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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앞서, 먼저 이 글은 일단 합격수기라는 말머리 포맷을 사용했지만 그냥 지금까지 내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또 아직 휴학생으로서 그리고 다음 학기에 복학해서 앞으로 계속 구직을 해야 할 입장에서 대학생활 동안의 소회를 풀어 놓는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단순 스펙이나 자랑게에 올렸던 존슨앤드존슨메디칼 입사준비과정 (http://cafe.daum.net/posthoolis/IuyY/6672) 만을 적었으리라 생각한 훌들은 백스페이스를 눌러주길 바란다. 하지만 다 읽으면 내 스펙은 저절로 파악할 수 있다. 처음에야 스펙 물어보는 댓글에 한 두번 쪽지를 줬지만 많은 댓글들이 달리면서 단순히 한 줄 나열식으로 내 스펙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스펙도 아닐뿐더러 나라는 인간이 스펙 한 줄에 평가받는 게 굉장히 싫다. 스압이니 미리 주의를 준다. (A4 12장 분량) 사실 내가 합격한 존슨앤드존슨메디칼 summer internship 입사준비과정은 여기서 미리 밝히지만 없다.
오늘 MBC 창사 50주년 기념 아나운서 공개채용 프로그램 '신입사원' 이 예상과는 다르게 세명의 합격자를 배출하면서 그 막을 내렸다. 남들은 '나는 가수다' 에 미쳐 열광했을 때 구직자로서, 그리고 실제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친구를 둔 입장으로서 나는 이 '신입사원' 이라는 프로그램에 더 감정이입 해서 본 것 같다. 첫 번째 합격자로 김대호씨가 지명될 때,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손에는 먼지와 흙만 묻어 있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금가루 이었다는 합격 소감을 말할 때 먹먹했다. 다른 도전자에 비해 말하는 것이나 태도가 약간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던 모습, 어딘가 위축되어 있었던 모습이 그동안 면접장에서 내가 보여 왔던 모습과 많이 오버랩 되면서 그랬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항상 진심을 담아서 얘기하는 듯한 그런 자세가 좋았고 내심 응원했던 그가 합격의 영광을 안아서 기분이 많이 좋았다.
훌천 9년차...훌천에서 그간 눈팅족으로서 정보만 얻어갔었는데 내 글이 나같이 취업 준비 하는 애들한테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그리고 나와 비슷했던 김대호씨의 MBC 입사를 축하하며 키보드에 손을 놀린다.
2003년 고 3때 처음 훌리건천국 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면서 계속 눈팅만 해왔다. 수능이 끝나고 우리 학교 점수공개 카페에 올린 점수가 높아서 점수공개카페에서 썼던 닉네임이 동기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버리는 바람에 과선배가 훌천에서 내 닉네임을 사칭해서 나와 훌천에서 싸웠던 웃지 못 할 기억들도 있다. 훌리건천국에서 나는 결코 네임드는 아니었다. 명목상 이 카페의 회원으로 있었지만 그 당시에 난 '훌천을 알게 된 대학 신입생'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지독한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보다 잘난 대학생들, 그리고 그들이 HOF 에서 뽑아내는 주옥같은 명문들. 나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런 그들의 명석함과 위트, 여유가 나보다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래서 저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패배감이 나를 1학기만에 휴학을 하게하고 반수의 길로 이끌었다. 고향에 돌아와서 재수학원 등록을 한 당일 바로 나는 무슨 자신감에서였는지 아버지 몰래 어머니만을 설득하여 재수학원 등록을 취소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버렸다.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만.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더한 패배감과 자기실망을 가져다주었다. 이미 1학기 때 대학 생활의 즐거움을 어느 정도 만끽했을 뿐더러 반수 실패하면 그냥 학교 복학해서 다니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다시 본 수능은 그 전보다 결코 나은 성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냥 복학하는 게 나은 수준이었다. 결국 난 2005년 1학기에 1학년 2학기로 복학을 했다.
학교생활이 무탈할 리 없었다. 선배들은 물론이고 새로 들어온 05학번 신입생들과는 거의 말도 섞지 않았으며 1학년 1학기 때 친하게 지낸 몇몇 애들하고만 어울려 다녔다. 이미 내가 다니는 학교와 학과에 대한 흥미는 떨어진지 오래였다. 학점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 당시는 만날 술 먹고 놀러 다닌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그 흔한 알바도 하나 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매달 부쳐주는 용돈을 가지고 밥은 굶을지언정 술자리는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유야무야 1년을......버렸다. 슬슬 군대도 가야겠고 그래도 군대는 편한데 가고 싶다는 생각에 개나소나 찔러보는 카투사를 지원하려 했다. 당시 우리 과 02학번 선배들 중에는 카투사에 간 선배가 꽤나 있었다. 그 중에 용산 카투사(일명 용투사라고 한다)에 간 선배는 주말마다 학교에 와서 술을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수능 외국어영역 1등급에 고딩때 모의토익 780점 받은 실력을 믿고 공부도 하지 않은 채 토익을 봤지만 결과는 600점대로 지원자격조차 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어차피 제대 후가 진짜라는 참으로 어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맘때쯤이 가장 아버지가 나에게 많은 실망을 하셨을 때라고 생각된다. 아버지가 대학 교수시기 때문에 간신히 평점 2점을 넘는 내 학점을 보시고는 어떤 표정을 지으셨는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말을 쏟아 내셨는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난 하루 빨리 군대를 갔다 오고 싶었다. 지금 나에게 닥친 이 현실이 군대만 갔다 오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어떻게든 빨리 가고 싶어서 난 절친한 대학 동기와 1월 달에 동반입대를 하게 되었고, 전방 GOP 에 가게 되었다. 군대에서 개나 소나 딴다는 한자 2급은 땄다. 그리고 제대 한 달 전에 허리디스크로 4급 판정을 받고 제대 2주 전에 혹한기 훈련을 뛰고 제대를 하였다.
군대 생활은 패스하겠다. 어차피 자기가 있던 곳이 제일 힘든 곳이니까. 하지만 난 군대가, 정말 다른 모든 군필자들도 똑같이 말하겠지만 날 정말 많이 바꿔놓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아직 군대 안간 정신 못 차린 어린 색기들은 빨리 군대를 가라. 그게 내가 학점 낮은 미필훌들에게 제안했던 맞춤 솔루션이었다. (http://cafe.daum.net/posthoolis/IuyY/3640) 이 글은 당시 HOF 까지 등재되었으나 지금은 어찌된 영문인지 찾아볼 수가 없다.
제대하고 나서 복학하기 전 아버지가 나이가 한살이라도 어릴 때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꺼내셨다. 개인적인 이유로 칼복학을 하면 안됐었던 나는 냉큼 그 떡밥을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인적인 이유는 집어 치우고 복학해서 교환학생을 갔다 오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당시 나는 단순히 칼복학을 하면 안 된다는 그놈의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잉여처럼 집에서 눈치 받는 것보다 차라리 외국에 나가서 영어라도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게다가 당시 가카께서 테솔 자격증만 있으면 기간제 교사를 시켜주네 마네 하는 헛소리를 찍찍 뱉는 바람에 어머니는 거기에 혹 하셨고 나는 결국 테솔로 유명한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어학연수 코스는 바로 연계연수였다. "필리핀 2개월 + 캐나다 6개월' 로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고 1:1 기회가 많은 필리핀에서 스피킹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고 캐나다에 가서 본격적인 스피킹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필리핀은 한국남자들에게는 천국이다. 어떤 의미로 천국인지는 알 놈들은 알 거라고 본다. 필리핀에서 지낸 두 달은.............좋았다. 각설하고 아무튼 필리핀에서 2개월 있다가 바로 나는 캐나다 밴쿠버로 넘어갔다. 첫 번째 다닌 학원에서는 비지니스 영어를 했고 두 번째 다닌 학원에서 TESOL 을 하였다. 처음에는 캐나다인하고 홈스테이를 했는데 은근히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원에서 만난 형하고 studio 를 구해 따로 나와 살게 되었다. 여기서 어학연수를 가고자 하는 훌들한테 한 마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절대 한국인하고 같이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 그냥 좀 비싸더라도 홈스테이 하는 것이 낫고 정 홈스테이 패밀리들과 맞지 않는다면 다른 외국인, 최소한 일본인하고 같이 살망정 절대 한국인하고는 같이 살면 안 된다. 어차피 학원에서는 끼리끼리 어울리기 때문에 본인이 정말 '난 영어만 써야지' 하는 굳은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수업시간 외에 한국 애들하고 한국말 하면서 놀게 되어있다. 그러기 때문에 최소한 학원이 아닌 환경에서는 영어만을 써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어쭙잖게 외국 나가면 스피킹이 늘겠지...하는 생각만 가지고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절대 외국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어학연수 하기 전에 한국이나 필리핀에서 어느 정도 기초는 다지고 와야 한다. 어학연수 와서는 다져 놓은 기초를 외국어만을 써야 하는 환경에서 꽃피울 생각을 해야지 외국에 나가서 기초부터 하겠다는 생각은 진짜 돈 버리는 짓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어학연수를 갔다 와서이다. 이것은 차후에 더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그렇게 2009년 1월, 난 한국에 돌아왔다. 제대한 친구들은 이미 칼복학을 해서 많게는 1년, 적게는 반년동안 나보다 먼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 눈에는 외국에서 띵가띵가 놀다 온 내가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들 생각이 맞다. 그들은 나보다 더 일찍 취업이라는 고달픈 현실을 깨닫고 이미 그 현실에 찌들었던 것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리포트, 시험공부, 도서관............나도 이제 그런 것들에 눈을 뜨고 신경 써야 할 때인 것이다. 제대하고 나면 뭔가 바뀌어있을 줄 알았던 현실은 더욱 냉혹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밴쿠버 사설학원에서 따온 TESOL Diploma 와 어쭙잖은 스피킹 실력이었다. 1년 전에 그렇게 불었던 TESOL 열풍은 이제 쑥 사라진 상태였다.
2009년 3월에 나는 2학년 2학기로 복학했다. 제일 먼저 눈에 밟혔던 것이 2점대 초반의 학점이었다. 초라했다. 게다가 중앙도서관은 리모델링한답시고 시험기간에 학생들을 제대로 수용할 공간도 없는 상태였다. '집 학교 문과대도서관 집 학교 문과대도서관 집' 의 생활을 했다. 전공공부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새로 신청한 융합전공인 문화콘텐츠가 마음에 들어서 다행히 공부 또한 효율적으로 잘되었다. 정말 남들처럼 코피 쏟으며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자연스럽게 성적은 돌아왔다. 장학금도 꾸준히 탈 수 있었다. 아들놈이 매 학기 4.0 을 넘으며 장학금을 타오니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특히 아버지의 나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2009학년도 여름방학에는 계절 학기를 들으면서 학교에서 하는 MOS MASTER 를 땄다.
학점관리에 대한 팁을 하나 주자면 일단 무조건 교수의 눈에 띄어야 유리하다. 나 같은 경우는 무조건 맨 앞자리를 고수했다. 물론 시험이나 리포트를 괴물같이 잘해서 교수와 안면을 트든 말든 A+ 은 그냥 따놓는 놈에게는 상관없는 말이다. 같은 성적이면 교수도 사람인지라 자기 눈에 밟히는 놈에게 더 마음이 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가산점을 주는 교수들이 많으니까 반장이나 팀장 같은 것을 하는 것이 좋다. 신입생들은 이런 것들을 쑥스러워 하기 때문에 잘 못한다. 하지만 복학생에게 두려울 게 뭐가 있냐. 해라 무조건. 발표도 처음으로 하는 게 낫다. 마지막에 할수록 기말고사와 겹치기 때문에 벅차다. 진짜 먼저 발표한 조들보다 잘할 자신 없으면 무조건 처음에 발표해라.
말이 좀 옆으로 샜는데 아무튼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딜레마가 생겼다. 첫 번째는 영어스피킹이다. 전공공부에만 치우치며 책만 파니 가뜩이나 원래 남들 앞에서도 말을 잘 못하는데 반년 좀 넘게 외국에서 영어로 말해왔던 그런 자신감마저 사라진 것이다. 덕분에 1년 동안 난 높은 학점과 장학금은 얻었을지언정 8개월 동안 외국생활에 쏟아 부은 돈을 날렸다. 정말 외국어라는 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이상, 현상유지는커녕 퇴보만을 가져올 뿐이다. 명심해라. 나는 인턴 끝나고 복학해서는 다시 회화학원에 다닐까 생각중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르겠다. 비싼 돈 들여서 어학연수를 갔다 와놓고 다시 한국 와서 영어회화를 다니는 꼴이라니. 너님들은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해라.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면 전화영어라도 하면서 감을 잃지 마라. 학교에 있는 English Lounge 같은 곳에 다니면서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며 계속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라. 그렇다고 지금 내가 완전 영어 한마디도 못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다만 외국계를 지원하는 입장에서 회사 내에서 무리 없이 비지니스영어를 쓰고 싶다면 귀국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딜레마는 바로 2009년 2학기에 새로 시작한 융합전공인 '문화콘텐츠' 에 관한 것이다. 이 문화콘텐츠라는 게 학문으로 정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제일 처음 우리 학교에서 융합전공 이라는 명목 하에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융합해서 학부의 학사과정에 포함 시킨 것으로 알고 있고 그 후 수많은 대학에서 디지털콘텐츠학과, 미디어콘텐츠학과, 역사콘텐츠학과 등등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우후죽순으로 학부과정으로 만들었다. 우리학교 문화콘텐츠 융합전공은 특이한 점이 대학원 수업들을 수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이 대학원 수업을 들었던 것을 자소서에 많이 어필했다. 일반대학원 수업이 아니라 특수대학원 수업으로서 현직자들, 실무자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것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나는 이 전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또 실제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며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취업과는 별개로 추후에 정말 공부를 더 한다면 이쪽으로 계속 하고 싶었고 커리어도 이쪽으로 쌓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공부를 하니 학점은 잘 나왔다. 고대소설 운영전을 가지고 만든 트렌디 드라마 시놉시스는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님께 공모전 제출 제안까지 받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문화콘텐츠라는 공부는 학부과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실제로 실무과정을 쌓고 이 길로 인정을 받으려면 대학원 진학은 필수였다.
이러한 딜레마들을 일단 접어두고 나는 취업을 하기 위한 본격적인 스펙 쌓기에 돌입했다. 학점은 2009년 한 해 동안 어느 정도 되었으니 이제는 대외활동을 해야 할 차례인 것이다. 2010년 3월부터 시작된 3학년 2학기에 접어들어 첫 번째로 한 대외활동은 바로 지금은 없어진 '샤프리얼딕 대학생역사문화답사단' 이다. 샤프전자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 활동의 하나로써 아이러니하게도 훌천에서 어떤 훌이 어떤 게시판에 자신이 갔다 왔다고 추천해서 지원하게 된 것이었고 이것은 따로 면접이나 자소서 없이 신청하면 무조건 랜덤으로 뽑히는 것이었다. 나는 운 좋게 여기에 지원해서 뽑힐 수 있었고 5월 중순에 갔다 왔다. 지금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으니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여름방학 때는 고향에 있는 전남대에서 계절 학기를 듣고 (http://cafe.daum.net/posthoolis/IuyY/4941) 운전면허 1종보통을 땄다. 보통 수능 끝나고들 많이 하지만 난 빠른 생일이라 그 당시에 딸 수 없었고 앞으로 쓸 자소서 자격증 란에 하나라도 더 기입할 것이 있어야 했다.
대외활동 두 번째는 KT&G의 문화예술커뮤니티인 상상유니브에서 주관하는 '영상/영화 클래스' 이다. 문화예술콘텐츠 쪽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 치고 KT&G 만큼 매력적인 기업이 어디 있을까? 나도 그 중 한명이었고 원래는 KT&G 상상유니브의 대학생 기획단인 상상프렌즈에 지원했으나 떨어졌고 차선책으로 지원한 것이 KT&G 상상유니브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여러 문화클래스 중 하나인 영상/영화 클래스 였다. 현직 영화감독 밑에서 단편시나리오 작성법을 배우고 휴대폰이나 디카를 가지고 수업 듣는 친구들과 함께 본인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실제로 단편 영화를 찍는 것이 클래스의 주 내용이다. 9월부터 11월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상암동에 있는 미디액트 건물에 가서 수업을 들으며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짬짬이 영화촬영을 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었다. 내가 지원했을 당시만 해도 영상영화, 사진, 댄스, 밴드 의 4가지 클래스 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클래스의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개그, 스마트폰, 연애, 연기, 바텐더, 바리스타, 야구 등등 정말 여러 종류의 클래스들이 많다. 사실 이러한 대외활동은 요새처럼 취업에 관심이 많은 1, 2학년 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난 술 처먹느라 바빠서 이런 것들을 챙겨보고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아직 군대 안간 친구들을 군대 가기 전에 꼭 이런 것들을 해보길 권한다. 우리 학교, 우리 과 이외의 사람들과 같이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서 얻는 게 많다.
2009년 3월에 2학년 2학기로 복학을 하고 2011년 12월까지 2년 동안 내 나름대로는 바쁘게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학점도 어느 정도 쌓았고 대외활동도 어느 정도 했으니 이제 남은 건 인턴뿐이었다. 2011년 동계 인턴을 노렸다. 그 전에 급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 토익과 스피킹 점수였다. 하지만 영어에 손 놓은 지 2년이었고 공부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복학 후 처음 본 토익 885와 오픽 IM2 를 가지고 인턴에 도전했다. 주제도 모르고 삼성 계열사 중에 제일 좋다는 말에 삼성전자도 지원해보고, 농심, 마이크로소프트, 신세계를 지원했지만 죄다 서류탈락이었다. 그러다가 덜컥 걸려든 게 롯데면세점 인턴십이었다. (http://cafe.daum.net/posthoolis/IuyY/5754)
인턴 지원 전에 또 꼴에 제일 좋은 곳을 써보고 싶어서 취게에 물어보기까지 했다. (http://cafe.daum.net/posthoolis/N83V/222)
처음부터 마케팅에 지원하고 또 그에 맞춰서 자소서를 썼지만 지원 마감 5분을 남겨두고 지원 직군을 뜬금없이 영업관리로 바꿨다. 옆에서 구경하던 친구 말이 우리는 무조건 영업관리가 마케팅보다 확률이 높다는 것과 이것마저 떨어지면 겨울방학 때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지원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영업관리는 무조건 부산점 근무였다는 것이다. 기존에 죄다 서류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자소서 내용 자체도 마케팅 관련 이야기가 많아서 어차피 붙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롯데면세점에 대해서는 잊고 이제 남은 건 통영국제음악제 프로젝트 인턴과 학교에서 실시하는 산학협동인턴십 중 KT&G 뿐이었다. 통영국제음악제 프로젝트 인턴은 나름대로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도 일치하고 마지막 음악제가 실시되는 한 달은 통영에 직접 내려가야 된다는 것이 좀 걸렸으나 내가 쌓고 싶은 커리어에는 제일 도움이 되는 인턴이었다. 이 와중에 롯데면세점이 서류가 통과 됐다. 처음으로 서류통과가 된 것이다. 서류통과의 기쁨도 잠시, 면접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할 따름이었다. 스터디라는 걸 해보기 위해 학교 게시판에 롯데면세점인턴 서류 통과한 사람을 찾았으나 돌아오는 건 스펙 물어보는 댓글과 쪽지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힘들게 롯데마트와 면세점 서류 통과한 사람 2명과 같이 면접 스터디를 했으나 세 명 다 무경험자라 만나서 한 건 각자의 자소서를 보면서 깐 노가리 뿐, 제대로 된 스터디가 될 수 없었다. 30분 동안 2번 하고 관뒀다. 주변동기들 중 몇몇은 취업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도 이 시절만큼은 내가 취업을 하고 말고를 떠나 인턴이라도 꼭 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많이 사로잡혔다. 그렇게 불안한 시간을 보내며 롯데면세점 면접날이 다가왔다.
롯데인턴면접은 구조화 면접이라고 해서 자소서 위주로 많이 본다고 한다. 취업 정보에 까막눈이었던 나는 다음카페 닥취의 준회원으로서 정말 닥치는 대로 롯데인턴면접에 대한 정보를 끌어 모았고 얻을 수 있는 건 인턴은 구조화면접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면접 전에 날아온 메일은 구조화면접 + 영어면접 이었다. 영어스피킹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여서 막막할 따름이었다. 될 대로 되라 하는 식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잠실 롯데호텔에서 면접을 진행했고 면접관은 2명이었다. 특이하게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면접에 대한 하나의 오해를 하고 만다. 그것은 바로 면접 때 따로 자기소개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때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정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나는 질문은 본인의 문화콘텐츠 관련 지식을 롯데면세점의 마케팅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냐 와 영업관리를 하게 될텐데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토익점수가 다른 지원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데 왜 그런지 를 질문했다. 처음 보는 면접이라 긴장을 하도 많이 해서 중간에 면접관이 긴장 좀 풀고 집에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일단 그렇게 구조화 면접이 끝나고 두 번째로 본 영어면접은 원어민과의 1:1 면접이었다. 3개의 준비된 선택지가 있으며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보는 형식이었는데 토익스피킹과 비슷했다. 텍스트 읽기, 주어진 텍스트를 보고 질문에 답하기, 주어진 그림을 보고 상황설명 하기, 그리고 자유질문 이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발음이나 어휘, fluency 등을 각각 점수를 매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5만원 신권이 담긴 면접비 봉투를 받고 돌아왔다. 면접을 보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떨어질 것 같았다. 일단 대인관계 관련해서 한 대답에 면접관들이 막 웃었으며 지원한 곳은 영업관린데 자소서에는 마케팅 관련한 말 밖에 없었을 뿐더러 긴장도 많이 해서 목소리도 떨었기 때문이다. 나는 롯데면세점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남은 KT&G 산학협동인턴십과 통영국제음악제 프로젝트 인턴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보기 좋게 KT&G 산학협동인턴십은 떨어지고 말았다. 사실 제일 붙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내심 생각했던 거였기 때문에 실망도 컸으며 이대로는 정말 방학 때 아무것도 못하겠다 라는 불안감도 커져만 갔다.
그렇게 결국 인턴 자소서 러쉬와 겹쳤던 기말고사 마저 끝이 나고 친구들과 모여서 한잔하기로 한 날, 친구 한명이 오지 않아서 만화방에서 다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롯데면세점 합격문자가 왔다. 그날은 일단 술 마시면서 그냥 합격의 기쁨에만 취하고 싶었지만 점차 방학 동안 연고도 없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부산에 내려가서 2달 동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실제로 영업관리직군 합격자 총 5명 중 2명이 이 문제 때문에 인턴을 포기했다.
롯데동계인턴은 총 700명을 뽑았다. 인턴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인턴 시작 전에 잠실롯데호텔에서 호텔 부페와 함께 사전교육을 가졌는데 그때 진행하는 분이 동계인턴 700명이 모인 자리에서 롯데면세점 어디 있냐고 호명하고 우리를 지목하면서 가장 경쟁률이 높았으며 무려 400:1 의 경쟁률을 뚫었다고 얘기했다. 그때 잠깐 롯부심 솟구쳤다. 롯데면세점 동계인턴은 사전에 포기한 2명을 제외하고 16명이었다. 영업관리, 마케팅, 경영지원, MD 총 4개의 직군이 있었으나 실제로 부산점에 근무하게 되는 영업관리직군을 제외하고는 랜덤배치였다. 두 달 동안 각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고 최종 프리젠테이션과 면접을 통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이었다. 사전교육을 받는 도중에 통영국제음악제 프로젝트 인턴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둘 중 하나를 고민하는 나에게 돌아오는 친구들의 말은 조금씩 그 내용은 다 달랐지만 종국에는 '미친놈' 이라는 세단어로 귀결됐다. 이게 고민할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롯데면세점 인턴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는 것이다.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면세점 인턴의 경우 물론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평생 부산점에서만 근무를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며 통영국제음악제 프로젝트 인턴 같은 경우 내가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콘텐츠 관련 분야며 그쪽으로 쌓고자 하는 커리어와 맞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난 전자를 선택했다.
롯데면세점 부산점 같은 경우는 엄밀히 말하면 영업점이지만 서울과는 다른 법인이다. 이는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면세점이 (주)호텔롯데 롯데면세점의 구조이고 (주)호텔롯데와 (주)호텔롯데부산 이 다른 법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서울 소공점에 있는 롯데면세점은 마케팅, 경영지원, MD 등이 여타 영업점 사무실과는 별개로 구성되어 있지만 부산점은 한 사무실 안에 인사, 총무, 영업1,2 팀, 판촉, 회계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이사님과 점장님도 같은 사무실에 계신다. 영업관리부문 인턴 3명 중 1명은 김해공항점으로 배치 받고 나와 나머지 한명은 부산 서면에 있는 부산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이런 인사, 총무, 판촉, 회계, 영업 등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다 받을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면세점 영업점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교육, 안내데스크 근무부터 실제 매장 근무, 공항에서 면세품 수령과 불출 등 면세점의 특이한 영업 flow 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달은 판촉 부서에 배치 받아 업무보조를 하였다. 인턴 하는 동안 매일 쓰는 인턴 일지라는 것이 있었고 이는 회사에서 정해준 멘토(주로 과장이나 계장급)에게 매일 결재를 받아야 한다. 사실 인턴 했던 애들은 알겠지만 이게 꽤나 골치 아프다. 솔직히 인턴하면서 많이 하는 건 없는데 마치 뭔가 많이 한 것처럼 부풀려 써야 할 때가 많다. 그리고 매주 최종과제와는 별개로 따로 발표 과제를 줬는데 나 같은 경우 첫 주는 매장 개선점, 두 번째 주는 모객활성방안, 세 번째 주는 인터넷면세점 활성화 방안 등등을 발표했다.
정규직 전환의 당락이 결정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최종과제로 내가 발표한 것은 SNS 를 이용한 문화마케팅이었는데, 마지막 주에 서울에서 인사팀장이 내려와서 면접관으로 참석했다. 발표 중 왜 이러한 문화마케팅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마케팅을 함으로써 얼마만큼의 매출 향상을 기대하냐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해서 문화라는 건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아마 이게 내가 정규직 전환에서 떨어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비단 마케팅 뿐 아니라 회사의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서 기획한다면 이 프로젝트가 회사에 어떤 이익과 손해를 가져올 것이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선행돼야 함이 마땅한데 나는 너무 내 아이디어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뭐 그저 그랬다. 남들은 부산 가서 뭐 해운대에서 놀겠거니 회를 먹겠거니 했는데 회 한 접시 먹지 못했다. 주말에는 과제하고 자느라 바빴다. 한겨울에 내려가서 첫날은 고시텔이 너무 추워서 뜬눈으로 밤을 새고 첫 출근을 했다. 전기장판을 주문하기 전까지 너무 추워서 이불 속에 드라이기를 몇 분 틀어놓고 더운 바람을 채움으로써 난방을 하기도 했다. 난 이때 서울 자취방 가스 난방이 처음으로 그리웠다. 서울의 자취방은 겨울에도 바닥이 너무 뜨겁고 온도가 높아서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잔 적이 있었다. 여기 고시텔은 창문이 없어서 아침에 눈을 떠도 깜깜했다. 기계처럼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샤워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 특이하게 방에 개인 샤워실은 있는데 화장실은 공동이었다. 다른 고시텔은 라면까지 주지만 이곳은 밥과 김치가 전부였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밥을 먹었고 주말에는 주로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인턴월급은 100만원인데 고시텔비에 식비에 이것저것 생활비를 제외하면 거의 적자였다. 친구에게 30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사귀던 여자 친구랑 헤어질 결심을 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서 3월 달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어찌됐던 2달 동안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2011년 3월 나는 4학년 2학기로 복학했다. 솔직히 롯데면세점 정규직 전환이 돼도 부산에서 근무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다른 곳도 상반기 공채 원서를 넣었다. LG전자 상반기 공채 HE 본부 해외마케팅 최종면접까지 갔으며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인 CJ E&M 콘텐츠기획부문(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맞는 유일한 국내 대기업이었다)도 서류통과 했으나 4월 초 롯데면세점 정규직 전환 탈락과 동시에 휴학을 하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그때 정규직 전환은 인턴 총 16명 중에 5명만이 되었다. 휴학을 하는 바람에 CJ E&M 면접은 가지도 않았다. 휴학을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너무 취업에만 목매달고 달려오지 않았나, 과연 내가 제대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걷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이 생겨서 이었고 내가 아직 소위 말하는 그 취업 스펙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취업한 친구들은 늦으면 늦을수록 너만 손해라며 휴학을 말리기도 했지만 나는 왠지 내가 좀 더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롯데면세점 인턴 2달 동안 느낀 우리나라 대기업문화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문화콘텐츠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와 민속에 관심이 있는 내가 과연 대기업 생활에 만족하면서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휴학을 결정하고 그냥 한 번 봐본 토익은 운 좋게 LC가 만점이 나와 900점을 넘겼다. 토익은 이만하면 됐다 생각했다. 그동안 손에서 놨던 책들을 많이 봤다.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다녔다. 앞으로 뭘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으며 여기저기 놀러도 많이 다녔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잉여로 보았다. 부모님은 전화해서 영어학원에 다니라는 말씀도 하셨고 친구들은 알바라도, 제2외국어 공부라도, 취업스터디 같은 거라도 하라고 했다. 갑자기 다 귀찮았다. 복학하고 이제까지 너무 취업 하나만 보고 달려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좀 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군대 가기 전 대항해시대 온라인 하던 시절처럼 아침 10시에 자고 오후 3시에 일어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기존에 계속 보던 스타는 물론이고 새벽에 하는 EPL과 챔스까지 다 챙겨봤으며 토렌토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만화책 또한 미친 듯이 다운받아 봤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하계인턴서류는 계속 넣었다. 남들이 보는 잉여짓은 학기 중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고 어차피 방학 2달 동안 인턴이라도 하면서 인턴월급 받는 게 좋겠다 라는 내 나름대로의 타협점이었다. 자신만만했다. 롯데면세점 인턴은 남부럽지 않은 스펙이었다. LG전자의 경우도 인턴이 아닌 공채로 최종면접까지 갔었기 때문에 그까짓 인턴서류통과는 다 되겠지 하는 자만이 있었다. 반수했었을 때 가졌던 그 자만을 난 여기서 또 가지게 된 것이었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LG전자 상반기 공채 HE본부 해외마케팅 최종면접은 면접관 4명에 지원자 5명이 들어가서 보는 단체면접 형태였다. 면접이라고는 여지껏 롯데면세점 경험 밖에 없어서 많이 떨렸다. 면접 질문은 대충 생각나기로는 우선 자기소개,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마케팅이란? 그리고 그걸 영어로 다시 말해보라.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지? 본인이 크게 실패했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는지? 그리고 여자지원자 같은 경우 해외마케팅은 해외주재소로 나가야 하는데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등이었다. 여기서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것이 바로 자기소개였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자기소개를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도 당연히 자기소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취업스터니나 면접스터디는 해본 적도 없으니 알 턱이 없었다. ㅄ 같다고 생각해도 좋다. 난 정말 면접에서 자기소개를 할 줄 몰랐다. 자기소개에서부터 나는 새벽에 박지성이 골을 넣는 것을 보고 잠도 안자고 면접에 왔다는 뻘소리를 작렬했고 실패 경험을 얘기 하는 도중 영문과인데 영어에 대해 자신감이 많이 없다는 대답에 나에게는 영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말에 나는 홈페이지에 아직도 풀햄에 있는 설기현을 후원한다고 했는데 이런 것 좀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 하라는 말을 했다. "여기 죶같아서 안갈꺼임" 이라는 말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친구 놈은 너 면접 처음 보냐고 황당한 듯 되묻기도 했다...근데 이 시점부터 이미 나는 취업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다시 각설하고,
KT, LG유플러스, P&G, SK Telecom, LG전자 HE본부, LG전자 HA본부, 기아차, 현대차, 웅진, 조선일보, 현대모비스.......
올해 상반기 인턴 서류 탈락한 기업 목록이다. 공채가 아닌 인턴이다. 진짜 무참히도 떨어졌다. 보다시피 닥취에서 인턴이 뜬 기업 모두 쓴 건 아니고 꼴에 나름 선별해서 썼다. 막말로 인턴이지만 아무데나 쓰기는 싫었다. 내가 눈이 너무 높아져 버린 걸까. 정말 아무 곳이나 닥치고 죄다 써야 되나. 내가 결국 이것밖에는 안되나 싶었다. 점점 초조해져갔다. LG는 공채 지원 시 서류통과와 인적성까지 다 됐는데 인턴은 죄다 떨어지니 황당했다. 면접을 원채 막해서 이게 말로만 듣던 필터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쪽팔려서 주변 친구들에게는 떨어졌다는 말도, 아니 애초부터 어디 지원했다는 말도 잘 안했다. 취업을 하기 싫다는 투정 아닌 투정에 주변에서 너 그럼 취업 안하고 뭐할 거냐는 반문에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뭐 글을 쓰네 시나리오를 쓰네 하는 그런 것보다는 취업을 원하는 눈치셨다. 설상가상으로 준비하고 있던 올레e북 작가공모전 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포기하게 되었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도 저 서류 탈락한 기업들처럼 나름 선별해서 지원했던 곳 중 하나였다. 스카이+서강+이화 밖에 가지 않는 취업설명회 일정 란을 보고 저 회사는 뭔데 취업설명회를 저기밖에 안가? 해서 조금은 열도 받았고 에라 어차피 떨어질 거 한 번 써보기나 하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외국계는 CV 와 cover letter 를 첨부하라는 곳이 많다. 밴쿠버에서 어학연수 하면서 business communication 수업이 도움이 되었다. 수업 중 CV 와 cover letter 를 쓰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P&G 를 지원하기 전에 학교 취업센터에서 원어민에게 다시 한 번 첨부를 받았다. 아마 각 학교 취업센터에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다. 외국계를 준비하는 훌들은 십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일단 지원하고 나니까 회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존슨앤드존슨메디칼은 존슨즈 베이비로션으로 유명한 존슨앤드존슨의 한국 계열사 중 하나이다. 한국존슨앤드존슨은 클린앤클리어, 뉴트로지나, 아비노 등등의 소비재를 맡는 한국존슨앤드존슨컨슈머와 타이레놀로 대표할 수 있는 제약쪽인 한국얀센, 아큐브로 유명한 비전케어, 그리고 의료기구를 맡는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이렇게 4가지 계열사로 나뉜다. 내가 이번 summer internship 에 합격한 존슨앤드존슨메디칼 의 경우 의료기구업계에서 독보적인 1위이며 4개 계열사 중 매출의 약 37% 를 차지하며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작년에 인재경영 컨설팅사인 Aon Hewitt 이 선정하는 한국최고의 직장에 200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선정되었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증권, 현대중공업, 포스코, SC제일은행 퀄컴, 한미글러벌, 새트릭아이, 램 리서치(이상 무순) 등 과 더불어 한국최고의 직장 top 10 에 포함된 유일한 health care 기업이다. 현재는 인턴십으로밖에 공채를 뽑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2007년 summer internship 같은 경우 271:1 2008년은 173:1 2009년에는 106:1 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올해는 면접 때 들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200:1 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발과정은 다소 험난하다. 먼저 서류 그 다음에 인적성 그리고 면접, 마지막으로 합숙면접이다. 인턴 업무배치는 전공과 인터뷰를 고려해서 각 분야에 배치되고 그리고 인턴을 무사히 마치면 우수하게 수료한 인턴에게는 나중에 따로 정규직 영업사원 job offer 가 간다. 특이하게 여기는 무조건 신입사원은 영업을 일정 기간 뛰어야 다른 직군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서류통과 후 인적성을 본다. 인적성은 SSAT Part 1 처럼 언어, 수리, 상식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Part 2 처럼 인성을 평가하는 거다. 자신이 어떤 직무에 맞는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는데 여기서도 떨어진 사람들이 닥취에서 보였다. 다행히 난 인적성까지도 통과했다. 정말 솔직하게, 일관성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앞에서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뒤에 다른 말만 조금 바꿨지 여전히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에서 다르게 답변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인적성도 통과했으니 문제는 이제 인터뷰다. 외국계 회사기 때문에 당연히 영어도 중요하다. 그리고 난 면접에서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에라 그냥 한 번 봐보지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면접관 총 4명에 지원자 5명의 구조였다. LG전자 최종면접 때와 같았다. 여기서 난 또 자기소개를 버벅이고 만다. 내 앞에 자기소개 했던 사람이 원채 잘했는데 내가 이따위로 자기소개 하자 내 앞의 면접관이 약간은 황당한 눈치였다. 심지어 너무 긴장을 많이 하고 떨어서 자기소개 중에 죄송하다고 하고 다시 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데 본인이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면 면접 전에 우황청심환 액을 꼭 하나 사서 먹기를 바란다. 이후에 치룬 다른 면접에서는 이게 효과가 있었다. 나는 자기소개 중에 내가 기울였던 노력과 관련하여 외국에 갔다 온 후 살이 너무 쪄서 다이어트를 하면서 한 달 만에 10kg를 뺀 것을 언급했는데 다른 남자 지원자 중에 30kg 을 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영어질문 관련해서 내가 4번째로 대답할 차례여서 다른 사람들이 대답하는 동안 미리 할 답변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자 영어질문을 바꿔서 대답을 버벅였다. 오죽 버벅였으면 면접관이 중간에서 끊을 정도였다. 면접을 이리 망쳤으니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막상 굉장히 좋은 회사라는 걸 알고 난 후에는 그 아쉬움이 너무 컸다. 면접만 보면 긴장을 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한 일주일 내내 술만 먹고 술병이 났던 것 같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 동안 다른 외국계 기업 인턴도 많이 썼다. 대학내일에서 보고 지원한 한국스트라이커, 닥취에서 본 한국화이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학교에서 방학동안 실시하는 산학협력인턴십 한국다케다제약...신기하게 죄다 외국계 제약회사거나 의료기기 회사다. 4개 회사 다 서류통과 했다. 면접에 붙은 회사도 있고 떨어진 회사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서류는 다 통과가 되었다. 대부분 경영지원이나 영업 쪽도 상경계나 약학전공만 지원하거나 우대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공이다. 전공 때문에 망설이는 훌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최소한 서류에서는 그것을 가르지 않는 것 같다.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회사 같은 경우는 특수하기 때문에 본인이 얼마나 관련된 science background 를 가지고 있느냐가 어느 정도 당락을 좌우하겠지만 결코 그것이 합불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거다. 여담이지만 한국화이자 제약 면접 봤을 때 같이 봤던 약대 여자애가 무척 이뻤다....................
며칠 후 당연히 떨어졌으리라 생각했던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에서 다음 전형인 합숙면접, 즉 워크샵에 참여하라는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지만 뭐 어쨌든 붙었으니까. 합숙면접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곤지암리조트에서 실시했다. 남자 7명 여자 5명 이렇게 총 12명이 참여했다. 나와 같은 면접조 중에서는 여자만 2명이 참여하였다. 워크샵은 1박 2일로 진행됐다. 첫날은 워크샵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간략적인 소개와 이튿날 해야 할 롤플레이를 위한 사전교육을 온종일 받았다. 잠도 잘 수 없었다. 롤플레이란 인턴사원이 sales fit 을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으로써 실제 내가 제품을 판매하는 롤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전날에 제품에 대한 사전 지식과 고객을 상대로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후자와 관련된 교육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주고 싶은데 관련 자료들을 면접 끝나고 걷어가는 것으로 보아 외부유출은 안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영업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도 영업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매뉴얼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밤새 제품에 대한 정보를 외우고 가상으로 롤플레이를 연습하면서 잠도 잘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마침내 마지막 최종 관문인 롤플레이가 시작됐다. 우황청심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어도 이때 써먹을 수 있었건만 아쉽게도 우황청심환의 존재를 알아버린 건 이 워크샵 후였다. 3개의 제품을 각각 3명의 의사에게 파는 롤플레이다. 의사는 현장에서 3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sales manager 들이 연기했으며 우리는 4명씩 한 조로 이루어져서 한 조당 각각 한명씩 팔아야 하는 제품을 들고 각 방에 들어가서 15분 동안 제품을 팔아야 한다. 제품을 파는 데에도 전날 교육받았던 매뉴얼과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것을 각 방에 있는 제 3의 면접관들이 15분 동안 평가한다. 나는 여기서도 얼마나 긴장을 많이 했으면 워크샵 모든 일정이 끝나고 manager 분들과 헤어지면서 악수하는 과정에서까지 긴장하지 말아요 라는 말을 들었다. 최종결과는 자랑게에도 올렸다 시피 합격이다.
여기까지 다 본 훌들은 그래서 이색기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게 뭔가 싶을 거다. 나의 어떤 점이 존슨앤드존슨메디칼의 인재 상에 맞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건 글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달변가가 아니다. 면접에서도 많이 긴장하고 그것 때문에 면접 때 다른 지원자같이 자신 있는 모습보다는 뭔가 위축되고 소심한듯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것 때문에 중요한 곳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으며 내 자신에 대해 원망도 많이 했다. 타고난 성격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을 잘 못하고 긴장을 많이 한다는 것은 sales man 으로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하지만 내가 존슨앤드존슨메디칼 면접에서 말했던 것 중에 "저는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대신 그만큼 남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을 할 줄 압니다..." 로 시작하면서 제법 길게 대답한 내 대답 하나가 면접관들에게 "말씀 잘 못하신다고 자꾸 그러시는데 말 잘하세요!" 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게 큰 어필을 하지 않았나 싶다. 떨렸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경험담을 진심을 담아서 얘기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결코 말을 잘하지 않았다. 목소리도 오히려 당찬 여자 지원자들보다 결코 크지 않았으며 조곤조곤하게 옆 사람에게 말하듯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게 내 진심을 전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게 내가 신입사원에 나온 김대호씨와 내가 오버랩 됐다고 했던 이유다. 롤플레이를 함에 있어서도 꼭 물건을 팔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이 사람과 어떻게 하면 좀 더 말을 많이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 지금와서 솔직히 말하면 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너님들이 자꾸 스펙을 물어보는데 지금까지 내 글을 다 읽은 훌들은 내 스펙이 진짜 소위 '학벌 SKY / 상경계 / 학점 4.0 / 토익 990 / 토스 8급 or 오픽 IH나 AL / 대기업 인턴 / 국내봉사활동 몇 십 시간 / 해외봉사활동 / 각종 공모전 수상' 등등으로 대변되는 소위 그 시발 죶같이 특출난 'specification' 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을 거다. internship 만 붙었을 뿐이지 취업이 확정된 것도 아니며 다음 학기에 복학해서 아직도 취업을 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앞날에 대해 불안해하고 하반기 공채 쓰면서 닥취를 왔다 갔다 할, 너희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취업준비생이다. 솔직히 위에 언급한 저 스펙 중에서 내세울 수 있는 스펙은 롯데면세점 인턴 밖에 없다. 하지만 위에 썼던 수많은 2011년 상반기 인턴 서류 탈락을 보면서 그것 또한 큰 의미부여를 할 수는 없겠다 생각한다.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취업스터디 한 번 한 적이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상황이 오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하고 싶은 말은,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길게 뭘 썼냐면, 그건 너님들의 대학생활을 한번 쭉 돌이켜보라는 말이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뭘 준비해야 할지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된다. 나도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데 너희들 것까지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희 자신에 대한 건 너희들이 제일 잘 안다. 한 번 차분히 돌이켜보다 보면 뭘 해야 할지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단 나는 인턴 입사 후에 job offer 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추후에 내가 40이 되고 50이 돼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며 살지 아니면 우리나라 역사와 민속 공부를 더 해서 이를 어떻게 하면 세계적인 콘텐츠화를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모색할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그래서 한국콘텐츠진흥원에 가고 싶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뽑는 공채가 롯데면세점 인턴기간이었다) 어쩌면 그냥 이런 내 꿈들을 다 포기하고 그냥 단순히 남들처럼 대기업 들어가서 취직해서 아등바등 살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외국계를 지망했던, 그리고 취업을 한다면 그쪽으로 가고 싶은 이유는 우리나라 대기업보다는 나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작금의 내 주변 현실 상황과의 적당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이상과 현실에서 그 타협점을 찾아 Focus 를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취업도 내 최종 목표를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요즘시대에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철밥통이 아니고서야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다.
여기까지 다 읽은 훌 있나? 어쭙잖은 글 읽느라 수고했다. 아직 한 학기 더 남았지만 글을 쓰면서 이제까지 내 대학생활을 한 번 더 돌이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떻게 보면 이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썼다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쓴 것 같다. 그래도 이 글을 읽은 너님들 중 한명이라도 내 글 때문에 뭔가를 얻었으면 싶다. 글을 쓴다는 건,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게 대학시절 나라는 사람이었고 나의 specification 이다. 나를 포함한 취업을 앞둔 훌천의 취업준비 훌들, 모두 건투를 빈다. 여기 있는 우리들이 다들 누군가의 한 줄의 스펙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자신의 대학 시절을 고찰하고 그 과정을 성찰할 수 있는 대학생이 되길 바란다. 그럼 자연히 스펙은 따라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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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청 열심히 쓴거같은데 ㅎㅎ
술먹고 한큐에 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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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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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그런 듯. 레알 내 자기소개서다.
와 존나 성심성의껏 쓴거 같은데 스크롤 압박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읽을수가 없다
ㅎㅎ 나중에 심심할 때 한 번 읽어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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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요새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싶다...워낙 한국남자 이미지가 안좋아져서.
필리핀 오랑우탄 애들 줘도 안먹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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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ㅋㅋㅋ 쪽지 보냈으니까 확인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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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아무튼 너 때문에 좋은 사람, 좋은 인연 만들었어. 고마워!
글 잘 읽었다!!!
고마워!!! 파이팅!!!
우리학교구나, 화이팅이다!
투고스도 힘내! 화장품 잘 받았어. 아직 개봉하질 않아서 후기는 좀 늦어질 것 같아 ㅠㅠㅠ
다 읽었다. 성의 있는 글 고마워~ 근데 이거 쓰는데 얼마나 걸렸냐
한 2시간 넘게 걸린 것 같아. 술김에 써서 제대로 정리도 안되서 ㅋㅋㅋ 고마워!
내성적인 성격도 중요하지만 회사생활에서 중요한건 1. 윗사람한테 자기 능력을 인정받고 2. 자기가 어떤 일을 해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알리는것도 중요하다고 봄.
ㅇㅇ 좋은 말 고맙다. 인턴 기간 동안 네가 해준 말 명심해서 열심히 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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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말보다 마음 따뜻하다고 해줘서 더 고맙다 ㅋㅋㅋ 그래 우리 서로 힘내자!
좋은 글이다..
고마워!!! 파이팅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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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스펙이 취업할 때 어느정도 기준은 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기준 자체도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절대 너님들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을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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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가 되다니; 축하해줘서 고마워!
단숨에 읽었습니다. 아직 절실하게 와닿지는 않지만(이제 스무살이고 베이징유학생임) 따로 저장(안된다ㅠㅠ)해두었다가 두고두고 읽고 싶은 글이예요.
시간 지나서 다시 보면 이건 뭔 또 뻘글인가 싶을거에요 ㅋㅋㅋ 아직 어리니까 많은 생각, 많은 경험 하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정말 멋있고 의대오길잘했다는 생각이급 든다...
취업이라는게 이렇게 어려운거였구나
의느님..........
와...멋지시군요... 취업이 이렇게 어려운 거였군요... 이걸 다 하느니 차라리 그저 공직 일찍들어온게 나쁜선택만은 아니였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감사합니다 ㅋㅋㅋ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과 또 각자가 처한 현실은 다르니까요 ㅋㅋㅋ 현직자로서 공무원 관련 글에 달아주는 성실한 답변들이 항상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여기서 많은 정보 주셨으면 좋겠어요. 님의 선택과 앞날을 응원합니다!
배울점이 참 많은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요약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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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열심히 해야지 ㅎㅎ 지금도 야근하다가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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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회사 있다가 방금 들어왔는데 이런 댓글 보니까 기분 좋다. 힘낼께!
글 잘 읽었습니다. 쪽지 확인 부탁드려요!
쪽지 보냈어요~
고맙게 잘 읽었네요~ ^^ 이걸로 자소서 내기? ㅋㅋㅋ
나중에 다 들통날걸요 면접 가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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