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 아기는 울음이 의사표현 수단이다. 배가 고플때나 몸이 불편할 때 어미와 떨어져 있을 때는 울음을 터뜨린다.
조금 커서 말기를 알아듣기 시작할 때는 울음을 그치게 할 때 겁을 주기도 한다.
호랑이를 본 적이 없어도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호랑이가 와서 물고 간다고 하기도 하고
왜놈 순사가 잡아간다고 하기도 하고 춤쟁이가 와서 침으로 찌른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동네가 제법 커서 가구수가 90여호 되었다. 그런데도 약국이나 병원은 이십리나 떨어진 반성에나 있어서
다치거나 아파도 그냥 민간요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박이 터지면 된장을 발라 싸매야 했다.
내가 어릴 때 찬 곳에 얼굴을 대고 자다가 일어나 보니 입이 한쪽으로 돌아갔던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보시고 놀라 나를 업고
가실 할배한테로 달려 갔다고 한다. 가실 할배는 할머니 남동생으로 어깨 너머로 배운 침술로 동네에서 의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돈을 받는게 아니고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봉사였다. 다행히 침을 맞고 손목 부근에 쑥뜸을 한 후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도 오른쪽 팔뚝에 그 때 맞았던 흉터가 남아있다.
얼마전 부산대 한방병원 지하철 광고를 보고 척추협착증 임상연구대상자 모집에 응시하여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어제 집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양산 부산대 양산캠퍼스역까지 가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한방병원으로 갔다.
환자가 많아 한참 기다린 후에 내 차례가 되어 치료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등과 종아리에 침을 열대를 맞았다.
총 14 회에 걸쳐 침을 맞은 후 치료결과를 처음과 비교할 모양이다. 어제 6회차 맞았는데 걸음 걸을 때 전에는 엉치뼈 부근이
약간 저렸는데 그 저린 것이 나아졌고 왼쪽 다리가 무거웠는데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새벽에 걷기운동할 때 걷는 속도도
전에 비해 약간 빨라졌다. 전에는 분당 110보 정도 였는데 어제 아침에는 분당 속도가 118보가 나왔다.
강총도 몇년전에 척추협착증으로 고생하다가 부산대 한방 임상연구대상자로 선정되어 약 한달간 침 치료를 받고 완전히 나았다고 한다. 간호사에게 내 친구가 여기와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던데 그 때 당시 침을 놓았던 교수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친절하게도 찾아보고 알려주었다. 양산캠퍼스가 아니고 아미동에 임시로 있을 때였다고 하며 담당교수는 김 아무개라고 하며 지금도 한벙병원에서 침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