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는 방법(위문삼다)
수필가 정임표
구양수가 “위문삼다(爲文三多)” 라는 말을 남긴 것을 보면 옛사람도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던가 봅니다. 필자는 수창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위인전을 많이 읽으라고 하셔서 그때 처음 읽은 위인전이 <넬슨>입니다. 뭘 알고 읽은 게 아니고 학급문고 만드는데 책을 한 권씩 사 오라고 하여 무턱대고 구한 책이 <넬슨>이었지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 함대에 불이 났는데 침착하게 병사들을 통솔하여 화재를 진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분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의 영웅이 된 위인이라는 구체적인 역사 이야기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세계사 국사 시험에 늘 만점(약간 과장^^)을 받았습니다.
암튼 필자의 독서에 관한 관심과 문학에 관한 관심은 그때 싹이 텄는데 당시 수창초등학교에는 학교 문예지 <신호등>이 발간되고 있었지만 저는 거기에 글을 발표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 3학년 2학기 말에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을 갑니다. 거기서 “알프스 소녀”를 만나고 학교 도서장의 책을 몽땅 다 읽는 독서광의 생활을 합니다. 전과도 한 권 못 구할 정도로 빈한한 집안이었으니 책에 대한 갈증을 학교 도서장이 해소시켜 준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필자의 등단작인 <선생님께 주신 꿈>에 그대로 나옵니다. 헌 신문 쪼가리나 남들이 읽다 버린 오래된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 소년 조선 신문 같은 것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으며, 중고등학교 형들이 공부하고 버린 헌책을 얻어 와서 호롱불 밑에서 그걸 밤세워 읽었습니다. 그때 학교에서 학급 백일장이 열렸는데 내 글과 한 소녀의 글이 뽑혀서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었습니다. 소녀가 쓴 시의 제목은 <엿장수>입니다.
찰칵찰칵 엿장수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우는 아이 달래고
웃는 아이 울린다.
지금도 이 문장을 기억하는 것은 어린 내가 생각해도 기막히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얼마 후 내가 어디 화장실에선가 헌 신문 쪼가리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이 시가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소녀가 남의 글을 베껴서 학급 글짓기 시간에 낸 것입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60년이 지난 오늘 처음 입 밖에 냅니다. 당시 어린 내가 표절이라는 단어를 알지도 못했을 나이입니다만 그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가 봅니다.
암튼 중학교 진학하여서도 주야장천 나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소설책만 읽었습니다. 학교 공부를 잘했을 리가 없습니다. 대학 가기 전에 고모님 댁에 집을 봐주러 갔더니 월간 현대문학과 사상계라는 책이 형님 방에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형님은 고시 공부한다고 동화사 암자에 공부하러 가고 없었지요. 책가방 들어 드린다고 몇 번 암자까지 간 경험이 있는데 나는 그걸 전부 그때 읽었습니다.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선생을 그때 알았고, 신수와 혜능도 그때 책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그 형님이 좀 늦게 판사에 임용되어 5공 시절 그 서슬 퍼렇던 시절에 지금은 당연시되는 ‘영장실질심사제“를 도입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고 국민 인권 향상에 크게 이바지 합니다. 민주유공자로 선발한다면 진짜 민주유공자 입니다. 시골 무지렁인 제가 가인 김병로를 알게 된 것도 그 형님 덕분입니다. 형님 함자가 이병로이니 궁금하신분은 인터넷에서 확인하면 나옵니다. 형님은 세상에 아부하지 않고 대학지도를 실천하신 분이라 제가 마음 속으로 평생 존경하고 있습니다. 암튼 그 후 군에 입대한 필자는 3년 긴 세월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낼까 생각하다 한 달에 무조건 책 한 권을 읽자는 목표를 세우고 힘든 전방 생활 훈련하는 틈 시간에 닥치는 대로 책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대학을 못 다닌 갈증 때문에 회계학, 법학, 경제학, 경영학, 무역학 등등 온갖 전문 서적을 다 구해서 읽었습니다. 가히 독서광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세월을 보냈습니다.
글쓰기의 기본이 다독입니다. 그다음이 다작입니다. 무슨 글이든 무조건 쓰라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긁적이듯이 무조건 하루 한편 이상씩 쓰라는 것입니다. 일기가 아니면 가계부라도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다상량입니다. 더 숙고하고 더 많이 퇴고하라는 것입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앉아서 보고 서서 보고 누워서 보고, 이모저모 살피면서 퇴고에 퇴고하라는 것입니다. 이 퇴고가 힘들어서 작품을 써내기가 어렵습니다.
여기다가 한 가지를 더 추가하면, 이건 제가 강조하는 것인데 '알면 안다고 쓰고 모르면 모른다고 쓰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해 놓고 보니 이미 ”지지이 지지 부지이 부지“라는 말을 공자가 했고, ”예면 예 아니면 아니오 하라“는 말을 예수도 했더군요. 암튼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솔직하게 쓰라는 것입니다. 모르면서 아는 체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체하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 남들로부터 조롱을 받게 되니 솔직담백하게 쓰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세운 가설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즉시 수정하는 것은 자랑스런 배움의 자세 입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보다 더 글을 잘쓰면 역사가 크게 진보한 것이니까 춤을 추며 좋아할 일입니다. 세상이 더 좋아 지는데 시기 질투할 일이 없습니다.
이 정도만 알고 부지런히 훈련하면 누구든지 좋은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풀빵처럼 어떤 틀에 넣어서 빵빵 찍혀 나오는 글은 글이 아니니 절대로 그걸 답습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죽어도 남의 글 표절하면 안 됩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지금도 잊지 않는 이유가 그만큼 정신에 충격이 컸던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자기 명성을 위해서 글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유익한 글을 쓰겠다고, 욕심 같으면 인류에게 두고두고 읽히는 글을 쓰겠다고 기왕이면 그렇게 큰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내 글이 자기 잘난체 하는 것으로 들린다면 ”내가 문단에 와서 절대로 내 잘난체 할 이유가 없다“는 점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수 많은 후배들이 내 말을 따른다고 우쭐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설치고 다닐 위인도 못 됩니다. 단지 예면 예하고 아니면 아니오 하고 싶은 것입니다. 글 그만 올리라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가보고 글 그만 올리라는 말을 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과유불급이란 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건 윤리일 뿐 진실은 아닙니다. 다작은 다독 다음으로 중요한 글쓰기 훈련이므로 권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