맥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현증이 미미한 것인가?
생사일대사혈맥초에서 신심의 혈맥과 법의 혈맥중
신심의 혈맥은 있는 데 법의 혈맥이 결여되어서 이런 내란과
이상한 현상( 과도한 자기현시 끝없는 명예욕에 광분한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인가?
봄인님이 상정하는
“상괘하지만 대환희는 없음”
“물질적 기원에 혈안이 되어 있음”이나
제가 상정하는
“현증은 있으나 미미한 현증”
다 같은 맥락들입니다.
전부 혈맥이 흐르지 않거나
미미하게 흐른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한사람 뛰우느라고 법중심이 아니라 인중심으로 흘러
불교의 보편적인 테제인 삼보론은 어디로 날라갔는 지
찾아볼수 없고
20년간 제명, 숙청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터놓고 말을 하지 못하는 폐쇄적 분위기속에서
과연 자신만 잘한다고
숙명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혈맥은 내득신앙속에는 흐르지 않으므로
혈맥의 조건인 이체동심하면 반드시 이 탁한 물과
반드시 섞일 것이고 그러면 나도 자타불이로
맛이 가는 것이 아닐까 말이지요?
대성인의 어서에 비추어보면 이 조직에는
혈맥이 없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종문이 학회와 헤어진 것도 윗 사람들의 잘못이고
형질변경도 윗사람들이 한일인데
그러면 윗사람들이 잘못한 것을 우리들이 전부 뒤집어 써야 하는가
밑에서 신심하는 우리들은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그렇게 뼈빠지게 제목을 올리고 수행을 하여도
그 탁류를 받아서 심성 나빠지고
깨달음이 없고 현증없어서 득이 되지 않는 다는
가정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일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불법상으로 너무나 억울한 정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거의 칠년간 이 물음에 해답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최근 들어 서서히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어서에 흐르는 혈맥의 조건보다도 더
높은 위치하며 헌법과 같이 법을 제어하는
상위법문!!!!
바로 “평등대혜의 만인성불의 법화경”과
“여연화재수”의 원리입니다.
불법은 도리인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피치못할 사실을 그대로 어본존님에게
아니 니찌렌 대성인에게 기원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기원으로 안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본존님앞에 앉아 제목을 부르며
“말법의 본불 대성인이시여!
삼세제불이시여 !
제천선신이여!
어쩌란 말입니까! 지금의 이 피치못할 상황에서
저는 말법에 태어나서 법화경을 수행하여
성불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회가 아무리 탁해져 있어서 그 탁한 물이 제 몸으로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여연화재수의 원리”로
그 청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대환희심을 불러일으켜 자행화타에 걸친
올바른 수행을 할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40대 초반에 지부장 지역장을 수행할시
지부여자부장, 지역여자부장과
활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여자부도 퇴전 한다고 하면 여자부장님과 함께 가서
설득을 하곤 하였습니다.
제가 말을 조금은 잘해서 여자부도 가능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장년부가 여자부활동을 한다고 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봄이님께서는 반드시 봄이님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기원해보시기 바랍니다.
“대환희심”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은 20년전도 30년전도 도다선생님시절도 지금도 진미래도
자아게에서 시아급중승(時我及衆僧) 구출영취산(俱出靈鷲山 )의 문구를
해설하시고 있는 어의구전의 말씀대로
영산일회(靈山一會) 엄연미산(儼然未散)입니다
절대로 영산의 설법의식은 흩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영산의 설법은 지속되고 있다라는 뜻으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대어본존님의
불법법력은 없어지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에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공덕으로 꽉차 있다는 것입니다.
봄이님께서는 분명 이렇게 꽉 차있는 불력 법력을
찾아내어 그 대환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어본존님께 한번 호소력 있게 다가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봄이님의 신심의 역사에 비추어 그 분들이 대답을
안 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답을 하지 않는 다면
이들은 이상한 분들입니다.
펑펑 대환희심을 느끼시고는 마음속으로
“그냥요”라고 본유무작의 말씀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자! 저는 남자라서 봄이님처럼 감성적으로 쓰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구난방으로 쓴 것 같군요
그렇지만 잘 읽어보시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의견에 기탄없는 댓글을 달아주시면
저도 그에 응할 것입니다.
첫댓글 저의 어린아이 같이 투정부리는 글에 이렇게 세심하고 자상하고 명쾌하게 답글을 주셨네요. 흐름님께 제가 얼마나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있는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의 어리석음에 대해 많이 깨닫고 납득하였습니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남에게 베푼다거나 회원들이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 기원한다는 것이나 남묘호렌게쿄라는 제목이 있으면 다 상관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냥 억지라도 부리면서 어떻게든 투정을 부리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대성인 불법에 대한 논리적이고 확실한 이야기를 듣고도 싶었던 것 같구요.
글 쓰고 제가 다른분들께 악영향을 준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구요. 제가 쓴 글에 공감한다는 분들의 글을 보면 나만 이런 것은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느끼는구나 하면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는 부끄러움이 느껴지더라구요. 2번 글을 쓰고 나서 2번다 또 저것도 내 만심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흐름님께서 제가 원하는 모든 답변을 해주신것 같습니다. 학회에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흐름님 같은 분이 계시는한 대성인 불법은 올바르게 전해져 갈 거 같습니다. 저도 힘을 얻어서 혼란을 덮고 더욱 신심에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선생님에 대한 부분은 계속해서 고민하겠지만 그또한 기원하겠습니다
미흡한 저의 글을 읽고 그렇게 이야기 하여주시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인간성만 대책없이 좋아진다 대책없이,,,그리고 삼보관의 파괴
글을 스킵해서 읽어내려 갔는데 바로 눈에 들어오는 문구이네요,,여연화재수라는 어구를 마음에 새기고 제목을 불러갔지만 혈맥부분에 있어 사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흐름님께서 7년간 수행끝에 내린 결론이라 믿음이 갑니다.
여자부 때 활동하면서 내가 맡은 조직에 대한 사명감으로 힘들고 하루하루 도전의 연속이었을 때 선생님을 생각했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평생을 학회의 리더로서 이끌어 오셨으니 얼마나 그 노고가 크고 그 심정이 어땠을까 하면서 말이에요. 힘들때 그 분을 생각하면서 혼자 울기도 했었지요. 아마 선생님 이야기 하시면서 우시는 분들도 저처럼 그런걸 느끼셨을지도 모르지요. 그랬으면서도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여러가지 선생님에 관한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네요. 흐름님께서 선생님에 대해 하시는 말씀을 볼때면 무섭기도 하지만 또 논리적으로 전혀 틀린 말씀도 없습니다. 정말 공감하고 있구요.
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부분은 제발 제 자신이 오해하고 있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4년전인가 선생님께서 스피치에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원고를 읽은 것은 아니니 스탭들이 써준 것은 아니고 말씀을 하시는 스타일로 보아서는 각본없이 그대로 뱉으신 말 같습니다. 학회에 대하여 이러니 저러니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죄다 쓸데 없는 "잡론"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잡론"이란 절대묘에 상대되는 상대적 세계관의 말로써 대성인인의 불법을 믿는 우리들이 그런 세상의 이목에 신경쓰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일들은 법화경에 비하면 화산앞에 개미무덤정도의 높이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우리가 실천하는 수행에 절대묘가 흐른
다면 그 말씀이 맞씁니다. 혈맥만 맥동친다면 제가 거론하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고 80년대 처럼 도다선생님처럼 불가사의한 경계만 흐른다면 "비데"니 "호텔2개층"이니 연수도장의 "선생님 전용공간"이니 박사,훈장, 각종 상들의 싹쓸이로 자기과시와 학회과시니, 집필이 친필이니 아니니 호화스러운 삶이니 아니니, 현찰을 용돈으로 주고 다니니 아니니 스피치가 중심이고 어서는뒷전이니 하는 것들은 쓸데없는 "잡론"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전부 절대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까요. 단지 절대묘의 경지에서 세간사를 도리있게 안챙겼다는 비난을 받을수는 있지만 그것은 불법에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현상은 그렇지가 않으니 제가 이렇게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이런것들이 잡론이 될려면 조직에서 "절대묘"가 맥동쳐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위대한 분이시고 영웅이십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기때문에 거론 하신 "잡론"은 잡론이 아니고 중요한 사실로 되어 당신의 모든 제자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잘못되었다고 책임을 지셔야 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싸이트에 들어와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혈맥만 흐른다면 현증만 제대로 나타난다면 이런들 어떠허리 저런들 어떠허리라고 우리 선생님이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어떤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본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도 한국의 내분도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 밑에 있는 분(제자)들이 잘못하여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라고요. 의정불이 이론을 고려하지 않은 견해인 것입니다. 법리상 세계 광포의 중심에 서있는 분의 심성과 광포현상과 사회현상은 동일 한 것입니다. 이것을 상위원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메타원인이지요. 광포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현상의 원인은 장(長)한테로 이어지는 것으로 하위의 원인을 전부 감싸고 콘트롤하는 원인입니다. 서로 분리할 수없습니다.
공감합니다. 이런 현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흐름님 봄이님 제가 한가지만 물어보고 싶네요.만일에 선생님때문에 감옥에 1년을 살게 되었다면 수긍하시겠습니까.흐름님과 봄이님의 말씀이 맞다고 할때 그에대한 대안은 있습니까.흐름님이 노고하면서 내놓은 결론은 선생님의 책임이라고 하는데 박사학위 논문처럼 내놓은 결론이 선생님의 책임이라는 것인가요.흐름님과 봄이님은 선생님에 대한 평론가였던가요.
평론 한적 없습니다. 저도 자꾸만 드는 제 모든 의문이 다 잘못된 것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요. 회원님이야말로 제발 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선생님에 대한 모든 의문을 좀 풀어주시지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도 않으면서 왜 무조건 의심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선생님과 관련해 이야기 한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 한 것 뿐이니까요. 그런데 있는 사실을 이야기 해도 회원님이야말로 무턱대고 저를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의심하시고 저를 비꼬시지 않았나요? 그렇게 답답해 보이시면 제발 부탁드리는건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저의 모든 의문에 대해 지도말씀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봄이님은 여자부 대간부를 하셨다고하는데 저도 불교회 부인부장님과 같은 청년부로서 함께신심할때도 있었습니다.하지만 저는 반장역직만 35년을 했습니다.최근에 지역선의 모 간부님을 만났는데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반장은 지구부장의 뒤만 보고 따라가면 된다고 하시더군요.저는 예 맞습니다 그랬지요.봄이님은 대간부를 하신분 같으신데 선생님에대한 확신이 부족하신것 같아 그원인이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돈이많고 돈을 많이 쓰신다는 정도는 아닌것 같은데요.
저는 여자부 대간부를 했다고 말한적이 없습니다. 대간부를 한적이 없구요. 중견간부 라고 하는게 맞겠네요. 그리고 역직이 높다고 해서 선생님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거나 제목을 많이 한다거나 신심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에 대한 확신이나 강성한 신심은 회원들 중에도 많습니다. 평생 역직 없이 회원으로 활동하시는 할머니들 보면 하루에 10시간씩 창제를 하고 아무 의심없이 무조건적으로 간부님들 말씀을 따르고 선생님에 대해 확신하며 공양도 수천,수억 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저같이 신심이 나약하고 선생님에 대해서도 확신이 부족하고 이런 사람을 겉으로 열심히 하는 거 같다고 해서 간부를 시키는 것이 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제가 볼때는 참 창제도 별로 없고 뭔가 신심에 대해 강한 확신도 없는 거 같은데 그 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전국 간부가 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암튼 그런거 볼 때 학회에 인재가 정말로 없긴 없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회원님... 답글 볼 때마다 좀 황당합니다. 정말 흐름님 말씀처럼 뜬금없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 같고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고 무조건 거짓말로 몰아가시는 거 같기도 하고 전혀 원글에 대해서 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그냥 관련없이 혼자 생각을 마구 쓰시는 것 같습니다.
봄이님 제가 복잡한 여자분의 심기를 건드려서 미안합니다.말씀이 청산유수시라는걸 미처생각지 못했군요.봄이님 말씀이 모두 맞는것 같습니다.(비웃는다고 댓글달지 마시기를.)
뜽금없이 감옥은 무엇이고 평론가는 무엇인가요 논지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감정으로 만 흐른 상당히 비약적인 글 같군요.
흐름님 오늘날 흐름님이 이렇게 폭넓은 말씀을 하시는것은 저는 선생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사자를 키울때 사자에게 잡아먹히려고 사자를 키우겠습니까.제가 하도 듣도보도 못한 말씀을 들었기에 흐름님의 깊은속을 알고싶어서 흐름님이 도대체 속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성문계로서는 훌륭하다고 볼수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전체적으로보면 흐름님은 스승에게 역행하는 분이라고 볼수있습니다.세상에 말잘하고 글잘쓰는 사람은 많습니다.하지만 흐름님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부디 자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생님께서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당신 잘못이다라는 추궁의 의미보다는 제자들이 너무나 힘들어 하니까 결자해지의 의미로 선의의 권력을 같고 계신분께서 그 문제의 원인을 세밀히 파악하시고 개혁을 하여 "입정안국" 할수 잇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 미래지향적인 말입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말씀 하지 마시고 저의 답글 "제목은 왜 부르는 데? ""그냥요! " 에 대하여 사실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짚어가면서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스승에게 역행"이라는 감정적인 말은 사실을 기반으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평은 그만 해주시어도 됩니다. 하늘 높이 날다가 갚자기 급 하강시키고
도무지 어지러워서요 정말
흐름님이 저의 심정을 모르시는것 같습니다.흐름님은 선생님을 요리를 안하시면 최고입니다.그런데 선생님을 요리를 하시면 최하가 될수도 있습니다.
제가 선생임을 어떻게 요리를 하시겠습니까? 단지 이께다 다이사쿠라는 분에 대하여는 상당히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그리너 회장이라는 공인으로써는 광포현장에 막대한 영향을 주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광포현장만 녹녹하면 저는 정말 이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