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使沈相演淸德善政碑
위치 ; 화북1동 3957번지
유형 ; 비석(선정비)
시대 ; 조선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심연(沈演)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이다.
심연 :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윤보(潤甫), 호는 규봉(圭峰). 심의겸(沈義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암(沈岩)이고, 아버지는 진사 심대형(沈大亨)이며, 어머니는 한중겸(韓重謙)의 딸이다.
광해군4년(161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를 공주에 호종하여 내시교관이 되고 1626년 헌릉참봉(獻陵參奉)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왕을 호종하여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그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에 임명되었다. 그 뒤 지평(持平)·정언(正言)·교리(校理)를 거쳐 1633년에는 호란으로 파괴된 창덕궁의 보수공사를 도청(都廳)이 되어 총괄하였고 공사가 끝나자 통정대부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당시 현으로 강등되어 다스리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던 광산(光山)에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재판을 공정히 하고 선정을 베풀어 현을 주로 승격시키고 그곳의 목사가 되었다. 1635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휘하 군대를 이끌고 쌍령(雙嶺)에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문경에서 재기를 꾀하던 중 화의가 성립되자, 패전의 책임을 지고 전라도 임피(臨陂)에 유배당하였다.
1638년 사면되어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백성을 덕으로 잘 다스린 업적을 인정받아 비변사당상이 되었다. 이어 한성부판윤·승지·대사간 등을 거쳐 황해도·평안도의 순찰사, 평안도·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한 뒤 함경도관찰사로서 임지에서 죽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연은 무신이며 절제사 겸 방어사로 인조16년(1683) 6월에 제주에 부임하였다가 인조18년(1685) 9월에 교체되었다. 이 때부터 목사가 방어사를 겸하도록 높여졌다. 재임시 조정에 계청(啓請)하여 문관이 제주목사로 재임할 때에 한하여 승보초시(陞補初試)를 설치하여 해마다 시(詩)와 부(賦)로 두 사람을 뽑아 두 명씩 시취(試取)하게 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심연 청덕선정비를 세웠다.
탐라지에는 심연 목사가 연희각에 대해 지은 시가 소개되어 있다.
耽羅節制大將軍 탐라절제사 대장군이
八月鳴弓瘴海雲 팔월 바다 구름에 화살쏘는 소리
痛飮百杯仍百中 백잔 마셔도 백발백중
鯨波不動日西曛 파도 잔잔한데 해는 저물어.
九十韶光病裡過 구십춘광 병으로 앓아
黃簾深鎖使君家 사또의 방 누런 주렴으로 가려
忽驚佳節當今夕 좋은 계절이라 문득 놀랐소.
强把閑愁坐晚衙 저녁 관아에 앉으니 내 시름 붙들겠네.
翠黛滿堂渾似雨 비 오듯 푸른 아지랑이 가득.(2002, 譯註 耽羅志)
耽羅節制大將軍 제주를 통괄하는 장수로서의 나
八月鳴弓瘴海雲 팔월에 활을 울리니, 장해(瘴海)의 구름이 드리운다. → 제주 바다의 습하고 독한 기운(瘴氣)을 암시
痛飮百杯仍百中 통쾌히 백 잔을 마시고도, 여전히 백 번을 쏘면 백 번 맞히네. → 무장(武將)으로서의 기개, 혹은 호방한 허세
鯨波不動日西曛 고래 같은 큰 물결도 움직이지 않고, 해는 서쪽으로 저무네.
九十韶光病裡過 아흔 날 좋은 세월을 병중에 흘려보내고
黃簾深鎖使君家 누런 발이 깊이 드리워진 사군(목사)의 집
忽驚佳節當今夕 문득 오늘 저녁이 좋은 절기임을 깨닫고
强把閑愁坐晚衙 억지로 한가한 시름을 붙들고 늦은 관아에 앉았네.
翠黛滿堂渾似雨 푸른 눈썹(여인들 혹은 관기들)이 가득하여 마치 비 내리듯 하네.(해석 ChatGPT)
귀부(龜趺) 받침에 세워진 비로 비신의 높이는 110㎝, 너비는 위쪽이 53㎝, 아래쪽이 50㎝, 두께는 위쪽이 12㎝, 아래쪽이 10㎝이다. 귀부는 높이 54㎝, 앞쪽 너비 73㎝, 옆쪽 너비 86㎝이다. 비의 총 높이는 164㎝로 화북 비석 거리에 있는 비 가운데 가장 크다. 연(演)자는 마멸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비면(碑面)에는 흰 이끼가 끼어 있어 오래된 비석으로 판단된다. 앞면 좌우에 작은 글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마멸되어 판독불능이고, 뒷면에도 마찬가지여서 확실하지 않다. 받침돌은 머리가 거북 모양이고 4개의 발과 꼬리의 표현이 확실하게 되어 있다.
세운 연도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의 재임기간을 기준으로 추정해 보면 도내 선정비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성 2009.01.27. 보완 202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