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작가: 난곡 유 연 선
한국수필 신인상
춘천시 석사동722-2 그랜드@107동1001
연락처: 011-376-3309
정선은 이제 '은자(隱者)의 섬'이 아니다.
그 옛날 거칠현(居七賢)이 숨어살았대서 시끌벅적한 세상을 피해 살 만한 오지(奧地)도 아니다. 힘겹게 걸어 넘던 성마령은 등산로가 됐고 자동차를 타도 비행기를 탄 것 같다던 '비행기재'도 옛길로 돌아앉았다. 높은 고개는 터널이 해지자 관광객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관광의 백미는 낯선 풍경을 만나는 것보다 토속음식을 맛보는 일이다.
토속음식은 생산지의 정서와 신선도가 맞아 떨어져야 진미를 느낄 수 있다.
토속음식이 건강식품으로 각광 받는 것도 많지만 독특한 맛과 향을 지녀 별미식품으로 된 것도 있다. 별미식품은 미식가들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 재미있는 이름을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정선지방의 별미음식인 '콧등치기'도 쫄깃한 국수를 먹을 때 콧등을 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앉은뱅이술'도 노란 기름이 동동 뜨는 옥수수술이다. 달콤하고 싸한 감칠맛에 두어 잔만 먹으면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름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불려 유년이 추억을 되씹을 수 있는 음식도 있다. 춘궁기에 쌀을 절약하느라고 해먹던 나물밥도 옛날 이름 그대로다. 정선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곤드레밥'
도 산나물을 넣은 나물밥이다. 고려 엉겅퀴라고 하는 엉거시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을 정선지방에서는 곤드레라 부른다. 그 줄기가 바람에 흔들리면 곤드레만드레 취한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줄기가 1미터 정도까지 자라는데 잎이 바소꼴로 어긋난 가장자리에 가시가 돋아 있어 날로는 먹을 수 없는 나물이다. 억센 잎과 줄기를 데쳐 말려두곤 묵나물로 먹는다.
산나물을 많이 먹으면 몸이 붓고 누렇게 들뜨는 부황이 나는데 곤드레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탈이 없다. 출산한 산모가 미역국 대신 끓여 먹을만큼 가난한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양식이다. 독성이 없고 영양가가 적은 무기질 식품이어서 요즘에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전해 오는 얘기로 정선에서 곤드레밥을 먹어야 '손님 대접을 받았다'고 자랑했단다. 손님으로 가서 식객에서 눌러 앉아 양식이 떨어질 때까지 대접을 받았다는 얘기다.
곤드레가 밥상에 오르면 양식이 떨어졌다는 신호였다. 아무리 염치없는 식객이라도 양식이 떨어졌다는 신호를 보내오는데 더 눌러 앉아 있을 수 없어 길을 떠났을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식객을 쫓지 못하고 대접할 수밖에 없는 속 타는 마음을 넌지시 내보이던 부엌 인심을 빗댄 말이다. 나물밥이라도 정성껏 손님상에 올리던 순박한 마음씨가 담겨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씨가 면면히 이어져 오늘의 곤드레밥 맛을 내었다.
곤드레밥을 맛있게 하려면 말려 두었던 곤드레를 물에 불려 솥에 깔고 들기름을 조금 넣는다. 깨끗이 씻은 쌀을 무쇠솥에 넣고 소금으로 애벌간을 맞춘다. 더 맛을 내기 위해서는 찹쌀을 조금 섞기도 한다. 밥이 끓은 뒤에도 장작불로 뜸을 푹 들인다. 곤드레와 밥을 잘 섞어 푸면 맛있는 곤드레밥이 된다. 반찬은 뚝배기에 빠작빠작 소리가 나게 끓인 '빠작장'이나 양념 간장만 있으면 된다. 빠작장이나 양념 간장에 비빈 곤드레밥 이래야 향긋한 나물향과 감칠맛을 그대로 낼 수 있다.
산골사람이면 누구나 뜯어 먹었을 곤드레가 정선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은 그것을 먹고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가 배어 있어서다. 「정선아리랑」에도 곤드레 타령이 나온다.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한치(汗峙)는 남면 유평리에 있는 고개다. 고갯길이 험해 땀을 흘리지 않고는 넘을 수 없는 '땀고개'란 뜻이다. 또 평창군 미탄면 평안리에도 음이 같은 한치(寒峙)란 마을이 있는데 정선군과 경계를 같이 한다. 아리랑에 나오는 한치가 어디를 가리키든 곤드레와 딱주기가 오래 전부터 정선사람들의 애환이 얽힌 산나물이었다.
딱주기는 쌍떡잎식물로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잔대의 싹이다. 그 뿌리는 더덕과 함께 사삼(沙蔘)이라고 하여 약재로 쓰이지만 날로 먹을 수 있다. 산으로 나물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에게 '딱 주기 좋은 요깃거리'라서 딱주기라 했을 수도 있다. 어린잎도 날로 먹을 수 있어 장만 찍으면 요깃거리가 되었다.
산 속을 헤매다 눈에 번쩍 뜨이도록 피어난 곤드레와 딱주기도 반갑지만 기다리는 님을 만난 것만 못하다는 푸념. 님만 옆에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참아낼 수 있겠다는 넋두리는 애절한 바람이다. 이 술 저 술 해도 님의 입술이 제일이듯 이 맛 저 맛 해도 님의 맛보다 나은 게 있을까.
나물 뜯는 아낙의 님은 청운의 뜻을 품고 외지로 나가 공부를 하거나 생계를 위해 돈을 벌러 갔을 수도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입이라도 덜자고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던 시절을 참아넘긴 것도 곤드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선의 곤드레는 단순한 산나물이 아니다. 충절을 지키고 부끄럼없이 살겠다는 의지를 키워주고 순박한 심성을 다독이며 살아온 민초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양식이다. 가난을 이겨낸 삶의 역사와 정서가 배어 있는 음식이다. 전통을 지키고 문화를 계승한 것도 곤드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선문화는 '곤드레 문화'라 해야 한다.
곤드레밥을 비비며 「정선 아리랑」을 듣다 보니 굶주리던 시절의 감회가 새롭다. 여정(旅程)을 잊고 이대로 눌러앉아 곤드레만드레 취하고 싶다.(끝)
정선을 그리 드나들어도 여유있게 순례하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빠른시간 안에 작품으로 승화시킬수 있는 곳을 찾아 스켓치에 임하므로 난곡선생님처럼 그렇게 애정어린 고장의 곳곳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일은 드물었읍니다. 좋은 정선 공부 ! 감사합니다. 그래도 곤드레딱죽은 잘도 찾아 먹었지요. ㅎㅎㅎ
난곡선생님 글, 지난 번 출간 즉시 공감하며 단숨에 읽었지요. 좋은 글 감사하고요. 사실 저 오늘 그 시커먼 곤드레나물 해 먹었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어요. 정선사람들 말에 의하면 곤드레밥 보다 더 별미인 것이 있는데요. 꽁치나 고등어 졸일 때 그 밑에 곤드레를 깔고 졸이면 그 맛이 일품이랍디다.
첫댓글 유선생님! 다시 음미하면서 올렸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곤드레나물을 심도있게 다루시며 전개하신 것이 향을 더해줍니다. 잔대을 딱주기라는 것도 -. 읽어도 읽어도 잔대처럼 구수합니다.
덕전! 부끄럽습네다. 올리시느라고 수고 하셨어요. 제 홈페이지에서 퍼와도 되는데....
아 그런데요. 동인지에 있는 걸!! 그러나 후회하지 않습니다.ㅎㅎ
난곡님, 잘 읽었습니다. 소식 하나=산마늘, 곰취, 참나물, 곤드레 이 4종류의 산채류 추출물에 대장균과 식중독균 일반적인 3개의 세균을 접종하였더니 항균효과가 나타났데요. 항균효과가 확인됨에 따라 산채류의 특수성분을 추출해서 천연방부제로도 활용한다나 봅니다. 곤드레밥 한번 시식하러 정선을 다녀와야 하겠어요
정선을 그리 드나들어도 여유있게 순례하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빠른시간 안에 작품으로 승화시킬수 있는 곳을 찾아 스켓치에 임하므로 난곡선생님처럼 그렇게 애정어린 고장의 곳곳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일은 드물었읍니다. 좋은 정선 공부 ! 감사합니다. 그래도 곤드레딱죽은 잘도 찾아 먹었지요. ㅎㅎㅎ
맛자랑멋자랑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글이로군요. 맛을 멋스럽게 풀어주신 글입니다. 곤드레밥이라 하니 모르는 사람에겐 별식같습니다.
곤드레밥의 식물이 보고싶네요. 어쩜 그리도 정선과 잘 어울리시는지요. 작가들의 세계는 무궁하네요.^^*
몇해전 횡성에서 안흥가기전 어느 식당에서 곤드레밥을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정선을 새롭게 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곤드레밥으로 정선 사람들의 살림과 인심을 다 들여다 보았고 또 나물 공부도 잘했습니다. 요 몇일 금식을 한 탓인지 참기름 몇방울 떨구고 간장에 비빈 곤드레밥이 입맛을 돋우고 있습니다. 잘 읽고 입맛만 다시고 나갑니다.
난곡선생님 글, 지난 번 출간 즉시 공감하며 단숨에 읽었지요. 좋은 글 감사하고요. 사실 저 오늘 그 시커먼 곤드레나물 해 먹었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어요. 정선사람들 말에 의하면 곤드레밥 보다 더 별미인 것이 있는데요. 꽁치나 고등어 졸일 때 그 밑에 곤드레를 깔고 졸이면 그 맛이 일품이랍디다.
곤드레밥 딱 한 번 먹어보았는데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었습니다. 생선 졸일때 밑에 깔고 요리하는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경진님! 생선 조릴 때 깔면 참 별미겠네요. 소동파가 미식라라서 그가 개발한 동파육란 요리가 있다는데 경진님도 미식가이니 경진찜이라면 어딸까요.ㅎㅎㅎ.....
다시 읽으며 진한 감동을 느낍니다. 정선의 여러 이미지중 독특하게 산나물인 곤드레를 주제로 써내려가신 탁월한 글쏨씨에 재삼 감탄합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지암리 뒷산에서 곤드레를 만나는 행운을 가졌는데 아쉽습니다. 옛맛을 떠올리며 잠시 행복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