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 태풍 <플라산>의 영향으로 전국에 거센 빗줄기가 쏟아진다.
중부지방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대전으로 가는 것은 무리였다.
원래 산행지로 계획했던 계족산을 포기하고 급히 영광쪽으로 변경하였다.
빗줄기를 뚫고 참여해주신 37명의 열정 단원들이 고마웠다.
영광으로 가는 동안 빗줄기는 거세게 쏟아졌다.
다행히도 불갑사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상사화 축제장은 화려하게 치장되었지만 써썰렁하였다.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일주문 앞과 뒤에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비는 내리지만 여인들은 가슴은 불타고 있었다.
다만 꽃무릇이 여인들의 가슴처럼 타오르지 않아 아쉬웠다.
꽃무릇이 더위를 먹어 계절을 망각한 모양이다.
당신 가신 꽃자리에
이슬로 고인 녹색 그리움을 마시며
상사화는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바람도 볼 수 없는 설움에
꽃잎만 마냥 흔드는데
갈래
갈래로 찢어진 갈래꽃
꽃무릇이여
불효한 여식의 삼베 적삼을
피빛으로 물들인
사모의 꽃이여.......................................................................안수동 <꽃무릇> 부분
불갑사 대웅전에서는 아침 예불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불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조심 움직였다.
이런 곳이 빨치산의 은신처가 되었다니 역사가 야속하다.
내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지나는 바람과 마주하여
나뭇잎 하나 흔들리고
네 보이지 않는 모습에
내 가슴 온통 흔들리어
네 또한 흔들리리라는 착각에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할 뿐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 속의 날 지우는 것이다............................................구재기 <상사화> 전문
불갑사 대웅전을 지나 저수지까지 걸었다.
이곳을 지나 연실봉 정상까지 오르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불갑산은 전남 영광군과 함평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남은 부분은 생략이다
저 물가, 상사화 숨막히게 져내려도
한번 건넌 물엔 다시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널 만나면 너를 잃고
그를 찾으면 이미 그는 없으니
십일월에 떠난 자 십일월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번뇌는 때로 황홀하여서
아주 가끔 꿈속에서 너를 만난다
상처로 온통 제 몸 가리고 서 있어도
속이 아픈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오래 그리웠다......................................................................................권경인 <슬픔의 힘> 부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영광 순교자 기념 성당으로 이동하였다.
본당 신부님께서 식당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고마웠다.
옛 성당이 순례자 쉼터로 조성되어 순례자들이 식사할 수 있다.
순교자 4인(이화백, 유문보, 김치명, 오씨양반)의 추모비 앞에 섰다.
이화백 순교자와 오씨 순교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영광에서 순교하였다.
김치명 순교자는 1867년 공주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유문보 순교자는 1872년 병인박해 때 나주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추모비 앞에는 이해인 수녀의 시 <핏빛 사랑으로>가 새겨져 있었다.
작은 풀잎들도
순교자들의 눈물을 기억하는
거룩한 이 땅에서
새로운 그리움으로
님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남도의 바람처럼 햇살처럼
우리를 축복하며
일상의 순교 영성으로 살아가라
오늘도 재촉하는 고마운 님들이여
찬미 영광 받으소서 ....<이하 생략>
바다의 별로 떠오르는
영광의 순교자들이여
처절하게 목숨 바쳐
신앙을 증거 한 님들의
상사화 닮은 그 핏빛 사랑을
가볍게 말해 버린 날들이
부끄럽습니다.
참회의 눈물 속에 뜨거워진
하얀 기도로 마음 적시며
겸손되어 다짐합니다
님들처럼 우리도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의 승리자가 되겠다고!........................................... 이해인 <핏빛 사랑으로> 부분
2014년에 세워진 순교자 기념문은 영광 순교자의 상징이다.
네 개의 칼 모양의 기둥은 영광의 순교자 4인을 의미한다.
기둥의 가운데 올려져 있는 칼 형태는 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과 십자가를 상징한다.
영광성당은 6.25전쟁으로 성당 건물이 전소되어, 1965년 성당을 재건하였다.
영광 출신 4인의 순교를 기리고자 2010년 순교자 기념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2017년에는 순교자 기념 전시관을 경내에 건립해 순교자들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영광 '물무산 행복숲 맨발 황톳길'로 이동하였다.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0.6Km는 질퍽질퍽한 황톳길로, 나머지 1.4Km는 마른 황톳길로 조성되었다.
전국적으로 항톳길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건지산에 가면 80% 이상의 사람들은 맨발로 걷고 있다.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니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황토의 찰지고 상쾌한 느낌이 그대로 온몸에 전해 온다.
황토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은 세포의 생리작용을 활발하게 해준다고 한다.
황톳길의 원적외선을 충분히 받은 얼굴들에서 빛이 난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얼굴이 반들반들하고 모든 통증이 사라지리라. ㅎㅎ
마지막으로 고창 개갑장터 순교성지로 이동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최여겸의 순교 터이기도 하다.
개갑장터는 조선시대 당시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한일합방 후 의병들의 물자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되면서 폐쇄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개갑성지는 2009년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순교한 최여겸 마티아는 2014년 복자로 추대되었다.
야외 제대 앞에서 순교자 최여겸 마티아의 거룩한 얼을 되새겨 보았다.
최여겸 마티아 순교자의 거룩한 피와 신앙이 깃들어 있는 외양간 경당에 들어갔다.
박병준 필립보 신부님의 인도에 따라 주모경을 바쳤다.
최여겸 복자의 삶과 신앙을 뒤돌아보고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