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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젊은이에게 주는 敎訓
1 내 아들아 나의 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命令을 지키라
My son, do not forget my teaching, but let your heart keep my commandments,
Fili mi, ne obliviscaris legis meæ, et præcepta mea cor tuum custodiat ;
Υἱέ, ἐμῶν νομίμων μὴ ἐπιλανθάνου, τὰ δὲ ῥήματά μου τηρείτω σὴ καρδία·
말하는 이인 솔로몬은 지혜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듣는 이인 그의 아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의미한다. 솔로몬의 법과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해석되는 모든 가르침들을 의미한다.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長壽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平康을 더하게 하리라
for length of days and years of life and peace they will add to you.
longitudinem enim dierum, et annos vitæ, et pacem apponent tibi.
μῆκος γὰρ βίου καὶ ἔτη ζωῆς καὶ εἰρήνην προσθήσουσίν σοι.
솔로몬이 확언장담한 장수와 평강은 이 땅에서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승천 이후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3 仁慈와 眞理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板에 새기라
Let not steadfast love and faithfulness forsake you; bind them around your neck; write them on the tablet of your heart.
Misericordia et veritas te non deserant ; circumda eas gutturi tuo, et describe in tabulis cordis tui ;
ἐλεημοσύναι καὶ πίστεις μὴ ἐκλιπέτωσάν σε, ἄφαψαι δὲ αὐτὰς ἐπὶ σῷ τραχήλῳ, καὶ εὑρήσεις χάριν·
인자는 그리스도의 긍휼을, 진리는 그리스도의 공의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여호와께서는 완전하게 긍휼하시고 완전하게 공의하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긍휼보다 공의가 앞서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죄성은 자기연민과 합리화에 먼저 빠지게 해서 상대방에게서 잘잘못을 듣기보다는 자기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부터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인자와 진리를 내 목에 매어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 앞에서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판에 새기라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끊임없이 성경을 알아가며 행하는데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성도의 영을 거듭나게 하시면 성도의 영은 정신활동을 주관하는 성도의 혼에 작용하여 성경을 알고자 하는 욕구와 의지를 불러 일으키고 성도의 육은 그러한 혼의 욕구와 의지를 따라 성경을 알고 실천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그렇게 성도가 육으로 실천한 행위는 다시 혼의 정신활동으로 이해와 암기와 적용의 과정을 거치며 영의 양심에 작용하여 더욱 넓고 깊게 밝아지게 한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도의 영은 혼 및 육과의 이러한 상호 선순환 작용을 거쳐서 비록 육신은 후패해지더라도 영은 나날이 새롭고 거룩하게 되어가는 것이다.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恩寵과 貴重히 여김을 받으리라
So you will find favor and good success in the sight of God and man.
et invenies gratiam, et disciplinam bonam, coram Deo et hominibus.
καὶ προνοοῦ καλὰ ἐνώπιον Κυρίου καὶ ἀνθρώπων.
하나님과 더불어 성도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기심을 베푸시는 사람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므로, 피조물로서의 이 땅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세 위격들과 함께 계셔오셨던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과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신 사람 또는 사람이신 하나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信賴하고 네 明哲을 依支하지 말라
Trust in JEHOVAH with all your heart, and do not lean on your own understanding.
Habe fiduciam in JEHOVAH ex toto corde tuo, et ne innitaris prudentiæ tuæ.
ἴσθι πεποιθὼς ἐν ὅλῃ τῇ καρδίᾳ ἐπὶ ΙΕΗΩΟΥΑ, ἐπὶ δὲ σῇ σοφίᾳ μὴ ἐπαίρου·
신앙인이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때에는 교만해지고 느슨해지며 허영과 음욕에 빠지기 쉬워진다. 반면에 빈천수치를 당하게 될 때에는 비굴해지고 조급해지며 원망과 타협에 빠지기 쉬워진다. 그리스도인은 잘나갈 때에도 그리스도 여호와가 누구냐 하지 않고 도리어 넘어질까 항상 주의하며, 어려움에 허덕일 때에도 그리스도 여호와를 욕먹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적으며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러하기는 더더욱 희박하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빈천수치를 겪게 될 때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6 너는 凡事에 그를 認定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指導하시리라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and he will make straight your paths.
In omnibus viis tuis cogita illum, et ipse diriget gressus tuos.
πάσαις ὁδοῖς σου γνώριζε αὐτήν, ἵνα ὀρθοτομῇ τὰς ὁδούς σου.
사도 바울이 권면한 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전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비단 주일 예배 뿐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거룩하고 신령한 제물로 드리라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베뢰아 성도들처럼 듣고 가르침을 받은 말씀이 참으로 그러한가 하여 성경으로 꼼꼼하게 검증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치밀한 세속학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반성경적이라면 차라리 세속학문에 미련하고 성경을 굳게 믿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자기합리화를 위한 얄팍한 공감을 배제하고 성경의 원리를 따른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7 스스로 智慧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敬畏하며 惡을 떠날지어다
Be not wise in your own eyes; fear JEHOVAH, and turn away from evil.
Ne sis sapiens apud temetipsum ; time JEHOVAH, et recede a malo :
μὴ ἴσθι φρόνιμος παρὰ σεαυτῷ, φοβοῦ δὲ τὸν ΙΕΗΩΟΥΑ καὶ ἔκκλινε ἀπὸ παντὸς κακοῦ·
목회도 주님의 뜻이고 가족의 생계 부양도 주님의 뜻이지만, 이 둘이 심각하게 상충하게 될 때에는 자신의 능력과 처지와 상황을 면밀히 따져봐서 둘 중 하나는 내려놓고 나머지 하나에만 전념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자기의 능력과 믿음을 과신하여 둘을 병행하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이어가는 것은 목사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서 자기 길을 굽게 하면서도 결국 그리스도 여호와를 원망하는 악한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뿐이다.
8 이것이 네 몸에 良藥이 되어 네 骨髓를 潤澤하게 하리라
It will be healing to your flesh and refreshment to your bones.
sanitas quippe erit umbilico tuo, et irrigatio ossium tuorum.
τότε ἴασις ἔσται τῷ σώματί σου, καὶ ἐπιμέλεια τοῖς ὀστέοις σου.
하나님의 말씀이 예리한 양날검이 되어 나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은 나를 고통스럽게 죽이시려는 목적이 아니라 내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 깊이 박혀있는 죄들을 잘라 걷어내어 궁극적으로 영원히 살리시려는 목적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작용하는 그 과정은 때에 따라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수는 있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한층 더 신령한 건강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양약은 성도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처방되고 적용된다. 작고 소소한 상황에서는 약하고 장기적이며 은근하게, 크고 중대한 상황에서는 강력하고 일시적이며 확연하게 적용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온갖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은 그만큼 복음 사역을 위한 중차대한 상황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렇게 발휘되는 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복음 처방 이후에는 정기적인 예배와 설교 및 일상의 신앙생활을 통한 은근하고 지속적인 복음 처방이 이어지게 된다. 이미 이러한 복음 처방으로도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복음 처방만을 추구하는 것은 환자가 병이 다 나았는데도 여전히 응급실에서의 마약성 진통제를 먹는 것과도 같아서 도리어 신앙의 골수를 윤택하게 하지 못하고 메마르게 하는 것이다.
9 네 財物과 네 所産物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恭敬하라
Honor JEHOVAH with your wealth and with the firstfruits of all your produce;
Honora JEHOVAH de tua substantia, et de primitiis omnium frugum tuarum da ei ;
τίμα τὸν ΙΕΗΩΟΥΑ ἀπὸ σῶν δικαίων πόνων, καὶ ἀπάρχου αὐτῷ ἀπὸ σῶν καρπῶν δικαιοσύνης.
재물과 소유물이란 비단 교회와 성도의 물질적인 재산 소득 소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신앙생활을 비롯한 삶의 모든 과정과 순간 전체를 의미한다. 자신의 전 인격적인 요소는 물론이거니와 가정 학교 직장 사업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 등의 모든 환경적인 요소 전체를 아우른다. 특별히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각자 자신이 받은 모든 성령의 은사들과 직분들도 포함한다. 열 명의 종들이 주인에게서 각각 한 므나씩 받은 것처럼 통상적으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세 명의 종들이 각각 다섯 셋 한 달란트씩 차등으로 받은 것처럼 사람 각자에게 남들보다 특별히 더 우수하게 주어지는 재능들도 포함된다.
처음 익은 열매란 교회와 성도가 각자 자신들이 받은 것들 중에서 가장 활력 풍성 형통하게 되는 것과 그 전성기를 의미한다. 지성이 한창 꽃피울 때, 건강이 가장 활력있을 때, 사업이 한창 잘나갈 때, 그것들을 가지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데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전성기가 지나고 지성이 둔해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사업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그리스도 여호와를 공경하지 못하겠노라고 포기 절망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이 나날이 후패해지고 하락세에 접어든다면 바로 오늘 하루하루가 내일에 비해서는 처음 익은 열매와도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일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로 최선을 다해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처음 익은 열매로 그리스도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처음 익은 열매는 억지로나 강압적으로나 타성이나 귀찮음에 젖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즐겁게 기꺼이 드리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으로 드린다 하더라도 자원하여 기꺼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끝물만도 못한, 아예 먹거나 사용할 수 없는 폐기물과도 같아서 주님께 열납되지 못한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는 아직 이 땅을 살아가는 불완전한 사람에 불과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까운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얼마간 든다고 해서 내가 드리는 것이 아무 소용 없게 되었다고 절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아까워하는 마음을 믿음의 신앙으로 이겨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아까운 마음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괜히 바쳤다거나 전전긍긍 한다거나 자신이 바친 것을 가지고 주님께로부터 모종의 세속적인 대가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여호와를 공경할 수 없으므로 그분의 뜻을 따라 우리의 소유를 잘 사용하는 것이 그분을 공경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유로 그리스도 여호와를 공경한다는 것은 첫째로는 각자가 속한 유형 교회의 운영 보존 유지를 위하고 둘째로는 각자가 연관된 주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위한 것과 이웃을 위한 것은 상호배타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 협력 연합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유를 둘 중 어느 한쪽에만 전부 쓰면서 자신은 그리스도 여호와를 공경하노라고 자부할 수는 없다. 우리의 소유가 비록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교회와 이웃 둘 다에 적절히 분배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성경을 해석하는 지식과 지혜의 은사를 남들보다 더 풍성하게 받았으면서도 복음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석하려 하지 않고 이제 성경은 알만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세속 학문의 잣대로 성경을 검증하는데 힘을 쏟고 세속 학문과의 연합과 타협을 꾀하는 것은 첫 열매를 끝물 열매로 만들어버리는 짓이다. 철학이나 과학 등의 세속 학문에 탁월한 은사를 받은 자가 그것으로 성경을 이러쿵 저러쿵 재단하여 유신진화론이 성경의 진리라고 떠드는 것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도 먹지 못하는 들포도나무를 맺는 것과도 같은 가증한 짓이다.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처음 직장 들어가거나 개인사업을 해서 번 첫 수익 전체를 교회에 헌금하는 것도 어찌보면 순수함에서 우러난 신앙의 선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 율법적으로 반드시 첫 수익은 전체를 교회에 헌납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적용이다. 그런식의 헌금은 교회 재정에는 도움을 줄 수는 있고 사람들에게서 찬사를 들을 수는 있겠지만 정작 헌금한 자기자신에게는 그리스도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신앙의 유익이나 상급을 얻지 못한다.
일차적으로 이 가르침은 나의 물질적인 재산과 소득과 수익을 가지고 어떻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천하만물이 다 그리스도의 것이므로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사실 그리스도께 티끌만큼의 영광도 보태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원 전부터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믿고 바라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이 땅에서 얼마간의 소유를 가지게 하시고 그 소유 중에서 얼마간을 당신께 드리게 하셔서 그것으로 섬김을 받겠노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소유물이 합법적이고 정당한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합법적이고 정당한 과정이라는 것은 세속 기준과 제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성령의 원리에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형식적인 방식 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의도까지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사유재산과 경제활동과 관련해서 교회가 속한 사회 및 국가의 제도와 법규가 불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성경도 불법으로 인정하는 것들이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사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소득을 취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단지 사회법을 표면적으로 준수했다고 해서 정당한 소유라고 주장한다면 세속인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 사회법이 메꿔주지 못하는 부분은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과 성경의 원리로써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법은 일요일에 경제활동 하는 것을 제재하지 않지만 교회와 성도들은 일요일에는 경제활동을 쉬고 교회 예배 등의 신앙활동에 전념해야 한다. 또한 사업주 신앙인은 일요일에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고 자기 혼자 교회에서 예배드렸다고 해서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니므로, 자신 뿐만 아니라 일요일에는 매장을 닫고 직원들도 쉬게 해주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부득이하게 일요일에 매장을 열어야 된다면 직원들만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 본인도 차라리 매장에 나가는 것이 맞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을 본래 목적이 아니라 단지 시세 차익만을 노리고 투기하는 것과 복권 수익은 설령 사회법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령과 성경의 원리에는 위배되므로 교회와 성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점집, 타로, 사주 등은 물론이고 윤락이나 유흥을 부추기는 업종으로 소득을 취하는 것도 성령과 성경의 원리에 위배된다.
10 그리하면 네 倉庫가 가득히 차고 네 葡萄汁 틀에 새 葡萄汁이 넘치리라
then your barns will be filled with plenty, and your vats will be bursting with wine.
et implebuntur horrea tua saturitate, et vino torcularia tua redundabunt.
ἵνα πίμπληται τὰ ταμεῖά σου πλησμονῆς σίτῳ, οἴνῳ δὲ αἱ ληνοί σου ἐκβλύζωσιν.
우리의 소유로 그리스도 여호와를 공경할 때 주님께서 가득히 차고 넘치게 채우시는 우리의 창고와 포도즙 틀은 이 땅에서 대가로 주어지는 세속적인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늘의 새 예루살렘인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상급을 의미한다. 이 땅을 살아갈수록 우리의 지성은 우둔희미해지고 우리의 육체는 점점 후패해지며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게 마련이고 재산은 조금씩 줄어들게 마련이다. 게다가 이 땅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 많고적은 손실과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언약을 이 땅의 소유로 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주님께서는 간혹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소유를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장차 있을 영원한 상급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주시는 가시적인 표적이지, 그것 자체가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懲戒를 輕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My son, do not despise JEHOVAH’s discipline or be weary of his reproof,
Disciplinam JEHOVAH, fili mi, ne abjicias, nec deficias cum ab eo corriperis :
Υἱέ, μὴ ὀλιγώρει παιδείας ΙΕΗΩΟΥΑ, μηδὲ ἐκλύου ὑπ᾽ αὐτοῦ ἐλεγχόμενος·
12 大抵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者를 懲戒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懲戒함 같이 하시느니라
for JEHOVAH reproves him whom he loves, as a father the son in whom he delights.
quem enim diligit JEHOVAH corripit, et quasi pater in filio complacet sibi.
ὃν γὰρ ἀγαπᾷ ΙΕΗΩΟΥΑ ἐλέγχει, μαστιγοῖ δὲ πάντα υἱὸν ὃν παραδέχεται.
성경이 기록되던 신구약 시대에는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사람을 통해서건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건 현현을 통해서건 간에 직접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요한 사도의 계시록을 끝으로 성경 기록이 완료된 이후에는 주님께서 어떤 이적적인 표적과 기사를 나타나게 하시기는 하셔도 직접 누군가에게 신구약 시대처럼 직접 말씀하시거나 지시하시는 경우는 없다. 대신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보혜사로서 내주하시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과, 당신의 뜻을 사람의 언어로 기록해놓으신 성경을 가지고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
솔로몬이 그리스도 여호와의 은혜나 위로나 긍휼이나 회복이나 형통의 말씀이 아니라 그분의 징계를 언급한 이유는, 사람의 본성상 징계는 꺼리고 은혜와 긍휼과 위로를 선호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늘날에는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직접적으로 징계의 말씀을 하시지 않으시므로 더욱더 주님의 징계는 외면하고 은혜와 축복만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성도에게 내주시키신 성령의 감동과 사람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으로써 성도의 영을 일깨우시고 불편한 징계의 말씀을 싫어하지 않게 하시며 도리어 기꺼이 받아들여 순종하게 하신다. 때문에 주님의 참된 교회와 성도들은 형통하고 평온할 때에도 교만하지 않고 행여나 신앙에서 넘어질까 조심하며 고난과 핍박의 때에도 절망낙심하지 않고 주님의 징계로 알고 잠잠히 묵묵히 견고히 인내하며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교회의 음녀들과 위선자들은 성령의 징계의 감동과 성경의 징계의 기록을 일부러 고의적으로 배척외면하며 오로지 은혜와 형통과 긍휼과 자비와 사랑과 회복의 말씀만을 따와서 환각제처럼 들이킨다.
목사가 목회 이외의 생계 및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결국 주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성경의 일관된 원리는 목사는 목회라는 복음 사역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인데, 생계경제활동 찬성론자들은 성경의 원리보다는 자기들의 어려운 상황과 처지에 대한 공감과 당위성만을 내세운다. 저들이 들이대는 합리화 근거는 바울 사도도 천막을 만들며 자비량 복음 사역을 했다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러나 정말로 주님의 징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생계경제활동 목사라면 성령의 감동과 성경의 원리로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목회 사역에 전념하건 생계활동에 전념하건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13 智慧를 얻은 者와 明哲을 얻은 者는 福이 있나니
Blessed is the one who finds wisdom, and the one who gets understanding,
Beatus homo qui invenit sapientiam, et qui affluit prudentia.
μακάριος ἄνθρωπος ὃς εὗρεν σοφίαν, καὶ θνητὸς ὃς εἶδεν φρόνησιν.
솔로몬이 얻으라 하는 지혜와 명철은 세상을 잘 살아가는 약삭빠름이 아니라 그리스도 여호와의 가르침을 알고 깨닫고 실천하는 성도의 전 인격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지혜와 명철은 오로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선택된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영원히 복된 생명과 상급이 주어진다. 그런데도 솔로몬이 이 지혜와 명철을 얻으라고 가르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억지로 떠넘겨지듯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내주하시는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지혜와 명철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성도는 평생동안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지혜와 명철의 말씀인 성경을 알고 깨달으며 순종하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힘쓰게 되는 것이다. 교회 구성원이라 하면서도 누구든지 이러한 마음과 행함이 없다면 그는 스스로 교회에 속한 형제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14 이는 智慧를 얻는 것이 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利益이 精金보다 나음이니라
for the gain from her is better than gain from silver and her profit better than gold.
Melior est acquisitio ejus negotiatione argenti, et auri primi et purissimi fructus ejus.
κρεῖττον γὰρ αὐτὴν ἐμπορεύεσθαι ἢ χρυσίου καὶ ἀργυρίου θησαυρούς.
15 智慧는 眞珠보다 貴하니 네가 思慕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比較할 수 없도다
She is more precious than jewels, and nothing you desire can compare with her.
Pretiosior est cunctis opibus, et omnia quæ desiderantur huic non valent comparari.
τιμιωτέρα δέ ἐστιν λίθων πολυτελῶν· οὐκ ἀντιτάξεται αὐτῇ οὐδὲν πονηρόν. εὔγνωστός ἐστιν πᾶσιν τοῖς ἐγγίζουσιν αὐτῇ, πᾶν δὲ τίμιον οὐκ ἄξιον αὐτῆς ἐστιν.
그리스도의 지혜와 명철을 얻는 것이 은 금 진주를 얻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은 이 땅에서 그것들보다 더 값진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도리어 이 땅에서는 그리스도의 지혜와 명철을 얻으면 얻을수록 은 금 진주를 비롯한 자신의 소유를 빼앗기게 되거나 손해를 입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지혜와 명철을 얻는 성도들이 받게 되는 은 금 진주보다 더 나은 것은 궁긍적으로 하늘에서의 영원한 생명과 상급인 것이다. 밭에 감추인 보화는 정작 그 밭을 산 농부의 실생활에는 쓰이지 못한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구매한 진주의 가치는 오로지 상인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타인에게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나 마찬가지이다.
16 그의 오른손에는 長壽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富貴가 있나니
Long life is in her right hand; in her left hand are riches and honor.
Longitudo dierum in dextera ejus, et in sinistra illius divitiæ et gloria.
μῆκος γὰρ βίου καὶ ἔτη ζωῆς ἐν τῇ δεξιᾷ αὐτῆς, ἐν δὲ τῇ ἀριστερᾷ αὐτῆς πλοῦτος καὶ δόξα· [1] ἐκ τοῦ στόματος αὐτῆς ἐκπορεύεται δικαιοσύνη, νόμον δὲ καὶ ἔλεον ἐπὶ γλώσσης φορεῖ.
그리스도의 지혜와 명철이 주는 장수와 부귀는 이 땅에서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되는 영생과 상급을 의미한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간간이 죽을 병이 기적적으로 낫는다거나 뜻하지 않은 소유를 얻게 되는 것은 영생과 상급에 대한 가시적인 표적에 불과한 것들이다. 만약에 이 땅에서의 장수와 부귀를 얻는 방식이 반성경적이라면,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세속적 탐욕을 따라 얻은 것에 불과하다.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平康이니라
Her ways are ways of pleasantness, and all her paths are peace.
Viæ ejus viæ pulchræ, et omnes semitæ illius pacificæ.
αἱ ὁδοὶ αὐτῆς ὁδοὶ καλαί, καὶ πάντες οἱ τρίβοι αὐτῆς ἐν εἰρήνῃ·
그리스도의 지혜와 명철을 따라가는 길이 즐거운 이유는 넓고 평탄해서 몸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 아니다. 도리어 그 길은 주님의 멍에를 메고 십자가를 지며 좁고 협착하여 몸과 마음이 힘들어하는 그런 길이다. 그럼에도 그 길이 즐거운 평강의 지름길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보혜사로서 보내주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과 그 길의 끝은 영원한 생명과 상급이라는 소망을 갖게 하시기 때문이다.
18 智慧는 그 얻은 者에게 生命 나무라 智慧를 가진 者는 福되도다
She is a tree of life to those who lay hold of her; those who hold her fast are called blessed.
Lignum vitæ est his qui apprehenderint eam, et qui tenuerit eam beatus.
ξύλον ζωῆς ἐστι πᾶσι τοῖς ἀντεχομένοις αὐτῆς, καὶ τοῖς ἐπερειδομένοις ἐπ᾽ αὐτὴν ὡς ἐπὶ Κύριον.
이 지혜는 세속적 지혜가 아니라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지와 그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하늘의 신령한 지혜로서, 오로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선택된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참된 지혜이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성도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심으로 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언어로 기록하신 성경을 깨우치고 순종하게 하시는 방식으로 지혜를 주신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성령께서 가르치시지 않으시며 성령이 아니고서는 성경을 바르게 깨우치지도 행하지도 못한다. 성령과 성경으로 말미암은 지혜로써만이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얻을 수 있다.
19 여호와께서는 智慧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明哲로 하늘을 堅固히 세우셨고
JEHOVAH by wisdom founded the earth; by understanding he established the heavens;
JEHOVAH sapientia fundavit terram, stabilivit cælos prudentia.
ὁ ΙΕΗΩΟΥΑ τῇ σοφίᾳ ἐθεμελίωσεν τὴν γῆν, ἡτοίμασεν δὲ οὐρανοὺς φρονήσει·
20 그의 知識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空中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by his knowledge the deeps broke open, and the clouds drop down the dew.
Sapientia illius eruperunt abyssi, et nubes rore concrescunt.
ἐν αἰσθήσει ἄβυσσοι ἐρράγησαν, νέφη δὲ ἐρρύησαν δρόσους.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본다면 천지만물을 지으신 그분의 지혜와 명철은 그분의 독생자이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호와를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본다면 천지만물을 지으신 그분의 지혜와 명철은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영혼과 육체의 사역이라 볼 수 있다. 요한 사도가 복음서의 첫장에서 기록한 바 태초에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신 분은 바로 영원 전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 육체가 되셨다는 요한 사도의 기록은 이전에는 사람이 아니셨다가 이 땅에 오실 때에야 사람이 되셨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에는 하늘의 사람으로 계셨다가 이 땅에 오실 때에는 죄로 인해 타락하고 부패한 우리와 같은 인성 수준으로 한없이 낮아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 전 창세 전부터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성자 하나님과 연합하시고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하시므로 하나님과 당신 자신의 인성의 지혜와 명철로써 천지만물을 지으신 것이다.
21 내 아들아 完全한 智慧와 謹愼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My son, do not lose sight of these— keep sound wisdom and discretion,
Fili mi, ne effluant hæc ab oculis tuis. Custodi legem atque consilium,
Υἱέ, μὴ παραρυῇς, τήρησον δὲ ἐμὴν βουλὴν καὶ ἔννοιαν·
지혜의 근원은 영원 전부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나,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혜는 오로지 사람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과 성도 개개인의 영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 뿐이시다. 이 땅은 죄로 인해 타락하고 부패하였으므로 교회와 성도는 오로지 성령과 성경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죄를 피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2 그리하면 그것이 네 靈魂의 生命이 되며 네 목에 裝飾이 되리니
and they will be life for your soul and adornment for your neck.
et erit vita animæ tuæ, et gratia faucibus tuis.
ἵνα ζήσῃ ἡ ψυχή σου, καὶ χάρις ᾖ περὶ σῷ τραχήλῳ. ἔσται δὲ ἴασις ταῖς σαρξί σου, καὶ ἐπιμέλεια τοῖς σοῖς ὀστέοις·
타락하고 부패한 이 땅에서 하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보다는 죽음을, 아름다운 장식보다는 수치와 능욕의 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눈에는 죽음과 수치와 능욕을 불사하고 그리스도의 지혜를 붙잡는 성도들의 그 믿음을 찬란한 장식품처럼 아름답게 보시고 당신의 소유로 기꺼이 받으시며 영원한 생명은 물론이거니와 이 땅에서 당한 죽음과 수치와 능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상급을 부여하신다.
23 네가 네 길을 平安히 行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Then you will walk on your way securely, and your foot will not stumble.
Tunc ambulabis fiducialiter in via tua, et pes tuus non impinget.
ἵνα πορεύῃ πεποιθὼς ἐν εἰρήνῃ πάσας τὰς ὁδούς σου, ὁ δὲ πούς σου οὐ μὴ προσκόψῃ.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가는 길은 이 땅에서는 평안하지도 매끄럽지도 않는 좁고 협착하고 장애물도 많은 그런 길이다. 그럼에도 성도가 그 좁고 협착하고 어려운 길을 평안하고 매끄럽게 지나갈 수 있는 이유는 그 길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일한 진리의 길이라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다. 사도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피할 길 없어보이는 욱여쌈을 당하는 고난에도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하였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의 시험과 고난만을 허락하시고 그에 대한 피할 길을 내어주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령과 성경으로 그 고난의 대피로를 능히 갈 수 있는 것이다.
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If you lie down, you will not be afraid; when you lie down, your sleep will be sweet.
Si dormieris, non timebis ; quiesces, et suavis erit somnus tuus.
ἐὰν γὰρ κάθῃ, ἄφοβος ἔσῃ, ἐὰν δὲ καθεύδῃς, ἡδέως ὑπνώσεις·
질병, 노화, 가난, 사고, 죽음 등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지혜가 있는 성도는 성령의 감동하심과 성경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하게 하고 오늘 주어진 하루를 감사함으로 보내라고 하셨는데, 이는 사람은 통상적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은 머나먼 미래의 일들을 미리 지금 불필요하게 앞당겨서 걱정하느라 스스로의 심령을 해치기 때문이다.
25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惡人에게 닥치는 滅亡도 두려워하지 말라
Do not be afraid of sudden terror or of the ruin of the wicked, when it comes,
Ne paveas repentino terrore, et irruentes tibi potentias impiorum.
καὶ οὐ φοβηθήσῃ πτόησιν ἐπελθοῦσαν οὐδὲ ὁρμὰς ἀσεβῶν ἐπερχομένας·
주님께서 전쟁이나 온갖 자연재해 등의 재앙으로써 이 땅을 징벌하실 때에는 교회와 성도들도 표면적으로는 악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징벌의 섭리를 피해가지 못하고 같이 당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그러한 재앙 가운데서도 교회와 성도들이 멸망 당하지 않도록 굳게 보존하시고 설령 그들이 이 땅에서는 그 재앙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보장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두려워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회와 성도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의 큰 흐름에 놓이게 되었을 때 한편으로는 기적적으로 그 재앙을 당하지 않기를 구하기도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재앙의 섭리를 당하되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참고 견뎌내어 한층 더 거룩해지고 경건해지기를 소망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기록된 바 두루마리의 일곱 봉인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은 주님 재림 전에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악인들 뿐만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도 어느 정도 함께 받게 된다. 그러나 그 재앙들은 악인들에게는 심판의 도구이지만 성도들에게는 성화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26 大抵 여호와는 네가 依支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for JEHOVAH will be your confidence and will keep your foot from being caught.
JEHOVAH enim erit in latere tuo, et custodiet pedem tuum, ne capiaris.
ὁ γὰρ ΙΕΗΩΟΥΑ ἔσται ἐπὶ πασῶν ὁδῶν σου, καὶ ἐρείσει σὸν πόδα ἵνα μὴ σαλευθῇς.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환난과 재앙 가운데서 성도들을 지키시는 방법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시거나 말씀하시거나 하는 방식보다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영을 일깨우셔서 성도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 성경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행하게 하심으로써 보존하신다.
27 네 손이 善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者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Do not withhold good from those to whom it is due, when it is in your power to do it.
Noli prohibere benefacere eum qui potest ; si vales, et ipse benefac.
μὴ ἀπόσχῃ εὖ ποιεῖν ἐνδεῆ, ἡνίκα ἂν ἔχῃ ἡ χείρ σου βοηθεῖν.
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Do not say to your neighbor, “Go, and come again, tomorrow I will give it”—when you have it with you.
Ne dicas amico tuo : Vade, et revertere, cras dabo tibi, cum statim possis dare.
μὴ εἴπῃς Ἐπανελθὼν ἐπάνηκε, αὔριον δώσω, δυνατοῦ σου ὄντος εὖ ποιεῖν· οὐ γὰρ οἶδας τί τέξεται ἡ ἐπιοῦσα.
재물이건 능력이건 환경이건 어느 정도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성도들은 그것이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청지기가 주인에게서 불의하다고 정죄 당한 이유는 주인의 소유를 가지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 주인에게 영광을 돌리려 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높은 이자를 취함으로써 주인의 명성을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뒤늦게서야 자기 살길을 위해 그들의 빌린 것을 몰래 감해줬지만 선한 주인은 그런 표면적인 행위마저도 선하다고 인정하였다. 물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라는 것은 아니다. 먼저는 자신과 가족을 충분히 돌본 후에 여유 자금이나 능력을 가지고서 타인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타인을 도울 때는 그것으로 무슨 즉각적인 보상을 바라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고, 도리어 스스로가 무익한 종으로서 그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 구제에 대한 상급은 전적으로 주님의 권한이다.
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平安히 살거든 그를 害하려고 꾀하지 말며
Do not plan evil against your neighbor, who dwells trustingly beside you.
Ne moliaris amico tuo malum, cum ille in te habeat fiduciam.
μὴ τεκτήνῃ ἐπὶ σὸν φίλον κακά, παροικοῦντα καὶ πεποιθότα ἐπὶ σοί.
예를 들어, 교회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특별히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냥저냥 빠지지는 않고 오래 다니기만 하는 교인이 매우 사교적이고 친근한 성품이어서 어쩌다가 간혹 나와도 금세 큰 관심을 차지하는 다른 교인을 보면서 은연중에 질시를 한다거나 자기는 그래도 그와는 달리 근면하게 교회를 다녔다는 종교적 자부심을 갖는다거나 그가 이런저런 사유로 교회에 안나왔으면 좋겠다는 등의 마음과 생각을 품는 것이 평안히 사는 이웃을 해하려고 꾀하는 죄이다. 특별한 문제없이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목사나 근실하게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적인 연약함이나 흠이나 실수들을 가지고 침소봉대하여 참소하거나 다른 교인들에게 사적으로 은밀히 수군수군 흉을 봄으로써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만들어 복음 사역을 그만두게 하거나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것이 이웃을 해하려고 꾀하는 죄이다. 명확실한 물증도 없으면서 단지 정황과 심증만 가지고서 다른 성도가 자기를 음해하려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것이 이웃을 해하려고 꾀하는 죄이다. 청년이라는 이유로 교회의 이런저런 행사에 봉사와 헌신을 강요하는 것도 이웃을 해하려고 꾀하는 죄이다. 아직 신앙이 충분히 장성숙하지 않았는데도 감당하기 어려운 봉사나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 이웃을 해하려고 꾀하는 죄이다.
30 사람이 네게 惡을 行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Do not contend with a man for no reason, when he has done you no harm.
Ne contendas adversus hominem frustra, cum ipse tibi nihil mali fecerit.
μὴ φιλεχθρήσῃς πρὸς ἄνθρωπον μάτην, μή τί σε ἐργάσηται κακόν.
단지 정치이념이 안맞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지도자와 정부의 모든 정당한 정책들을 사사건건 거스르며 온갖 비방 저주 악담 조롱 등을 서슴지 않고 불법집회를 열어 시민들에게까지 불편을 초래하는 거짓 교회와 거짓 목사와 거짓 교인들이 까닭없이 다투는 악인들이다. 생계활동 목사와 같은 기독교 관련 논란거리가 있을 때 자기 견해와 처지가 다르다고 해서 의견 도출과 화합보다는 인격모독과 비방과 악담과 심지어 저주까지 퍼붓는 것이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는 짓이다. 가까이도 아니고 멀리서 길거리 흡연이나 보행로 불법주차 등의 민폐 상황을 볼 때마다 굳이 찾아가서 싸우자는 듯이 시비걸고 따지는 것이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는 짓이다.
31 暴虐한 者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行爲도 따르지 말라
Do not envy a man of violence and do not choose any of his ways,
Ne æmuleris hominem injustum, nec imiteris vias ejus :
μὴ κτήσῃ κακῶν ἀνδρῶν ὀνείδη, μηδὲ ζηλώσῃς τὰς ὁδοὺς αὐτῶν.
포학한 교회는 재정 규모와 교인 수를 내세워서 사회법 제도와 공공질서까지 무시하고 무너뜨린다. 포학한 목사와 장로는 직분을 내세워 세속적인 방식으로 교회와 교인들을 휘어잡고 자기한테 꼼짝 못하게 만든다. 포학한 교인은 자기의 연배와 교회에서의 영향력을 내세워 자기보다 못해보이는 신앙인들을 아랫사람 부리듯이 함부로 하대한다. 성경 지식만 가득한 포학한 교인은 자기가 아는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을 발견하면 앞뒤사정황 따지지 않고 대놓고 정죄한다. 세상에서 잘나가는 포학한 교인은 교회에서도 거들먹 거리며 목사의 복음적 권면을 무시한다. 세상에서 빈천한 포학한 교인은 교회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쓰면 불평과 원망과 신세한탄을 서슴지 않으며, 부귀한 신앙인들을 질시한다.
32 大抵 悖逆한 者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正直한 者에게는 그의 交通하심이 있으며
for the devious person is an abomination to JEHOVAH, but the upright are in his confidence.
quia abominatio JEHOVAH est omnis illusor, et cum simplicibus sermocinatio ejus.
ἀκάθαρτος γὰρ ἔναντι ΙΕΗΩΟΥΑ πᾶς παράνομος, ἐν δὲ δικαίοις οὐ συνεδριάζει.
33 惡人의 집에는 여호와의 詛呪가 있거니와 義人의 집에는 福이 있느니라
JEHOVAH’s curse is on the house of the wicked, but he blesses the dwelling of the righteous.
Egestas a JEHOVAH in domo impii ; habitacula autem justorum benedicentur.
κατάρα ΙΕΗΩΟΥΑ ἐν οἴκοις ἀσεβῶν, ἐπαύλεις δὲ δικαίων εὐλογοῦνται.
34 眞實로 그는 倨慢한 者를 비웃으시며 謙遜한 者에게 恩惠를 베푸시나니
Toward the scorners he is scornful, but to the humble he gives favor.
Ipse deludet illusores, et mansuetis dabit gratiam.
ΙΕΗΩΟΥΑ ὑπερηφάνοις ἀντιτάσσεται, ταπεινοῖς δὲ δίδωσιν χάριν.
35 智慧로운 者는 榮光을 基業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者의 榮達함은 羞恥가 되느니라
The wise will inherit honor, but fools get disgrace.
Gloriam sapientes possidebunt ; stultorum exaltatio ignominia.
δόξαν σοφ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οἱ δὲ ἀσεβεῖς ὕψωσαν ἀτιμίαν.
패역 거만 미련한 악인은 대놓고 주님과 교회와 성경과 성도들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주님과 교회와 성경과 성도를 빙자하여 육체와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위선자들도 해당된다. 교회의 위선자들은 자기들이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 오래 다니고 헌금과 봉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받은 성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러한 그들의 종교적 확신은 성령으로 말미암고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임의적 망상에 불과하다. 교회의 위선자들이 그렇게 자기들의 망상에 빠지게 된 것은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그들을 미워하심으로 저주하시고 비웃으심으로 수치스럽게 내버려 두시기 때문이다. 교회의 발람과 이세벨과 니골라 당의 거짓 교훈에 미혹되는 자들도 표면적으로는 교회 구성원일지라도 근본적으로는 처음부터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아니며 오히려 교회의 대적자인 마귀가 심어놓은 자들이기 때문에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그렇게 교회에서 활보하다가 미혹되어 영원한 멸망으로 빠지도록 내버려두신 것이다. 정치선동을 일삼으며 감히 하나님도 자기 손으로 어찌해버리겠다는 신성모독 목사, 남북통일을 위해 북한주민 이천만명을 하나씩 끌어안고 죽자고 선동하는 목사, 패륜적인 일베 게시물을 퍼나르는 개혁주의 신학교수, 유신진화론 학자, 교회무용론자 등의 반성경적 반인륜적 반도덕적 거짓 목사들을 진리인 양 스스로 추종하며 비호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죄악에 스스로 동참하여 주님을 거스르겠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