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드보이>이란 일본만화를 우연찬게 읽고 난 후 직감적으로 '이거 영화 되겠는데'하는 생각이 퍼득 뇌리를 스쳤다. 한 남자가 이유도 모른 채 15년간 사설감옥에 갇힌 것부터, 사설감옥을 탈옥해 자신을 가둔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예기치않은 반전이 압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난 어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하루 일찍 개봉됐다. 인터넷 예매율이 매트릭스 보다 높게 나왔다고 시끌벅적한 가운데 정말 전부터 만들어지면 꼭 보고 싶은 영화였기에 아침에 잠을 드는 바람에 스크린쿼터 집회에는 가지 못했지만 짬을 내 대한극장을 찾았다.
오대수, 이름처럼 하루하루를 대충대충 수를 내 넘기는 그런 인생으로 딸의 생일 날 선물을 사들고 들어가는 길에 술 한잔 먹고 추행죄(?)로 파출소에서 말썽을 피우는 것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친한 친구가 신원보증을 서 파출소를 나와 공중전화 부스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고 잠시 전활 친구에게 바꿔 준 사이 오대수는 정말 거짓말처럼 감쪽 같이 증발돼 버린다.
그렇게 오대수는 누군가에 의해 이유도 모른 채 감방살이는 시작되고, 이것도 잠시겠지 했는데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고, 그렇게 15년을 이유도 모른 채 갇혀 오직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를 복수의 일념으로 몽테크르스토 백작처럼 탈출을 꿈꾸지만 자신의 그런 의지와는 관계없이 눈을 떠보니 어느 낯선 자신의 몰골처럼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옥상 위다.
주머니에 땡전 한푼 없이 길에 버려진 오대수는 일식집 앞 수족관에서 유형하는 회감을 구경하다 웬 낯선 걸인으로부터 핸드폰과 수표가 가득 든 지갑을 받는다. 일식집, 오대수는 거기서 종업원으로 있는 미도라는 애띤 여자를 만난다.
이때 핸드폰이 울리고 전화선을 타고 낯선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게임은 시작되고 오대수와 미도는 범인을 찾아나선다.
15년 동안 밀어 넣주던 만두의 맛을 단서로 하여 둘은 그 일대 중국집부터 뒤진다, 그러게 첫번째 퍼즐은 풀리고 그런 둘을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범인 이우진이 게임을 즐기는 사이 오대수와 미도 사이에 사랑이 움튼다.
이렇게 하나하나 퍼즐을 푸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오대수와 이우진은 맞닥트리게 되고 오대수는 그토록 죽이고 싶던 범인을 앞에 두고도 죽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를 죽이면 자신이 15년 동안 어떤 이유로 누구에 의해 왜 갇히게 됐는지 영원히 묻히게 될테니까.
그런 오대수를 보며 능글능글 게임을 즐기는 이우진. 오대수 지금 당장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먹이를 앞에 두고 참을 수 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 정말 저주스럽다.
얼기설기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실마리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학창시절 앨범 속, 오대수와 이우진은 동창으로 그들은 한 여자를 좋아했다. 그것이 그들을 그토록 서로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시운치 않을 만큼한 복수로 그들 가슴 속에 서늘하게 날이 돋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더 깊이 얘기를 하면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재미 없을 것 같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복수의 대상은 상대에게 있었다기 보다는 어쩜 자기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라스트에서 미도가 설원으로 뒤덮힌 산중에서 오대수를 꼭 끌어앉으며 '사랑해요, 아저씨'를 말할 때 오대수의 표정, 마치 25시에서 안소니 퀸이 전쟁터에 나갔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어렵사리 전처(소피아 로렌)지 후처인지 하도 오래돼 기억이 좀 흐릿한데 암튼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연인을 찾아가 만난다.
몇 십년만의 해후. 좋았던 시절을 회상할 틈도 없이 안타까운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다시 헤어져야 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 이제 다시 또 만날 기약도 없는 이별 앞에서 이때 사진기자 하나가 가족사진을 찍어준다며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그런 어린 아이를 안소니 퀸에게 안기며 '하나 둘 셋..' 여길 보고 웃으라는 요구에 그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그 어색한 표정이 정말 압권인데 올드보이에서도 그런 상황이 재연됐다.
화면 위로 서서히 앤딩 타이틀은 떠오르며 훤히 불이 켜지고 극장문을 나섰다. 전동차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와 컴앞에 앉아 키보드를 치는 이 순간에도 라스트신의 대사가 귓전을 울려댄다.너무도 가슴 아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