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12 - 앵발리드에서 몽파르나스 역과 타워를 지나 묘지를 찾다!

6월 17일 아침에 파리 루브르 를 보고는 카루젤 개선문 과 튈르리 정원 을 거쳐
알렉상드르 3세 다리로 세느강을 거너 거대한 건축물 앵발리드 를 구경합니다.


여기서 치러졌던 국장으로 나폴레옹 황제 장례식 이며 1차대전 마지막 생존자 라자르
폰티첼리 그리고 6.25전쟁 프랑스군 대대장으로 1,964년에 죽은 몽클라르
중령 (중장) 의 국장이 드골 대통령 의 참석하에 엄수되었던 사실등을 회상해 봅니다.


앵발리드 를 나오니 큰 도로인 앵발리드 대로인데 맞은편에 로댕미술관 은 외관만 보고
남쪽인 오른쪽으로 걸어서 몽파르나스 묘지 와 뤽상부르 공원 을 찾아 갑니다.



도중에 생 프랑수아 그자비에 교회 St. Francois Xavier 가 보이기로
들어가서는 의자에 앉아서는 쉬면서 지친 심신 을 달랩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후 다시 앵발리드 대로를 걸어 지하철 뒤로크역 에 이르러 도로변에
원통형 강철로 된 화징실 을 발견하고는 들어가는데.... 폐쇄공포증 을 느낍니다.


그러고는 5거리 로터리인 몽파르나스 기차역 Gare Montparnasse 에 이르러서는...
몽파르나스 타워 를 보고 시내 지도를 보며 현재 위치와 방향을 확인 합니다.

몽파르나스 타워 는 1,973년에 완성되었는데 높이는 209미터로......
그중 56층과 59층에 전망대 가 있다지만 시간이 없으니 그냥 지나칩니다.

여기 타워가 세워진 몽파르나스 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헤밍웨이 와
샤갈이며 샤티 등이 매일같이 카페에서 모여 밤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화가 모딜리아니 는 이탈리아 르보르노 태생으로 파리에서 화가 생활을
하던 1,914년에 당시 16세의 소녀인 잔느 에뷔테른느 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3년후 잔느가 19세되던 해에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의 생폴 드 방스 에서 동거 에 들어간후
모딜리아니 는 아이들과 소년, 소녀들의 그림 을 그리며 행복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1,919년에 이르러 너무 가난해서 겨울에 난로를 못지필 정도가 되자 어떤
계산도 없이 순진무구한 사랑 을 바친 잔느지만 친정으로 들어갈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해 1,920년 1월 24일 낙담한 모딜리아니 는 파리 자선병 원에서 결핵으로 사망 하고
이를 전해들은 잔느는 이틀후 아파트 6층에서 뒤를 따르니 묘지에 함께 묻힙니다!

모딜리아니 는 당대 최고의 미남으로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보헤미안" 이자.... "술과 약에 중독된 결핵 환자" 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내면과 꿈으로의 상승 의지 를 그린 독특한 화가이니
일러 당대의 풍운아 였지만, 가난과 질병 은 그를 삼켜버린 것이지요!

두 사람은 여기 파리 "몽파르나스의 한 카페" 에서 처음 만났는데 잔느 의 우아한 자태
와 잔잔한 미소 를 보고 모딜리아니는 즉각 사랑에 빠졌으니.... 모딜리아니가
사랑을 고백하자 수줍음 많은 소녀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고 합니다.

모딜리아니는 미남이었을 뿐 아니라 정열적인 화가로 뭇 여인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는데, 두 사람은 점차 열렬한 사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나
"그 사랑이 저주" 였음을 확인했을 때.....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영화감독 오슨 웰스 는 헝가리 출신 위작 화가 엘미르 드 호리 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인 “진실과 거짓”을 만들었습니다.

거기 이런 대화가 나오는데 드 호리 는“모딜리아니는 일찍 죽었기 때문에
남긴 작품이 적습니다, 내가 몇점 보탠다고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호리 가 말하자 웰스 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름다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예술 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영국의 위작 화가 톰 키팅 은 미술학교를 나와 그림 기술은 뛰어났으나 독창성
은 없었습니다. 그는 렘브란트와 고야 등 대가들의 작품을 2,000점이나
위작을 하다가 영국 더타임즈 미술기자 의 끈질긴 추적에 꼬리가 잡히자 말합니다.


“내가 만든 위작으로 돈을 번건 화상들 일 뿐, 내가 직접 위작을 판적은 없다.” 라고
변명했다는데.... 위작이 들어나면 가격이 폭락하는게 보통 인데, 그의 위작은
오히려 수집가를 자극 했으니 그가 죽자마자 그가 그린 위작의 가격은 폭등 했다고 합니다.


청력상실에도 클래식을 작곡해 현대의 베토벤으로 불리던 일본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 는
곡의 구성과 이미지만 제안 하고 나머지는 작곡 전공 강사 니가키 다카시 에게 맡겼습니다.


이 대리 작곡가의 항변이 키팅과 비슷하니 18년전 사무라고치 로 부터 오케스트라용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곡을 제공했을뿐, 발표한 것은 사무라고치 라나요?


그러고는 몽파르나스 묘지 를 찾기위해 걷는데 마침 슈퍼 가 보이니
마눌은 파리 바케트 빵 을 살 욕심으로 앞장서 들어가네요?

따라 들어가서는 빵과 과자 를 몇가지 골랐는데 계산대에 서서 비닐봉투 하나
까지 넣었더니 그것도 돈을 받는지라...... 9유로에서 10센트가 모자랍니다?

빵을 들어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10센트 때문에 신용카드를 사용 하기도
그래서 곤혹스러워 하는데...... 마눌은 비닐봉투를 반납하자네요?

그럼 빵들이 부피도 큰데 손에 들고 어떻게 다니지? 고민하는데, 뒤에 섰던 프랑스
여인이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10센트를 주는줄 알고 “메르씨!, 멸치볶음!”

감사해했더니 이런? 비닐봉투를 챙겨가는 것이 그럼.... 우리에게 1센트를 도와
주겠다는 뜻이 아니고, 저 비닐 봉투 를 자기가 사겠다는 뜻 인가 보네요?

신문 에 "슈퍼 쇼핑 계산 : 계산대에서 황당한 일을 겪다!" 라는 기사가 떠오르는데...
"우리나라에 대형 마트에서 계산대에 줄이 길게 늘어선 경우 를 본다.
서투른 계산원 아줌마 또는 바코드 기계작동 불량 또 가격표를 새로 붙인 제품 탓이지만"

"개중에는 여자 손님 이 남자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즉 가방을 열고 거기서
또 지갑을 찾아내 열어서 똑같이 생긴 수많은 적립카드와 할인카드 및 신용카드
중에서 해당 마트에 적용되는 신용 카드 를 찾아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퇴근길이나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마트를 들른 경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해당카드와 적립카드 를 찾아내는데 가방에는 구분이 없이 온통 물건이 뒤섞인걸 본다."

"지갑, 향수, 작은 빗, 립글로스, 볼펜, 화장품, 명함지갑, 휴대전화, 손거울, 껌
예비 배터리, 티슈, 수첩, 열쇠고리, 비상용 머리끈, 눈썹칼,
선글라스, 교통카드 케이스, 이어폰, 핸드크림, 네일크림, 책, 생수, 커피캔....."

"게다가 구석구석 숨어있는 온갖 영수증 과 작년 겨울 코트에서
떨어진 단추며, 일부러 난장판을 만드는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엇이 필요할지 모르므로 다 챙겨들고 나가는 것이다!"

"유럽 여성도 크게 다를바 없으니 이나라 프랑스 사회학자 장클로드 코프만
은“가방은 여자들에게 있어 제2의 집” 이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우린 10센트가 모자라 둘이서 양손에 빵과 과자 를 들고는 몽파르나스 묘지 를 찾아
가는데, 행인에게 물으니 우리가 지도에서 본 방향 과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네요?

순간 혼란이 이는데... 그래도 저 노신사가 설마 엉뚱한 방향을 가리켜 주었을리 없으니
그대로 따라 골목길로 들어가니..... 그럼 여긴 정문 은 아니고 "후문" 인가 봅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

★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언제 한번더 파리에 가고싶네요 파리만 3번갔었던 저였지만 다시한번더 가고싶은곳입니다
유럽은 교회에 묘지를 많이 쓰는데.....
프랑스는 이처럼 도회지 한 복판에
공원을 연상시키는 묘지가 많습니다!
역시 파리가 그립네요.
언제 가능한지..ㅎ
언제 가도 질리지 않는 도시 파리......
머잖아 사태가 진정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수 있을테지요!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
살아 생전에 부와 명성을 얻은
화가는 피카소 정도.....
다들 어렵게 살다가 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