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서울 창덕궁 안으로 들어간 침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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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0. 18:49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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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안으로 들어간 침류정
한편 아름답기로 소문난 창덕궁의 한쪽에 이매창과 사랑을 나누었던 평민 출신 의병장 유희경의 자취가 남아 있다. 『한경지략』 ‘각동’조에 “창덕궁 요금문(曜金門) 밖에 촌은(村隱) 유희경의 옛집이 있었다. 그 뜰이 후에 창덕궁 담장 안으로 편입되어 지금 창덕궁의 내각(內閣) 뒤뜰에 있는 오래된 전나무가 바로 유희경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라고 실려 있다. 또한 유희경이 지은 『촌은집』에도 당시 서울 장안에서 손꼽히는 명소였던 침류대(枕流臺)의 정경이 그대로 실려 있다.
장안 북촌에 정업원이 있는데, 궁벽하나 산이 가깝고 바위에서 나오는 맑은 샘물 한줄기가 골짜기 사이로 흐르므로 이 땅을 사서 살았다.
창덕궁 침류정 © 유철상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아름답다. 부용정 맞은편에 자리한 침류정은 조선시대에 궁내의 서고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희경은 서민 출신의 풍류 시인이었다. 그는 신흠, 권필, 임숙영, 이정구를 비롯한 당대의 문사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이안눌, 차천로 등과도 친교를 맺었던 그는 최대립, 박지화 등과 함께 침류대에서 ‘풍월향도시회(風月香徒詩會)’를 가졌다. 그와 가까이 지냈던 지봉 이수광은 『침류대 기문』에서 그곳의 풍경을 이렇게 적었다.
정업원이 창덕궁 서쪽에 있는데 숲과 골짜기가 깊고 그윽하며 시냇물이 흐르고 넓고 조용한 가운데 운치가 있다. (······) 어느 날 유생 희경을 따라 금천교(錦川橋) 위로 가니 물이 넘쳐흐르는데, 붉은 낙화가 수도 없이 떠내려 왔다. 내가 기뻐하며 “도원이 여기에 있는가? 내가 이 물을 거슬러 따라 올라가서 진나라를 피해 들어간 사람들과 만나 한번 웃어야겠다” 하고 말하니 유가 빙긋이 웃으며 “이 개울 위쪽에 내가 사는데 대(臺)가 그 위에 있다오. 복사꽃이 만발하였다가 비바람의 시샘으로 떨어져서 흩어진 것이라오. 그대가 가보고자 한다면 내가 동도의 주인 노릇을 하겠소”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기쁜 마음에 “그대야말로 정말 진나라 사람이구려” 하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백 여 걸음 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별천지가 나타났는데 그곳이 바로 그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흐르는 물이 맑고 차서 매우 좋은데 돌을 쌓아 대를 꾸며놓았다. 물과 대 사이가 불과 한 자 남짓하니 물을 베개 삼을 만하다며 침류대라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대 주위에는 잡초가 없고 요염한 복숭아나무 수십 그루가 있어서 물 좌우로 붉은 비가 공중에서 휘날리니 그 광경이 마치 비단 물결이 춤추는 것 같았다. 옛날의 무릉도원도 이곳보다 더 좋지는 못했을 것이다.
선인들이 읊은 시 가운데 “어찌 무릉도원의 운치가 도시 사이에 분명히 있는 줄 알았으랴”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어찌 참말이 아니겠는가. 옛날에 유신이라는 사람이 천태(天台) 도원으로 들어가서는 신선을 만나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대는 곧 진과 같은 무리인가! 내가 지금 다행히도 아주 외지고도 조용한 곳을 엿보았으니 어부에 비할 수도 있겠다. 이곳에서 베개 베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한들 무엇이 방해가 되랴!
서로 더불어 크게 웃으며 땅에 자리 잡고 앉으니 물소리는 옥을 굴리는 듯 귀에 들려오는데, 흐르는 물을 베개 삼지 않고도 들을 수 있고 귀를 씻지 않아도 저절로 맑아진다. 한 점의 티끌도 물들지 않고 온갖 생각이 모두 텅 비어서 신기(神氣)가 시원하고 상쾌하고 황홀하여서 마치 바람 타고 티끌세상 밖에 앉아 있는 것 같으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이것만 미루어보더라도 그의 삶을 알 수가 있을 듯하다.
종묘 © 유철상
창경궁과 연결되어 있는 종묘는 조선 왕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근엄하고 경건한 느낌이 드는 건축미가 압권이다.
이곳을 찾았던 임숙영은 이런 시 한 편을 남겼다.
도원으로 들어가니
봄바람에 꽃도 많아라.
친한 벗 권하는 한 말 술에
저녁 해가 저무는 것도 몰랐네.
창덕궁 부용정 © 유철상
연못에 기둥을 둔 부용정은 연못 위에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것처럼 우아하다. 창덕궁의 건물 중에서도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이 시를 받아서 유희경도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우리 집이 산기슭에 있는데
손이 오면 복사꽃을 볼 수 있다오.
손잡고 올라 대 위에 앉으니
대 아래로 어느새 저녁 해 기우네.
상촌 신흠도 한 편의 시를 남겼다.
시냇물 제 풀로 작은 대를 둘렀는데
수많은 복사꽃 양쪽 가에 피었네.
골 안의 한가로운 색다른 하늘 땅
세상의 시간이야 가고 온들 어떠리오.
선릉의 홍살문 © 유철상
성종이 잠들어 있는 선릉은 강남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울창한 솔숲이 우거져 있어 산책하기 좋다.
유희경이 부안 기생 이매창을 만난 것은 고경명이 주창해서 궐기한 의병에 참여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부안에서 아기 기생 이매창을 만나 시와 노래를 주고받으며 사랑이 싹텄다. 그때 유희경이 48세였고, 이매창은 스무 살 꽃다운 나이였다. 그러나 그 사랑도 잠시 헤어져서 수많은 글을 남겼다. 아래 두 시는 이매창과 유희경이 서로를 생각하며 지은 글이다.
소나무 잣나무는 아름다운 인연 맺고
생각하는 나의 정 바다처럼 깊건만
강남으로 오는 글월 끊기니
한밤중에 나 혼자 애가 타누나.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고,
그리워하면서 만나지 못하니
오동잎에 비 뿌리는 소리 애간장을 끊누나.
[네이버 지식백과] 창덕궁 안으로 들어간 침류정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4 : 서울·경기도,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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