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 김나현
‘밥 탄다. 불 꺼라~~~’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든다는 농번기다. 무쇠솥에 쌀을 안쳐 주고선 ‘불을 때다가 솥에서 따닥따닥 소리가 나면 불을 끄면 된다.’라고 신신당부하고 어머닌 들에 나갔다. 아궁이에 불을 때다가 타는 불을 끄는 시기를 가늠하기란 어린 인생 최대 난제였다.
하마 그 소리가 들릴까. 온 신경을 쏟아 집중할 때 불길한 냄새가 얼핏 코를 스쳤다. 이 냄새가 부엌 바람벽으로 새어 나가 뒷집 담을 넘었나 보다. 뒷집 친구 영옥이네 올케가 밥 탄다고 불을 끄라고 하는 외침을 듣고서야 놀라 불붙은 나무를 허겁지겁 부지깽이로 끄집어냈다.
하루해가 서산으로 길게 늘어지는 여름, 어둑발이 내려서야 퀭한 얼굴로 마당에 들어선 어머니는 씻을 새도 없이 두리반부터 폈다. 종일 노동으로 땀에 전 옷을 갈아입을 기운도 없어 보였다. 밥 태운 죄를 지어 풀이 죽었다. 어머니가 솥뚜껑을 여는데 옆에서 보니 밥이 검누렇다. 갇혔던 탄내가 진동했다. 덜 탄 솥 중심부 밥을 주걱으로 살살 뒤적여 푸던 어머니도, 탄 밥을 드시던 아버지도 밥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때도 벼이삭이 물결처럼 휘날리던 시기였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당시 어머니는 서른 초반, 벼꽃처럼 풋풋한 나이였다.
구순을 코앞에 둔 노모는 그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세월을 온몸으로 껴안은 채, 지루하게 흐른 생을 반으로 접어 버린 듯 노쇠한 모습이 낯설다. 동구 밖까지 나와 자식을 배웅하던 모습도, 대문 밖에서 지팡이 짚고 작별을 고하던 모습도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어느 날부터는 마당 평상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모습만을 두고 나왔다. 지팡이를 짚고도 대문 밖 출입을 못 하는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자식과 애절한 눈을 맞춘다. 총명했던 눈동자에는 자식 뒷모습을 배웅할 수 없는 슬픔이 일렁인다. 대상포진에 이어 코로나마저 덮쳐 수분 한 방울 없이 메말라 버린 대지 같은, 어머니 몸을 깜부기 같은 질병이 침범해 야금야금 세를 키운다.
자식도, 부모가 늙고 병들어 감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방관자나 다름없다. 어머니가 부쩍 왜소해지고 의식이 흐려지는 속도를 감지하며 그런 생각이 든다. 혈육으로 이어졌지만 내가 아닌 타자가 겪는 고통, 이럴 때 ‘타인의 고통’이란 말이 뇌리에 가득 들어찬다. 수전 손택이 쓴 에세이 『타인의 고통』은 제목부터 섬뜩하다. ‘타인의 고통’이라는 말 자체가 바라보는 자의 관점이란 뜻이 아니던가.
작가는 타인의 고통이 어떻게 다가오며 바라보는가를 이라크전쟁 전후 사진으로 제시한다. 전장 사진은 보는 자체가 고통스러울 만큼 끔찍하다. 그러나 전이되지 않는 이 고통을 향한 연민이라는 것도,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돼 버린다고. 노쇠한 어머니가 겪는 생체 고통을 지켜보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갈수록 다양한 재해를 접하는 세상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전쟁, 예측할 수 없는 폭우, 자연 대재앙인 화재, 태풍…. 이로 말미암은 피해자가 겪는 크나큰 고통도 전이되지 않는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이 겪는 투병 소식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다. 깊이 마음 아프지만 덜어줄 수 없고 나눌 수 없는 일이다.
노모 홀로 감내해야 하는 육신의 아픔과 밤새워 시달리는 고통도 덜어줄 수 없다. 심지어 노모의 아프다는 말도 자주 접하면 혹 무뎌질까 경계한다. 수전 손택이 염려한 바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별 도움 되지 않는 한숨만 는다.
어린 내게 밥하라던 그때, 삼십 대를 지나던 당신은 생의 소실점을 향해 쓸쓸히 홀로 가고 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서두르는 어머니와 이를 바라보는 자식을 이은 끈이 위태롭다. 드라마 결말을 예견한 듯 서로 과거로 회귀하는 일도 잦아졌다. 혈연 속에서 함께한 숱한 찰나가 대하소설처럼 장면을 이동하며 재생된다. 다만, 서로 다른 시점과 다른 기억으로 애틋해한다. 어머니 기억이 단편이나마 아직은 또렷하지만, 바라보는 엄마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벼이삭이 팰 시기, 들녘은 바야흐로 물알 든 벼가 알곡을 품을 때다. 집 앞 논엔 개구리울음이 왁자하겠다. 어머닌 아랫목에서도 들녘 사정을 들고 꿴다.
솥에서 따닥따닥 소리가 나면 불을 끄라던 그맘때를 지나는 중이다. ‘쪼들리는 살림에 자식 키우느라고 고생하셨어요.’ 혹, 말할 시간을 놓칠까 싶어 어머니 손을 잡고 또박또박 전했다. 거죽 밀리는 손이 온기 없이 싸늘하다. 어머니란, 타인의 고통이 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임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