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서 18장 16절 – 21절
하나님은 한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어 가는데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많은 과정을 통해 연단받게 하셨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안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일에 참예하는데서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스스로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도와 의중을 몰랐습니다. 단지 자기들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하나님을 섬기며 복을 빌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환경을 보고 자기생각을 따라 갔습니다. 바로 이 세상의 길로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참혹한 과정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간섭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참혹한 과정이 도리어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물질이 많아 지는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데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비전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말씀해 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와 같이 연약하고 모지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께 불편한 마음을 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조급해 하시지 아니하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이 조금 씩 자라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마므레 상수리나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봅니다. 아브라함의 눈에는 천사들 세명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 천사들과 함께 하시는 것같습니다. 천사들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전합니다. 바로 사라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조건으로 보았을 때 사라가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이시는 그 말씀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말씀같지만 그럼에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그 하신 바 말씀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는 아직도 믿음이 여립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 안에도 모두 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라처럼 눈에 보이는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믿음이 여린 자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천사는 소돔으로 갑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루실 비전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으로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나라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가진 자들로 이루어지는 나라 이 세상의 임금이 흔들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복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복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은 아브라함으로 인해 이루어질 믿음의 후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알고 그 길로 행하며 자기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붙잡고 판단 즉 세상의 길을 따라 판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땅의 사람들의 고통의 소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고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땅은 강포했습니다. 강한 자들은 약한자들을 폭압하고 수탈하고 온갖 죄악을 더하였습니다. 그래서 변호해 줄 사람들이 없는 사회적인 약자들의 울부짖음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약한 자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교회는 강한 것을 축복이라고 하고 강한 자들을 동경합니다. 하지만 약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외시하는 강자들은 결국 폭압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가져 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땅은 동성애가 판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무시하고 욕정의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까지도 성적학대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죄악이 관영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