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금人頭琴 소고 小考
ㅡ. 홍산문화는 우리 한민족의 문화. ㅡ
인묵 김형식(시인. 문학평론가)
●.들어서는 글
人頭琴의 소리
인묵 김형식
내몽골 적봉紅山 사막
낙타를 타고 바람 위를 걷는다 낙타가 똥을 싼다 한민족 후예, 방탄소년단이 또르륵 구른다
9천 년 홍산문화가 벌떡 일어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초원을 달리는 동이족 말발굽소리가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데
인두금(人頭琴 ) 목에 건 하얀 노인이 낙타 똥을 줍고 있다
할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동이 할아버지' 하고 부르자 똥집게를 번쩍 들고 반긴다
인두금이 울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 이름은 동이東夷다
이곳은 환웅배달 단군조선, 우리 한민족의 고토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악기 하나를 만들어 내놓는다
악기명은 인두금
말머리를 닮은 몽골의 ‘모린후르morin khuur’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머리 부분은 동이할아버지의 얼굴을 조각해 모셨다
몽골 사막 원주민들은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 낙타 목에 마두금을 걸어 둔다
모래 바람이 이를 울려 길 잃은 새끼가 그 소리를 듣고
어미를 찾아온다는 신비스러운 악기
인두금이 울고 있다
우리 조상, 백의의 동이 할아버지가
인두금을 목에 걸고
핏줄을 찾고 있는 것이다
엉덩이에 몽골 반점을 찍어 놓은
후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두금人頭琴의 소리) 전문
인두금人頭琴은 악기의 이름이다. 말머리를 닮은 몽골의 ‘모린후르morin khuur’, 마두금馬頭琴에서 영감을 얻어 이 貧學이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악기이다. 머리 부분은 동이할아버지의 얼굴을 조각해 넣었다. 마두금은 몽골 사막원주민들이
잃어버린 새끼를 찾기 위해 어미 낙타 목에 걸어둔다. 모래 바람이 불어와 악기를 울리면 그 소리를 듣고 길 잃은 새끼가 어미를 찾아온다는 신비스러운 악기다.
2019년, 중국령 내몽골 자치구인 적봉시를 2번 탐사했다.
그곳은 홍산문화의 발상지로 우리 동이족, 한민족의 고토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라고 말씀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을 떠올리며 탐사하기 시작했다. 이미 밝혀진 사료들을 확인 또 확인해 가며, 그동안 왜곡돼 있었던 역사를 史實에 의거 바로 잡는데 미력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심정에서였다. 또한 이 글은 한민족 서사시 [인두금(人頭琴)의 소리]의 시평詩評이며 정확한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기록하였음을 밝힌다.
20세기 일제의 식민사관에 이어 21세기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 한민족의 찬란한 역사 9200년을 지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인가! 때마침 발굴된 홍산문화 유적은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인류문명사의 시원을 새롭게 정리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동안 지워져 있던 한민족의 4천여 년의 역사를 바로 인지하는 한편, 아직도 모르고 있는 국민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홍산문화는 동이배달, 단군조선의 문화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사실史實은 홍산인이 곰을 귀하게 여기고 받드는 곰 토템 족이라는 것이다. 홍산 유적지에서는 특히 옥기 장식물이나 가면등에 곰의 형상이 투영된 유물들이 대거 나왔다. 역사학자들이 이 일대가 한민족의 원류인 신석기시대 배달국의 터전이었고 곰 토템을 생활화하던 웅족의 생활터전 이었다고 보고 있다. 홍산문화는 동이 배달문화였고 그것이 청동기시대 단군조선의 생활문화로 이어졌다.
위와 같은 사실은 곰토템의 웅족이 민족의 후손인 환웅족에 의해 문명화 됐다는
<환단고기>의 <삼성기> 기록과도 일치한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하늘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고 동방의 전통인 3 수사상을 반영한 제단을 쌓았다.
단군조선 때 장례법과 동일한 형태인 돌무덤[石墓] 계통의 묘
장묘 습속도 홍산인들이 동이족임을 드러 내준다.
<《한강문학》은 한민족의 곰에 관한 신앙, 토템 등 설화說話를 선진문명을 갖춘 천손족이 ' 미개한 선주민을 위한 교육용 이야기' 였을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설화가 탄생하게 되는 진정한 배경은 파악하지 못하거나(직지直指 현상), 악의적으로 무시하거나(집단 따돌림 현상), 자의적으로 왜곡된(야바위 현상) '일제 식민사관의 악의적 유해遺該' 즉 '신화神話' 화化를 21세기에도 정설로 답습하는, 곰[熊] 탱이 같은 사람[학자]들이 근역강산槿域江山에서 훈장질을 하고 있다고 본다. 교육내용의 본질은 마고麻姑, 三神 [할머니]은 북극성이고, '곰'은 북극성의 자손 천손족天孫族을 찾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북두칠성 (곰자리)를 뜻하며, 한민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진문명을 전파하는 천손족天孫族이다. 천문관측을 하여 절기마다 천제天祭를 올리는 '문명국가'였음을 여실하게 드러내주는 일화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편집자는 '곰'에 관한 일화 또한 고대사회에서 점령지에서 선주민을 교화하기 위한 '문화적 방편'이 이야기로 전승 돼. 내려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유적
홍산紅山은 중국 내몽골의 자치구 적봉시의 동북방에 위치한 산 이름이다. 토양에 철성분이 많아 멀리서 보면 산이 붉게 보인다. 홍산문화라는 이름도 거기서 나왔다. 이전까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아주 오래된 문명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적, 유물들이 이곳 홍산에서 대거 발견, 발굴 됐다.
1908년, 홍산일대 유적과
유물을 발견한 이는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다. 이어서 1919년 프랑스 고고학자 에밀리쌍 E.Licent 도 이 일대에서 신석기시대 유적 여러 곳을 찾아냈다. 1935년 일본인들이 동아시아 고적 조사단을 만들어 홍산 일대에서 본격 발굴 작업을 하면서 여기서 출토된 것들을 통틀어
''홍산후유적''이라 명명했다.
중국 역사학계가 이곳을 조사한 것은 1980년 대다. 이때 중국 학자들에 의해 홍산문화 유적이 발견된 곳은 중국 내몽골 자치구 동남부, 요령성 서부와, 허난 성 북부, 길림성 서부 등인데 계속되는 발굴을 통해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홍산문화가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1983년 요령성 건평현建平縣 우하량牛河樑 유적지가 발견된 이후다. 여기서는 신전과 제단, 돌무덤들이 한꺼번에 발굴 됐다. 또 홍산인의 신앙생활을 보여주는 여신상 곰과 새의
소조상塑造像을 비롯, 다양한 옥기들이 나왔다. 우하량 유적은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대한 유적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홍산문화의 유래는 적봉시의 ''붉은 산''인 홍산에서 유래
새로 발견된 유적들에서는 신석기 유물들만 나온 것이 아니다. 적봉시에서도 하가점이라는 마을에서 청동기 유물들이 나왔다. 특히 단군조선의 지표指標 유물이라 할 수 있는 비파형琵琶型 동검도 발견됐다. 홍산문화가 고조선과 연관 됐다는 부인할 수 없는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상층과 하층 2단계로 구분 돼 유물들이 발견 됐는데 하층유물의 연도는 기원전 2000~1500년으로 추산된다. 상층으로 올라올수록 더욱 발전된 청동기 문화의 자취들이 등장했다.
지난 20세기 초 이래 한민족의 고토인 요서(요하의 서쪽) 지역에서 BCE 7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가 발굴되고 있다. 요서 일대의 이 고대 문명은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의 ''붉은 산''인 홍산에서 이름을 따서 넓은 의미의 홍산문화로 불린다. 좁은 의미의 홍산문화는 요령성의 건평현과 능원현 경계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는 신석기 말기의 문명을 가리킨다.
BCE 3500년을 기점으로 만리장성 밖의 홍산문화와 북방초원문화가 황하중류 마곡부인 오르도스 지역과 태항산 사이의 노선을 따라 중원으로 전파되었다. 이 문화 전수 경로를 중국학자 쑤빙치 [蘇秉埼]가 ''Y벨트''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Y벨트를 따라 동방신교의 제전문화와 삼족오, 용봉, 칠성과 천자문화의 상징이 중원에 흘러들어 갔으며 이것은 중국을 대표하는 신석기문화인 앙소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로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의 원류인 것이다.
●.천 원 지방의 사상과 곰토템의 옥기들
홍산문화의 유적, 유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홍산문화는 소하서 문화에서 하가점의 하층문화까지 포괄한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적석총積石塚, 제천단祭天壇, 여신묘女神廟와 다양한 옥기들을 들 수 있다.
먼저 적석총(돌널무덤)은 홍산에서 발견된 적석총이 놀랍게도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구조나 축조방식이 같다. 적석총 하나만 보아도 홍산문화는 동이족 문화다. 그리고 이들의 후예가 나중에 한반도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 역시 그 형태가 우리 한민족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중국 학자들은 우하량 제2지점에서 발견된 원형圓形제단과 방형方形 적석총 유적이 동방의 전통적인 천원지방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또 그 구조가 저 북경에 있는 천단天壇의 원형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대한제국 때 만들어 새운 원구단도 그와 같은 형태다.
우하량의 여신묘에서 발견된 여신상 유적은 실물크기였다. 진흙으로 만든 소조상인데 그 크기나 모습이 오늘날 실제 사람의 체격과 비슷하다. 여신을 숭배했다는 것은 당시 여성의 지위가 신관이거나 나아가 우리 고대사의 웅녀, 웅족과의 어떤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옥으로 만든 수많은 물건들이 출토 됐다는 점이다.
홍산 일대에서 발굴된 무덤 가운데는 토기나 석기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옥기들만 발견된 무덤이 많다. 아예 옥기만 잔뜩 부장한 무덤들이 발견 됐다. 홍산사람들이 무덤에 옥을 많이 묻었다는 것은 그만큼 옥을 신성시했다고 볼 수 있다. 옥기만 수장된 무덤은 홍산문화에서만 보이는 현상이다.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의 원류
일반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은 중국, 특히 항하문명이라고 알려져 왔다. 홍산문화와 황하문명은 어떤 관계인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꼽히는 중국의 황하문명은 황하 중하류 지역에 성립한 옛 문명의 총칭이다. 일반적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문명의 시발점이 황하문명이다. 그렇게 중국인들은 주장해 왔고 또 사람들에게 대개 그렇게 인식 돼 왔다.
그런데 1973년 양자강 하류에서 하모도문화라고 명명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됐다.
황하문명의 중심지라 할 앙소문화권이 기원전 4500~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하모도문화는 그것보다 최소 500~1000년 앞선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에서는 이를 장강문명이라 했다. 그러고는 이후 중화문명이 황하에서 출발했다는 단일 기원론이 아니라 황하와 장강 두 곳에서 시작 됐다는 다기원론을 내놓았다. 그런 터에 다시 1980년 대 이후 만리장성 북쪽 요서지방 일대에서 어마어마한 신석기 및 청동기 유적이 발견되고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홍산문화다. 일부 학자들은 홍산지역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성격의 유물들이 발해 연안 요서, 요동지역에서도 널리 발견되고 있다고 해서 요하문명이라고도 한다.
선문대 이형구 교수는 홍산문화는 우리 동이민족문화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지중해 문명이 서양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이 발해연안(발해를 둘러싸고 있는 산둥반도, 요동반도, 한반도)에서 창조된 문명은 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내는 젖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 홍산문화를 '발해연안 문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한다.
분명히 홍산문화는 연대적으로 보아 황하문명 보다 앞선 문명이다. 그것이 중국에 유입된 것이다. 저 만리장성 바깥의 동방 홍산문화 그리고 북방 초원문화가 항하 중류인 만곡부인 오르도스지역과 태항산 사이 루투를 따라 중국 중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중국의 고고학자 소병기도 이 문화 전달 경로를 Y벹트라 이름 붙였다. 즉 홍산문화는 황하문명의 원류인 것이다.
●.홍산인은 바로 동이족
그렇다면 홍산문화는 한국사 차원의 문제를 넘어 세계사, 인류문명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세계사에서는 서양문명의 원류를 수메르문명으로 보고 있다. 홍산문화는 바로 수메르문명과 비슷한 시기의 것이다. 수메르문명 역시 기원전 4500년 경 이루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명이 이루어졌다 할 때 그 요소로 도시의 형성과, 문자의 발명, 국가의 등장 등을 꼽는다. 이런 문명의 등장에는 신석기 혁명이 전제가 되어 있다. 신석기시대 말에 농업이 시작 돼서 식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 되고 부가 축적될 물적 기반이 형성 돼야 한다. 홍산문화의 경우에는 그런 물질적 요소만이 아니라 정신문화의 요소가 두드러져 있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나온 제단, 신전, 무덤, 옥기 등은 모두 홍산인들의 정신세계를 보여 주는 유물이다. 우리는 이들 유물을 통해 이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 개의 원이 나란히 연결된 삼련벽이나 우하량 유적지의 3단으로 된 원형제단은 홍산인들이 3을 신성한 수로 여겼음을 드러내 준다. 이는 바로 우리 옛 조상들의 3 수사상과 통하는 것이다. 아마 환단시대의 삼신 사상 내지 삼신 문화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환국시대 이래 우리 조상들은 하나의 신이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삼신으로 역할을 한다고 보았는데 이것이 삼신 사상이다.
●.홍산문화가 동방동이족
홍산문화가 우리 한민족 조상들이 이룬 문명임이 밝혀지자 오래전부터 황하문명이 최고라고 주장해온 중국은 홍산 유적, 유물이 발견된 게 반기는 일은 아닐 터. 아무래도 곤욕스럽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겠다. 그전까지는 황하유역의 하나라에서 중국문명이 시작 돼서 상(은) 나라, 주나라로 이어졌다. 이렇게 대사를 설정했는데 홍산문화, 특히 우하량유적이 발견되면서 이런 정설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스스로 동방문명의 종주국임을 자부해 왔다. 그러데 동이족의 영역이던 요령성에서 중원보다 1000~1500년이나 앞선 문명이 그것도 고대국가의 성립을 제대로 갖춘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중국학자들도 발굴 결과를 토대로 홍산문화가 황하문명 보다 먼저 이루어졌고 홍산문화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요하지역은 주변보다 훨씬 앞서 국가성립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눈앞에 드러난 유적, 유물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홍산문화가 알려지연서 중국은 황하중심의 문화 전파론을 철회하고 대신' 다중심문화 발전론'을 내놓게 시작하더니, 홍산문명이 동이족의 것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중국의 요하문명'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고대문화가 세계 최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서부공정이니 동북공정이니 역사 왜곡 날조 하고 있으며 홍산문화에 대해서는 '중화문명 탐정공정'이란 프로젝트로 우리 9200년 우리 한민족의 9200년 역사를 자기네 것으로 만들고 있다.
요하문명이 황하문명과는 달리 독특하고 이질적 임도 그것을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만들어서 홍산문화든 북방고대민족의 고대사든 모두 중국사로 쓸어 넣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우리는 홍산문화 의 주인공 동이족 단군조선 배달민족, 한민족이다.
홍산문화의 주인공 즉 홍산인들은 바로 동이족이다.
그런 사실史實이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들어 났다. 당장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사실史實은 홍산인이 곰을 귀하게 여기고 받드는 곰토템족이라는 것이다. 홍산유적지에서는 특히 옥기장식물이나 가면 등에 곰의 형상이 투영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일대가 한민족의 원류인 신석기시대 배달국의 터전으로 보고 있으며 곰토템을 생활화하던 웅족의 생활 터전으로 보고 있다. 홍산문화는 곧 동이 배달문화였고 그것이 청동기시대 단군조선의 생활문화로 죽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정은 곰토템의 웅족이 한국의 후손인 환웅족에 의해 문명화 됐다는 《환단고기》 《삼성기》 기록과 일치한다.
●.마무리 글
홍산이 있는 내몽골 요서일대는 과거 단군조선의 영영이었다. 물론 그곳을 활동무대로 삼은 역사의 주인공은 한민족의 조상, 배달 동이였다.
이제까지 발견된 유적과 유물만으로도 홍산문화는 한민족의 시원 역사는 물론 인류의 원형문화를 파악하는 데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우리 한민족이, 한국인이 저 홍산문화를 그냥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바라보고듯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학계나 민간 관계자들은 물론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열정적인 관심과 치열한 연구가 반듯이 있어야 한다.
어떤 역사든, 그것을 찾아 내 가록하고 기억하는 자가 그역 사의 진짜 주인인 것이다.
작금의 세계각국의 역사관을 보자. 없는 역사도 조작 날조하여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혈안이 되어있지 않는가.
우리의 주변국 중국이 그렇고
일본이 그렇지 않은가.
중국은 우리의 홍산문화 역사를 서북공정, 동북공정,
중화문명 탐정공정이란 프로젝트로 깨끗이 지우고 자기네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식민사관을 모르고 있는가.
아직도 우리 강단 사학자들 중에는 세계의 석학들이 밝혀 낸 우리 역사의 사실史實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슬픈 일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알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우리 역사를 다시 찾자.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만 갖고도 9200년이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지워져 버린 상고대 역사를 바로 깨우치고,
아직도 모르고 있는 국민들을 바로 알려주어야 한다.
민족의 서사시 [인두금(人頭琴)의 소리]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내몽골 적봉紅山 사막
낙타를 타고 바람 위를 걷는다 낙타가 똥을 싼다 한민족 후예, 방탄소년단이 또르륵 구른다
9천 년 홍산문화가 벌떡 일어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초원을 달리는 동이족 말발굽소리가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데
인두금(人頭琴 ) 목에 건 하얀 노인이 낙타 똥을 줍고 있다
할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동이 할아버지' 하고 부르자 똥집게를 번쩍 들고 반긴다
인두금이 울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 이름은 동이東夷다
이곳은 환웅배달 단군조선, 우리 한민족의 고토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악기 하나를 만들어 내놓는다
악기명은 인두금
말머리를 닮은 몽골의 ‘모린후르morin khuur’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머리 부분은 동이할아버지의 얼굴을 조각해 모셨다
몽골 사막 원주민들은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 낙타 목에 마두금을 걸어 둔다
모래 바람이 이를 울려 길 잃은 새끼가 그 소리를 듣고
어미를 찾아온다는 신비스러운 악기
인두금이 울고 있다
우리 조상, 백의의 동이 할아버지가
인두금을 목에 걸고
핏줄을 찾고 있는 것이다
엉덩이에 몽골 반점을 찍어 놓은
후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두금人頭琴의 소리) 전문
~~~~~~~~~~
◇. 참고 문헌
1). 환단고기
2). 9천 년 한민족 이야기(안경전)
3). 삼성기
4). 일본 속의 한류를 찾아서(홍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