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대학생들이 던진 33가지 질문에 답하기- 엄경희 (2) 花雲(화운) 2018. 8. 19. 16:56
시/ 대학생들이 던진 33가지 질문에 답하기- 엄경희
새움출판사. 2011
P179 시인은 왜 애매하게 말하나?
뜻 겹침으로서의 애매성을 시의 미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애매성이 클수록 시적인 맛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애매성을 옹호하는 이 같은 시의 미학은 언어의 일반적 기능을 배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애매성이란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P220 시의 언어는 추상적인가 구체적인가?
감각은 경험하는 순간 쾌락 혹은 고통으로 환원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추상적 인식의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 체험의 세계이다. 시인은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증폭시킴으로써 자신의 상상셰계에 살아 있는 피를 공급한다. 그들은 생명감 있는 문장, 현실감 있는 문장으로 문장이 아닌 인간과 사회와 자연과 우주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냄새 맡게 하고, 맛보게 하고,만져보게끔 한다. 느끼게 하고 그 느낌을 생각하게 한다. 시인이 창조하고자 하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존재인 것이다.
P224 A를 A라고 말하지 않고 B하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가 휠더린(Johann Christian Friedrich Holderlin. 1770~1843)의 시를 해명하면서 "시는 언어 속에서 언어에 의한 건설이다"라고 시의 본질을 밝힌 것은 이 때문이다. 상상력이 활달하지 못한 자는 그 언어의 쓰임이 빈약하고 왜소하다. 과시욕에 압도된 상상력은 불필요한 수사를 남발한다. 자신감 없는 내면은 언어를 과장한다. 진부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할 때 그 생각은 권태로운 표현으로 이어진다. 생각이 산만하면 언어를 통일성 있게 응집시키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비범한 상상력은 독특한 개성미로 나타날 수 있다. 아울러 상상력의 지평이 넓고 풍부해야 그 표현도 풍요로울 수 있디.
P242 비유와 상징, 알레고리의 차이는?
비유와 상징, 알레고리를 구분하는 일에는 다소 섬세한 감식안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구분은 이론가의 몫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ㅍ현방식은 다른 의도와 효과를 겨냥한다. 시인은 문장의 독특한 멋을 살리기 위해, 그 멋에 오묘한 뜻을 더하기 위해 이런저런 표현법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고급독자는 이를 감식하고 해석하고 평가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서로 다른 표현방식을 다르게 읽는 것은 곧 시를 잘 즐기는 방법이다.
P254 상퉂거 표현이란 어떤 것인가?
시의 생명은, 그것이 서정시든 지독하게 난해한 실험시든 독자의 기억 속에 살아남을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상투넉 표현으로 이루어진 시는 결코 오래 기억될 수 없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한 편의 시는 비중이 큰 문장과 부수적 역할을 하는 문장이 함께 어우러져서 그 맥락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어떤 문장이든 저네 맥락 속에서 그 가치가 결정된다.
P261 내재율이란?
율이란 음악적 요소이기 이전에 생명적 요소이다. 모든 생명적 존재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생명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반복적 움직임을 통해 생명의 박자를 만들어낸다. 맥박과 호흡, 근육과 맞물린 관절의 움직임, 파도의 왕복운동, 달과 별의 운행, 지구의 자전, 사계절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생명적 존재에게 휼은 원초적이며 생태적인 것이다....한 가지 강조할 것은 내재율은 시의 의미와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시적 장치라는 점이다. 이는 시의 의미가 화자의 정서적 상태와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P284 여백의 미란?
여백은 언어의 미감에 집중하는 시의 경우에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언어의 울림과 의미를 잘 살려내기 위해서는 말의 여백이 필요한다. 그림에서 여백이 빈자리를 뜻한다면 시에서 여백은 침묵에 해당한다. 말과 침묵이 어우러져야 조화로운 언어미가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시에서도 의도적으로 여백의 미를 삭제함으로써 색다른 긴장미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
그런데 여백의 양과 작품의 수준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여백이 불필요하게 많으면 지나친 이완 때문에 시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반대로 시인이 여백에 너무 인색하면 시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작품에 따라 상대적이다. 다급하고 초조한 의식은 여백을 버릴 수밖에 없다. 반면 몽상적이고 느긋한 의식은 여백 속에서 거니는 것이 가능하다. 여백은 시인의 의식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시에서 점점 여백이 축소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 느긋함을 잃었다는 증거이다. 불항과 강박과 경쟁심에 내몰린 의식이 여백을 허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P342 우리 시에서 결핍된 것은?
웃음은 정신의 여유에서 비록되는 감정의 한 표현형식이다. 그것은 눈물만큼이나 소중한 인간적 진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근대의 충력 소에서 주로 생성된 것은 세계에 대한 부정의식을 내포한 쓴웃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대 이전은 어떠한가? 한민좃의 정서적 뿌리를 '恨"으로 설명하는 것은 온당한가? 한의 미학을 부정하긴 어렵지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는 전통 시갸에 담겨 있는 골계와 해학의 비중을 폄하하는 근대인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우리의 근대는 전통적 골계와 해학의 계승은 물론 웃음을 생성시킬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웃음은 이완의 심리로부터 발생한다. 고상하고 진지한 것은 우리를 긴장시킨다. 웃음을 촉발시키는 가장 주요한 원리는 '불일치'와 '격하'하 할 수 있다. 둘은 상보적이다. ...
P352 비실용적인 것의 가치는?
진정한 열정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자는 열정만 있고, 정신이 결여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백 퍼센트 가짜다. 더욱이 자기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열정으로 타자를 억압하는 무서운 가짜다. 가짜는 자신을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그의 열정의 실체이다. 최악의 속물주의(snobbism)는 이로부터 탄생한다. ...
인간 사회에는 분명 저급한 것과 평범한 것과 비범한 것이 존재한다. 비루한 것과 고귀한 것이 존재한다. 모든 고귀한 정신을 질식시키는 것이 대중적 평등주의라면 우리는 이에 대해 오히려 대한해야 한다.
에필로그
P357 나는 왜 시를 추구하는가?
구체적으로 나는 무엇에 감동하는 것일까? 시는 선악을 넘어선 차원 속에 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에 이토록 헌신하는 예술장르가 또 있던가? 목적성이 두드러진 시에서조차 대상에 관여하는 시인의 내면성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 시인은 울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자기를 드러낸다. 시인은 자기 자신을 감출 수 없다. 나아가 그는 인간 일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장 문제적인 것으로 대상화한다. 그는 감정을 노출하고 그것을 풍부하게 만든다. 만일 인간적인 감정이 인간의 약점이라면 시인은 위대한 정신에 이르고자 하는 도정 가운데 그 약점과 고뇌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절박한 감정과 그 감정에서 헤어나지 몸ㅅ하는 한 고독한 예외자에 의해 인간의 감정은 의미부여된다. 그 약점들을 끝까지 자기의 존재론적 지평으로 밀고 가는 자가 바로 시인이다. ...
결론에 돠달할 수 없는 미완의 심회 속에 시인은 존재한다. 그는 이미 진리에 도달한 도인과 다르다. 완성을 꿈꾸지만 미완을 사랑하는 자, 이것이 시인의 매력이다. 시인은 늘 과정 중에 활동한다.
침묵에서 태어난 말이 목적지향적이라면 시는 침묵의 본성처럼 모든 말 가운데 유일하게 무목적적이다. 침묵의 가장 성스러운 자식인 것이다. 바로 이 무목적적 자질이 속물주의의 목적성을 견제하는 정신의 힘이 된다. 이것이 내가 시를 추구하는 이유이다.
인간의 감정이 진보와 무관하듯 시는 낙후하거나 진보할 수 없는 존재 상태를 유지한다. 시의 존재성이 지닌 이 원시적 상태를 나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