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영남일보 주말 특집- [y스페셜] 어르신들 자서전 쓰기 열풍

[봉황앉음터]

[y스페셜] 어르신들 자서전 쓰기 열풍

“아버님도 자서전 한권 쓰시죠”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쓴 자서전을 펴낸 시니어들과 이들의 글쓰기를 지도한 교수가 대구교육대 평생교육원 정문 앞에 있는 등나무 아래에 모여 자서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자서전 저자인 도철기·박태진·방종현·송종호·김상문씨와 장호병 대구교육대 평생교육원 교수, 김외남·김윤지씨. 이현덕기자 lhd@yeongnm.com

#지난달 24일 심장마비로 숨진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78). 그가 죽고난 후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람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자서전을 구해 읽었다.

다음은 그 자서전의 일부분이다. ‘최수부는 열두 살 때 여덟 식구의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진 후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고 강가에서 참외를 길러 팔았다. 열세 살, 일에 지쳐 잠에 빠진 최수부는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방바닥 장판에서 얼굴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새 흘린 코피가 굳어 방바닥과 오른뺨에 딱딱하게 붙어 있었던 것. 어머니가 물을 부으며 20분을 닦아내자 얼굴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험난한 시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최수부는 성공했다. 여느 자서전이 그렇듯, 최수부 자서전도 그의 성공 스토리로 빼곡하다.

#유명인의 자서전은 곧 베스트셀러다. 2011년 초등학교 동창과의 갈등 비화를 공개한 정몽준 의원 자서전의 경우, 출판기념회에 무려 2천명이 넘는 이들이 참석했다. 또 2002년 월드컵 이후 펴낸 홍명보의 자서전도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국의 베컴은 10여년 전 한 출판사와 3억6천만원에 자서전 출판계약을 했다.

이처럼 기존의 자서전은 공통점이 있다. 흔한 성공스토리가 등장하고, 백발백중 유명인이나 지도자들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각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낸다.

최근 인생의 황혼을 맞이한 평범한 시니어들에게 ‘자서전 쓰기’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유명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충실히, 열심히, 때로는 힘들게 살아온 삶을 자신이 직접 글로 써가면서 되짚어보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지역에서 열리는 여러 강좌에서 잘 드러난다. 자서전 쓰기 강좌들이 속속 개설되고 있는 것이다.

대구교육대 평생교육원은 지난해 ‘자서전쓰기 강좌’를 개설해 호응을 얻고 있다. 기수마다 은퇴자 등 10여명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직업군도 의사와 아마추어 수필가부터 공무원, 회사원, 경찰, 주부까지 다양하다.

지자체에서도 최근 이같은 자서전쓰기 인기에 부응해 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대구 동구청 강동어르신행복센터는 오는 9월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자서전쓰기 강좌를 시작한다.

타 지역 지자체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시 관악구청은 현재 ‘어르신 자서전 제작 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이 사업을 통해 제작된 자서전에는 6·25전쟁과 외환위기 등 어려움을 이겨낸 서민들의 기록이 생생히 담겨 있다. 구청은 1인당 200만원을 제작비로 지원하고 있다.

관악구청은 앞으로 매년 어르신 10명을 선정해 자서전을 출간하기로 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얼마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명한 사람만 자서전을 써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이 모여 중요한 기록으로 남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시니어들의 자서전쓰기 열풍이 은퇴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력과 저비용으로도 쉽게 책을 낼 수 있는 출판환경과 맞아떨어지면서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서전쓰기가 시니어에 미치는 여러가지 순기능은 연구자들의 논문 등에서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경북대 심리학과 진영선 교수 등이 발표한 논문 ‘노인집단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의 효과’(2011)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 14명을 대상으로 자서전을 쓰도록 한 결과, 생활의 만족도와 삶의 질이 향상되고 우울감은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호병 대구교육대 평생교육원 교수는 “직장에서 은퇴하고 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은 60대는 자칫 무력감에 빠져 자신의 인생을 가치없다고 느낄 수 있다. 잘난 점만 내세우려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면 자서전 쓰기는 시니어들에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자세를 가다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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