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정진철 | 날짜 : 14-01-08 00:07 조회 : 1656 |
| | | 연극과 주임교수로 있는 친구의 제의로 배우를 해 본적이 있다. 친구는 수많은 유명 탈렌트들을 제자로 둔 서울 예전 김 효경 교수였는데 평범한 시민이 펼치는 실험 퍼포먼스의 주인공으로 나를 발탁한 것이다. 내 역할은 길거리 삐에로였다. 동작은 딱 하나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한쪽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웃는 역할이었다.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면서 말없이 계속 웃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반응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괴팍한 것은 느끼고 나서 그 소감을 이야기하거나 발표하라는 것이 아니고 혼자만 느끼라는 것이다. 그게 무슨 예술인지 몰라도 친구니까 무슨 뜻이 있겠지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크리스마스 씨즌이 좋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대부분 웃음 띈 얼굴에 설레는 표정들이 좋다. 그 씨즌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화난 사람들처럼 인상을 쓰고 다니거나 무표정한 얼굴들로 변해 버린다. 사람들로 북적대던 거리는 황량한 벌판으로 변해 버리고 날씨까지 매워 을씨년스럽다.
길거리에 나가기 전에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 꼬리가 약간 째진데다가 얼굴에 힘을 다 뺏는데도 심통스럽게 보인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화난 인상이다. 거울은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웃기 전에는 거울이 먼저 웃는 일이 없다고 했는데 절대로 혼자서는 웃지를 않았다. 약간 눈초리를 내려 깔면서 한쪽 입 꼬리만 올려 보았다. 여지없이 남을 비웃는 모습이 되는 데 그 때는 마음도 비슷해지는 것 같았다.
웃는 얼굴을 만들려면 양쪽 입 꼬리를 위로 치켜 올려야 되는데 그것만으로도 뇌 속에 있는 엔돌핀샘에서 엔돌핀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그래 건강에도 좋다는데 친구의 소원이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한번 웃어 보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수다를 떨면서 오는 것을 보았는데 하교시간과 맞물렸나 보다. 그들을 보고 웃었다. 처음에는 한 두 학생이 일행들 중에 누구 아는 사람인가 하는 표정으로 의아해 하는 것 같았다. 계속 웃으니까 그중에 누군가 변태야 하는 소리를 하더니 모두들 까르르 하면서 웃는다.
두 번째는 남학생 두 명과 마주쳤는데 내가 그들을 보면서 웃었더니 일그러진 얼굴로 동성애자 아니야 하며 송충이 보듯이 빨리 지나친다.
세 번째는 20대 커플 남녀가 다정하게 껴안고 지나가는데 그들 얼굴을 보며 웃음을 지었더니 쑥스러웠는지 껴안고 있던 팔을 풀고 따로 걷는다.
네 번째는 문제가 좀 있었다. 40대 가량의 남자였는데 얼굴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더니 내 앞으로 오더니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왜 웃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순간 자세히 보니 가발이 약간 뒤틀어진 것이 정말 우스꽝스러웠다. 가발을 보고 웃은 것은 아니었는데 이 사람은 그런 콤플렉스가 있었던가 보다.
다섯 번째로 중년여인이 지나가기에 웃었더니 잠시 쳐다보는듯하다가 별 미친놈 다보겠네 하는 표정이다. 나이깨나 먹은 놈이 여자나 유혹하려고 수작부리는 것으로 오인하는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지가 못한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인솔해 가는 정신지체아들 몇 명이 있어서 그들을 보고 웃었더니 이친구들은 같이 즐겁게 따라 웃어 주는 것이다. 그 표정들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순수했다. 이들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이들 속에서 살면 행복할 것 같은마음이 들었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친구와 마주 앉았다. 느낌을 이야기 해보라는 줄 알았는데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웃음과는 거리가 먼 내가 웃을 때 어떻게 웃는지 보고 싶었고 또 내가 웃을 때 사람들의 반응과 그 반응을 본 나의 웃음 뒤에 잠시 스치는 어정쩡한 표정이 자기가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갔으나 좌우간 계속 웃는 표정을 짓는 것도 힘들고 사람들의 반응에 적응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
| 임재문 | 14-01-08 00:40 |  | 길거리에 삐에로 그 역할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냥 길가에 나가서 한 번 해보아도 될 거 같습니다. 내가 배우라 생각하며 어차피 인생은 다 연극이니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 | |
| | 정진철 | 14-01-08 11:08 |  | 임선생님, 그게 쉬운일이 아닙니다. 지면상 제가 간추려 써서 그렇지 참 복잡합니다. 웃는것도 처음에 웃으면 대부분 상대방에서 먼저 얼굴울 돌립니다. 잠시후 다시 저를 봅니다. 그래도 계속 웃으면 상대방은 자기 옷이나 매무새가 잘못되서 그런가 하고 살펴보더군요. 그다음에 다시 저를 보는 데 그때까지도 웃으면 위와 같은 반응들이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ㅎㅎㅎ | |
| | 임병식 | 14-01-08 05:57 |  | 독특한 체험을 하셨네요. 친구인 그 감독은 잘 웃지 않으신 정선생님의 표정의 변화를 통해서 미묘한 심리의 흐름을 읽고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재가 독특해서 좋습니다. | |
| | 정진철 | 14-01-08 11:14 |  | 임선생님 , 웃는것도 입을 다물고 웃는 미소가 있고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모습이 있더군요, 그런데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면 잘못하면 제가 꼭 또라이가 된 기분이더군요. 제 입모양에 따라 반응들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가 덩치가 커서 다행이었지, 왜소한 체구였으면 아마 얻어 터질수도 있을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ㅎㅎㅎ | |
| | 김권섭 | 14-01-08 07:01 |  | 정진철 선생님은 참으로 다양하고 각 분야 이 나라 최고의 인물들과 교유하고 지내시군요! 서울 예전하면 우리나라 연예 계 절반을 차지하는 배우, 탤런트, 코미디, 가수, 연극인을 배출하는 곳, 그곳 친구교수의 연출에 연기를 했으니 부럽군요! 세상을 살다 보면 제 눈이 안경이라고 제 보이는 것만 가지고 감정을 드러내는 속 좁은 사람들이 참 많은 세상이지요! 마지막 정신지체아들이 그래도 정선생님을 영접하는 선한 천사들이었군요! | |
| | 정진철 | 14-01-08 11:24 |  | 제가 이상한 학교를 나와서 동문들이 괴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주 만나던 사람들로는 소설가 최인호 선배, 쎄시봉 가수 이장희 탈랜트 박용식 등등 이었지요. 저도 대학 다니면서 같이 어울렸는데, 학사주점에 가고는 했었지요. 어떤 친구는 한 여름인데도 오바를 입고 다니던 친구도 있었고, 김효경 교수는 박상원이나 최민수 이런 사람들이 부모님 이외에 제일 존경한다는 인물인데, 별명도 망치교수이고 아주 괴팍한 친구이지요. 이런 사람들과 계속 어울렸더라면 지금쯤 룸펜이 되었을테데 제가 정신을 차리고 이들을 멀리 하고 사람처럼 사는 직장맨이 되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ㅎㅎㅎㅎㅎ | |
| | 이방주 | 14-01-09 22:35 |  | 정진철 선생님, 선생님의 퍼포먼스를 보니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결론을 내려 버리나 봅니다. 재미있는 체험 기록 잘 읽고 갑니다. | |
| | 정진철 | 14-01-10 05:31 |  | 네 이선생님의 말씀이 맞는것 같습니다. 서양사람들처럼 웃는 얼굴에 같이 웃어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도 어쩌다가 얼굴이 마주쳐서 상대방이 웃을때 같이 웃는 얼굴이 아직도 안되더군요~ 서로 아는 사람들이나 그럴까, 모르는 사람과도 그런 소통이 되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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