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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사인에서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일본의 로스제네간의 대담을 커버스토리로 실었습니다.
과거 프리타 족으로 열렬한 보수주의자 였던 한 여성이 반대 진영의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약 10년 안에 이념적 성향이 바뀌었죠. 사회를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관찰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피부에 와닿았던 내용은, "부모님 돌아가시면 나도 내일 당장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우석훈씨의 88만원 세대를 보면 현재 청년들이 겪어야 되는 경쟁은 동일 세대간의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가 경쟁하는 불공정한 경쟁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윗세대를 지금의 젊은 세대가 대항하기는 역부족입니다. 저들은 이미 기득권이고 금전적인 힘도 있고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경험까지 갖춘 상태, 청년들은 뭘로 보나 게임이 안 됩니다. NBA VS KBL쯤 될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윗세대가 현재 청년층의 입지를 야금야금 파먹으며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는 동안에 제일 불쌍한 것은 점점 사회적 낙오자로 전락하는 그 청년들의 부모들입니다. 물론 하층민들으 이야기입니다. 배추팔고 과일팔아 자식 대학뒷바라지까지 시킨 눈물나는 우리 부모세대라는 거죠. 젊어서는 자식 성공만을 위해 모진 노동을 견뎌왔다지만 이제 그럴 여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학공부까지 시킨 이 마당에서 그 자녀는 여전히 사회의 주변인으로 머물러 있고 아직도 자신이 버팀목으로 버텨줘야 겨우 수면 위로 코 내밀고 숨을 헐떡 거릴 수 있습니다. 부모 없으면 내일 당장 사람구실 못하는 거죠.
장하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과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계속 지적하는 '사다리 걷어차기 이론'은 비단 국제 정치나 경제학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입시, 비싼 등록금, 비정규직 양산, 부동산값 폭등은 기성세대가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길을 계속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가로막는 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그런데 한 분야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회가 거미줄 처럼 상호간의 공고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유기체란 말입니다. 이런 문제를 단기간에 풀어버리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막대한 사회적 손해를 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자들은 적극적인 개혁에 소극적이고 그러는 사이에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던 사회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는 점점 고착화 되어 버려 대중은 어느세 체념의 단계에 이르는 겁니다. 경제적 사회적 계급이 현실인게 아니라 필연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많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 못살면서 보수정당(이라고 쓰고 수구세력이라고 읽습니다) 지지하는 분들 중에는 이런 이유로 그들을 지지하는 분들도 꽤 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차피 내가 못사는 건 기정사실이고 왠지 저들이라면 개인은 아니더라도 전체적인 나라 모야에는 뽀대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그러면 적어도 아주 쪼금은 나에게 콩가루 좀 떨어지겠지.. 이런 매우 순진한... 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일 수록 상대적으로 애국심이 강하시기 때문에(그것이 민족주의의 발현이든 어떻든) 개인의 권익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희생은 기꺼이 감수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저는 적어도 그렇지 못합니다. 일단 제가 사람답게 살아야겠고 제 부모님이 중요하고 내 가족 친지들이 허배 중요합니다. 대학졸업하고 지난 3년을 일한 결과 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처럼 술마시고 유흥비로 흥청망청 쓰지도 않았습니다. 쇼핑에도 관심 없습니다. 문화 공연에는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일년에 세네번 연극이나 뮤지컬 콘서트 보고 친구들 만나서는 그렇게 인색하게 굴지 않고 가끔 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집에 돈 좀 갔다 주고 회사 왔다 갔다하면 정말 쥐꼬리만큼 남습니다. 작년 가을부터는 동생꺼랑 같이 붓던 보험비 마저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리해서 대학원을 다니느라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서 과연 결혼은 가능하며 자식을 부양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됩니다. 지난 달부터 청약통장을 새로만들었고 30년 평생 안 만지던 주식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라도 안 하면 답이 안 보이더군요. 맞습니다. 나이든 부모님 돌아가시면 저도 내일 당장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회활동 경제활동 모두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는 전재하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아지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저는 유아기를 못벗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입니까?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 때 나름 20대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방황하는 시간 없이 보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물론 1차적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끊임 없이 윗 계단으로 올라서려고 발버둥 치는 나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사람들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가난한 집안의 농구선수입니다. 그는 죽을만큼 노력해서 에어조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흑인 농구선수들이 노력만 가지고 조던이 될 수는 없습니다. 조던은 커녕 콰미만큼 되기도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NBA문턱도 못 밟아 본 소위 실패한 흑인 농구선수들에게 '조던을 봐, 너희는 노력을 안했기 때문에 실패한 거야'라고 이야기 한다면 이 얼마나 가혹한 소리입니까. 그런데 지금의 기득권은 이 땅에 저를 포함한 세대들에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라.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 오사카에서 출생한 전과 14범의 누구처럼'이라고 끊임 없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우리들이 딛고 올라갈 사다리란 사다리는 모조리 발로 걷어 차버리면서 말이죠.
무슨 알피지 게임의 던전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면 갈수록 말도 안되는 퀘스트가 계속 나오는 거죠. 레벨1짜리 캐릭터에게 돌맹이 쥐어주면서 피구왕 통키를 이기고 오라는 대학입시의 관문을 겨우 통과하며 보너스 스테이지로 병역문제 해결하고 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웃긴게 보너스 스테이지라면 응당 아이템을 주거나 경험치를 올려줘야 하는데 염병 오히려 경험치가 하락하면서 레벨이 주저 앉습니다. 여기서 하락한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어학연수라는 추가 퀘스트를 깨야 하는데 레벨업이 될지 안될지 상당히 불투명하고 이것 경쟁하는 다른 캐릭터들이 거의 다 참가하기 때문에 그닥 효과도 미미합니다. 치명적인 것은 일부 현질을 할 수 있는 돈많은 유저들은 어학연수라는 퀘스트를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할 수 있는 '조기유학권'이 있는데 이 경우 단순 어학연수 퀘스트를 마친 캐릭터들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레벨업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거의 무소불위의 능력을 발휘했지만 요즘 던전들 자체가 워낙 막강해져서 요즘은 이 역시도 추가 레벨 노가다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레벨업은 되지 않고 억지로 등 떠밀려서 아직도 손에는 처음 들고 나왔던 짱돌뿐인데 취업이란 던젼의 보스는 피구왕 통기와는 상대도 안 됩니다. 내 집마련이란 퀘스트는 서울 맵에서는 도저히 도전할 엄두도 안 납니다. 그리고 이 퀘스트를 포기할 경우 특별 이벤트인 결혼-자식양육이란 연애 육성 시뮬레이션 기회는 거의 박탈이라고 봐야죠.
컴퓨터 게임에서 이런 난관에 부딪치면 치트 오매틱을 써서 에디트라도 해볼 텐데 현실에서 로또란 에디트를 써보기 위해서는 김태희와 결혼에 성공하라 미션에서 성공할만큼 아스트랄한 확률로 다가오니 이건 뭐...
유시민 전 장관이 쓴 후불제 민주주의를 보면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결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비판하거나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한 두 달 전에 SBS의 박수택 기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 상당히 진보적 세계관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환경전문 기자시고 민언련에서 언론관련 강의도 꾸준히 하고 계시죠. 대운하에 대해서도 상당히 날선 비판의 기사를 여러번 내셨습니다.
박수택 기자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왜 한국의 청년 백수들은 당을 안 만드나? 지금 필요한 건 연대나 무슨 위원회 같은 시민연대나 모임이 아니다. 그건 노무현 정부나 김대중 정부같은 시대에나 통했던 거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 전국의 백수들이 우박사(우석훈 교수) 자문위원으로 모시고 당하나 만들어라. 선거에서 꼭 국회의원 안 만들어도 좋다.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당이나 후보가 있다면 정치적 지지를 보내겠다고 입장 표명해봐라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결국 표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 있다. 청년 백수 100만 명의 시대라고 하는데 100만 표라면 국회에서 의석수가 달라진다." 듣는 순간이라도 가슴이 뻥뚤리는 것 같은 통쾌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사회가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일본은 지금 경제 한파와 함께 굉장히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군국주의의 망령이 살아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에서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진보적인 담론들이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회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받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말이죠. 적어도 시사인에서 다룬 기사 내용의 의하면 충분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일본보다 더 열악합니다. 일본에 여행갔을 때 그곳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한국 여학생을 만났는데 그 분 시급이 우리 돈으로 9천원에서 1만원 사이였습니다. 물가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라나 대동소이하고 밥값은 일본이 더 싸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시간일해서는 괜찮은 밥 한끼 사먹기 힘듭니다. 그런데 왜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현실에 뭔가 적극적으로 저항하려는 움직임이 부족할까요? 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저만의 착가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선거를 통해서 정치인들 몇명 바꾸는 거로는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걸로 인간으로서 내 권리와 무엇보다 내 생존권이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과 행동은 그냥 감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내 권리와 생존을 지키는 보다 높은 차원의 반응 그리고 보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다른것보다 "그건 노무현 정부나 김대중 정부같은 시대에나 통했던 거다"라는 말이 정말 맞는것 같네요 이 인간들은 전혀 지금의 방법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듯합니다
공감되는 글입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더욱더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됩니다.
좋은 글인데 반응이 없네요..
혼자 생각하면 꿈이지만 둘 셋 모이기 시작 여럿이 모이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지극히 공감합니다. 비제이님 이글 퍼가도 될까요? 두고두고 보고싶은 글이네요.
감사할뿐입니다.
와...BJ님 일단 글좀 제 메일로 옮겨놓겠습니다. 무단복제는 아니고요, 두고두고 좀 보려구요. 원치 않으시면 지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퍼가도 될까요
감사할 뿐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것을 사회현상이라고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것 같습니다. 사회와 개인의 문제 양자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말씀하신것들은 개개인들에겐 타자입장에서 그렇게 봐주었으면 하는 기대심리라고 받아 들일수도 있을겁니다. 또 그걸 알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구요. 암튼 이래저래 참 복잡한 문제 같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블로그로 비공개 스크랩해갈게요.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역시 글 잘쓰시네요.
좋은 글입니다. 정말 부익빈빈익빈이 너무 정체되어 더이상 풀어질 수 없는 굴레의 하나로 느껴집니다,.
잘읽고 갑니다...저도 스크랩 해도 되죠,,,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제서야 읽었네요. 퍼가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괜찮으시면 저도 좀 가져가겠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잙 읽었어요...일하다가 답답했는데.. 설명을 참 잘해주시네요..+_+
가장 공감가는 문구가 "왜 한국의 청년 백수들은 당을 안 만드나?" 입니다. 답은 알고있는데, 그 곳까지 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