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28/인생사진人生寫眞]추억追憶이란 무엇인가?
TV 프로그램 중 즐겨보는 게 ‘걸어서 세계속으로’이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래도 해외여행을 자주 하기는 어려운 일, 그 프로를 보면서 각 나라의 역사, 문화, 풍경 등에 대한 제법 많은 간접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인생사진人生寫眞’이라는, 잘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가 나올 때마다, 생각이 잠깐잠깐 멈춘다. 역사적인 유적이나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의 ‘포토존photo zone'에서 찍는 기념사진을 이를 터인데(이를테면 그리스 신전 앞에서 근엄하게 제스처를 취한 것이나 우유니사막에서 팔짝 뛰는 모습을 찰칵한 사진), 나는 사랑하는 아내나 가족 또는 친구들과 그런 인생사진이 있나를 더듬어보는 것이다.
사진은 왜 찍는 것일까? 기억에는 누구라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멋진 여행을 회상할 때 찍은 사진들이 우리를 ‘그때 그 자리’로 데려가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10년 , 20년, 30년 전 빛바랜 옛사진들을 보노라면, 확실히 세월(달구름)이 유수流水같음을 실감할 수 있다. ‘아 그때가 좋았지’ ‘참 젊었다’ ‘지금은 대머리이지만 그때는 새카만 머리숱 좀 봐라’ ‘당신 그때는 미인이었네’ 한마디씩 탄성과 한숨이 나올 것이다. 인생사진, 그러니까 인생을 통틀어 남을만한 기념비적인 사진을 말함이렷다. 나는, 우리 부부는 그런 사진이 몇 장이나 있을까. 둘 다 사진 찍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이아가라 폭포를 갔는데도 사진 한 장이 없다. 그때는 별로 섭섭하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아쉬운 일이다. 사진도 명실공히 기록記錄인데 말이다. 앞으로는 어디를 가든 인생사진 될 만한 곳에서는 반드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면서 ‘추억 만들기’나 ‘추억 쌓기’를 하면서 사는 게 아닌가 싶다. 한 친구가 고속도로에서 죽기 일보 전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자기가 살아온 인생이 극도로 짧은 순간에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지며 지나가더라고 했다. 자기의 '다이제스트digest 인생‘을 체험하면서 “죄 짓고 살지 말아야겠다” “살면서 착한 일을 하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여 “기특하다”고 어깨를 두들겨준 적이 있다. 정말 그럴까, 나로선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인생사진이 주루룩 주마간산격으로 지나간다니 믿을 수 밖에.
물론 나도 그 친구와 같은 생각이다. 죄 짓지 말고 선업善業을 쌓는 일, 불교도도 아니지만 어찌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을 모르겠는가. 내가 복을 받지 못할지라도 나의 자식 아니면 손자,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 ‘선과善果’로 돌려주지 않을까. ‘인생사진’이라는 단어를 접하며 ‘인생추억’이라는 말도 있겠다 싶다. 추억도 두 가지, 지우거나 떠올리기 싶지 않은 나쁜 추억은 말고, 언제 되새김질을 해도 좋을 ‘행복하고 착한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가족을 사랑하고, 많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쌓아가며), 주변인들을 배려하는 삶 속의 추억들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넉넉하게)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 안타깝다.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그런 사람(아무 생각없이, 숨을 쉬고 세 끼 밥을 먹으니까 사람인)을 ‘식충食蟲이’ 또는 ‘똥기계’라 하는데 똥이 영어로 dung이라고 가르쳐줬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아 식충이(밥벌레)가 되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 중학교 도덕선생님은 ‘든사람 난사람 된사람’의 사전적 정의를 정확히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든사람 난사람은 못돼도 최소한 된사람은 돼야겠다’고 작정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가? ‘반거들충이’ ‘윤똑똑이’에 다름없음을 자인自認하고 고백告白한다.
인생사진이란 신조어를 접하고 말과 글이 튀어도 너무 튀었다. 살면서 인생사진을 많이 찍는 것도 좋지만, 언제든 죽겠지만, 언제까지 잊지 못할 좋은 ‘인생추억’을 많이 만들고 쌓아야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늘 그렇듯 오버를 했다. 임실군에 ‘일일일선행동본부一日一善行動本部’라는 시민단체가 있어 놀랐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착한 일하기’는 그 이상 더 좋을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추억’ ‘인생추억’은 그런 일들이 쌓이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데. 바라보기에 좋은 ‘추억의 탑’은 돌멩이를 얼마든지 많이 올려놓을수록 좋을 게 아닌가. 돈은 쓰고도 기분좋을 때가 많아야 한다. 지난 일요일엔 갓 결혼한 질부姪婦(형 아들의 색시)가 ‘앵무새 카페’를 냈다하여 아들며느리 손자를 대동하여 처음으로 방문하니 마침 조카 둘과 형수도 와 있다. 하여 인근에서 사업을 하는 생질甥姪(여동생의 아들)을 불러내 9명이 점심을 했다. 다른 조카들도 모두 함께 했으면 더욱 좋았으리. 돈을 내고도 어찌나 기분이 좋든지. 추억의 탑에 돌을 하나 얹어놓은 셈이다.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자문구, 열친척지정화 悅親戚之情話가 최고다. 3년만의 서울나들이, 보람찬 하루였다. 하하. 낼모레엔 즐거운 추억을 오래 간직할 인생사진을 찍으러 제주도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