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현 인물사진전 - 고향을 지키는 소나무 2006년 1월 31일 - 2월 10일 대구은행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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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는 대구은행에서 향토문화 계승을 위해 발행하는 계간지 “향토와 문화”에 게재된 사진들을 전시공간을 통해 보여주고자 대구은행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작품은 한 평생의 삶을 전통과 향토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12명의 인물들을 사진 스토리 형식으로 표현한 작업으로서 45점 정도 전시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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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백락 경북 신동, 천주교 영남교회사연구소 부소장 - 역사 속에서 보석을 캐온 행복한 광부 50여 년 동안 경상도 지방의 천주교 복음 전파 과정에 주목, 순교자의 발자취와 역사를 수집하고 발굴하여 왔으며 1962년부터 나환자 정착촌인 칠곡농장 연호공소에서 신앙지도와 마을 개발사업에 앞장 서왔다. |
#각(角)과 각(覺) 정각(正角)이라야 정각(正覺)이죠. 어떤 각을 잡아야 하는가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먼지 한 톨만 앉아도 구조물이 붕괴되는 절묘한 타이밍, 그걸 식자들은 ‘역치(?値)’라고 하죠. #햇살의 각도 서릿발처럼 정정하던 햇살도 오후 3-4시를 넘어서면 빛에서 내공이 느껴집니다. 그 빛은 일몰 직전 더욱 처절한 미학을 연출합니다. 생뚱맞은 정오의 햇살론 부족하죠. 햇살도 각이 필요하답니다. 얼굴에도 적당한 그늘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판소리의 ‘그늘’처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그늘의 중용(中庸)이랄까요. 그 중심을 잡아야 홍수에 쓸려 내려간 낙락장송이 서해 개펄 밭에서 수장됐다가 1천년 정도 뒤 부활된 침향(沈香)의 향기 같은 사진 한 장이 피어나겠죠. #사진작가는 빛의 후손 흰색과 백색, 그 사이 수없는 색의 스펙트럼, 사진작가는 그 틈을 읽어야 합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자는 피사체로부터 항복을 못 받아내죠. 10점 ‘골든 포인트’를 향하는 화살은 절대로 떠들썩하지 않습니다. 급히 셔터를 누르면 ‘설익은 밥’ 같은 알량한 그림만 걸려들 겁니다. #석재현과 인물 사진 고향을 지키는 당산나무 같은 소나무 같은 사람을 찍었습니다. 사진작가 석재현입니다. 그의 동선은 아직 아날로그, 아니 진공관 버전인 것 같습니다. 입 보다는 눈이 더 무겁습니다. 갑자기 ‘동물의 왕국’ 생각이 납니다. 맹수는 절대로 촐싹대지 않는다죠. 심해처럼, 바위처럼 어묵정동. 그렇지만 때가 되면 일시에 내장된 에너지를 다 쏟아낼 줄 압니다. 그게 프로의 세계겠죠.
한 세대 분의 열정을 지녀야 겨우 한 경지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고, 그는 그걸 보려고 별짓을 다 구사해야 됩니다. 그 사람과 술판을 벌일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고, 칭찬할 수도, 무례할 수도, 촬영을 거부했다가 며칠 뒤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유혹할 수도 있고, 걷다보면 죽음같은 ‘억류의 공간’과 마주치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는 게 아닙니다. 겉 표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전자, 아니 베일에 감춰진 내밀한 시간의 무게, 암장(暗葬)된 시간을 잡아내야 하는데... 단 한 순간뿐입니다. 피가 마릅니다. 그 때를 어찌 알까요? 지극하면 움직이는 거죠, 그래서 어느 날 뭔가 문리가 터이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셔터를 누르게 되는 거겠죠. 그게 아니라면 인화를 해도 괴롭습니다. 괴롭지 않다면 아직 갈 길이 먼거죠. 피사체의 눈빛과 렌즈의 초점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그 순간이 계시처럼 다가와 그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 근육을 움직이는 순간, 한 장의 ‘삶’이 낚여집니다. 심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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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근 73세 대구, 전 대구지역소설가협회장 - 대구문화사, 그 최후의 증인이 될 사람 한국전쟁을 맞아 문학의 열정과 삶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고향 대구로 돌아왔던 그가 시인 구상을 비롯한 대구지역의 문학가들의 언행을 보면서 문학을 체험으로 배우고 소설을 집필해 오면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향토문학과 향토사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한 노력들을 다양하게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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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토막의 삶의 포인트 메이크 업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눅눅하면 눅눅한대로 둬. 명필은 일필(一筆)로 죽입니다. 되돌아가서 살살 첨묵(添墨)하지 않습니다. 때론 탤런트처럼 그가 찍고자 하는 인물의 지난 세월, 그 본질이 뭔가를 알려고 발버둥칩니다. 자기 맘을 피사체한테 투사합니다. 거부반응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자기 삶이 아닌데 제 삶으로 치환한다는 것,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술인가 봅니다. 윤장근, 김욱배, 마백락, 김숙인, 정명호, 김복용, 채의진, 제수천, 김태학, 김원경, 배동분, 최복호.
모두들 차돌처럼, 박달나무처럼 야문 분들입니다. 속내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 한 경지를 터득한 눈빛을 보세요. 그 다음 저들의 직업을 음미해보세요. 틈이 있습니다. 앙금이 있습니다. 저 눈빛에서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면 그는 저 얼굴한테 진 것이다. 그가 골라낸 사진은 어쩜 또 다른 그입니다. 피사체와 그 사이에 깔려있는 틈, 당신들은 그걸 발견해야 됩니다. 그가 감춰둔 촬영 비밀을 그의 입을 통해 설명 듣지 않고 바로 간파해야 됩니다. 그 틈이 한없이 넓어도, 그렇지 않아도 모두 실패입니다. 그게 ‘12막 인생’의 관람 포인트가 될 겁니다.
윤장근의 사진을 보세요. 표정에 서린 어둠, 거기서 묵향이 돋아납니다. 비애(悲哀), 비련(悲戀), 암담(暗澹), 애조(哀調), 그러면서도 도도함, 광활함, 원만함, 집요함 같은 게 얼비치고, 칠십여 성상, 술과 방랑, 그러면서도 대구의 향토 문단사와 풍물사의 뒤안길을 훑어내고서도, 시침 뚝 떼고 아무것도 한 것 없다고 손사래 치며, 마치 고향 온 자식 먹을 것 잔뜩 사주며 손자의 뒤통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먹거리며 당산나무가 내미는 응달에 멍하니 서 있는 실루엣을 그는 본 걸까요? 얼굴도 우주입니다. 그 우주를 담는 사진한테도 완성의 순간이 올까요. 설령 ‘완성을 이뤘다’해도, 그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룰 수 없음’의 영역까지 봐야한다는 것, 그게 예인(藝人)의 숙명인지도......
지난해 12막 인생과 동고동락했습니다. 더러 몇 토막은 성에 차지 않기도 하겠죠. 그렇게 저들 인생 속으로 침잠했다가 이제 제 일상으로 돌아온 석재현, 그는 또 다른 누가 되기 위해 거풍(擧風)하며 제 맘의 필름을 갈아 끼우고 있습니다. 실패를 전제로 한 성공, 그게 그의 삶의 ‘화두(話頭)’이기에 그의 사진은 아직도 ‘~Ing’입니다. 이춘호 / 영남일보 문화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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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경 66세 성악가, 계명대학교 명예교수 - 꿈만 먹고 사는 사람이 되라 신의주 태생으로 대구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그의 수 많은 공연 회수를 보면 한국의 오페라 역사에 끼친 뚜렷한 족적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후 줄곧 계명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해 오며 대구의 오페라하우스 건립에도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단 한번의 외도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이 좋아 무대에서 살아왔고 또 대구음악계를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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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천 71세 경북 성주, 전 성주문화원장 - 지명하나에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쉰다 그가 그토록 아끼는 성주에서 한 평생 고장을 위한 일에 앞장서며 성주의 역사와 전통을 정리하고 이어가기 위해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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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의진 69세 경북 상주, 서각가. 양민집단학살 피학살자 유족회장 - 나무를 파고 돌에 새기면서 달랜 통한의 55년 그의 나이 13세 1949년 12월 24일 평화롭던 그의 고향 석달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무장군인에 의한 문경양민학살사건 현장에서 생존자.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옥에서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성장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55년 동안 자신이 겪은 참사의 진실을 찾고 그것을 주위에 알리는 일에 묻혀 살아왔다. 서각가로서의 그의 서체는 자신의 가슴에 새겨둔 통한과 분노, 광기와 같은 아픔을 담고있는 운명의 서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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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인 82세 경북 풍기, 서부냉면 - 옮겨 앉은 나무가 숲을 이루다 고향이 평안북도 운산인 할머니는 한국전쟁전 풍기에 정착하여 메밀묵 장사를 시작으로 40여 년 동안 순메밀을 사용한 냉면을 고집스럽게 만들어 팔아왔다. 이제는 대를 이은 가업으로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그 순수함을 지켜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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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배 69세 경북 상주 - 사라진 단어를 지키는 목물점 주인 18세 때 상주장 목물점에서 장터생활을 배우기 시작하여 오랜 세월 나무와 더불어 생활한 그의 인생에서 숱한 나이테를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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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용 51세 포항 죽도시장 - 죽도시장의 명물, 피데기의 명성을 이어간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말리며 어린시절을 보내며 건어물에 대한 식견을 자신도 모르게 익혀온 그가 50년 동안 죽도시장을 지켜온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내 박정임(53세)와 함께 대성상회를 지키면서 죽도시장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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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호 56세 대구, 대구패션조합이사장 - 맛있는 패션을 탐구하는 디자이너 1974년 서울에서 대구로 돌아와 모방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그는 대구의 패션도시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시점부터 패션은 종합예술로서 섬유와 패션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것과 패션문화를 만들어야한다는 인식을 가진 패션디자이너이다. 그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디자인으로 세계를 점하고 싶은 큰 꿈을 키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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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학 50세 대창섬유 대표 - 효의 상징을 만들어 낸 내복인생 30년 1970년대 대구가 섬유도시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 19세의 나이로 섬유업계에 뛰어들어 내의공장의 직공생활을 체험하며 평생 내의를 만들것이라 다짐하고 실천하면서 살아왔다. 30년 동안 생산현장에서 살아오면서 터득한 공장운영방법을 통해 기능성을 포함한 내의의 패션화를 이끌면서 섬유산업의 중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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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분 44세 울진군 서면 쌍전리 - 통고산 아래의 전자주민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하늘마음농장의 안주인이 된 그와 그의 가족은 자연에서 느낀 행복을 전자통신을 통해 도시인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지난해 말 그와 그의 가족의 자연속에서의 삶의 이야기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을 출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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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호 55세 대구 칠성시장 - 두 바퀴에 인생을 걸고 내일의 페달을 밟는다 15세에 자전거 수리를 배워 자전거와 더불어 40년을 살아왔다. 아내 조선덕씨와 아들 정일성씨와 현재 3개의 자전거점을 운영하며 자전거의 두 바퀴에서 그들의 삶의 철학을 완성시키고 있다. |
대구은행 갤러리 : 대구시 수성구 수성2가 118번지 053) 756 2001, 053) 740 20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