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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햇살은 쨍그랑 나고
서경희 지음/ 248쪽/ 소금나무/ 값 10,000
< 공주(公主) >
요즘 흔히들 공주병이니 왕자 병이니 왕비 병의 열풍이 불고 있다는데
참 가소롭다.
왜냐고?
나야말로 진정한 공주(?)이니까-
나는 그야말로 우리 집의 공주다.
온 가족이 파김치가 되도록 고추 심고
고추 따고 감 속아내고 약 치고 밭 매고 밥하고 국 끓이고 일해도 나는
그냥 그림자처럼 살금살금 걸어 다니면서 날아다니는 나비나 세고 개울에
물고기가 얼마나 자랐나? 따위의 한가로운 구경이나 하는 사람이니까-
마음 내키면 냉커피나 타서 얼음 동동 띄워 주면 숱한 무수리니 정원사들이
그야말로 감지덕지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내가 공주가 아님 누가
공주란 말인가?
밥도 아주 조금 반찬도 아삭아삭 소리 나는 깍두기니 무김치는 못 먹고
국수도 너무나 좋아하는 냉면도 잘게 썰어서 숟가락으로 먹고 감도 사과도
품위 없게 사각사각 씹어서 먹지 않고 정성스럽게 껍질 깎아 곱게 갈아서
대령해야 먹기 싫어 배불러 하면서 비싸게 퉁기다가 해준 성의가 고마워서
먹기 싫어도 먹는 나는 참 슬픈 공주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공주가 되기 싫다.
아침이면 내가 잔 이불도 탈탈 털어서 눈부시게 쨍쨍한 햇빛에 널고 싶고
현관 유리도 반짝반짝 광나게 닦고 싶고 무엇보다 물 철철 흐르는 이 좋은
개울에서 내 몸무게보다 무거운 이불 빨래도 신나게 방망이 질 하면서 하고
싶고. 우리 올케가 심심하면 잡는 다슬기도 옷 둥둥 걷어 부치고 첨벙첨벙
한 됫박 쯤 잡아서 토란 대랑 머위줄기랑 고사리 듬뿍 넣고 찜 만들어서
밥투정 심한 아버지 상에 일에 지친 울 엄마께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내고
싶다.
시종 없이도 바깥세상 구경할 수 있는 평민들은 얼마나 좋을까?
나는 가마 없이는 좀체 나들이를 안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기사님들이 늦게 타고 늦게 내린다고 하도
눈치코치를 해사서 더럽고 아니꼽고 또 바쁘게 뛰고 달려야 하는 그들의
삶도 참 고달프겠구나 싶어서 꼭 필요하면 귀부인처럼 가마꾼 대동하고
나들이를 간다.
우리 집의 숱한 가마 꾼 들은 평생 월급 한 푼 못 주는 내가 그리도 예쁜지
눈치도 코치도 않고 잘도 모시고 다닌다.
그렇지만 속으로야 얼마나 성가시고 귀찮을까.
저들도 사람인데 투덜댐도 할 수 없게 귀 듣고 말 못하는 공주가 얼마나
버겁고 힘들까 나는 다 알지만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그냥 살짝 미소만
지으면서 너그럽게 웃어준다.
다들 나한테 녹아들 수 있도록
그게 오랫동안 외로운 공주로 살면서 터득한 나만의 지혜(知慧)임을 너무
잘 아니까
또 말없이도 서로의 맘을 헤아릴 줄 아는 가족이니까
그래도 나는 공주가
외롭고 슬픈 공주가 정말 싫다.
그냥 일 하면서 살아가는 평민이 되고 싶다.
< 살아갈 이유 >
어제저녁에는 환장하도록 산골짜기의 달 도 좋고
밤하늘의 별들이 그야말로 쏟아질 듯이 빛나기에
더듬더듬 개울로 내려가니 교교한 월광에라도 취했을까
피라미들이 숨바꼭질 하느라 여념이 없고 다슬기도
엄청 마실 나와 있데요
어미 뻐꾸기는 우리 집 느티나무에서 애간장이 녹도록 울고
새끼 뻐꾸기는 개울건너 잠깐 얹혀사는 까치집에서 엄마
원망이라도 하는지 서럽게도 울고
그 울음에 전염된 나는 어느 하늘아래 살아나 있을까
얼굴모르고 호적에도 못 올라본 내 새끼 불현 듯 궁금해서 울고,
이 세상에 날 벗해주는 거라곤 하늘에 빙빙 나는 잠자리
살금살금 몰래 와서 개 밥 훔쳐 먹다 혼쭐나는 고라니
올해는 멧돼지 미워서 고구마도 안 심었건만 작년 고구마
맛을 못 잊어 심심하면 내려오는 멧돼지
탱자만한 영글지 않는 감으로 라도 배 불려야 하는 까치
혼자와도 미운털 박혀 사냥꾼들이 군침 삼키는데
열댓 마리의 꺼병이 까지 줄줄이 달고 오는 눈치 없는 까투리
그리고 언제나 내 가슴 안에 살아 숨 쉬는 아름답고 애절한
그리움 하나,
그래, 울지 말자
이 그리움 하나로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니까
< 잔치 >
어제는 늦은 아침을 먹고
닭장 문 열어놓고 오랜만에 앞 정자에 앉았지요.
감 수확을 끝낸 감나무들은 너도 나도
옷 벗는다고 부산스러운데 미쳐 따지 못 한 아득히 높은데 달린
홍시들을 벌이랑 까치가 먼저 먹겠다고 막 싸우지 뭡니까.
햇빛은 너무도 짱짱하고.
하여서 작은 잔치를 벌였답니다.
종일 벙실벙실 웃으며 이 넓은 땅덩이 고루고루 비추느라
피곤할 것 같은 해님은 제일 상석인 푹신한 의자에 앉히고요.
1분도 머물지 앉고 하늘에 빙빙 돌기만하는 고추잠자리는
내 어깨위에 앉히고요.
지나가는 바람은 내 머리카락에 머물게 하고요.
둥글둥글 누워서 뒹구는 배불뚝이 호박은 몸이 무거워서
안온대서 구경만 하라하고요.
개울건너서 수줍게 바라보는 구절초는 오라고 하니
다음에 한 번 더 잔치하면 억새랑 같이 온다면서 대신
정자 옆에 혼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봉숭아를 보냈습디다.
남의 산 자락에서 코~오 졸고 있는 달맞이꽃은요.
얼마나 부끄러움이 많은지 죽어도 해님 앞에는 못 온다면서
달님 오시면 불러 달래요.
참 제비꽃을 잊었네.
무덤가에 보라색 제비꽃이 기가 폭 죽어서 아직도 오순도순 있기에
너무 애달파서 제 가슴에 않았죠.
그렇게 자리 배치를 시켜놓고 3시간 정도 기도를 하니
잠자리는 일어났다 앉았다 얼마나 까불던지.
좁쌀 세 톨도 못 지니겠고요.
해님은 건너 마을에 약속이 있다면서
목례하고 가시고요
들락날락 해도 바람님은 끝까지 자리를 빛내줍디다.
근데 있잖우.
막판에 초대하지 않는 충치란 분이 찾아와서
막 콕콕 찌르고 쑤시고 해서 판을 들입다 엎어버리는 것 있죠.
다음에는 문 잠그고 달님이랑 별님 모셔다 놓고 조촐하게
잔치한번 하렵니다.
쉿!
까불이 잠자리랑 심술쟁이 충치한테 소문내지 마세요.
- 서 경희 -
제가 활동하는 장애인 카페에서 알게된 분입니다.
전 그냥 새실언니라고 부르는데 실은 저의 친정엄마뻘 되세요.
기구하게도 결혼하시고 아이를 출산하시다 마취가 잘못되어 일년만에 정신이 돌아오셨다네요.
정신이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온몸은 굳어버린 상태로 말도 잃게 되셨죠.
힘들게 낳은 아이는 시어머니가 어디다 내다버리셨는지 소식도 모르고....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오신 분........ 참 안쓰럽고 안타까운 분이십니다.
저를 마치 잃어버린 딸같으시다 하며 많이 이뻐하세요.
처음 뵈었을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장애는 심하셨고 예전에 보았던 너무나 곱디고운 젊었을 때 사진이 생각나
너무나 아까운 분이시구나 하며 그 안타까움에 더 서럽고 한스러웠을 새실언니의 기나긴 세월을 생각하니
눈물이 주체없이 흐르더군요.
서로 말은 주고 받지 못하더라고 서로의 눈빛 하나만으로 느낄수 가 있었습니다.
같은 여자로써... 한 아이를 낳은 엄마로써.... 같은 여성장애인으로써....
그동안 헤치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겨웠는가에 대해.....
왠지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은 마치 엄마와 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애뜻한 마음에 늘 그리움만 쌓여갑니다.......
젊었을때 곱디고운 모습......
개요
26세 때 첫 출산의 후유증으로 어찌나 이를 악물었는지 잇몸이 변형되면서 이가 안쪽으로 다 휘고 더욱 말마저 잃어버린 비운의 여인.
경남 밀양의 외딴 산 속 과수원에서 자연을 벗 삼아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그녀의 글은
한 편, 한 편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주옥같은 동요요, 동시다.
젊은 날 모든 이가 부러워 할 만큼 뛰어난 미모와 언변을 지녔던 그녀.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방문턱에 걸려 넘어져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죽지 못해 사는 모진 삶과 운명이 원망스럽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연 속의 꽃과 나무와 풀과 새들과 동물들과 어울리고 천진난만하게 살아가면서
거침없이 뿜어내는 호연지기는 성한 사람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혼자 몸으로는 겨우 화장실만 출입할 정도인데다
의붓어머니와 의붓동생에게 얹혀살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차가울 정도로 냉철한 이성과 지난날의 기억들이 차라리 괴롭기만 하다.
사이버 세상에서 그녀의 별명은 새실쟁이(말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 방언)다.
왼손조차 쓰지 못한 채 손가락에 막대를 끼워 두드리는 컴퓨터 자판으로 그녀는 세상을 향해 오늘도 쉬지 않고 새실을 풀어놓고 있으며,
그녀의 새실은 거칠고 메마른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녀의 소원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 넘어지는 방의 문지방을 고치는 것과 요양시설로 들어가지 않는 것,
그리고 남편의 재혼에 장애가 될까 봐 시어머니가 내다 버린 딸의 소식을 듣는 것뿐이다. 하늘이여, 이 여인을 지켜주소서.
추천사
소녀로 멈추어버린 여자. 뜨락에 내려앉은 햇살을 닮은 그녀는 세상을 품고 산다.
비에 젖은 나비도, 배가 고파 산을 내려온 고라니도 그녀의 품에서 쉰다.
글로써 내놓는 그녀의 언어가 자갈 바닥을 뒹구는 내 말을 부끄럽게 한다.
그녀의 글은 ‘더’와 ‘덜’의 개념을 휘저어 놓는다. 누가 더 좋고 무엇이 덜 좋을 수 있느냐고. ‘
더’와 ‘덜’의 차이는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수필가 ․ 윤명희)
그녀에겐 참으로 많은 에너지가 숨어 있다.
한가지의 원형으로 고정될 수 없는 고집 센 그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을 마치 거짓말처럼 꽁꽁 묶어 버린 신의 뜻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에게 불어 닥친 세월의 무게가 너무 아팠고 모두가 과장된 농담 같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아주 큰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장애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냥 불편함뿐이란 걸 깨닫는데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는 그녀의 글을 마주 했을 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소설가 ․ 하루비)
새실쟁님의 글은 아픔과 상실, 장애의 고통, 그 모든 굴레를 예리한 통찰과 깊은 사유로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이 그녀의 한 많은 삶에 있어 어떤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녀의 글은 상처를 헤집어 아프게 하기보다 생과 삶, 그 자체를 애틋한 그리움과 따스한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게 한다.
그 많은 아픔을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그녀가 참 곱고 아름답다. (시인 ․ 이성배)
사람의 마음을 숨길 수는 없지만, 심을 수 있는 곳이 책이라면,
거칠고 삭막한 세상에서 마음의 위안과 정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녀는 혼자의 몸으로 문지방을 넘어갈 수 없을 만큼 늘 몸이 아프지만,
주위의 깊은 산 속 자연 속에 수많은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다. 두고두고 몇 번이고 읽어도 마음에 평화를 주는 책이다. (시인 ․ 박종엽)
어느 날 갑자기 병마가 찾아오면서 혼자의 힘으로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말까지 잃어버린 채 세상 속에 갇혀버린 가여운 여인.
그러나 그 절해고도와 같은 막막한 단절 속에서도 그녀는 혼자만의 성(城)을 아름답게 가꾸며 산다.
어린 애와 같은 순수함과 천진난만함, 그러면서도 넘치는 끼와 해학, 빼어난 문장력, 뭇 사내라도 당해내지 못할 호방한 기개는
그녀의 전생이 무엇이었는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방송작가 ․ 소금나무 대표 ․ 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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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1일부터 책은 서점에서 판매합니다
구입 하실 분은 새실쟁이 언니한테 직접 구입하면 더 좋겠습니다
저에게 쪽지로 주소 전번 남겨주시면 제가 새실쟁이 언니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우리 글을 요렇게 재미있게 아름답게 쓰여지다니요!!! 젊었을 때 고운 모습이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 ^^
네 참 아름다운 분이셨지요. 지금은 몇십년을 장애로 힘들게 살아오시보니 몸이 많이 망가지셨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고맙습니다 좋은책 소개 해 주셔서~~~
네~ 글을 정말 잘 쓰세여. 저기 올린 글들은 카페에 그동안 올리신건데 제가 참고하시라고 몇 개 가져다 올렸습니다. 꼭 구입해서 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