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저녁 해어스름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워나갈 때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어두워지는 일이 이리 좋은 것인 줄 이제 알게 되네 흐릿해져서 흐릿해져서 산도 나무도 무엇보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싸웠던 일들도 흐릿 흐릿해져서 개망초 떼로 피어선 저것들이 안개꽃이댜 찔레꽃이댜 안개꽃이면 어떻고 찔레꽃이면 어뗘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 꽃다워서 좋더니만 이제 꽃답지 아니해서 좋네 이녁 화장을 해서 좋더니 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이렇게 왔네 저녁 이맘때의 공기 속엔 누가 진정제라도 뿌려놓은 듯 내 안에 날뛰던 짐승도 순하게 엎드리네 이녁이라고 어디 다를라고 뭐 죽도록 억울하지는 않아서 세상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듯 어둠 속에 둥글어진 어깨를 보네 이대로 한 이십년 한꺼번에 더 늙어지면 더 어둡고 더 흐릿해져서 죽음까지도 이웃집 가듯 아무렇지 않을 깜냥이 될까 모든 일이 꼭 이승에서만이란 법이 어디 있간디 개망초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꽃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그 때 기억할까 못하면 또 어뗘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