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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가 진상용 원문보기 글쓴이: 국화
그림 이야기를 할 때 화가들의 이야기가 빠지면 재미가 반감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언젠가도 쓴 적이
있지만 모든 예술 작품에는 어떤 형태로든 작가의 일생이 숨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으면 좀 답답합니다.
영국의 마커스 스톤 (Marcus Stone / 1840~1921)의 그림을 보다가 그의 생애를 따라 가 봤는데, 희미한
달 밤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림 속 여인들은 예뻤습니다.
반했어요 In Love
바느질을 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몽롱합니다. 입 근처에 손 가락을 가볍게 대고 시선을 여인에게
고정시켰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바느질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뚫어져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거북한지 뺨이 붉게 달아 올랐군요. 여인 앞 쪽에 과일이 있는 것을 보면 원래 여인 혼자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 여인에게 반한 남자가 무턱대고 앉은 것 같습니다. 남자의 머리 속이 복잡하겠군요.
‘바느질이 끝나면 뭐라고 말을 걸어 볼까?’
글쎄요, 여인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은 기다림부터 배우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스톤은 1840년 런던에서 출생했습니다. 스톤과 관련된 자료에는 과문한 탓인지 어머니나 아내에 대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화가였던 아버지에 프랭크 스톤 (Frank Stone / 1800~ 1859)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하게 있더군요. 그의 아버지도 로열 아카데미 준회원이었으니까 나름대로 화가로서 명성은 확실했겠지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An Appeal for Mercy, 1793 / 63cm x 94cm / 1876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편이 봐서는 안될 편지를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다. 등을 돌리고 편지를
읽는 남자의 얼굴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고, 절망에 빠진 여인의 얼굴은 조금씩 창백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 편지를 배달하러 온 심부름꾼이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외출에서 돌아 온 남편이 먼저
편지를 뜯었고 뒤따라 온 여인은 그 광경을 보고 의자에 쓰러지고 만 것이겠지요. 조그맣게 열린 출입문 너머
붉은 색 배경이 곧 닥칠 한바탕 소란을 예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자의 자비가 필요한 시간인가요?
아주머니, 그러게 조심했어야죠.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죠? ------.
스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영국의 대 문호인 찰스 디킨스와도
친분이 있었는데 아버지 역시 화가이자 책 속의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 봅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은 서로 쉽게 친해지는 법이죠.
도둑 키스 A Stolen Kiss / 152cm x 66cm
쿠션을 머리에 받치고 잠이 들었는데 슬며시 남자가 다가 왔습니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겠지요? 사실 잠을
깨우는데 키스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 변형된 동화 속에서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아직도 일어 나지
않아 왕자가 늙은 채로 있다는 외신을 얼마 전에 본 적이 있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자는 모습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 남자도 있을까요? 물론 아침에 일어날 때 모습은 논외로 하기로 하죠. 키스 정도 훔치는 것은
봐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숲 그림자 속에 서 있는 조각상이 보입니다.
난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함부로 입술을 훔칠 일은 아니군요.
스톤의 미술에 대한 재능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로열 아카데미에 그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열 여덟 살이었습니다. ‘휴식 The Rest’ 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무장을 한 기사가 나무에 기대에 살짝
잠이 든 모습을 묘사한 것이었는데 아버지의 작품도 로열 아카데미에 전시가 되었으니까 2대에 걸쳐 작품이
걸리는 영예를 얻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자주 잘 지도한 결과이겠지요?
어둠 속에서 In The Shade / 40.64cm x 60.96cm / 1879
짝이 안 맞는 남녀 모임의 끝은 항상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기껏 같이 차를 마시고 나서는 한 여인만 남겨
놓고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나고 있습니다. 저 마음, 제가 아주 잘 압니다. 예전에 ‘피보기 미팅’을 나가면
신기하리만치 자주 짝이 없는 사람으로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짝이 결정 된 친구들이 얼마씩 술값과
차비 명목으로 돈을 걷어 주고 저는 그 돈으로 종로에서 술을 마시곤 했습니다.
아가씨, 마음 쓰지 마세요. 지금 아가씨를 향해 달려오는 남자가 있습니다. 도착 시간이 문제이지만요.
스톤의 그림에는 세 명의 남녀가 등장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그 다음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 것은 그 스스로 금전적으로, 화가로 자립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우선 스톤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디킨즈에게 자신이
그린 삽화 몇 점을 견본으로 보냅니다. 디킨즈는 스톤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10일 만에 스톤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출판사의 편집장에게 유능한 삽화가로 소개합니다. 좋은 어른은 어려울 때 등불로 나타나죠.
Old Mutual Friend 중의 삽화
찰스 디킨스의 작품 속에 그려진 스톤의 삽화입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그의 유화와 비슷합니다. 아직 작품이
우리 나라에 번역된 것이 없다고 해서 내용을 알 수 는 없지만 삽화 속 여인과 남자의 상황이 존 냉랭해
보입니다. 여자의 얼굴에서는 단호함이, 남자의 얼굴에서는 답답함과 쓸쓸함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찰스 디킨즈의 소개로 책에 삽화를 그리는 동안에도 스톤은 유화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생계가
걸린 삽화가 우선이었겠지요. 1864년, 24세의 스톤은 찰스 디킨즈의 소설 ‘우리들의 친구 Old Mutual Friend’
라는 소설의 삽화를 그리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콘 힐 메거진의 삽화까지 그리게 되면서 스톤의
삽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작품의 단가는 비싼 편이었다고 합니다.
연애 결혼 했어요 Married for Love / 38.5cm x 61.5cm / 1881
부유한 집 아들이 부모 말을 거역하고 연애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왔지만 아버지는
본 척 만 척입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자세도 편해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둘째 아이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계단이 있습니다. 아직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더 올라야 하는데, 아버지의 자세를 보고는 올라가기가 무서운 모양입니다. 사랑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
그래도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이 훨씬 밝군요.
언젠가는 아버지가 계단을 내려와 두 사람을 맞을 날이 있겠지요.
다시 돌아갔다가 애를 더 키우고 오면 어떨까요?
그러나 높아지는 명성과 다르게 스톤의 마음 속에는 다른 생각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삽화가가 아니라 유화를
그리는 화가로 경력을 쌓고 싶었던 것이죠. 그 즈음 당시 유명한 작가였던 앤서니 트롤럽 (Anthony Trollope /
1815~1882)의 작품에 삽화를 그렸는데, 트롤럽의 반응이 그저 그랬던 모양입니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
준 격이라고 할까요? 스톤은 그 때까지 남아 있던 삽화에 대한 미련을 버립니다.
워털루에서 파리로 가는 길에 On the road from Waterloo to Paris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워털루에서 영국군에게 패하고 파리로 후퇴하고 있는
나폴레옹입니다. 한 때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패배한 장군으로 부관과 부하 몇의
호위 속에 파리로 가는 길에 잠시 몸을 녹이고자 허름한 농가에 들른 모습입니다. 나폴레옹은 타오르는 불을
보며 재기를 곱씹고 있지만, 그러나 나폴레옹 뒤에 있는 농민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인과 어린이
그리고 노인만 있습니다. 젊은이는 나폴레옹을 따라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정치 하는 사람들은
저렇게 자기 등 뒤에 힘들게 서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지금 우리라고 뭐 다른 것이 있나요?
초기 스톤의 작품 대부분의 주제는 역동이고 역사적인 장면과 문학에 기반을 둔 장면이었습니다. 이른 시기에
작업한 작품 중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최초를 기사 작위를 받은 레이턴이 매우 칭찬했던 것도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운 탓인지 그 이전의 영국 선배 화가들로부터의 영향은 많지 않았습니다.
환멸 The Awakening /182.9cm x 111.8cm / 1882
혹시 여인의 망연자실한 눈 빛이 느껴지는지요? 혹시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여인이 만나기로 한 남자로부터
편지가 도착한 것 아닐까요? 편지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둘렀던 옷과 편지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적잖은 충격이 그녀를 흔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여인 뒤에 서 있는 노파는 편지를 가져 온 남자에게 왜 이런
걸 가져 왔느냐고 나무라는 것 같고, 말에서 내린 심부름 꾼은 자신의 역할이 못마땅한지 표정이 말이
아닙니다.
‘도대체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 거야’
그나저나 여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저는 저런 얼굴이 제일 무섭습니다.
혹시 다른 이야기를 찾아 보셨는지요?
그러나 훗날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난 뒤 스톤의 작품에는 큰 변화가 옵니다. 이 시기부터 스톤의
작품에는 극적인 움직임보다는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라던가 우아한 여인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18세기
귀족 복장을 한 여인들은 감성적이고 연극의 한 장면 같은 모습으로, 또 때로는 유머를 바탕에 깐 화면 속에
등장합니다. 19세기 말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인들은 그의 작품에 매혹됩니다.
둘은 친구이지만 셋은 아무것도 아니지 Two's Company, Three's None
이 작품에도 셋이 등장했습니다. 3이라는 숫자는 가장 안정적인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남 녀가 섞이면
가장 불안정한 수가 됩니다. 생각 같아서는 여인 둘이 남자 하나를 ‘왕따’ 시킬만도 한데 --- 그럼 그림이
재미 없을까요? 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서 두 남녀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여인의 모습에서 요즘 제가 즐겨
보는 솔약국집의 아들들 중 ‘김간호사’를 떠 올렸습니다.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가씨,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으셔야 합니다!
스톤이 다른 화가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의 작품 제목이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죠. 작품의 제목만으로
작품 내용을 정확하게 상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제목도 작품의 일부라고는 하지만 저 같은
비전문가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화가입니다. 간혹 작품의 제목과 내용을 결부시키는데 상상력을 동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죽을 맛이죠. 제가 현대 미술을 무서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죠.
두 연인 Two Lovers / 92.1cm x 48.9cm / 1906
남자가 여인에게 말을 하는 동안 고개를 돌린 여인의 모습은 많은 그림에 등장하는 포즈입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윌리엄 고드워드의 작품과 느낌이 많이 닮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뛰는 심장의 박동수를 굳이 헤아려
보지 않아도, 눈을 드려다 보지 않아도 여인의 마음이 어떤지 남자는 알 수 있겠지요. 눈을 빤히 드려다 보며
‘나 좋아 한다고 말해 봐’라고 말하는 것 보다 이 모습이 더 그럴 듯 하게 생각되는 건 아무래도 제가 지나온
세월 탓인가 봅니다.
스톤은 여러 전시회로부터 많은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의 작품은 판화로 대량 제작되어
전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되지 못했던 로열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고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고 하는데 당시 부유한 영국인들은 호평 속에 스톤의 작품을
구입했습니다.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자연인으로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삶이었습니다.
더 바랄 것이 없었군요. 스톤 선생님!
첫댓글 저도 반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