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요즘 대치동 학원가 소식을 들려드리지요. 논술 학원들이 다시 호황을 맞으면서 일부 학원들은 2008년 수준까지 매출세 회복을 했고 입학사정관 학원들은 거의 개점 휴업 상태입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논술은 지는 해, 입학사정관제는 뜨는 해였는데 완전히 판세가 바뀐 것이지요. 정시에서 논술을 보는 학교는 서울대와 서울 교대 정도이고 수시에서 보는 학교도 약간 줄었는데 논술에 대한 열기는 2008년 이전까지는 모르지만 지난해보다는 확실히 뜨거워진 느낌입니다. 왜 그럴까요?
신문이나 미디어에서 논술 관련 기사 자체를 구경하기 힘들어서 논술이 다시 뜬다고 하면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하실 분들도 많을 겁니다. 여전히 신문 방송에서는 입학사정관제 확대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학원 현장에서는 정 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적어도 고등, 특히 고 3은 그렇습니다. 수능만큼은 아니지만 내신보다는 오히려 논술에 투자를 더 많이 하는 분위기입니다. 그 이유에는 세 가지가 얽혀 있습니다.
첫째 연대가 수시에서 80%를 뽑기 때문입니다. 수시는 수능 최저 등급도 있고 일반전형에서는 언수외 1등급(문과)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70%를 뽑는 우선선발도 있지만 일단 수시는 논술을 잘 쓰지 못하면 합격을 꿈꾸기 어렵기 때문에 연대를 목표로 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3월부터 논술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중간고사 기간 중에도 논술 수업을 돌리는 학원들도 있습니다. 논술은 학교 교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에서 전혀 대비가 안 되고 있죠. 그래서 학원에 몰리고 있는 건데 작년까지 논술을 준비하지 않다 갑자기 논술을 시작한 학생들을 물어보면 대부분 연대 수시를 위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쉬운 수능 탓입니다. 지난 해 수능이 워낙 쉬웠기에 실수로 한 두 개만 더 틀려도 정시에서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연고대에서 중경외시로 급전직하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능이 쉽게 나올 가능성이 높은 올해는 학생들이 수능에 올인하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상위권 대학들도 쉬운 수능이 정말 공부 잘하고 똑똑한 학생보다는 운이 좋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왕이면 수시에서 더 많은 학생들을 뽑으려고 할 겁니다. 쉬운 수능 그게 연대 수시 80%의 진실이겠지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정부가 입학사정관제는 확대하면서 입학사정관제와 연관된 사교육만큼은 철저하게 봉쇄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정부에서 공인 외국어 시험, 특목고 자격, 해외 봉사 등 사교육 유발하는 요소들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허락지 않겠다고 발표를 하면서 강남의 학부모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이런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회의를 느낀 것이지요.
그런데 대학들, 특히 상위권 대학들은 인증시험이나 경시대회 성적 없이 내신이나 비교과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공인 영어 시험이나 경시 대회가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집중 포화를 맞고 있으며 수능은 계속 쉬워지고 있고, 그렇다고 내신으로 학생을 뽑기도 그러니까 대학들은 다시 논술 시험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지요.
오늘(4월 24일) 연대에서 열린 입학설명회에서 저는 연대가 논술로 학생들을 뽑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습니다. 연대 입학처장이 김동로 사회학과 교수더군요. 지난 해까지 논술 출제 위원장을 5년 동안 맡으셨었죠. 그 분이 입학처장이 되었다는 것과 연대 입시에서 논술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예측 사이에서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으리라는 분석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김 교수는 오늘 설명회에서 논술-서류-내신 모두 챙겨야 하는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팩터는 논술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50%에서 70% 정도 합격자가 논술로 바뀐다고 하는군요. 바꿔 말하면 내신과 서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서 50%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글로벌 전형에서는 텝스 770, iBT 100 점 이상이면 모두 만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AP나 SAT 준비는 시간 낭비라고 이야기를 했지요. 결국 60%를 차지하는 서류에서 내신이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40%인 논술로 내신의 불리함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지난 해까지만 하더라도 이 전형에 합격한 외고생들 중에서는 영어 인증 시험 성적이 월등히 높고 영어에 비해 우리 말은 약해서 수능 언어나 논술에 자신이 없어하던 학생들이 많았거든요. 올해처럼 논술이 중요해지고 공인 영어 성적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면 논술의 중요성이 훨씬 더 높아지겠지요. 이 전형에서 수능 최저 등급은 제한적으로 적용이 되는데 애매했습니다. 3학년 2학기 성적이 급격히 떨어진 학생들만 적용하겠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군요.
진리 자유 전형은 수능 이후에 실시되는 연대의 대표적인 입학사정관 전형인데 이 전형에는 논술 시험이 없습니다. 대신 내신으로 3배수를 거르고 2단계에서는 주로 비교과로 학생들을 뽑습니다. 비교과에서 텝스나 경시 대회 이런 것들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을까요? 내신은 1단계 통과에서만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포트폴리오? 연대는 올해부터 입학사정관 전형이나 글로벌 전형에서 포트폴리오를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학생들을 뽑을지 연대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자기소개서가 그만큼 중요해질 듯한데 여기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자소서에는 학생부에 적혀 있는 것 말고 다른 내용을 적으라고 했습니다. 경시대회나 인증 시험 준비나 결과 말고 학생부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 중에 자소서에 적을 내용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학생부에는 학교 생활만 적고 학교 바깥에서 한 일들은 원천적으로 학생부에 기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에서 평가를 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자소서에는 학생부에 적힌 내용과 다른 내용을 적으라고 하니 도대체 무엇을 적으라는 건지 학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일 겁니다. 자소서도 논술처럼 예시답안을 공개라도 해야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이 준비를 할 때 감이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상투적으로 진솔하게 써라, 창의적으로 쓰라라는 말들은 학부모나 학생 입장에서 그다지 도움이 안 될 듯합니다. 학생들이 만든 독서 이력철도 학생들이 정말 그 책을 읽고 쓰는 건지 의심스럽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포트폴리오, 공인영어, 경시대회 독서 이력철, 이 모든 게 아니라면 올해 진리 자유 전형의 변수는 무엇이 될지 궁금합니다.
연대는 올해부터 자소서나 교사 추천서를 온라인으로만 받겠다고 합니다. 디비를 구축해 학생들의 표절과 성의없는 추천서를 걸러내겠다는 뜻이지요. 오늘 설명회를 종합해 보면 교사 추천서가 진리 자유 전형에서는 굉장히 중요해질 수 있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학교에서 인정받으려면 학생회 활동 등 리더십을 조금 더 챙겨야 겠다는 인상도 받았고요.
입학사정관 전형이 한국에서 정착을 하려면 대학교는 고등학교를 믿고 고등학교는 대학을 믿고 학부모는 정부 정책을 믿어야 하는데 3자 간에는 그런 신뢰가 전혀 형성되지 못하고 있지요. 사회적 신뢰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미국식 입학사정관제가 정착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비인간적인 줄 세우기기는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시험이나 성적만큼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수능 같은 5지선다 객관식 시험도 한계가 분명 있고 전국 고등학교의 실력이 천차만별인데 학교간 차이를 무시하고 학교 내신으로 학생을 뽑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요. 그런 차원에서 논술 시험의 명분은 충분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한 글쓰기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대학들이 대학 와서 공부할 학생들의 소양과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데 논술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만 학교에서 대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문제점이 있는데 이 문제는 대학과 정부가 나서서 논술판 EBS를 만들든지 해서 풀어나가야 겠지요. 오늘 연대의 입시설명회를 시작으로 논술의 화려한 부활이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