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속 낙 지 탕
유 종 덕
나에게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망설임 없이 낙지라고 한다.
내 식성은 조금은 별나 맵고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낙지볶음 보다는 맵지 않은 산낙지와 낙지국을 더 즐겨 먹는다.
내 고향은 해안선이 길고 갯벌이 많은 서산이다. 처가도 가로림만에 접한 곳이라 처가에 가면 장모님께서는 일꾼들을 시켜 앞바다 갯벌에서 잡아온 낙지로 파, 마늘을 넣고 담백한 낙지국을 끓여 주셨다. 내려간다고 기별을 하면 일꾼들은 으레 낙지를 잡으러 나섰다 한다.
낙지는 비린내가 없고 발라낼 가시와 뼈가 없어 먹기에 좋고 요리가 간편하다. 여덟 개의 크고 작은 다리에 많은 빨판이 달려있다. 낙지머리를 꽉 움켜잡고 산낙지를 먹을라치면 이빨에 다리가 잘려 나가면서도 안 떨어지려고 손등에 찰싹 늘러 붙어 빨판으로 마지막 발악을 하여 피멍 자국이 남기도 한다.
낙지는 밤에 불을 밝혀 뜰채로 잡거나 낙지 구멍을 찾아서 가래(삽의 일종)로 잡는 방법과 돌을 뒤집어 잡기도 한다. 서산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여 썰물 때 갯벌이 많이 노출되어 사계절 내내 낙지가 잡힌다.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에는 한자로 낙제어(鮥蹄魚)라 했는데 낙제(落第)와 음이 같아 수험생에겐 낙지를 먹이지 않았다. 학생시절 명문학교 입학고사결과 불합격을 하면 “낙지 국을 먹고 왔다”했다. 나는 낙지 국을 즐기지만 다행이 중요한 시험에서는 낭패가 없었다. 국민을 위한다는 선거에서 정직하고 참신한 사람이 아니면 낙지 국을 먹여 낙선시켰으면 좋겠다.
낙지에는 지방이 거의 없고 타우린이 풍부하여 간 기능을 증진시켜 피로회복에 좋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여 혈당상승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갯벌에 사는 산삼이라 하여 예로부터 보양음식으로 즐겨 먹었다. 경운기가 보급되기 전 농번기에 지친 일소와 싸움소에게도 고된 훈련 뒤에 낙지를 먹였다. 낙지의 맛은 여름철 보다는 겨울철이 더 좋으며 가을낙지는 꽃 낙지라 하여 미식가들이 선호한다. 낙지로 할 수 있는 요리는 회, 볶음, 탕, 산적, 전골, 초무침, 구이 등이 알려져 있고 궁합이 맞는 다른 재료와 만나면 갈비와 낙지의 합성요리인 갈낙, 낙지와 새우살의 낙새볶음, 낙지와 소곱창이 만난 낙곱전골 등 재미나게 명칭이 바뀌어 입맛을 돋운다.
봄에 태어난 낙지는 5-6월이면 어느 정도 자라는데 갯벌에서 자란 것은 세발낙지라고 하여 색이 연하고, 머리가 작고 길쭉하며 몸통도 작고 발이 가늘어 해안가 바위사이에서 자라 머리가 크고 동그란 것보다 육질이 연하고 맛이 좋다.
매운 고추장으로 버무린 낙지볶음을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게 먹던 ‘무교동 낙지’ 골목은 한동안 데이트 족들이 즐겨 찾던 추억어린 곳이었다.
서산의 향토음식인 박속밀국낙지탕은 박속을 납작하게 썰어 대파, 양파를 넣고 육수를 내어 낙지를 살짝 데쳐 먹은 다음 밀국(수제비나 칼국수)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 식사를 한다. 미나리 대신 콩팥에 좋다는 박속을 넣었기에 ‘박속낙지탕’이라고 한다. 이것은 조선조에 이곳으로 낙향한 선비들이 즐겨 먹던 음식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고 맵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은 광명사거리 복지관 옆의 ‘박속낙지전문점’이다. 바깥주인이 시골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박을 매년 8월에 수확하여 속을 파내 썰어서 급랭으로 보관하였다가 재료로 쓴다고 한다. 섬유질이 많은 박속육수가 팔팔 끓으면 싱싱한 낙지를 안주인이 가지고와 직접 넣어준다. 국물이 맑고 개운하여 숙취해소에 제격이며 따로 팔기도 하는 어리굴젓 반찬이 손님들의 구미를 돋운다. 부부가 20년 넘게 이곳에서만 사이즈가 큰 국내산 낙지를 산지에서 공급받아 특별한 맛을 내어 광명시 모범업소로 선정된 곳이다.
낙지를 데쳐 참기름 소금에 찍어먹는 맛도 일미인데 싱싱한 낙지가 아니면 데쳤을 때 다리가 오그라든다. 다가오는 지자체 선거에서 다리가 튼튼하여 지역구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보살피는 담백하고 싱싱한 일꾼들이 뽑혀 나라가 잘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줄어들어 낙지가 덜 잡혀 귀한 음식이 되었다. 며늘아기에게 내가 주말에 하늘나라로 떠나면 여러 어려움이 있을 터이니 “낙지국 끓여 왔어요.”하는 말만 들어도 1~2일은 더 버틸 것 같다 하면 빙긋이 웃는다. 박속 향 은은한 낙지탕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힘이 솟는 느낌이다. 계절은 중춘이니 낙지 같은 여자와 고향에 다녀와야겠다.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춘주작가 회원, 춘주수필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