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들은 각기 나름대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얼굴 생김새의 특징으로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듯 침팬지들도 서로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침팬지들은 각자 걷는 법, 잠자는 자세, 그리고 앉는 모양새도 특징이 있어 머리를 돌린다거나 등을 만지는 것만 보고도 어떤 놈인지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개성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각각의 침팬지들이 집단 내에서 동료들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다. 영장류 학자들이 각각의 개체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름을 붙인 행위가 동물을 쓸데없이 의인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비난한다. 이런 비판에는 개별적 차이에 대한 관심이 種 특이적 행동에 대한 연구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하지만 요즘은 각 개체의 사회적 배경이나 삶 독특한 유전적 자질 중 한 가지 요소라도 없으면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상식이 되었다. 1979년 내가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이곳 아른험의 사육장에는 23 마리의 구성원이 있었다. 그 가운데 암놈 세 마리와 수놈 네 마리는 집단 내에서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특별히 개별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여장부 마마는 이곳 아른험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침팬지로 40살 가량으로 추정되는 암놈이다. 우리는 그녀를 마마라고 부른다 마마의 눈빛에는 큰 힘이 담겨 있다. 그녀는 나이 든 여성 특유의 예의하면서도 모든 걸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마마는 이 공동체 안에서 최대의 존경을 받고 있다. 중재자로서 그녀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집단 전체가 니키에게 반응했을 때였다. 니키는 불과 몇 달 전에 우리나라에서 우두머리 수놈이 되었기에 그의 난폭한 행위는 아직 집단 구성원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마마가 나무 위로 도피한 그를 향해 천천히 그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니키를 만지고 입맞춤을 했다. 그런 다음 위키를 자기 뒷꽁무니에 붙이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마마가 니키를 데리고 내려온 뒤로는 누구도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니키는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간신히 적대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른 암놈만이 아니라 장성한 수놈까지 지배하는 집단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겨울이 다가오자 침팬지들은 넓은 실내 사육장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새로 온 수놈들은 마마를 두려워 하기도 했지만 마마의 친구 호릴라가 수놈들과 접촉을 시작하며 새로 들어온 수놈 이에룬에게 호감을 보였다 우선 야생에서는 장성한 수놈이 암놈보다 우위에 있게 됨으로 마마에게서 장성한 수놈 이에룬에게로 권력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에른과 라윗 아른험 집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수놈인 이에른과 라윗은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둘 다 코펜하겐 동물원에서 왔으며 이곳 사육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열흘 동안 같은 우리에서 지냈다. 이곳에 온 뒤로는 이에룬이 라잇보다 우위에 섰고 아마도 이에룬의 나이가 몇 살 연상일 것이다. 라윗은 놀기 좋아하고 장난끼가 많다. 이에룬이 차분한 인상을 주는데 반해 그는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친다. 이에룬은 라잇보다 나이는 많지만 모든 행동에서 굼뜨고 어색하였다. 이에룬의 위협과시는 거칠고 눈에 띄게 행동했지만 곧 피곤해지는 듯 했으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다가 미끄러지거나 비틀거리기도 했고 나무를 쥔 손을 놓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경쟁자들이 그냥 놓칠 리 없었다 이에른과 라윗은 똑같은 경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이들을 오랜 동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그들의 결속은 종종 의견의 불일치로 인해 무너졌고 집단 생활을 함에 있어 서로 적이 될 때가 많았다. 이들은 경쟁적인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룬은 천성적으로 계산이 빠르고 신경질적이며 이해관계에 민감했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누구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는 대단한 수완가였다. 이에룬 싸우기에는 나이들고 쇠약했을 뿐 아니라 중대한 신체적 결함도 갖고 있었다 반면 라윗은 이에룬에 비해 확실히 사교적이다. 그의 성격은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며 친절하다.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도 밝고 신뢰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몇몇 연구 학생들이 이에룬은 눈앞에서도 남을 속이는 것 같다고 했고 라윗은 신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나름의 인상을 들려준 적이 있다.
파위스트는 듬직한 체격을 지닌 어른 암놈으로 행동거지가 엄숙하고 무게가 있다. 전문가들조차 또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암놈인 것을 알고 놀랄 정도이다 연구원들에게 어느 침팬지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가장 싫어하는 놈을 지적하라면 놀랄 정도로 파위스트라는 이름이 거론된다. 위선적이고 비열한 인상을 주는 그녀는 심지어 마녀에 비유되기도 한다. 수놈이 공격하면 암놈은 다른 암놈들과 서로 힘을 합치는 데 비해 파위스트는 실제로 반대편에 협력한다. 어떤 수놈이 암놈을 공격하면 파위스트는 당하는 쪽에 달려들어 암놈을 물어뜯거나 때린다. 그러다보니 서열이 낮은 암놈들이 그녀를 무서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호릴라는 얼굴이 검고 등이 곧추 선 암놈 침팬지다. 날씬하고 호리호리하다 갸냘픈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성질은 무척이나 사납다. 그녀는 마마와의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높다 마마와는 처음부터 서로를 도왔다. 호릴라는 어린 침팬지를 좋아한다. 그래서 마마의 새끼인 모닉과 프란예의 새끼인 폰스를 잘 보살폈다. 호릴라의 새끼들은 태어난 지 몇 주 되지 않아 죽고 말았고 몇 해 동안은 늘 이모로 살아갔지만 얼마 후 젖이 풍부해지자 로셔라는 새끼를 입양하고 잘 돌보았다. 호릴라의 관찰 실험 중 우유병으로 수유케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집중을 일부러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나 후에 연구진들이 보상차원에서 당근 전략을 쓰자 잘 학습했을 뿐 아니라 양녀 로셔가 목이 막히면 트림을 시킨 뒤에 다시 젖을 물리는 센스있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호릴라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이 자꾸 죽자 우울증을 보이기도 했는데 로셔를 키우면서 우유와 자연수유를 병행하고 후에 자신이 낳은 새끼들에게 충분한 수유를 하면서 잘 양육하게 되었다.
니키와 단디 니키는 젊고 머리가 좋고 전체 집단에서 가장 민첩하며 곡예실력도 가장 출중한 침팬지다 그는 아주 빨리 성장해서 강한 체력을 갖게 됐고 송곳니가 치열에서 돌출하기 시작했다. 니키가 아른험 집단에 합류한 것은 대략 열 살 무렵이었고 단디는 여덟살 정도였다 니키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으나 단디는 왜소한 체격이었고 사려 깊은 눈 빛으로 이지적인 느낌을 주었다. 단디는 주변의 침팬지는 물론 사람까지도 무시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아침에 잠자리에서 밖으로 좀처럼 나오지 않는 행동을 하자 사육사가 손에 바나나를 들려 주자 밖으로 나왔다. 바나나를 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마치 오히려 사육사를 길들였던 것처럼 보였다. 단디의 지능이 뛰어남이 드러났는데 침팬지들이 탈주 사건을 일을킬 때마다 배후에 단디가 있었다. 침팬지들은 여덟 살이 되면 성적으로는 성숙하지만 사회적으로 성숙하려면 15세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단디가 하루는 사육장에 연구진들이 약간의 자몽을 숨겨 두었는데 다른 침팬지들이 이 자몽을 찾아다녔지만 못 찾았다. 그러나 단디는 오후가 되어 다른 침팬지들이 졸기 시작하자 유유히 일어나서 자몽이 숨겨진 장소로 가서 과일을 꺼내어 게걸스럽게 먹었다. 혼자서 여유롭게... 유인원들이 간혹 서로를 속일 수는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렇게 완벽할 지는 예상을 못했다.
암놈 소집단 암놈들은 대체로 함께 움직이는 편인데 서로 새끼들을 돌봐주거나 다툼이 벌어졌을 때 지원하거나 위로하기도 한다. 마마(모닉), 호릴라(로셔) 프란예(폰스) 그리고 암버르로 이루어져 있는데 프란예는 나이 많고 약하며 힘이 없다. 마마와 호릴라가 자식이 없을 때 폰스는 두 암놈의 귀염둥이였다. 암버르는 마미의 새끼 모닉을 아끼고 좋아했으며 나중에 이모가 된다. 두 번째 소집단은 아른험에서 처음부터 있었던 세 암놈들이다. 이 중 한 놈은 두 마리의 새끼가 있고 두 암놈은 이모역할을 한다. 어미인 이미는 연구진들이 보았을 때 가장 믿을 수 없는 암놈이었으며 다른 구성원들과는 그런대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늙은 마마에 비해 영향력은 낮지만... 이미의 큰 아들인 요나스는 응석받이였으나 동생이 태어나자 까다롭게 저항했다 젖을 먹으려고 어미의 가슴으로 파고들면 어미가 밀어내었다 요나스는 다른 이에게 동정을 구해야 했다. 프란예에게 가서 젖을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였다. 요나스는 동생 쟈키가 태어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젖을 원했다. 스핀은 자기 새끼를 낳고는 돌보지 않아서 젖이 남아 있었으므로 요나스에게 젖을 주었다. 요나스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스핀과 밀접하게 지냈다. 암놈의 집단내에 다른 두 어른 암놈 중 크롬이 있다. 크롬은 이미와 사이가 아주 좋았다. 크롬은 등이 굽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어린 침팬지들이 크롬 흉내를 내느라 일렬로 늘어서서 몸을 굽힌 채 따라 걸었다. 크롬은 청력이 안 좋아서 새끼를 깔고 있을 때 새끼들의 소리를 듣지 못해 죽는 사례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후론 크롬이 새끼를 낳으면 격리시켜 놓았는데 이렇게 해서 살린 새끼가 로셔이다 료셔는 호릴라의 품에서 양육 되었다. 이 집단에는 로셔 외에 바우터가 있다. 연구진들이 아른험을 방문하던 날 스핀이 출산을 하였지만 새끼롤 돌보지 않았는데 이 어린 새끼가 바우터였다. 아른험에 다른 암놈 테펄이 출산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지만 한 시간도 못되어 죽고 말았다. 연구진들은 테펄에게 바우터를 데려다 주었고 테펄은 바우터를 잘 돌보아 주었다. 양자 입양 이 완전히 성공한 최초의 사례였다. 여섯 살이 된 바우터는 친어미인 스핀처럼 깡마른 체격이었다. 또 성격도 당당한 성격의 소유자인 어미 스핀을 닮았다
스기야마 박사 아른험 침팬지들의 이름은 이곳 사육장에서 태어난 놈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서로 다른 머리글자로 시작된다. 두 마리의 양자를 제외하고 사육장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모두 어미의 이름과 똑같은 머리글자로 불린다. 스기야마 박사와 공동연구진들은 자료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로 출발하기 바로 직전 아른험에 들렸었는데 그는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침팬지들을 일일이 식별해서 이름을 정확하게 댈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기억력 그리고 올바를 관찰 태도가 필요하다. 관찰자는 침팬지 집단을 그저 이름없는 검은 야수의 무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동물에게는 각각 그 나름의 개성과 특징적인 외모가 있는 침팬지는 많은 관람객 속에서도 익숙한 사람의 얼굴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개별적인 특징이 있는 동물이며 자기네 영토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영역으로 인간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면 간단한 실험을 할 만큼 영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