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7), 좋아하는 홍어회도 못 먹고
사람들은 태어난 고향의 먹거리에 따라 식성이 정해지기도 한다. 바닷가에서는 해물을, 산촌에서는 육류를, 들녘에서는 푸성귀가 자연히 평생의 식습성으로 굳어진다.
나는 산과 들을 겸비한 지역에서 출생하여 채식과 육식을 겸하는 습성이 있고, 아내는 군산에서 낳고 자라서 해물이 익숙해 모임이나 외식 때는 꼭 해물이 우선이고, 식사 때도 젓가락이 해물에 먼저 가는 식습성이 있다.
지난 4월 14일 일요일에는 고향마을 이장님과 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어르신들을 모시고 순천만국가정원과 남원 광한루 일대를 다녀왔다. 순천만국가정원 일대를 여러 번 다녀왔어도, 오늘은 아내와 이따금 내리는 보슬비 속에 샅샅이 뒤져가며 모처럼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유치원생처럼 그네 의자에 앉아서 발을 땅에 딛고 힘차게 밀치면서 몸도 마음도 내려놓으니 하늘의 구름과 옆의 나무들이 덩달아 같이 왔다 갔다 움직이며 호응해 주니 그네에서 일어설 줄 몰랐다.
청년회장이 12시 30분까지 버스에 탑승해야 한다기에 조금 서둘러 버스에 탑승했더니 비가 오락가락해서인지 동네 어르신들은 이미 모두 승차하셨다. 점심은 조금 늦은 시간에 꼬막정식을 먹었다. 반찬은 꼬막을 재료로 한 것이 서너 가지가 나왔는데 그중에서 꼬막회무침이 단연 주메뉴인 것 같았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꼬막회 먹기에 경쟁이 붙었다. 아내도 뒤질세라 꼬막회무침 먹기에 바빴다. 저녁때 집에 돌아온 아내가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설사를 했다. 나는 평소 먹던 정로환을 권하면서 내일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아침에 아내에게 어떠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치료하라고 하면서 익산으로 출근했다. 오후에 집에 와서 물으니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밤에 화장실 가는 횟수가 잦았다. 아무래도 어제 먹은 꼬막 때문인 것 같았다. 병원에 가자고 하니 알아서 갔다 올 테니 어서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게 수요일까지 갔는데, 아내의 얼굴과 걸음걸이를 보니 심상치 않았다.
내일 목요일은 40여 년 동안 대학동창 부부모임이 있는 날로 전남 나주 영산포에서 ‘홍어회’를 먹는 날인데 홍어회를 그렇게도 좋아하는 아내가 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이미 예약된 모임을 미룰 수도 없었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익힌 음식 외에는 절대 들지 말라며 집에서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그렇다고 영산포 홍어회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기다리고 있을 친구 내외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고, 자초지종을 의사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긴급 수액주사를 맞고 30분 정도 늦는다고 연락하고 영산포로 내려갔다.
치료와 수액주사를 맞아서인지 아내는 살 것 같다며 물을 연신 마시면서 영산포 ‘전라식품’ 홍어횟집에 도착했다. 벌써 큰 접시에 불그스레하고 싱싱한 홍어회를 먹음직스럽게 담아 놓아 군침이 돌았다. 평소 홍어회를 그렇게 좋아했던 아내가 한 첨도 들지 않고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만 흘리고 있으니 친구들 내외가 왜 홍어회를 안 먹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홍어회를 맛있게 먹던 친구 내외들이 미안했는지 분위기가 잠시 주춤해졌다. 평소 같았으면 어깨를 흥청거리며 젓가락으로 홍어회를 집어 먹기에 경쟁이 붙었을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목요일 영산포 홍어회 먹기 오후 일정은 취소하고 공금으로 한 집에 10만 원 상당의 홍어회를 구매하여 각자 집에 가서 먹기로 하고 빨리 전주집에 올라가서 아내의 휴식을 취하라고 신신당부하기에 집에 돌아와 죽을 쑤어서 저녁을 때우고 잠은 언제 들었는지는 기억이 없고 눈뜨니 벌써 아침이다.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바로 어제 그 병원으로 다시 갔다. 의사 선생님은 어제 잘 갔다 왔느냐며 나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속으로 아내의 건강이 중요하냐 친구 모임이 중요하냐 객관식 문제를 나에게 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정답을 말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숙였다. 어제 혈액검사 결과는 특이한 사항은 없는데 아내의 혈압이 안정 수치 이하로 내려가 있어 여러 가지 종합처방으로 아침 10시에 시작한 수액주사가 오후 5시 30분쯤에 끝났다.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나오라고 했다.
나는 음력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부모님 삭망(朔望) 성묘를 하고 있다. 오늘은 공교롭게 보름날이지만 아침부터 오후까지 병원에서 아내를 돌보느라 부모님 산소를 못 가는 줄 알았는데, 춘분이 지나서인지 해가 길어져서 부모님 산소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었다. 구름 속의 해는 서쪽 중천에 걸려있었다. 오늘은 노란 저고리 붉은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앳된 얼굴로 시집와서 나이 먹고 건강이 약해진 아내를 돌보지 못한 죄가 크다. 내가 자식들을 위한 것보다 생전에 나에게 몇 배 더 잘해 주셨던 부모님께 불효했던 죄가 부모님께 드린 소주잔에 비추는 것 같아 만감이 교차했다.
(2019.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