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제사의 절차를 단순히 요약하면 신을 불러 모신 후 음식을 바치며 그 공덕에 감사하고 신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음식은 신을 모셔오는 매개체이자 감사와 정성의 표현, 그리고 음복(飮福)이란 말에서 보이듯 신의 축복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수단으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을 올리는 행위가 곧 제사의 절차이고 제사의 성격이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느냐에 드러난다.
역대 국왕, 왕비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와 시신을 모신 왕릉의 제사는 대상은 같지만 성격이 매우 다르다. 종묘 제사는 유교 경전에 근거를 둔 정식의 제사 중 가장 크고 중요한 제사(대사)이고 왕릉 제사는 세속의 관습이나 인정에 따라 거행하는 속제에 속한다. 이 두 제사는 절차, 음악, 제관의 옷차림 등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제사음식에서 난다.
종묘 제사상
제사상 차리는 법은 제수와 제기의 종류, 수량과 위치를 그려놓은 진설도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1866~1868)의 진설도에 종묘 오향대제 때 차리는 제사상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위에 그려진 상이 종묘제사 때 각 신실의 신주 앞에 차리는 제상이고 아래 왼쪽에 그려진 것이 신실 문 밖에 차리는 준소상인데, 여기에는 제사에 쓰이는 술항아리와 술잔을 두었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과 술은 종류별로 담는 제기가 정해져 있다. 종묘 제상의 좌우측 바깥쪽에 두 줄로 늘어선 12개의 제기는 각각 변(籩)과 두(豆)로, 대나무로 엮은 변에는 과일, 떡, 말린 생선과 고기처럼 마른 음식을, 나무를 깎아 만든 두에는 젓갈이나 절인 채소 같은 물기 있는 음식을 담는다. 여기 담은 음식들은 생전에 즐겨 먹던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보이기 위해 물과 뭍에서 나는 모든 음식을 골고루 올리는 것이다. 그 사이에 놓인 항아리 모양의 등(㽅)과 형(鉶)에는 각각 간을 하지 않은 국물, 양념으로 맛을 낸 국물을 담는다. 사각형의 보(簠)와 원형의 궤(簋)는 쌀, 수수, 기장 등의 곡식을 담는다.
종묘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제수는 희생으로 잡은 소, 양, 돼지의 고기이다. 다른 제기들 앞에 둔작은 상 모양의 조(俎) 3개 위에는 각각 소, 양, 돼지의 날고기를 올린다. 제사 중 ‘진찬’이라는 과정에서 전사청에서 익힌 소, 양, 돼지의 고기를 가져다 왼쪽에 올려놓는다. 가장 앞에 놓인 3개의 작(爵)은 3번의 헌작 때 하나씩 올라온다.
종묘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들은 사람이 선뜻 먹기 어려운 것들이다. 특히 희생으로 쓰는 소, 양, 돼지는 제사 전날 살아있는 것을 충분히 살찌고 깨끗한지 점검하고 도살하여 날고기로 제상에 올리고, 털가죽과 피, 내장과 기름, 익힌 고기와 국물도 바친다. 이는 고인이 생전 즐기던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사람이라기보다는 이미 조상‘신’이 된 높은 존재를 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왕릉 제사상
반면 왕릉 제사에 차리는 제사상은 주로 유밀과와 떡, 과일로 이루어진다. 유밀과는 밀가루나 쌀가루에 꿀을 섞어 반죽하여 기름에 튀긴 것이다. 제사에서는 중박계, 산자, 다식, 약과 등이 사용되었다. 유밀과는 삼국시대 이후 당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전래된 음식으로 고려시대에 제향과 잔치에 빠지지 않는 의례용 음식이 되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 계율이 희생과 고기반찬의 사용을 억제 하면서 곡류로 만든 음식이 발달했기 때문에, 유밀과의 유행은 불교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왕릉 기신제의 제사상에는 첫 줄에 중박계(中朴桂) 4그릇, 둘째 줄에 홍색과 백색 산자(散子) 5그릇, 셋째 줄에 다식(茶食) 5그릇, 넷째 줄에 다양한 과일 6그릇을 놓았다. 중박계, 산자, 다식, 과일 등은 높이 쌓아올리는데 이때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틀이 우리(于里)이다. 그 윗줄에는 각색 떡 9그릇을 놓았고, 그다음 줄에면 1그릇과 탕 2그릇, 그리고 시접을 놓았다. 종묘 제사상과 비교하면 왕릉 제사상은 음식의 높이 쌓인 모습과 색깔이 잘 드러나 시각적으로 화려해 보인다. 게다가 면과 탕에도 고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왕릉 제사에서 고기를 배제하는 것은 왕릉의 관리와 제향을 주변의 사찰에 맡겼던 고려시대 전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계절의 순환에 맞추어 사계절의 첫 달과 동지가 지난 납일에 지냈던 종묘제사와 달리, 고인의 기일에 지내는 왕릉제사는 신이 흠향한 술과 고기를 맛보는 음복 절차도 생략하고 음악도 연주하지 않으며 제관들은 소복인 천담복을 입는다. 종묘제사가 이미 인간으로부터 멀어진 ‘조상신’께 올리는 상서로운 의식이라면, 기일에 무덤을 찾아 올리는 왕릉제사는 부모를 잃은 슬픔을 되새기고 추모하는 의식의 성격이 강하다. 매년 5월과 11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종묘대제가 열린다. 조선왕릉 홈페이지에는 매달 왕릉제향 일정이 올라오니 두 제사상을 직접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홍주(궁능유적본부 학예연구사)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3-05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