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비교하려고 했다. 그런데 의미가 없었다.
지향점이 전혀 다른 모델들이었고 나는 니로 EV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볼트 EV, 코나 일렉트릭, 니로 EV. 1 (출시순). 이들 2세대 전기차들이 등장하면서 전기차 시대가 바짝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내 주변에도 전기차를 이미 구입했거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다. 2세대 전기차의 핵심은 한 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길어졌다는 점이다. 1세대 전기차들은 공식 제원으로는 100km를 넘게 달릴 수 있다고 하지만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면 주행 가능 거리가 금세 두 자리 숫자로 떨어져서 불안하기 십상이었다. 불안하다는 것은 거리를 두고 싶다는 것이고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공인 주행 거리가 400km 전후인 2세대 전기차들은 최소 300km는 달릴 수 있으니 비로소 마음을 놓고 탈 만한 대상이 된 것이다.
세 대의 2세대 전기차들의 파워트레인은 약속이나 한 듯이 비슷하다. 200마력이 넘는 최고 출력과 40kg.m 전후의 최대 토크, 그리고 60kWh대의 배터리 용량이다. 토크와 배터리 용량에서 니로와 코나가 살짝 앞서기는 하지만. 그래서 세 차량 모두 1세대 전기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화끈한 주행 성능을 갖고 있다. 특히 신호등에서는 적수가 없고 추월은 기회가 또 오기만을 기다릴 정도다. 마치 주머니 속 지갑에 현금이 두둑한 듯한 나만 아는 쾌감 같았다. 그만큼 2세대 전기차의 풍성하고 즉각적인 토크의 매력은 강렬했다.
여기까지가 세 모델이 공통점이다. 그 다음부터는 각자 성격의 차이가 은근히, 그러나 확연하게 드러난다. 세 모델의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떤 모델이 좀 더 포용력이 있는가, 즉 넓은 시장에 다가설 수 있는가에 집중하니 답은 또렷해 보였다. 볼트 EV는 세계 최초의 대중형 2세대 전기차이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했다는 상징성이 매우 강한 모델이다. 그리고 코나 일렉트릭은 최근 핫 한 시장인 소형 SUV 시장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한 모델이다. 그래서 두 모델의 조종 감각은 상당히 스포티하고 서스펜션도 단단한 편이다. 요약하자면 볼트 EV와 코나 일렉트릭은 환경 보호와 도심용 교통수단이라는 절제와 희생이 바탕에 깔린 초식남같았던 작고 약했던 1세대 전기차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하여 일부러 더 야무지고 강한 인상을 주려고 한다는 느낌이었다.
이에 비하여 니로 일렉트릭은 분위기가 확 다르다. 훨씬 자연스럽고 여유롭다. 확연히 널찍한 실내 공간이 여유롭다. 특히 뒷좌석은 비로소 어른이 – 아니면 우리 세대보다 훨씬 큰 청소년 자녀들이 – 편안하게 타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이 널찍하다. 턱의 높이도 낮고 공간도 널찍한 트렁크도 여유롭다. 그리고 서스펜션의 세팅도 위의 두 모델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시승을 하는 나도 몸에 힘이 빠지고 얼굴에 배시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나중에 알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물론 용량이 커진 만큼 무거워진 배터리를 추스르느라 서스펜션이 어느 정도는 단단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과속 방지턱이나 도로의 너울을 넘을 때는 흔들림이 조금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두 모델들보다는 움직임이 한결 자연스럽고 흔들리는 와중에도 불안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감각이 자연스러워서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니로 EV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사실 현대 아이오닉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니로는 원래 소형차가 아니라 준중형급이다. 어쩌면 여유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여기에 니로 EV의 커다란 차별점이 있었다. 볼트 EV와 코나 일렉트릭은 전환점으로서의 느낌이 강했다면 니로 EV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임무를 가진 그 다음 단계의 모델 같다는 것이다. 니로가 하이브리드 시절에도 아이오닉보다 더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흐름인 SUV라는 장르, 그러나 SUV의 경험이 없는 사람도 이질감 없이 운전할 수 있다는 익숙한 조종 감각, 그러면서도 SUV에서 기대하는 넓은 공간과 다양한 용도를 매우 우수한 연비로 제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즉, 니로 하이브리드는 그 차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기 때문에 구입했다기보다는 여러모로 장점을 잘 모은 모델인데 하이브리드가 일조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니로 EV도 니로 하이브리드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따른다. 이미 검증된 니로라는 제품의 실용적인 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기차의 조용함과 전기모터의 토크가 주는 시원시원한 주행 성능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유틸리티 모드’라는 기능이었다. 전기차를 타는 친구들이 자랑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동(?)을 켜 놓고 에어컨을 돌려도 벌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연 기관 자동차였다면 공회전 금지 조항을 지켜야 하지만 전기차는 그런 것이 없다는 점. 덕분에 나도 기다리는 동안에 니로 EV를 아주 훌륭한 이동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니로 EV는 뒷좌석에 220V 인버터 소켓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노트북을 충전하면서 에어컨도 시원하게 틀어놓고 사무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유틸리티 모드는 여기선 한 술 더 뜬다. 12V 배터리가 아니라 고압 배터리를 이용하여 거의 무한정의 전원을 공급하는데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구동계만 꺼버리는 것이다. 즉, 어차피 주행할 것이 아니므로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구동계를 끄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동시에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아서 사고가 발생할 우려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설명서에 따르면 캠핑장에서 니로 EV를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하고 220V 전원도 공급하면서 즐길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나도 캠핑은 아니었지만 뒷시트를 접어서 평평하게 만들고 바닥에 누워서 노트북과 프로젝터를 연결하여 천장에 투사하여 영화 한 편을 즐겼다. 물론 니로 EV의 220V 소켓에 멀티탭을 꽂아 노트북과 프로젝터에 전원을 공급하면서. 총 4시간 정도를 보냈는데 자동차 계기반의 주행 가능 거리는 단 4km만 줄어들었다! 신세계다.
이 유틸리티 모드는 코나 일렉트릭에서 첫 선을 보였다. 하지만 실내 공간이 여유롭고 220V 인버터와 소켓이 제공되는 니로 EV에서 훨씬 쓸모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니로라는 모델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확장성을 전기차와 접목시켜 제대로 사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니로 EV는 니로 하이브리드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먼저 디자인에 대해서만큼은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던 니로였지만 깔끔하게 마스크를 쓴 듯한 앞얼굴이 니로에게는 꽤 잘 어울렸다. 실내에서도 다이얼 방식의 시프트 바이 와이어 변속 장치가 어차피 기어 단수가 없는 전기차에는 잘 어울렸고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버튼식보다 논리적이었다. 변속 레버가 없어진 센터 콘솔 앞의 공간은 널찍한 수납 공간이 되어 크지 않은 가방이라면 충분히 보관할 수 있었다. 디자인의 품질이 좋아진 것이다.
기능적으로도 향상된 면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니로 EV의 드라이브 와이즈 반자율 주행 장치는 레벨 2 급에서는 거의 최고 수준이 아닌가 싶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는 더 바랄 나위가 없을 정도로 잘 움직였고 시내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시가지 주행과 고속 주행의 중간 영역인 시속 60km 전후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시티 세이프티에게는 너무 빠르고 차선 추종 기능에게는 연속 데이터가 부족할 수 있는 느린 속도이기 때문. 그러나 니로 EV의 드라이브 와이즈는 고급 모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우수한 센서 퓨전 기능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저속에서는 주로 앞차를 이용하고 중고속부터는 차선을 주로 이용하여 거의 끊김이 없이 차선 추종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면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플로팅 방식의 인포테인먼트 모니터가 적용되지 않은 대시보드는 니로라는 모델의 나이를 짐작하게 한다. 다른 부분은 매우 고급스럽고 미래 지향적인데 비하여 스마트 기능은 물론 파워 기능도 적용되지 않은 테일 게이트가 아쉽다. 배터리 팩이 차체 바닥 전체에 깔리면서 살짝 높아진 시트 포지션에 비하여 그대로인 대시 보드의 높이 때문에 운전대의 각도가 다소 어색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니로 EV는 매우 친절한 전기차였다. 시대적 의미나 기계적 성능 같은 것은 잊어도 되는 전기차를 얼마만에 만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니로 EV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니로 EV는 전기차가 아니다. 아주 쓸모가 좋은 크로스오버 SUV인데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아, 참고로 주행 경비는 약 300km 주행하는 데에 11,000원 충전했다. 그러니까 1천원으로 약 27km 주행할 수 있다는 것. 리터 당 20km를 뛰는 디젤 승용차보다 연료비가 절반밖에 들지 않는 셈이다.
차 말고 다른 곳에 더욱 아쉬운 점이 있었다. 충전소와 하이패스다. 이 정도로 대중적인 전기차를 잘 만들었다면 회원 가입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어느 충전소에서나 충전할 수 있도록 되어야 상식적이지 않나 싶다. 주유소에 회원 가입해야 기름을 넣을 수 있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전기차는 하이패스도 고속도로 관리공단에 별도로 등록해야만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경차는 그냥 처음부터 할인이 되는데 뭐가 다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전기차의 기술이나 제품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 다음은 이에 걸맞은 서비스가 뒤따라야 하겠다. 그것도 메이저급 자동차 제작사들이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