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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천송이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송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 아닌(?) 이유...
1. 예전에 정광태라는 개그맨 출신 가수가 '독도는 우리땅' 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이제는 금지곡에서 풀렸지만, 일본이 항의를 하면 가끔씩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2. 2000년 새해맞이 해돋이 행사는 세계 각 나라의 가장 동쪽 끝 영토에서 실시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가장 동쪽 끝 영토인 독도를 팽개치고 울산광역시의 간절곶 등대에서 새천년 해돋이 채화식을 거행했다.
(실제로 방송국은 독도에서 행사를 거행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한다. 왜?? 지체 높으신 분들의 반대 때문에....!)
3. 대한민국의 영토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하지만 독도는 일반 한국인이 접근할 수 없는 섬으로 지정되어 있다. 일반인이 독도에 들어가려면 외교통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실제 방문 요청시에는 대부분 거부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보호 목적 때문이라는데, 언제부터 외교통상부가 천연기념물을 관리했나..? 그리고 국내 여행하는데 왜 외교통상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4.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와 가장 가까운 시마네현 은기군 오개촌에 편입시켜 놓았으며, 독도에 일본인 호적까지 등록시켜 놓았다. 게다가 일본 시마네현 청사와 경찰청 정문앞에는 '죽도는 우리(일본) 고유 영토입니다’라고 적힌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시마네현 곳곳에는 '죽도는 우리(일본) 땅’이라는 현수막까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어느 청사에도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입간판이나 현수막은 없다.)
5. 일본 시마네현 관청은 독도의 공시지가까지 마련해 놓았으나, 울릉군청에는 독도의 공시지가 따위는 없다.
(사고 팔 일 없으니, 공시지가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6. 1999년 말 경북도지사는 독도의 해경을 위로 방문하려고 정부에 출장신청을 했으나, 지체 높으신 고위층의 반대로 출장은 무산되었다.
(일반인은 물론, 독도를 관할하는 책임자인 경북도지사도 지 맘대로 못간다.)
7. 일본은 1996년 신어업협정을 발효시키며 배타적 경제 수역 내에 독도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한국의 애걸복걸로 독도는 중간수역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한국 어선이 조업시에 독도에 정박하려면 일본 자위대의 발포를 무릅써야 한다.
(우리땅에 우리배가 정박하는데 총맞을 걱정을 해야 하다니...)
8. 1996년 한 홍콩의 경제주간지가 아시아 기업인들 상대로 '독도영유권'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말레이시아 기업인들은 66.7%, 호주 58.8%, 인도 55.6% 필리핀의 기업인들은 54.5%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지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전 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독도를 한국땅으로 알고 있는 것인가.....?!)
9.
(한국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므로 쉽게 폭파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영토를 폭파할 수 없어서 거부했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음.)
10. "정부는 유엔해양법협약 관련규정에 따라 현재 독도를 EEZ를 가지지 않는 [암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 (
하지만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이지만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0.23평방 km 짜리 암석도 있나? 암석치고는 꽤 크군. 음~눈에 보이는 암석이라...!)
11. 남지나해의 [남사군도]는 필리핀, 중국, 베트남, 브루나이, 대만 등 여러나라 간의 분쟁이 일고 있는 지역이다.
몇 년 전 중국 해군이 그 중의 한 산호초에 가건물을 지었다. 그 산호초는 필리핀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전임 라모스 정권 때는 별 소용도 없는 외교적 항의로만 일관했다. 그러니 중국은 끄떡도 할 리 없었다. 그러나 에스트라다가 새로운 대통령이 된 후에 필리핀 해병대를 보내서 중국이 지은 가건물을 통쾌하게도 폭파해 버렸다.
중국과의 전쟁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그러자 지레 찔린 중국은 필리핀에 쳐 들어가기는 커녕, 여태 자기 영토, 영해라고 주장하던 자세를 바꾸어 공동 관리라는 선까지 후퇴했다.
(일본이 언젠가 독도 수비대 숙소를 폭파하러 올 것이다.)
12. 현재 독도에는 독도 수비대라는 명칭의 한국 전투 경찰이 있다.
국토방위는 군인이 하고, 치안을 담당하는 게 경찰이다. 그런데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독도를 지키고 있다니.... 독도는 당연히 전경 대신 해병대가 지키고 있어야한다.
일본은 독도주변 영해와 영공에 일본의 군함과 선박, 항공기를 자주 출몰시키고 있다.
한국은 독도를 경찰이 담당하지만, 일본은 자위대라는 군대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거 봐~ 일본이 곧 폭파하러 온다니까)
13. 동해 바다 명칭이 일제시대 이전에는 'Mer de coree' 등 '조선해'의 영문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가, 일제시대 이후 전세계의 대부분의 지도에선 'Sea of Japan'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국해라고 항의하기는 커녕, 맑고 푸른 바다라는 뜻의 청해(淸海)로 표기하자고 일본에 제안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거절하고 있다.
(일본해에 떠있는 섬을 한국 영토라고 한다면 전세계 누가 믿어주겠는가? )
* 맺음말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암석덩어리가 아닌, 피 같은 우리의 영토다.
우리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전세계에 널리 홍보하고, 일본에게는 항의 정도가 아닌 강력한 경고를 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흐리멍텅한 상태로 몇 년 시간이 또 지나면, 전세계 속에서 우리만 바보가 되고 말 것이다.
남의 땅(일본땅)을 버젓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꼴이 될테니 말이다.
< 출처 : 네이버 카페 겨레의 역사문화 나눔터 >
독도가 한국 땅인 이유
1. 삼국사기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증왕 13년 6월 울릉도에 자리하고 있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되어 해마다 토산물을 바쳐 왔음을 알 수가 있다. 우산국 사람들은 그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민집단 생활을 하여 왔으며, 내륙보다 낮은 문화 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은 듯하다.
이 곳 사람들은 본토의 군선이 접근하면 가파른 산정으로 피해 귀복을 거부하며 살아 왔는데, 이사부가 하슬라주의 군주로 있으면서 계략을 써서 굴복시킨 것이다. 우산국은 울릉도에 위치한 고대부족읍락국가였으며, 그 영역은 가시 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와 울릉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던 것이다.따라서 독
도는 일찍이 우산국의 일부였다가 지증왕 13년(512년) 울릉도와 더불어 신라에 의해 영유화되었다.
三國史記 卷4
이찬 이사부 (이사부는 내물왕의 4대손으로 성은 김씨이다.)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 모조리 밟혀 죽게 하리라. 그는 지증왕 6년(505) 실직주(삼척)의 군주가 되어 우산국을 정복하려고 하였다. 우산국 사람들은 사납고 거칠었으므로 힘으로 굴복 시키기가 어렵자, 이사부는 한 꾀를 생각해 냈다. 그는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많이 만들어서 배에 모두 싣고 우산국 해안에 이른 후,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서 모조리 밟혀 죽게하리라'하고 위협하였다.그러자 우산국 사람들은 이사부가 생각했던 대로 순순히 항복하고, 매년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이사부는 그후,진흥왕 2년(541년)에 이찬(신라의 17등급 중 둘째 위계)이되었고, 진흥왕 6년에는 국사 편찬의 필요성을 왕에게 건의하여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2. 고려사
고려사에 의하면 930년(태조 13) 백길, 토두 등이 우산국 을 대표하여 특산물을 바침으로, 조정에서 각각 정위, 정조의 관위를 수여함으로써 신라에 귀복되었던 울릉도가 그대로 고려에 복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15년(현종 9년)에 동복여진이 우산국에 침입하여 농사에 큰 피해를 입히자, 관리 이원구로 하여금 농기구를 보내 주도록 하였으며, 4년 후에 또 다시 여진족의 약탈이 거듭됨에 따라 본토로 피난온 우산국 백성들에게 명주(강릉)의 관리가 양식을 주어 이들을 보호하였다.
성종 때에 지방 제도를 군현제로 정비함에 따라서 우산국도 고려의 한 주현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 1031년(덕종 원년)에 우릉 성주의 아들인 '부어내다랑'이 조정에 토산물을 바쳤는데, 이 때 조정에서 우릉 성주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1140년(인종 19)에는 '명주도감창사'가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릉도 특산물을 임금께 올렸다. 이를 통해 우릉도는 '명주도감창사'가 관할하는 지방 조직에 편입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高麗史
1156년(의종11) [동해 가운데 우릉도가 있는데, 이 곳의 땅이 기름지며 주현을 설치한 때도있었다.] 는 말을 듣고 백성들을 옮겨 가서 살게 하고자 '명주 도감창전중내급사인 김유립으로 하여금 조사토록 한 결과, [암석이 많아 백 성들이 옮겨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함에 중지한 일이 있었다.
이처럼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독도를 지방 관제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 살도록 노력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3. 세종실록 지리지
조선 시대에 이르러 독도의 지리적 인식이 보다 분명해졌다.
태종은 독도와 울릉도가 왜구의 침략을 받을 염려가 있고, 중앙의 직접 관리가 힘들어 치안 유지의 일환으로 공도정책을 썼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부들의 어로 활동이 계속 되었고, 본토에서 도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종 때는 독도를 '우산도'라 불렀다. 1452년(세종 7년)에
世宗實錄 地理志
"독도는 울릉도와 더불어 울진현의 동쪽 바다 가운데 있고, 울릉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않아 바람이 잔잔하고 청명한 날이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우산으로 불렀다" 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울릉도에서 독도를 관망하려면 120m 높이의 지대에 오르면 가능하고 성인봉 정상에서는 93마일까지 볼 수 있다.
4. 그 밖의 문헌
* 新增東國餘地勝覽
1531년『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우산도,울릉도를 무릉이라고도하고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 바다 가운데 있으며, 세봉오리가 하늘 로 곧게 솟았으며,남쪽 봉오리가 낮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 蔚陵島事蹟
1694년 『위능도사적』에는 "울릉도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바다위에 섬이 하나 있는데, 아득히 동남방에 못미치고 거리는 300여리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기록도 있다.
* 萬機要覽
1809년 『만기요람』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는데 "輿地志(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 땅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松島(송도)이다" 라고 하였다.
* 칙령 제 41호
대한 제국으로 개칭한 후(1897년) 울릉도에 일본인들의 불법 침입 및 삼림 벌채가 문제되어, 조정에서 1899년 10월 조사단을 울릉도에 파견해 보니, 일본인들의 집단적 도래와 불법적 삼림도벌이 심각하였다.
조정에서는 '400여 가구에 1,7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농경지는 7,700여 마지기였다.' 는 출장 보고를 근거로,
속해 있던 울릉도와 그 부속 도서를 묶어서 독립된 울릉군을 설치하고 중앙관리인 군수로 하여금 울릉도는 물론 독도까지 관할토록 하는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칙령 제2조에는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할사'라고 규정하였다. 이 때의 석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돌'을 '독'이라고 하고 '돌섬'을 '독섬'이라고 하였다.
울릉도 주민들이 우산도를 '독도(돌섬)'라고 부르고 있음을 보고 받은 대한제국 조정은 '독섬'을 의역하여 '석도'로 표기한 것이다.
*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
독도가 오늘날의 이름인 '독도'로 처음 쓰인 것은 1906년(광무 10년) '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 에 의한 것이다.
1906년 4월 일본 지방 관리들이 울릉군수를 방문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통보하자, 울릉군수 '심흥택' 은 "본군 소속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 편입되었다는 말을 하더라'고 강원도 관찰사를 경유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독도가 한국 땅인 이유?
1. 독도, 서기 512년부터 한국영토
2.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 독도를 표시
3. 일본고문헌과 일본 고지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
4. 17세기 말 일본정부, 독도.울릉도를 한국영토로 재확인
5. 19세기 일본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 울릉도를 한국영토로 재확인
6. 일본 최고 국가기관(태정관), 독도.울릉도로를 한국영토로 정확히 표시
7. 일본 내무성, 독도.울릉도를 한국영토로 재확인
8. 19세기말 대한정부, 독도.울릉도를 한국영토로 정확히 표시
9.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 독도를 한국영토로 세계에 공포
10. 일본, 1905년 독도 강제 편입
11. 연합국, 1946년 1월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 발표
12.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 "독도는 한국 영토" 라고
13. 연합국, 샌프란시스코 '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 누락
14. 유엔군,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
첫댓글 독도는 누가 뭐러해도 한국땅이죠
일본에서 군함으로 시위하면,,우리는 미사일로 요격 합시다...우리나라 미사일 성능 좋더만,,,
힘이있어야되는데,,,,그게문제에요,,,,
나라가 힘이없으니 찍소리도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