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10대 뉴스
(2009~2014)
[2009년]
①미쓰비시자동차 전시장 철수 1인 시위...축제 같은 새로운 시위 전형 제시
②시민모임 창립(3.12)...시민과 함께하는 역사의 새 발걸음 시작
③양금덕 할머니 투사로 변신...기자회견 1인 시위 현장 등 주역
④한 달 3만명 가까운 항의 서명운동(6월 일본방문 전달)
⑤도쿄(금요행동)-서울(금요시위)-광주(1인시위) 잇는 연대시위...과거사 청산, 평화의 징검다리
⑥언론 집중 조명...‘스타’ 시민모임 탄생
⑦도쿄 금요행동 2주년 참가...일본방문(7.29~8.1)
⑧미쓰비시 앞 학생촛불문화제 개최(11.3)...80년 전 뜨거운 함성 재현
⑨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혜옥 할머니 영면(7.25)
⑩시민모임 후원의 밤(12.19)
[2010년]
①맨발로 일군 감동…'10만 서명운동'
1월2일 새해 벽두부터 회원들은 거리로 나섰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내 첫 거리서명을 시작으로 휴일은 물론, 어린이 날에도 아이들 손을 이끌고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6월 최종 마감 때까지 계속됐다.
광주에서 시작된 바람이 전국 각지의 학교와 종교단체로 퍼지면서 당초 목표였던 10만명을 훨씬 뛰어넘어 13만4162명이라는 경이적인 숫자를 기록했다.
②폭염·폭설에도…208일간의 '1인 시위'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폭염도, 폭설도, 세찬 비바람도 시민들의 발길을 막을 순 없었다. 해를 넘겨 다시 시작된 1인 시위. 유난히 날씨가 짓궂었던 지난 겨울, 미쓰비시모터스 광주전시장 앞에서 피켓 하나에 몸을 의지해야 할 때도 많았다.
자발적 참여가 원칙이었던 1인 시위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당장 오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제시간이면 여지없이 찾아 드는 발길들. 미쓰비시의 협상 수용에 따라 1인 시위를 잠정중단 한 7월30일까지 '208일간의 1인 시위'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1인 시위라고 말하기 어색할 정도로 평균 8~9명의 시민이 길거리에 나와 연인원은 2000여명에 달했다.
③"99엔 매우 실례" 호소카와 후생노동성 부대신 사의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호소카와 후생노동성 부대신(차관)은 2월24일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99엔' 지급에 대해 정식 사의를 표했다. 후소카와는 일본을 항의 방문한 양금덕 할머니와의 면담에서 "일본인 역시 탈퇴수당금을 지급할 때는 액면가 대로 같은 기준을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갖은 고통을 당한 근로정신대 피해자에게 99엔을 지급한 것은 정말 실례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정부로서는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일명 '99엔 파문'과 관련해 외교통상부의 무력한 대응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을 때 일본정부 관료로부터 사의를 접했다. 호소카와는 간 나오토 총리 체제에서 내각(후생노동성 대신)으로 발탁돼 또한번 운명의 만남을 기약하게 됐다.
④양금덕 할머니 '3·8 여성상' 수상…초청강의 쇄도
3월22일 근로정신대 출신 양금덕 할머니(82)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여성의 날 행사에서 '3·8 여성상'을 수상했다.
양 할머니는 매일 같이 1인 시위에 동참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시위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원동력이 됐다. 또 불편한 몸으로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등 역사의 굴곡을 넘은 살아있는 투사로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수상 이후에도 양 할머니는 쇄도하는 강연 요청 때문에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⑤나고야-광주의 희망메시지…'화이팅! 용기를 내고' 작곡
'나고야-광주' 양국 시민들의 국경을 뛰어넘는 연대투쟁이 마침내 아름다운 노래로 활짝 꽃을 피웠다. 일본의 반전평화 노래운동 단체인 '우타고에 합창단'의 일원이자 1979년 결성된 연주그룹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중가수 하라다요시오(58)가 작곡한 '화이팅! 용기를 내고'가 그것.
하라다는 "신광중 학생들이 보낸 67통의 편지에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하다 이를 한글노래로 만들자는 구상을 하게 됐다"고 고 말했다. 가사를 붙인 이시구로(57)는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위를 뚫는 것처럼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자는 뜻과 나고야 지원회와 광주시민모임이 미래를 향해 손을 잡고 전진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노랫말을 설명했다.
⑥시민모임 주역들 6·2 지방선거 승리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있던 6월2일 밤. 개표장 소식이 휴대전화를 통해 전해질 때마다 회원들은 흥분과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시민모임 고문인 김선호 전 광주효광중 교장이 압도적인 표차로 상대 후보를 누르고 광주시교육의원에 당선됐다. 이어 자문위원 장휘국 전 광주시교육위원 역시 예상을 뒤집는 역전 드라마를 쓰며 시교육감에 당선됐다.
전교조 출신인 두 사람은 시민모임 태동 때부터 모임을 이끌어온 주역들. 지난해 3월12일 시민모임 결성에 앞서 추어탕을 놓고 시민모임을 결의하던 19명 중 한 사람이었다.
서명운동의 테이프를 끊은 것도 바로 두 사람. 각 학교를 직접 방문해 서명운동의 취재를 설명하고 홍보한 결과 7만여명의 학생들이 운동에 동참.
⑦대규모 항의방문단 방일활동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였다. 6월22~25일 이용섭 국회의원과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당선자, 김선호 광주시교육의원 당선자, 서정성 광주시의원 당선자, 이상갑 변호사, 김재학 신부 등 22명의 대규모 방문단은 여야 국회의원 100명, 13만4162명의 항의서명을 일본 내각부에 전달했다.
방문단은 또 시나가와역에서 미쓰비시중공업까지 삼보일배를 통해 99엔 문제에 대한 사죄와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했했다. 협의체 구성을 이끌어낸 것도 방문단의 성과중 하나였다.
⑧미쓰비시 '협의체 구성에 동의'
7월14일. 마침내 역사의 새문이 뚫렸다. 미쓰비시중공업이 일본 방문단의 뜻을 받아들여 '공동협의체' 구성에 동의한다는 뜻을 '나고야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회장에게 전해온 것. 방문단이 시한으로 통보한 7월15일을 하루 앞둔 때였다.
초조한 심경에 하루 종일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던 다카하시는 이날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후에 팩스 소리가 들려오는데, 반사적으로 '이것은 미쓰비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린트가 채 나오기도 전에 종이에 손을 댔는데 순간 손이 떨렸다. 첫 문장을 보고 하마터면 안고 있던 손자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해방 65년, 장장 10년에 이른 재판마저 모두 끝난 상황에서 근로정신대 문제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전후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수십 건의 재판이 있었지만 '화해'에 이른 것은 불과 3건. 재판이 모두 종결된 상태에서 협의 테이블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었다. 협상 결과에 관계없이 양국의 국민이 투쟁으로 얻어낸 승리이자 각별한 역사적 의미로 평가됐다.
⑨국경과 세대를 뛰어넘어…한일 청소년 평화교류
'나고야 소송 지원회'의 초청으로 8월12~15일까지 중·고·대학생 등 16명 일본 나고야 방문. '맞선'이란 이름을 붙인 이들 방문단은 배주영 사무차장의 인솔로 ▲나고야 미쓰비시 공장 답사 ▲평화 콘서트 참가 ▲평화전시회 관람 ▲일본 청소년들과의 집담회 등 가슴 벅찬 일정을 보냈다. 이번 방문은 미래 세대의 주역인 한일 청소년들이 자국 중심의 역사인식의 틀을 넘어 반전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교감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
한편, 일본 방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마주보고선 우리'(임용철 작)는 국가인권위 광주사무소가 주최한 인권영상공모전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됐지만 임씨는 수상을 거부했다.
⑩미쓰비시모터스 광주전시장 완전 철수
11월16일 오전 10시께. 미쓰비시자동차를 실은 대형차량이 소리없이 광주를 빠져나갔다. 이어 크레인은 마지막 남은 광주전시장 간판마저 뜯어냈다. 마침내 미쓰비시모터스 광주전시장이 문을 닫고 철수 한 것. 서울에 이어 지방에서는 2번째로 문을 연 광주전시장은 불과 1년2개월여 만에 광주와 이별을 고했다.
"워낙 부정적으로 비춰져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차를 소유한 운전자마저도 혹시 차에 흠집이나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 마지막까지 전시장을 지킨 한 직원의 말이었다.
'광주'와 '시민모임', '미쓰비시'는 애초부터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전시장 철수는 그 결과물이었다.
[2012년]
①대법원, 미쓰비시 등 일제 강제징용 기업 배상 취지 파기환송 판시(5.24일)
②광주시의회, 전국 최초 근로정신대 지원 조례 제정(3.15일) 및 전국 확산...
③나고야 소송 지원회, 도쿄 금요행동 재개(8.10~ )
④전범기업 명단 발표(2월) 및 미쓰비시 불매운동(온라인 금요시위) 돌입(9월)...
⑤광주지법에 미쓰비시 손해배상 소송 제기(10.24일)...
⑥미쓰비시의 근로정신대 협상 최종 결렬(7.6일)...
⑦시민모임 다음 카페 회원 1,000명 돌파
⑧페이스 북 친구 무등산 거리캠페인지지 방문
⑨후지코시 근로정신대 도쿄 투쟁 결합(6월)
⑩이금주 회장 광주 떠나다, 광주유족회 자료 5.18기념재단에 보관 의뢰
<그 외>
○광주시와 MOU 체결(5월) - 다큐멘터리 제작(5월~ )
○1944년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모비 이전 및 시민모임 표지석 설치(11.4일)
○사무실 농성동 이전 및 상근자 확충(1월)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