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공영방송이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민족사의 위대한 인물 1위로 선정하고 있는 '광개토태왕'을 제작하여 방영하고 있는데, 고구려를 상징하는 찰갑옷이 아니라, 지나갑옷을 입히는 것도 모자라서 태왕에 즉위 전에 종으로 끌려 갔다는 설정으로 시청하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보여주있다. 지나갑옷을 입힌다면 고구려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날조하는 지나국에서 "봐라! 대한민국 공영방송 KBS에서도 지나갑옷을 입혀서 광개토태왕을 고대 지나인으로 보여 주고 있지 않는가?" 하며 그야말로 할 말 없는 것이고 고구려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였다고 날조하는 지나국의 동북공정의에 동조하는 셈이다. 또한 13살에 태자로 책봉되어 태왕 즉위 전에 종으로 끌려 갔다고 설정을 한다면 그야말로 한국민들이 위대하다고 받드는 광개토태왕이 노예출신의 임금이었다고 날조를 하게 된다. 현재 출연하고 있는 담덕 역할의 이태곤은 얼굴이 30-40대 얼굴이다. 그러나, 사료적으로 태왕즉위 전의 담덕은 10대 청소년이다. 10대 연예인을 출연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애늙은이 담덕을 출연시켜서 날조를 하고 있다.
"담덕은 어릴적 부터 생각이 웅대하였다."[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고구려 태자라고 한다면 장차 태왕에 오를 인물이다. 따라서 고구려 황실의 법도에 따라 하루 하루 일정으로 바빴을 담덕이다. 즉, 기본적으로 고구려의 사냥그림이 보여주듯이 상무정신이 일상화되었던 고구려인답게 무예스승으로부터 무술과 상무정신을 배웠을 것이고, 역사스승으로부터 민족사를 배웠어야 했을 것이고,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하는 품성과 홍익주의 사상을 배웠을 것이고, 외침에 국가를 보호할 군사학도 배웠을 것이다. 10대 청소년이었던 담덕은 훌륭한 스승들에게 그러한 문무를 열심히 배웠을 것이고 스스로의 정치의식을 형성했을 것이고 그러한 의식화가 결국 부강한 고구려를 탄생시킨 것이다.
따라서 담덕은 어린시절부터 위대한 우리 민족사를 공부하면서 민족정신을 높히고 그러한 민족적 자부심과 함께 옛땅과 옛정신(홍익)을 모두 되찾고 말겠다는 고추모 할아버지의 다물국시 실현을 다졌을 것이다. 담덕은 피(유전자) 자체가 성스러운 황금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불의에 참지 못하시고 나라의 기반인 백성을 어어삐 여기시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고자 애쓰시던 환인.환웅.환검 임금들의 피가 흐르고 있던 왕이다.
그런데 어찌 종으로 설정하고 지나갑옷을 입혀서 지나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비웃게 만드는 것인가? KBS사장과 작가와 연출자(감독)는 혹시 고구려와 백제에 역사적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신라사관론에 입각한 얼간이들이 아닌가? 사극 내용상 그 뼈대에 있어 명백히 고증과 사료에 충실하지 못한 동북공정형 사극이다. 초반에 확실하게 고치지 않겠다면 고구려와 광개토태왕을 모독하지 말고 아예 폐기처분해야 한다. 왜냐하면 완성되었을 때 한류라는 이름으로 지나국과 일본으로 수출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지나인들과 일본인들이 보았을 때 어찌 생각하겠는가? 한국인들은 자기의 역사도 바로 알지 못하는 바보들이군! 할 것이 아닌가?
나당연합군이 고구려 안에 스며든 간첩이 성문을 열어줌으로써 평양성을 점령한 후에 역사서적들을 보관하고 있는 고구려 황실의 사고를 불태우게 되는데, 다 타는데 몇달이 걸렸다 했다. 그 만큼 고구려는 수 많은 역사서적들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당나라가 왜 고구려를 침략하였는가? 천자국은 당나라여야 한다는 탐욕때문이다. 그러나, 당나라 역사하고 고구려 역사하고 비교가 되나?
조상과 뿌리가 없으면 현재 우리가 어찌 존재하는가?
고구려는 국통맥이나 황통맥으로 보나 환국.배달국.단군조선.부여를 정통으로 계승한 9환족(9려=구려=고리=KOREA)의 장자국이다. 그런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적은 역사책들을 얼마나 많이 소장하고 있었겠는가? 그리고 당나라는 그런 고구려에 얼마나 많은 역사적 열등감을 느꼈겠는가? 진시황의 분서갱유처럼 고구려 사고들의 서적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어야 했을 것이다.
왜 배타적인 기독교집단은 우리 민족의 조상인 단군임금을 실존하지 않는 인물로 깎아내리면서 단군상을 부수는가? 한반도지배책에서 나오는 지나국의 동북공정과 민족사말살책에서 나온 일제 식민사관의 종이 된 자들은 어찌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거짓꾸미기 위한 목적에서 나오는 신화적 기법(지나족은 고대 지나지역에 문명을 전해 준 한국인들인 태호복희.여와.염제신농씨 등 3황5제를 신화적 기법으로 지나국의 신들로 만들었다)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적은 [환단고기]를 위서로 깎아내리는가? 종교의식과 학문적 기득권때문에 자신의 뿌리와 조상을 부정하겠다는 이들은 반드시 천벌을 받아 죽을 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12환국이래로 우리 선조들은 지나간 위대한 민족사를 모두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운으로 배달국과 단군조선과 부여와 고구려를 노리는 지나세력의 침략을 물리치고 지나대륙을 평정하고 제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정신은 바른 민족사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조선시대만 해도 유라시아로 흩어진 9환족과 교류를 통하여 유대감을 가졌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아랍민족의 시조가 되는, 고대 슈메르인 아브라함의 고향이였던 중동 <우르지역에서 홍수가 나서 우르 사람들이 단군조선에 살기 위해서 왔는데, 단군임금은 이들을 염수지역에서 살게 했다> 는 기록이 있다. 우르는 고대 배달족인 슈메르인들이 문명을 일으킨 곳이다. 이들 우르족이 조상의 땅에 살겠다고 온 것이고 단군조선은 동족의식으로 살게 해 주었다. 염수면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거란지역이다. 그러고 보면 거란족은 단군족의 갈래로써 그 선조가 우르족이라고 할 수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4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인(桓仁)과 환웅(桓雄)의 역사를 적은 <삼성기>,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사가 담겨 있는 <단군세기>,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의 역사를 적은 <북부여기 >. 마지막으로 <태백일사>에는 상고시대부터 고려까지의 역사가 적혀있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놀라운 역사가 펼쳐 진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5천년이 아니라 9천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인들도 자기 역사를 선조에 해당하는 기원전 3-4천년전의 슈메르까지 넣어 5천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군조선이 있기 전에 5천년의 역사가 더 있었다. 즉, 1만년전 서남해를 중심으로 모계문명을 가지고 다스린 마고이후 서해가 바다가 되면서 마고에게 복본(양심=자유율법=율려)을 맹세하며 마고성을 떠나 북쪽 천산지역으로 이주하여 명상수련을 하며 도를 닦은 황궁씨와 유인씨를 거쳐 세운 환국이 있었고, 환국의 뒤를 이어 신시라고 불리는 신시배달국이 있었다. 그리고 단군조선이 나타났다. 그후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 북부여의 뒤를 이은 고구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대진국이라는 발해, 그리고 고려의 역사로 펼쳐 진다.
특히 상고시대가 찬란하다. 9천년 전에 태어난 첫 나라 환국, 환국은 3301년동안 7명의 환인이 통치했다. 그 후 신시 배달국은 18명의 환웅이 1500년이상 다스렸다. 환국과 신시 배달국이 5000년정도 이어진 후 마침대 단군조선이 태어나는데, 2096년 동안 47명의 단군들이 통치했다. [환단고기]에 담겨 있는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의 동쪽땅이다. 그 땅의 넓이가 남북 5만리, 동서 2만 여리에 이른다. 파내류산은 지금의 시베리아 중앙고원을 해당하고 천해는 바이칼 호수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9천년 전에 태어난 환국의 영토는 아시아를 넘어 선다. 당시 환국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는 나라였고 이 땅에서 12개의 나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즉,9환족의 12환국을 중심으로 5색 인종의 환국인들은 남북으로는 북극에서 남태평양까지, 동서로는 동북아에서 서남아까지 분포하며 살았다는 의미다.
이 12나라중에 수밀이국이 있다. 수밀이는 수메르로 소머리를 말한다. 소머리 토템은 고대 농경지역인 한반도인들의 토템이다. 12환국 중 수밀이국은 소호씨를 중심으로 압록강 환인지역에 존재했는데, 소호씨 갈래가 산동지역에 정착하여 대문구 문명을 남겼고, 또한 갈래가 배달국 시기에 중동지역으로 이주하여 서양문명의 뿌리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족이었다. 서양의 인류학자들도 슈메르인들은 동양에서 왔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슈메르 초기 유적지를 발굴한 결과 검은 머리에 키가 작은 몽고리안들이였으며, 문자도 고대 한국인들의 상형문자인 갑골문자와 비슷했으며, 슈메르인들이 사용한 말이 지금의 한민족이 사용한 말들이라는 사실이였다.그리고 10진법.씨름.제천문화도 한민족과 같았던 것이다.
광활한 영토뿐만 아니라, [환단고기]에는 눈부신 영웅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영웅은 배달국에 도전한 지나지역의 배달국 제후들인 유망과 헌원과의 전쟁에서 이긴 치우천황이다. 한국의 도깨비 기와는 치우천황의 얼굴이다. 신시배달국 14대 환웅인 치우천황은 5000년전에 이미 철제무기를 사용했던 인물로 전쟁의 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불을 발견하여 처음으로 쇠를 주조한 인물은 1대 커발환 환웅천황 시대 고시례다.
이 고시례의 후손 중에 소전이 있었는데, 환웅천황은 지나 강수지역의 배달족을 하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전(少典)장군을 강수에 파견했다. 그런데, 소전의 아들이 신농씨로 지나문명사에서 농업과 의약의 신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신농씨는 약초들을 맛 보다가 독에 중독되어 죽었는데, 배달족 신농씨의 헌신성에서 홍익인간정신으로 했던 고대 한국인들의 살신성인.극기복례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하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치우천황에게 도전한 인물 공손헌원도 소전의 먼 후손이다.
그러나, 황하상류지역에서 살던 하족의 갈래 중에 주족이 있었는데, 이 주족이 북방 초원세력의 군사력으로 무장하고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면서 지나대륙의 조선인들을 자기세력화하기 위하여 태호복희.여와.염제신농 등 3황 5제 등 배달국시대 조선인들을 신격화하여 신화를 만들어 지나국의 신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문명과 역사적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나국의 역사날조에는 고대부터 신화적 기법과 무조건 지나족을 낫게 기술하는 춘추기법이 동원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제가 민족사를 말살하기 위한 정책으로 전국적으로 우리 민족의 옛책들을 거두어 불태우거나 일본으로 가져가 버려 우리의 옛책들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1980년대에 세상에 나온 [환단고기]는 우리 민족에게는 성서와도 같은 책이요, 지나국과 일본의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의 노예가 된 사학자들에게는 독이 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상세히 분석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위서로 깎아내려는 심리적 배경에는 열등감과 기득권독점이 숨어 있으며, 일제에 대항하여 피어린 광복투쟁을 하였던 홍범도.신채호 선생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계연수 선생(일제가 살해하여 주검을 대동강에 던졌다고 한다)이 신라.고려시대부터 내려 오는 옛책들을 모아서 한 권으로 편찬한 책[환단고기]내용자체가 상고사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영상자료]환단고기 논쟁
힘도 세고 일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순박한 한우는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왔다. 소머리(슈메르) 토템은 농경족이기도 하였던 고대 한반도인들의 토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치우천왕의 소뿔투구나 고구려 장군들이 머리에 쓴 소뿔 투구는 우두머리들을 의미하는 상징물이다. 그리고 힘을 상징하는 소싸움이 해민족의 씨름이나 스모(고대 마한인들의 힘싸름 풍습)로 발전하였다.
▲ 고구려 고분 각저총-길림성 고구려 고분 각저총의 널방 오른벽에 그려진 씨름도와 BC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슈메르인들의 구리향로의 씨름도를 비교하면 슈메르인들도 고구려인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왼씨름 자세를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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