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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장
전 광 용
분위기가 바뀌어지는 첫날이란 아무 경우에도 얼마간의 어색한 기분은 모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호(文湖)에게는 몇 달을 쉬다가 접어든 일자리였다.
그는 음악에 있어서의 지난날의 이력이라든가, 또는 이 악단에서 가장 연장자라는 조건이 합쳐 단원들에게서 악장(樂長)이라는 칭호로 불리어졌다. 물론 연주는 문호의 첫 리드로 시작되는 것이요, 곡목도 그의 주관으로 선택되는 것이었다.
흡사 그림의 풍차(風車)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선풍기가 구석 구석에서 그 특유의 음향을 내면서 돌고 있건만 홀 안은 무더워서 배겨낼 수가 없다.
수백 개의 자리에 거의 공백이 없이 들어찬 퇴근 시간 직후의 제때를 만난 신장개업의 비어홀은 어시장의 아우성 같은 소음으로 비비 꼬여 어지간한 대화는 옆자리에서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맥주병의 부딪는 소리, 마개를 빼는 소리, 사기그릇의 질그렁거림.
식탁과 식탁의 좁은 사이를 보타이¹의 머릿기름이 반질한 웨이터가 바쁜 걸음을 치고 오가는가 하면, 첫 시합의 정구 선수같이 새하얀 유니폼으로 감싼 웨이트리스가 종종걸음으로 분주히 싸다니고 있다.
스물 안팎의 여학교를 갓 나온 듯한 아직 세속의 더러운 물에 덜 젖은 싱싱한 얼굴들은 이마마다 땀이 구슬졌다. 어쩌면 그 인조 진주 목걸이와 흰 샌들까지 그렇게 통일된 것인지 인어(人魚)같이, 그 탁한 공기 속을 헤엄치고 있다.
붉고 푸른 네온과 매혹적인 형광등이 아득히 넓은 공간을 뽀야니 불투명하게 밝히고 있다.
홀 한쪽 구석에서 맥주 몇 병을 비우고 난 악사들은 다시 무대 위루 올라섰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리는 문호다. 인생에 대한 자학적인 폭발 수단으로 폭음해온 술이 위장을 녹이고, 이제는 마지막의 생명인 손가락마저 마비시켜오고 있다.
이십여 년 전 동경 히비야² 공회당의 공개적인 첫 연주에서 청중을 도취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을 때는 희대(稀代)의 천재라는 평을 받았었다.
지금 마비되어가는 손가락의 신경은 알코올의 자극으로 겨우 그 기능을 지탱하고 있다.
문호는 얼근한 기분으로 첼로를 잡은 채 의자에 걸터앉았다. 활을 들어 연주 때마다 거의 습성화된 손짓으로 음정을 맞추었다.
다섯 자 여섯 치의 키 큰 골격은 악기와 어울렸다.
마음의 구석구석이 거미줄로 얽히고, 관절 마디마디에 좀이 들었지만 외관으로는 아직까지 어엿한 오십 고개의 거구(巨軀)의 의젓한 남성이었다. 입후보의 연단에라도 나서면 첫인상에 관중을 위압할 늠름한 위풍이기도 하였다.
문호는 활을 들어 첫 음을 그었다. 심벌즈가 울리고 트럼펫, 색소폰, 클라리넷의 경쾌한 리듬이 홀 안의 소음을 삼키고 펴져 흘렀다.
술기운에 광택 흐린 수많은 눈알들이 무대 쪽으로 쏠렸다.
술이 얼근한 탓도 있었지만, 이 둔탁한 공기에 벌써 익숙해졌음인지 문호는 인제, 아까 첫 파트의 첫 곡목처럼 어색한 기분은 전선히 가시어졌다. 엷은 모래밭에서 깊은 물로 뛰어든 물고기처럼 생기를 띠었다.
한 곡목이 끝나자 홀이 송두리째 날아갈 듯한 박수가 폭풍처럼 진폭을 넓혔다. 간간이 함성이 섞였다.
다음 곡이 또 계속되었다. 레코드에서 이미 이름이 팔린 여가수의 노래에 농탕치던 잡어(雜魚) 같은 술꾼들도 일순 정적 속으로 휩싸여 들어가는 것같이 악기와 노래의 음향 이외에는 아무 잡음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여졌다.
박수와 앙코르, 술과 노래의 뒤범벅이 된 도가니는 불을 뿜을 듯이 이글거리고 있다.
이럴 때는 문호도 신이 났다. 어떤 멤버, 어떤 자리, 그런 꼬지꼬지한 구별은 안중에 없었다. 시선의 정력이 말끔히 보표³에 못 박혔고 손가락은 나는 듯이 움직여졌다.
며칠 전 이 일거리의 교섭으로 드럼을 담당한 P가 찾아왔을 때 차마 앉아서 죽으면 죽었지, 목롯집과 마찬가지인 비어홀 밴드 악사로까지 전락할 수야 있느냐고 망설이던 멋쩍은 심정은 완전히 가시어진 것만 같았다. 보표와 악기, 그리고 음향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는 이 순간의 그였다.
미군 부대를 따라다니던 때는 그래도 상대가 군대요 외국인이고 보니, 누군지 알 것이 무어냐 하는 식으로 자존심의 최후의 선을 지킬 수 있다는 뱃심과, 두툼한 호주며니의 자위로 느닷없이 세월을 주름잡아갔던 것이다.
삼십 대, 그것은 문호에게 있어서, 예술 면에서는 물론 인간으로서도 가장 아낌을 받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의 연주에 있어서의 뛰어난 재질은 악단에서 커다란 촉망이었지만, 특히 그의 동인 그룹이었던 현악 사중주단에서의 그의 인간적인 아량과 주동적인 추진력은 늘 동료들의 존경과 아낌을 받았다.
해방 전해 가을, 그는 처음으로 하얼빈에서 교향악단의 처녀 지휘를 하였다. 그것은 문호에게 있어서 연래의 숙망이 이루어지는 찰나였다. 아니 하나의 예술가로서 거의 불구에 가까운 지금도 그 욕망과 이상은 아직 한 가닥의 향수 같은 미련을 가슴속에 죄어들게 하는 것이었다.
북만의 가을은 한기가 빨리 서렸다. 키타이스카야 메인 스트리트의 M극장 무대에는 백여 명의 악사가 검은 옷에 흰 타이를 하고 마치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장거리 선수처럼 큰 호흡 속에 숨을 삼켜가면서 지휘자의 등장을 대기하고 있었다. 이층 객석 통로 계단에까지 초만원을 이룬 청중들은 기침 소리마저 삼켜가며 개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수 소리가 장내를 휩쓸었다. 무대 한쪽으로부터 후리후리한 키의 지휘자 문호가 들어오고 있다.
지휘봉을 든 문호가 무대 복판에서 정중한 인사를 하자 객석은 다시 박수의 우레로 화하였다. 문호는 지금도 가끔 이 시간의 감격을 술잔 속에 담아 삼켰다가는 몇 번이고 반추하는 버릇을 가지게끔 되었다.
이날의 곡목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었다. 이와 같은 첫 번이자 마지막이었던 처녀 지휘의 곡목이 자기의 일생을 가시밭으로만 이끌어가는 인과가 아닌가 하는 턱없는 억측이 무심중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악장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객석은 무인의 공간 그것이었다. 청중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더 도취하였는지도 모른다고 문호는 두고두고 아름다운 추억을 곱씹 어보는 것이었다.
고막이 터지는 듯한 박수와 환호성 속에서 문호는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의 손목을 감격에 차 굳게 잡았던 것이다.
이날 밤 문호는 송화강변을 마차로 달리면서 황홀한 꿈속에 잠겼다. 앞으로의 나아갈 길은 망망한 대해처럼 탁 트여 있는 것만 같았다. 백계 러시아인 레스토랑에서 진한 보드카 칵테일을 마시면서 고국으로 돌아갈 꿈, 구라파 만유에 대한 미래의 이상을 더듬으며 하늘로 줄달음질 치는 환희 속에서 밤을 새웠다. 정열의 과잉이었을는지 몰라도 사는 보람은 있었다고 두고두고 뒤져보는
아름다운 회상의 한 토막이었다.
다음 파트가 끝나 악기를 의자 옆에 세워놓고 무대 뒤로 내려왔을 때다. 손수건으로 땀을 씻고 있는 문호의 손목을 덥석 잡는 사람이 있었다.
“아, 여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셈이오?”
중학 동창 김건우(金建宇)였다. 너는 죽어도 그 손만은 떼어놓고 죽으라던 그다.
해방 후 귀국하여 처음 만났을 때에도 첫마디로 한다는 소리가 그 손은 보험에 들었느냐던 익살꾸러기의 털털한 인간이요, 그를 아끼는 친구였다.
말문이 막혀버린 문호의 어찔 줄 모르는 거동에는 개의할 것 없다는 듯이 건우는 다짜고짜로 자기 좌석 쪽으로 이끌고 갔다.
“살아는 있었군.”
혼자 뇌까리면서 연방 문호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문호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요, 돌연한 사태에 어리둥절하여 몸 가눌 바를 몰랐다.
자리에 앉혀놓자 건우는 맥주 컵을 문호 앞으로 내밀었다.
“자, 우선 한잔 들게.”
문호는 잔을 받아 들고, 건우의 동행들에게 멋찍은 생각이 들어,
“참 오래간만일세…….”
어정쩡한 한마디를 뱉고는 맥주를 한 모금에 들이켰다. 갈하던 목이 탁 트이는 것만 같았다. 찬 기운이 꿀대에서 내장까지 훑어내려가는 시원함을 느꼈다.
자기네 악사끼리면 몰라도 손님 자리에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건우의 동행인들에게 실례되는 것만 같아 반배하고는 자리를 일어서려 하였다.
“난 아직 연주가 있으니까 이따 만나지.”
“연주는 무슨 연주야, 딴따라두 연주야?”
건우의 취한 목소리가 가슴에 거세게 부닥쳐 왔다.
“자네가 이렇게까지 타락하다니…… 자 술이나 듬세.”
문호의 말하려는 자세를 가로막고 건우는 다시 꿀컥 들이켠 잔을 문호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하기야, 예술로 살 땐가, 돈이 제일이지.”
건우가 관계의 요직에 앉아 있을 때에도, 문호는 건우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별로 찾아가지 않았다.
더욱이 미군 부대의 전용 밴드에 관계하고부터는, 건우는 물론 주위의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자기의 소재를 일절 밝히지 않았다. 간혹가다 노상에서 만나는 음악인이 있어도 그 자리만의 적당한 대답으로 회피하여왔다.
해방 직후의 악단 분위기란 그의 처신에 있어서 난처하고도 미묘한 입장을 만들어주었다.
좌우익의 사상적인 대립이 격심할 때에는 이런 문제에 특이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예술만을 위주로 생각하여온 그에게 평범한 악사의 한자리를 겨우 유지하게 했을 따름이다. 투쟁의 선봉에 서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깃발을 높이 들지 않는 그에게 악단의 주요한 위치는 물론이거니와, 간혹 그의 연주에 있어서의 재능까지도 묵살해버리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러한 사상적인 문제와 그 후에 생긴 교향악단 간의 대립은 자연히 악계에 있어서의 헤게모니의 쟁탈전으로 변하였고, 여기에 따라 구성 멤버의 규합도 자연히 파벌의 색채를 띠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같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움직임 속에서 시류적인 파쟁에 초연한 문호는 자연히 방관자의 위치로 물러나게 되었다. 간혹 이 땅 초연(初演)의 곡목을 택하는 연주회에 있어서, 그의 힘을 빌리려는 경우 같은 데 겨우 연관을 가지게 될 정도였다.
그리하여 그는 끝끝내 단 한 번도 조국의 무대에서 컨덕터⁷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사변을 만났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운명이라고나 할까, 죽을 고비를 겪던 피난 중에 우연히 유엔군 일선 부대에 위문 순회 연주로 떠난 것이 기연(奇緣)이 되어서 거기에 완전히 발이 빠지고 말았다.
무엇을 좀 해야 되겠다고 뉘우쳤을 즈음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악계는 다시 질서가 잡혀갔고, 자기의 타락상은 전문 음악인들 간에 어느덧 야유의 조소로 퍼져갔다. 다시 대부분의 유엔군이 철수하고, 부대의 수가 줄어들게 되자 종군 밴드의 수명도 서로의 격렬한 경쟁 속에서 그 존속조차 힘들게 되었다.
결국 연주 이외의 다른 것을 모르는 주변머리 없는 그는 팔팔뛰는 젊은 재즈 악사들 속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건우의 자리에서 무대로 돌아온 문호는 전신에서의 기력을 탕진한 것같이 풀이 꺾였다.
드럼 악사에게 리드해줄 것을 당부했다. 첼로의 지반(指盤) 위에서 자기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의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그저 기계적으로 줄을 퉁기었다. 동경, 하얼빈, 삼팔선, 해방 직후의 서울, 피난살이, 일선 부대·…‥ 가지가지의 흘러간 영상들이 아무 순서도 없이 헷갈리며 머릿속에 비비어 들었다.
아무것도 자신을 뉘우칠 건덕지는 없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지향할 아무 지표도 없었다. 희망도 이상도 포기된 상태, 그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 술을 생각하여보았다. 그것만이 유일의 마비제요, 순간의 위 안이라 생각되었다.
문호는 이튿날 건우의 명함에 적힌 사무실 주소로 찾아갔다. 보험 회사의 간판이 현관 대리석에 굵직하게 새겨져 있다. 그는 명함에 적 힌 회사 이름과 대조하여 보며 안으로 들어섰다.
마감 시간쯤 되어 꼭 들르라고 하였으니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장실 문을 열었다.
여비서인 듯한 앳된 소녀가 나타났다. 칸막이 선반으로 안쪽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사장 계신가?”
“안 계세요.”
훑어보던 소녀의 검은 눈동자는 문호의 후줄그레한 보타이에 머물렀다.
“이 시간에 분명 있겠다고 했는데……”
“네! 문 선생님이세요?”
“응.”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사장님은 손님이 오셔서 잠깐 다방에 댕겨오신 댔어요. 여기 와 앉아 기다리세요.”
문호는 소녀에게 인도되는 대로 응접 소파에 깊숙이 파묻혔다.
‘南北統一’ 액자와 태극기가 한쪽 벽에 걸려 있는 것이 첫눈에 띄었다. 소녀가 가져다주는 찬 타월로 목덜미와 이마의 땀을 닦았다. 부채질을 하면서 한숨 돌리고 나서 파이프에 불을 댕기었다. 가슴이 뻐근하게 길게 첫 모금을 들이켜고 나니 속이 후련해왔다.
책상 위에 놓인 세 대의 전화기 중에서 새하얀 전화통이 더 눈에 차 들어온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전화 걸 대상이 아무 데도 없다. 건너편 벽에 붙여놓은 그래프용지의 통계표에 눈이 갔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에야 주단으로 깔려 있는 폭신한 탄력의 감응을 비로소 느꼈다. ‘도별 가입자 통계표’니 ‘월별 징수 상황표’ 니 하는 것들이다. 붉은 잉크의 곡선이 오선지(五線紙)에 흡사하다는 이 외에는 아무런 감홍도 없다.
창가로 갔다. 저녁볕을 막으려고 내려놓은 블라인드 커튼을 들고 밖을 내다보았다. 밑이 아찔하다. 그러고 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가 올라온 곳은 삼층이었음을 깨닫는다. 페이브먼트⁸ 가로 한쪽에 일렬횡대로 늘어선 자동차들의 네모진 위 딱지가 형형색색으로 어린아이의 장난감을 연상시킨다. 그 윗뚜껑을 순서로 두들겨가면 실로폰 악기의 음향이 나리라는 생각이 든다.
햇살이 이마에 뜨겁다. 들었던 커튼을 놓고 돌아섰다. 벽에 걸려 있는 큰 거울에 상반신이 비친다. 가까이 갔다. 얼굴과 얼굴이 맞섰다. 자연적인 퍼머넌트라고 농을 받던 고수머리에 흰 가락이 많이 섞이었다. 이마도 더 많이 벗어진 것 같다. 그것보다도 깊어진 주름살이 거울 속의 광선에 반사되어 더 뚜렷하게 홈을 긋고 있음에 눈이 따갑다. 이제 정말 다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찌링 하고 전화기가 울렸다. 자세를 바꾸었다. 어느 것인지를 모르겠다. 수화기를 놓고 난 소녀가 사장이 곧 돌아오신다고 알려주었다. 다시 소파에 기대어 파이프를 닦아 한 대 피워 물었다.
“아따, 자네가 없으면 크라운장에서 영업을 못 할까 봐!”
건우는 문호의 팔을 이끌어 차에 밀어 올렸다.
“이놈의 세상은 신경이 좀 둔해져야 해. 제 쓸개를 가지고는 못 산다니까.”
문호는 하는 수 없이 맥 풀린 웃음만을 헤벌렸다.
“오늘 저녁 같이 한잔하면서 아까 그거나 좀 잘 생각하잔 말이야.”
문호는 혈압이 높으니 술을 조심하라는 의사의 경고를 또 입속에서 묵살하여본다. 서로들 잡아먹지 못해 혈안으로 이를 박박갈고 있는 이러한 세태에 친구의 호의가 뼈에 사무쳤다.
건우는 건우대로 어젯밤 이후의 주판을 다시 놓아본다. 문호를 앞장세워 음악 연구원의 간판이라도 걸게 되면 학교는 등록금으로 유지될 것이고, 보험 회사는 그 학원 재단으로 면세 조치가 될 것이라는 미래의 설계도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다.
따라놓은 첫 잔 컵을 마주치고 들면서 건우는
“자 이제부터 재출발이야”
하고 쪽 들이켰다.
문호도 잔을 비웠다.
“더 긴말 안 하겠네. 실무는 안 해도 좋으니 감사역(監査役) 자리만 지키고 있으란 말이야. 나도 사업이 이쯤 팽창해지니까 전부 남의 손에만 맡길 수도 없구, 마음 놓고 의논할 사람이 필요해진단 말일세. 천하가 도둑놈 판인데 안심하구 맡길 수 있어야지. 중역이라구 앉혀놓으면 제 것으로 이권을 바꿔 챌 생각이나 하지. 심각할 건 없어. 자 한잔, 여보 색시 술 따라!”
문호는 술을 마시면서도 비어홀의 밴드가 궁금하여졌다. 많지도 않은 멤버에 하나 빠진다는 건, 더욱이 리더 격인 자기가 빠지면 지장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잔을 들었다.
“나도 자네 생각을 모르겠나? 고맙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하잔 말이야. 고맙기는 뭐가 고마워, 나도 잘된 판인데.”
문호는 말하는 것보다는 술 마시는 것으로 거의 대답을 메웠다. 둘 다 흠뻑 취했다.
“자, 직업 여성들, 귀빈을 모셨으니까 노래나 부르지.”
건우는 술잔을 기생에게로 돌렸다.
“오늘은 음악의 대가가 왔으니까 어디 그 명곡을 뽑아보란 말이야…… 응, 우선 목을 축이고…….”
여자들의 노래가 계속되는 사이에도 문호는 쉬지 않고 주는 잔은 모조리 비웠다.
“이번에는 김 사장님 하나 부르세요.”
옆의 기생들도 박수로 보조를 맞추었다.
“응, 그렇지 ‘유붕자원방래(有朋 自遠方來)’ 하니 내가 한 곡 부르지 않고 견딜 수 있을쏘냐 말이다. 내 노래는 돈 먹은 비싼 노래야.”
건우는 서슴지 않고 일어섰다.
「오 솔레미오」, 그것은 중학 시대부터 건우의 장기의 애창곡의 하나이다.
그도 음악을 전공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방 관리로 있던 그의 아버지는,
“이 자식아, 사내 녀석이 오죽 못났으면 광대처럼 목통을 팔아 밥 먹구 살겠단 말이냐. 그런 소리는 말고 고등 문관이나 합격하여 군수 한자리라도 하려무나.”
완고한 아버지의 우격다짐으로 건우는 법과를 택하였고, 이차의 고등 문관 시험에 실패를 하자, 지방 관청에 그대로 취직했던 것이다.
그것이 해방 이후 급진적인 승진을 하여 국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독직 사건에 연관되어 권고사직을 당하자 실업계에 투신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돈만 있으면 다 돼. 응, 돈이라니까. 그러문 장관도 되구. 국회의원두 되구. 문호, 그거 옳소! 국회의원에 대면 내가 자격이 부족되겠나? 나도 한밑천 생기면 입후보하겠네. 제까짓 거 안 될 것이 뭐냐 말이야.”
문호는 자기의 너무도 무기력한 데 비하여 패기 있는 건우의 심정에 동조적 인 선망을 느끼기도 하였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건우는 그 작달막하게 다부진 몸뚱이를 재치 있게 돌리면서 춤도 추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병신 구실밖에 못 하는 문호도 권에 못 이기어 노래를 불렀고, 색시들에 이끌려 스텝도 한두 발자국 떼다가 취기를 이기지 못하여 주저앉고 말았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문호는 겨우 눈을 떴다. 노래를 부르고, 기생을 껴안고 춤을 춘 것 같은 흐릿한 기억은 희미하게 되살아오나,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T동 파출소 옆 집이라고 말했던 그것으로 지프차가 실어다준 모양이다.
갈증이 나고 속골이 아직도 흔들린다. 가슴속도 메스껍게 울렁거린다.
옆방에서 아들 준식의 바이올린 연습 소리가 들려온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야 이 자식아, 사내대장부가 할 일이 없어 깽깽이쟁이를 하겠단 말이냐. 그럴라면 상급 학교구 뭐구 다 집어쳐라.”
이것은 삼십 년 전 중학 졸업반에서 입학시험 준비를 할 시기에. 아버지의 문호 자기에 대한 호통이었다.
“아버지, 아냐요. 아버지는 너무 완고하셔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해요.”
“에키, 이놈, 무슨 그따위 대답질을·…….”
그러나 지금 생각하여도 좀 건방지지만 멋진 대답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것은 문호의 중학 시절의 한 풍조를 이룬 인생 표어 같은 것이었다. 문호는 이 진리의 선봉적인 실천자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전연 달라졌다. 의과를 하지 않으면 학비를 대어주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강경한 태도였다.
대지주요, 지방 유지인 아버지의 고집도 꺾는 사람이 없었다. 입학 원서 제출 직전에 담임 선생이 아버지를 찾아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헛수고였다.
일 년 예비 학교를 거쳐서야 난관의 의과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이 학년 진급기를 앞두고, 시체 해부실의 실습에서 구역을 느낀 후로는 학교를 팽개치고 아버지 몰래 다시 음악에로 옮겼던 것이다.
문호는 최초의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한 험준한 길을 택하였다고 근래에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좋아 선택한 길인 만큼 후회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현재의 환경적인 조건에 불만은 없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숙명처럼 꿀꺽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바이올린 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들려온다. 이런 때면 아버지의 이야기가 되살아왔다.
사실 잘되면 예술가요, 전락하면 자기와 같은, 아버지 말대로의 딴따라패다. 그뿐이 아니라 자칫하면 패가망신 이다.
오래간만에 일자리가 생겨, 첫 출근이라고 할 때 악기를 들고 나선 문호더러 어디를 가느냐고 아들이 물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나서려니까,
“아버지도 스타일 버리셨어요.”
유행어 조로 지껄이던 아들놈의 말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드럼 악사가 찾아왔을 때의 대화에서 이미 그 기미를 알아챈 녀석의 소리에 뼈가 있다고 생각되었으나 그대로 대문을 차고 나섰던 것이었다.
아들 준식을 불러 냉수를 떠 오라고 시켜 한 사발을 숨도 안 쉬고 들이켰다. 갈증이 좀 풀려온다.
내년에는 저놈도 대학 입학이다. 음악대학을 가겠다는 소원이다. 이 구질구질하게 사는 제 아비의 생애에 무슨 매력이 있어 또 음악을 선택하려는 것일까?
“야 준식아!”
아들을 불렀다.
“너 정말 음악을 전공할 테냐?”
“네, 그러문요.”
확고한 대답이다.
“너 음악대학은 시험 준비를 안 해도 된다던?”
“실기가 중점이라나 봐요.”
그 생각부터가 자기와는 다르다. 위대한 예술가를 목표할수록 굳건한 지성의 토대 위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자기다. 그러했던 자기 자신이 지금은 요 모양 요 꼴이다. 시작부터 벌써 틀려먹었다.
“이놈아, 예술에 대한 자기의 줏대가 서고, 이론적인 무장까지 갖추지 않은 단순한 연주가는 놀음쟁이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아들에게 주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자학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요?”
이놈의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냉소가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아버지 때는 다르다. 그때는 예술이 젊은이의 호프였다. 말하자면 하나의 낭만이…… 해방된 지금엔 젊은 너희들에겐 너무나 할 일이 많다.”
“……”
“그때는 고문에 붙어 일제 관리로 편안히 먹고사느냐, 의사로 돈벌이를 하여 잘사느냐, 그런 소극적인 희망이 말이야…… 그러니까 예술이 더욱 위대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호는 더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자기 혼자의 회한이나 자멸적인 넋두리를 아들에게 퍼붓는 것 같은 억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너희에게는 할 일이 더 많아…… 예술보다도, 더욱이 남자에게는…… 하기야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만 있다면야!”
“그래도 저는 해보겠어요.”
“이놈아, 해보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꼭 이루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아요? 아버지!”
끝까지 제 의지를 버티지 못하는 아들 녀석이 더 못나게 보였다.
“생명과 바꾸려는 신념이 있어도 힘 드는 가시밭인데……”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문호는 아들 쪽을 외면하고 돌아누웠다. 부자는 한참 말이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거일동을 지켜보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동작을 알 길이 없다.
“그러지 않아도 나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문호는 비장의 발표라도 하려는 듯이 침을 꿀컥 삼켰다.
“수억 대 회사의 감사역으로 바꿔 앉을까 하고…….”
아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친구의 보험 회사에 말이야, 네가 대학으로 들어가면 학자의 부담도 커질 거구…….”
뒤에서 왈칵 아들의 울음소리가 터졌다.
“아버지! 지금까지 살아오신 것은?”
“그러게 말이다. 나도 신중히 생각 중이다.”
아들의 탄력 있는 반응이 차라리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면 영영 타락이에요.”
문호는 그 다음 할 말이 없었다.
인간 오십 년을 통하여 경리나 통계 사무에 대하여는 영영 백지인 자기, 아무리 친구의 우정이라 하기로 의자만 지키고 놀면서 타먹는 월급, 그 호의가 이 난세에 몇 달이나 지속될 것인가. 거기다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투자 한 푼 하지 않은 회사에.
‘허수아비, 허수아버지.’
혼자 중얼거렸다.
악기의 포지션을 힘차게 눌러온 왼쪽 손가락 끝이 부르르 떨렸다.
배운 도둑질이란 버리기 어려운 것이라고 새삼스럽게 뼈에 저려왔다.
울타리 그늘이 창가를 가리어왔다. 문호는 첼로 케이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어젯밤의 과음이 사지를 떨리게 하였다. 소란한 거리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은 과거로만 줄달음쳤다. 중학교 일 학년 때 바이올린을 갓 시작하였던 때의 일이다. 같은 읍에 있는 S여학교의 예술제에 갔었다. 그날 밤에 현혹되던 바이올린 소리에 맞추어 자기 또래의 여학생이 무대 위를 날듯이 휘돌던 율동, 그것보다는 그 격동적인 음악에 더욱 감동되었었다. 그것이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라는 것도 후에 알았다. 그렇게 대단한 곡은 아니면서 자기 가슴에 감동을 일으킨 충격은 그 후의 어느 곡보다도 컸던 것이다.
일생 음악으로 살겠다는 결의는 이날 밤 이후 더 굳어졌다.
밖에 나왔을 때는 초가을의 선들바람이 축축이 젖은 땀에 선뜻하였다.
그 후 첼로를 전공한 음악 선생이, 네 체구와 소질로는 바이올린보다 첼로가 나을 것이라는 권유로 그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그 황홀하던 꿈, 그 피가 끓던 정열, 그 지칠 줄 모르던 끈기, 그것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음악은 마지막 파트다. 손님들도 많이 돌아가 빈자리가 많아졌다. 아무래도 파장이란 싱거워지는 것이다. 역시 고기는 물이 가득 찼을 때 좋다. 맥주홀의 삼류 악단이라 하여도 사람이 가득 차 박수 소리가 우렁차면 신도 절로 나는 것이다.
손가락의 탄력이 빗나갔다. 어슴푸레 감았던 눈을 떴다. 첼로를 돌려보았다.
제일 큰 줄이 끊어졌다. 땅바닥에 맥없이 내려 드리운 줄을 끌어올렸다. 다른 줄들은 여러 번 끊어져 바꾸어 넣었다. 그러나 이 줄만은 피난지에서 새로 장만한 이래 아직 한 번도 끊어진 일이 없었다.
자기의 불우한 타락상을 가장 역력히 아는 줄이요, 자기의 손때가 가장 짙게 묻은 줄이다. 가슴속에 버티던 미래에 대한 요행 같은 희미한 전망마저 그 종결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남은 석 줄로 곡목이 끝날 때까지의 무료한 시간을 어름어름 맞추어갔다.
아마도 이 줄은 희망과 이상을 잃은 불구의 악사 자기 운명의 상징이라 싶어 자조(自嘲)를 억 제할 수 없었다.
홀이 끝나자 문호는 악원(樂員)들과 함께 목롯집으로 들어갔다. 술을 기껏 들이켰다.
하루살이 벌이. 그날그날 분배하여 가지는 수입. 오늘 일당의 지폐의 감촉이 ˙바지 호주머니에서 꿈틀거렸다.
문호는 드럼 악사를 끌고 다시 술집을 옮겼다: 잔이 나자 바쁘게 주고받았다.
“별수 없습니다. 문 선생님, 인생은 계산하고는 다르니까요. 그날그날 벌어먹는 것이 장땡입니다.”
문호의 과거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 친구는 막바지에 전락된 문호에게 위안 조로 말을 건네며 술잔을 권했다.
“사람 팔자 알 수 없어요.”
“글쎄, 그것이 전통이 선 나라에서야 어디 그런가? 어제의 거지가 오늘 거부가 되구, 오늘의 졸개가 내일 재상이 되구……응!”
문호는 몸을 가누지 못하게 취하여 의자에서 쓰러지려 하였다.
젊은 친구는 문호를 부축하여 술집을 나왔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 롄 소리가 울려왔다.
의사의 진단은 뇌일혈이었다. 왼쪽 반신을 쓰지 못했다. 간밤 돌아오는 길에 하수도에 빠지면서 머리에 타박을 가져왔다.
하루가 지났다. 의식은 회복되었으나 자유룹게 기동을 할 수가 없다. 문호는 눈을 멀뚱히 뜨고 있다.
그저께 집을 나간 다음에 보험 회사 지프차가 모시러 왔다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눈을 스르르 감았다.
“얘 준식아, 네 바이올린을 이리 가지고 오렴.”
명료한 발음은 아니다.
아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묵묵히 서 있다.
“글쎄, 가지고 오래두.”
손 형용을 섞어 몇 번이고 조르는 아버지의 고집에 버틸 수 없어 아들은 바이올린을 들고 나왔다.
“그 「유모레스크」를, 그것 좀 켜주렴.”
죽을지 살지, 살아도 완전한 몸이 된 것 같지는 않은 아버지의 핏기 없이 지친 모습을 보고 아들은 허수아비처럼 활을 선에 대었다.
지금 문호는 악원이 가득 찬 큰 무대 한복판에서 지휘봉을 흔들고 있는 자기 자신의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몸이 크게 꿈틀거렸다. 의욕이다. 살아야겠다. 앞으로 무엇이 꼭 크게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자기의 의지와 예술을 살릴 방향으로 틀림없이. 그것이 설령 기적 같은 것일지라도. 문호는 큰숨을 내쉬었다.
대문 앞에서 자동차의 멈추는 소리와 함께 클랙슨 소리가 울려왔다.
-끝-
2016년 7월 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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