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기술이었다.
나카무라 의원은 자신의 권력을 많이도 적게도 아닌 아주 적당하게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 이었던 것이다.
야스다 총재가 자신의 앞에 있는 우롱차의 다기를 오른 손으로 들고 왼손을 받히며 또 다시 한 모금 마셔댔다.
이츠키에게 ...
그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그렇게 고민하면서...
「꼭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반짝이는 검은 색으로 만들어진 고급 책상과 약간의 차이를 두고 푹신하게 잘 처리된 고급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야스다의 얼굴이 자신을 향해 한 번도 대놓고 말을 해 본적 없는 이츠키를 약간의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빠르게 변화한 야스다의 날카로운 얼굴이 그의 단오한 얼굴에 머물렀다.
「결혼하거라.」
이츠키의 얼굴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저 자신을 뚫어 질 듯 바라보는 야스다의 얼굴을 덤덤하게 받아 내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가끔은 그를 위협하고 픈 야스다였다.
한 번도 두려움을, 초조함을, 굴함을 내 비친 적이 없는 사람이 이츠키였던 것이다.
그는 당당하고 강하고 곧았다.
그런 그를 동경하고 좋아하면서도 자신을 한없이 위협할 것만 같은 그를 경계하고 있는 야스다였던 것이다.
적이 되기에는 그가 너무 벅찬 상대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두어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휠씬 아니 최상의 이익을 가져다 줄 거이었다.
그렇게 그를 가르쳤다.
그렇게 그를 자신의 곁에 두며 키우며 감시하던 야스다였다.
「이번 선거에도 전번과 같이 나카무라의 힘이 필요하신 겁니까?」
움찔했다.
야스다의 냉정한 몸이 움찔할 정도의 정곡이었다.
누구 하나 자신의 면전에서 자신의 생각을 꼬집어 말을 했던 사람이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야스다 겐죠였다.
일본의 최고 무사 집안의 야스다 겐죠 였다.
일본 최고 여당의 정권자 야스다 겐죠 였던 것이다.
야스다의 얼굴이 금새 본 평온을 찾았다.
「유키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뿐인 게다.」
이츠키가 약간의 미소를 띄었다.
결코 이유도, 사정도, 암시도 받을 수 없는 의문의 웃음이었다.
「하겠습니다. 야스다상.」
야스다의 얼굴이 찰나의 초조함을 내비치다 급속도로 사라졌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게냐? 이츠키?
이츠키의 약혼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정치와 경제를 두 손에 쥐고 있는 신흥 세력의 이츠키와 이미 정권을 탈환하고 안정의 정치 세력인 그의 배우자 유키의 결혼 소식이 들렸다.
이츠키...
나는...
너를 갖기 위해서 투쟁할 거다.
널...
놓치지 않을 거다.
민주의 두 손이 꼭 쥐어졌다.
절대로 유키에게 그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대로 그를 그렇게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를 유키 같은 아이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막을 거다. 이츠키.
널... 내가 갖지 못하더라도 절대 유키에게는 보낼 수가 없다.
넌...
내 남자니까.
「방에 있는 건가?」
환청이 들리고 있는 것인가?
문 밖에서 너무나 저음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억양 없는 굵은 음성의 주인공이...
있었군.」
이츠키가 자신의 보폭을 넓게 하며 민주의 호텔 방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그의 몸이 좁은 민주의 호텔 방에 들르자 그의 공간감으로 방이 꽉 들어찼다.
「이츠키? 약혼 소식 들었어.」
이츠키가 순간 움찔거리듯 몸을 반응시켰다.
그의 반응이 못내 못마땅한 민주였다.
그렇게 반응하지마. 이츠키.
그렇게 너의 그 소식을 인정하듯 그렇게 반응하지마.
「그래, 들었군.」
민주의 날카로운 눈빛이 이츠키의 얼굴을 배회하며 진실을 찾고 나섰다.
「사실이니?」
방의 한 쪽 끝만을 응시하던 이츠키의 얼굴이 민주에게로 돌아섰다.
민주의 의문을 담은 눈빛과 이츠키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동공이 맞춰졌다.
「사카이... 사실이다.」
무너져 내린다.
가슴 한 켠이 그렇게 무너져 내린다.
저 끝 나락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끝으로 그렇게 무너져 버린다.
민주의 흔들리는 눈빛이 이츠키의 얼굴에 깊이 박혔다.
조금도 흔들리고 있지 않은 이츠키의 눈에 그렇게 민주의 눈빛이 박혔다.
난...
널 놓치지 않겠어.
내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너를 유키에게 보내지 않을 거야.
이츠키의 단단한 손이 민주의 한 쪽 얼굴에 닿았다.
따뜻한 기운이 온 얼굴로 퍼졌다.
그러나 이내 민주는 그의 손을 거부하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획 돌려버렸다.
「약혼자가 있는 남자는 ... 약혼자가 아닌 여자에게 손대는 것 아니야.」
민주의 일침이었다.
민주의 일침이 이츠키의 가슴에 무참히 꽂혔다.
너무나 강하게 그렇게 이츠키의 가슴에 꽂혔다.
약혼한 남자는...
남의 것인 남자는...
너...
이미 내 것인 사카이 너에게 손을 댈 수가 없다...
이츠키의 굳은 입술이 냉정하게 변했다.
옛날 언젠가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당했을 때의, 민주를 자신이 없는 한국의 땅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을 때의 표정이다.
「그만 돌아간다. 잘... 지내라.」
민주의 눈빛이 다시 이츠키의 얼굴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민주에게로 등을 돌려 그렇게 방을 나갔다.
가슴 한 켠에 거친 광풍일 불 듯 그렇게 쓸쓸하고 추웠다.
이츠키...
그렇게 일본에서의 3일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끝없는 투쟁
한 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단 한 숨도 눈을 감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추웠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추웠다.
이가 부딪혀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그렇게 추위에 떨었다.
그를 그렇게 유키에게로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무 생각도 나지가 않았다.
그를 자신의 곁에 붙들어 둘 어떠한 생각도 나지 않았다.
미칠 것 같은 고통이 내리 쳤다.
그렇게 그의 모습이, 그의 결혼식 장면이, 그에게로 다가서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유키의 모습이 민주를 괴롭혔다.
왜 하필이면 유키일까?
왜 하필이면 유키여야 하는 것일까?
왜 하필 그의 결혼 상대자가 유키여야 하는 것인가?
「사카이? 안에 있어?」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 넣는 많은 생각들로 괴롭힘을 당하다 잠시 졸았다.
누군가가 민주의 호텔 방의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민주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잠겨 있었다.
「오키타.」
민주는 힘을 들여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꽃무늬의 실내화를 신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것을 실감케 하는 두통이 이어졌다.
민주의 고운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오랜 숙취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민주는 비틀거리며 벽을 오른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깊게 눈을 감고 한 숨을 쉬었다.
그를 ...
나의 그를 잡기 위해.
그를 지키기 위해 난 아프지 말아야 한다.
민주가 두 눈을 바르게 떴다.
그리고 똑바로 서서 곧바로 문을 향해 걸었다.
「어서와, 오키타.」
오키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 색 반팔 티를 따뜻하게 입고 섹시한 블루의 청바지를 입고 서 있는 멋진 오키타의 모습이었다.
난 왜 너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오키타.
난 왜 ... 너처럼 멋진 남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민주의 눈에 아쉬움이, 고통이, 고뇌가 내 비쳤다.
그것을 모르는 오키타가 아니었다.
오키타의 눈이 민주의 흔들리는 눈을 한참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라도 기분이 좋아야 했다. 그녀를 위해서...
자신을 바라 본 적 없는 자신의 그녀를 위해서 자신이라도 기분이 좋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잠시나마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그래야만...그녀가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으니...
「우리 나가자, 사카이.」
민주의 눈에 흔들림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자신을 정신없이 흔들어 놓고 있는 그녀의 눈에 호기심이라는 놈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자신을 7년 전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흔들어 놓고 있는 그녀의 눈에 말이다.
「근사한 점심을 사 줄게. 무척 늦은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알고 있지?」
놀리듯 묻고 있는 오키타의 얼굴이 무척이나 안심이 되고 있는 민주였다.
그렇게 그는 민주의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을...
「이런, 내 정신 좀 봐. 일단 들어와.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오키타가 돌아서서 등을 보이는 민주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돌려 세웠다.
너무도 섹시한 그녀였다.
짧은 스포츠 반바지에 무명 흰색 면 티를 입고 자신의 눈앞을 서성이고 있는 무척이나 섹시한 민주였던 것이다.
민주가 의아하게 오키타를 올려다보았다.
짙은 갈색의 우아한 눈에 오키타의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입술이 민주를 향해 다가섰다.
오키타...
민주의 놀란 눈이 더욱 커다래지면서 움찔거림이 느껴졌다.
「오키타? ... 하... 지마」
멈췄다.
그렇게 오키타의 환상이 멈췄다.
그렇게 그녀의 매력적인 입술을 탐하려던 오키타의 성급한 욕심이 방향을 잃고 멈춰버린 것이다.
한참을 놀라서 올려다보는 민주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싱긋 웃어 버리는 오키타였다.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어 고통스러웠지만 그녀.. 민주에게 만큼은 화를 낼 수 없는 오키타 였다.
「그래. 미안」
오키타가 웃었다.
그리고는 놀라서 굳어 있는 민주를 제치고 룸 안으로 들어섰다.
베이지 색의 기본 배열에 은은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연분홍색의 싱글 침대가 눈에 보였다. 그렇게 싱글 침대를 지나 연한 나무 색의 의자에 앉아 같은 색의 테이블에 오른 쪽 팔을 살짝 올려놓았다.
「세수 안 해?」
어색함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너무도 성급했다.
그렇게 성급하게 이성을 잃는 자신이 저주스럽게 싫은 오키타였다.
「해.」
천천히 문을 닫고 욕실로 향하는 민주였다.
자신은 왜 그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가를 수없이, 한없이, 끝없이 되새기면서 그렇게 세면실로 들어서는 민주였다.
「여기 분위기가 어때?」
오키타가 원했던 음식점으로 들어선 시간은 오후 3시가 갓 넘어서였다.
자신이 잠을 통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아침이 한참을 지나서야 지쳐서 잠이 아닌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오키타였다.
민주는 하얀 얼굴을 희미하게 웃으며 예의를 갖추어 기쁨을 표시했다.
하얀 색의 블라우스에 섹시하게 정리된 고급 청바지를 입은 민주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오키타였다.
그렇게 한참을 오키타의 차를 타고 달리던 민주는 마침내 오키타가 원하는 고급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일본의 최고의 번화가 긴자의 거리였다.
그 곳에서도 가장 비싸다는 이탈리아 요리가 나오는 스카이 라운지의 음식점을 향해 걸어가는 오키타였다.
순간 겁이 덜럭 났다.
자신의 복장에 대해 어떠한 코멘트도 없었던 오키타였다.
그리고 너무도 가볍게 생각했던 민주였다.
일본의 고급 음식점, 외국 풍의 음식점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민주였던 것이다.
23층의 스카이 라운지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민주는 자신의 옷을 힐끔 힐끔 급하게 관찰하는 행동을 무려 5번을 해 내고 있었다.
「괜찮아. 사카이짱.」
오키타의 눈이 즐겁게 흔들렸다.
엘리베이터의 밝은 조명을 받아 반짝 빛이 나는 듯도 했다.
「미리 이런 비싼 곳이라고 말을 했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조금 풀이 죽은 듯한 민주의 목소리를 듣고 조그맣게 웃기 시작한 오키타의 모습이 민주의 정 맞은 편에 은색으로 반짝이는 엘리베이터 문에 비췄다.
스카이 라운지는 옛날 중국에서 황제가 걸어다니는 곳마다 모두 깔았다던 고급의 붉은 카펫이 깔려있었다. 민주는 조심스럽게 카펫을 걸으며 오키타가 이끄는 장소로 걸었다.
발끝에서 포근한 푹신함이 느껴졌다.
「어서 오십시오. 가즈노리 상.」
문 앞에서 손님을 맞고 있던 점원이 오키타의 모습이 보이자 마자 부리나케 10발자국도 넘는 거리를 뛰어와 90° 각도로 정중히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예약을 못했습니다. 모리 상. 혹시 자리가 있나요?」
예절 바르게 자리를 요구하는 오키타의 말에 여전히 90° 각도로 절을 하며 말을 하는 점원이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자신의 왼팔을 길게 뻗어 민주와 오키타가 가야할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물론 있습니다. 가시지요.」
능숙한 점원의 안내를 받으며 오키타와 민주는 걸음을 떼었다.
끝없는 투쟁
「메인 음식을 주시오.」
수석 웨이터가 오키타의 음식을 주문 받고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너무도 깔끔한 블루 계열의 식탁보가 의자에 앉아 있는 민주의 종아리 부위를 부드럽게 건들이고 있었다.
「고마워. 오키타.」
민주가 오늘로서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오키타의 두 눈이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승리감으로 살짝 빛났다.
「여기서 만나네?」
민주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너무도 역겨운 유키의 목소리가 민주의 귀를 심하게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는 청천벽력의 충격에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테이블과 바로 한 발자국에 위치한, 이 식당에서 배경이 가장 좋은 장소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유키와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이츠키가 유키의 손에 칭칭 감겨 연인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햇살이 스카이 라운지의 은은한 분위기를 타고 전면 유리를 통해 들어왔다.
유키는 강한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이츠키를 품에 안은 승리를 내 비쳤고 그녀의 그런 행동에 좋다 싫다의 어떠한 감정도 들어내지 않은 이츠키의 무표정한 얼굴이 민주의 얼굴에 꽂혔다.
「여기서 만나다니 놀라운 걸?」
오키타의 경쾌한 말이 무표정의 얼굴을 한 이츠키의 굳은 얼굴과 유키의 신나 하는 얼굴에 닿았다.
「합석할까?」
갑작스러운 소리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소리였다.
이츠키의 굵은 음성이 고요히 너무도 고요히 민주의 귓가에 울렸다.
심장이 쿵하고 저 밑바닥으로 한없이 떨어지고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이 긴장으로 그렇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그의 음성이었던 것이다.
「그럴까?」
「그럴까?」
오키타와 유키의 음성이 묘한 부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내 뱉어졌다.
오키타의 두 눈이 민주의 얼굴을 세심하게 살폈고, 유키의 거만한, 오만한, 건방진 두 눈이 즐거운 듯 민주의 얼굴을 살폈다.
순간 민주는 자신이 이 자리를 박차고 저 전면 유리를 통해 밖으로 거침없이 나가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그러죠.」
그렇게 합석을 하게 된 네 사람은 각자의 음식을 받아 각자가 원하는 사람을 향해 말을 해내기 시작했다.
민주의 오른쪽에는 역겨우리 만큼의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유키가 앉았으며, 민주의 맞은 편에는 아까와 같이 앉아 있던 오키타가, 그녀와 대각선에서는 햇볕이 들지 않는 유일한 그늘의 장소에 이츠키가 앉았다.
「이츠키. 이번 약혼식은 어디서 할거죠?」
애교가 역겨우리 만큼 질컥질컥하게 묻어나는 유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주는 자신이 애써 입에 넣고 있던 음식을 하나도 위에서 환영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약혼식... 유키 좋을 대로하지.」
억양이 없다.
억양이 없이 단지 굵기만 한 음성이다.
심중을 결코 알 수 없는 단지 고요하게 울리는 굵은 음성인 것이다.
「축하하네. 이츠키.」
오키타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민주는 유키의 유들유들한 말을 듣고, 오키타의 축하의 말을 듣고 이츠키가 지금 어떠한 표정을 하고 있을지가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사카이에게 곧 청혼을 할 생각인데.」
순간 그녀의 궁금증은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패닉의 상태를 맛보기 시작 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민주가 들고 있던 포크를 힘없이 떨어뜨릴 정도의 강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민주의 포크가 강한 소리를 동반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멍해 있던 민주의 발에 강한 충격이 엮이면서 자신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포크가 불행하게도 얇은 샌달을 신고 있던 민주의 발등을 찍었던 것이다.
「괜찮나?」
언제 그가 자신의 옆자리로 왔단 말인가?
이츠키가 민주에게로, 그보다도 훨씬 가까이 있던 오키타가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 민주의 옆으로 와서는 그녀가 포크에 발을 다치지나 않았는지 확인을 하기에 나섰다.
당황한 오키타와 화가 나서 분노로 씩씩대는 유키의 숨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고마워.」
쉰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목에 가래와 같은 끈적끈적한 액체가 자신의 점성을 뽐내며 목소리를 막고 있는 듯했다.
순간 자신의 발을 살피던 이츠키의 눈이 민주를 올려다보는 대열로 한없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다.
자신의 주위에는 자신을 부담스럽게 죄어오는 오키타도 자신의 남자를 탐내는 역겨운 유키도 없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민주의 주위를 감쌌던 레스토랑의 감미로운 음악도 유키의 신경에 거슬리던 목소리도 오키타의 놀람의 소리도 없다.
오직 그의 깊은 눈빛과 자신의 빨려 들어가고 있는 눈빛이 있을 뿐이다.
「이츠키!!!」
깨어났다.
이츠키가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을 빠르게 거두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그녀의 환상은 단 3초를 발하고 끝이 났다.
끝없는 투쟁
얼마의 시간이 흘렀던가.
이츠키가 자신의 다친 발을 살피고 나서부터 분위기를 심각하게 침체되어 갔다.
유키의 볼멘 소리도 소리이거니와 오키타의 침묵도 무척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다.
순간 유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유키의 행동이 무척이나 의심스러운 민주였다.
뭘 생각하고 있지? 유키?
나쁜 장난을 칠 생각이라면... 사양한다.
난...
나에게서 빼앗아간 나의 사랑에 처절히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야.
너에게 결코 그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결국 민주의 의심을 해결하듯 유키의 손에 들려있던 붉은 포도주 잔이 민주의 하얀 블라우스를 향해 거침없이 부어졌다.
순간 민주의 가슴을 향해 내 달리는 차가운 기운과, 그와 같은 속도를 내는 붉은 포도주가 일부러 쏟았다는 증거를 남기며 블라우스의 많은 부위를 빨갛게 덥쳤다.
「어머, 미안. 손에서 미끄러졌네.」
유키의 고소해 하는 얼굴이 민주의 얼굴에 비쳤다.
이츠키의 오른 손이 조용히 들고 있던 자신의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민주의 얼굴이 살폈다.
그리고는 두 눈이 민주의 다음 행동을 기대한다는 듯 반짝 빛났다.
참을 수가 없다.
그 앞에서... 내가 사랑하는 그 앞에서 나에게 일부러 이런 추한 꼴을 보인 너를 참을 수가없는 나다.
민주는 이성을 찾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렇게 이성에 기대어 멋지고 정숙하고 예의 바른 여자이고 싶지 않았다.
민주가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섰다.
두 주먹을 꼭 쥐고 지금이라도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조막만한 유키를 팰 표정의 민주였다.
순간 민주의 블라우스를 듬뿍 적신 포도주가 자신이 적신 공간이 모자랐는지 너무도 선명한 붉은 색을 띠며 뚝뚝 붉은 색 카펫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주의 곁에 앉아 있던 유키가 민주의 너무도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고 여유의 웃음을 얼굴에서 지웠다. 그리고는 금새 이츠키에게 도움을 청하듯 난처한 얼굴을 내 보였다.
하지만 이츠키는 민주의 모습만을 바라볼 뿐 아무런 행동도 해 주지 않았다.
단지 무척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사카이.」
오키타가 무척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무라는 듯 유키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의 하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민주는 그가 건네주는 손수건을 받아 척척 흘러내리는 붉은 색의 액체를 닦아 내렸다.
유키의 입에서 비웃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괜찮나?」
이츠키의 관찰의 표정이 민주의 행동을 주시했다.
「괜찮아.」
너를 죽이고 싶을 만큼 경멸한다, 유키.
허나 이번만은 참을 거다. 유키.
이번만은 내 인내를 바닥내며 그렇게 참아 본다.
민주는 자리에 다시 곱게 앉았다.
축축하게 늘어지고 있는 블라우스의 폼이 우스웠다.
그녀 자신도 붉게 늘어지고 있는 블라우스의 폼 같이 그렇게 우스운 모습이 된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상했다.
「옷에 음식물을 묻히면 보기 흉한데, 더군다나 흰색 옷에 붉은 음식물이 묻으면 더욱 추해 보이긴 하지.」
민주는 식탁의 천 밑으로 두 손을 놓아 꼭 쥐었다.
다시 한 번 그 따위의 소리를 내 뱉는 다면 더 이상 그녀의 체면 따위는 자신의 손 힘에 의해 땅에 곤두박질 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역겨운 유키의 향수 향기와 말투를 듣지 않을 수만 있다면 온 몸이 붉은 포도주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흰색 옷에 붉은 물감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
너무나 툭 던져진 말이다.
민주를 바라보며 동정으로 지껄인 말도 아니고, 신중하게 유키를 훈계한 음성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음식을 먹으며 한마디 툭하고 뱉어진, 공중으로 흩어진 여러 개의 단음에 불과 했다.
민주의 놀란 눈이 희망으로 그렇게 이츠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서, 눈빛에서, 동작에서 무언가를 기대했던 민주는 심한 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는 무척이나 맛 좋은 스테이크를 잘 오리고 있을 뿐이었다.
유키의 얼굴이 이츠키의 말 한 마디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렇게 또 민주를 감싸고, 위로하는 말투를 내 뱉는 그가 미운 유키였다.
그렇게 자신의 주위를 끌고 있는 이츠키를 가로채는 민주가 싫은 유키였다.
오키타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이츠키 그가 던진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가 툭하고 내 뱉은 말은... 민주를 향한 무슨 감정으로 내 뱉은 것이냔 말이다.
자꾸만 그에게 꿀리고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오키타였다.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이츠키에게로 끌려들어 가는 민주를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운 오키타였다.
끝없는 투쟁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유키의 얼굴이 또다시 아까와 유사한 모양을 나타내며 미소를 떠 올렸다.
이츠키가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이, 오키타가 화장실을 간 사이 고급 식당의 예정 자리에 둘만이 남은 어색한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