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걷기운동을 하면서 아파트 현관 입구에 있는 국화 화분을 본다.
며칠전에 아파트 부녀회에서 아파트 각 라인 현관 앞에 국화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환하게 핀 국화꽃을 보니 내 마음도 환히 밝아지는 듯 하였다.
가을을 상징하는 꽃이라면 티없이 맑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가을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와
하얀 무서리에도 진한 향내를 뿜으며 꿋꿋하게 피어나는 국화가 연상된다.
내 어릴 때 시골집에는 마당가에 여름에는 울타리 밑에 봉선화, 맨드라미,채송화가 피었고
나팔꽃도 울타리 나무를 타고 올라가 예쁜 꽃을 피웠다. 해바라기는 기린 처럼 긴 목을 빼어 사립문 바깥을
내어다 보곤 하였다. 국화는 하얀 무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 꽃을 피워 얼음이 얼때까지 향기를 발했다.
도회지로 나와서는 먹고 살기에 바빠 한동안 꽃을 잊고 살다가 대신동 주택으로 가면서 어머님이 다시 마당가에
여러가지 화초를 심기 시작하셨다.
국화꽃을 보면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있던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가 생각난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1947년 11월 9일자 『경향신문』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