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까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을이 다가오고
내일이 추석이다. 코로나 팬데믹에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 꼴이 되어
환율이 1355원까지 치솟은것을 보면 나라 경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명절은 명절이다.
세태가 변해 제사도 안지내는 가정이 해마다 늘어간다고 해도 우리집에서는 내가 살아 있는 한
조상에 제사는 지내야 한다.
성균관에서도 제삿상 차림을 간소화 하여 시범을 보이고 있듯이 간소화는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전에 우리가 어릴 때는 살이나 추석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땐 명절이 되어야 제사덕에 쌀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고 새 신이나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이나 추석에 새 옷을 입는 것을 설뵘이니 추석뵘이라고 하였다. 그 만큼 친구들한테 뽐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추석이 되어도 옛날 기분이 나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옛날보다야 풍족한 것은 물론 이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대목이 되면 단손인 어머니는 밤낮없이 일에 혹사를 당하셨다.
추석에 입을 조선옷들을 일찌감치 빨아서 풀 먹여서 다듬질하여 다리미에 숯불을 피워 구김살을 다름질로 없애고
동전까지 달아서 윤디로 찌져서 매끈하게 편 다음 곱게 개벼서 추석날 아침에 입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으셨다.
추석날 아침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놋그릇을 가마니를 펴고 기왓장 가루내어 지푸라기를 구겨서 녹을 닦은 다음음식물을 담아야 했다.
산자와 유과도 장만래야 하였으므로 손이 열개라도 모자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머리 떨어진 새미에 가서 추석에 쓸 물을 미리 여다 날라야 했다.
지금은 아파트 생활이니 집안에서 수도 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고 가스렌지 스위치만 켜면 불이 붙으니 예전에 태어났던 세대에겐 꿈만 같던 세상이다.
뒤산에 나무하러 가는 대신 오늘 칼이라도 숫돌에 갈아 놓아야 될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