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으면,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외부적인 문제 즉 눈으로 보이는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입니다 .
내부적인 문제란 교회안에 숨어있는 죄에 대한 문제요 더 나아가서는
모든 성도들의 죄에 대한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크게 다루고 있는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목적도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6:27 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요한1서 3:5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교회는 전체적인 죄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개인적인 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죄들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죄에 대하여 너무나 무감각합니다.
특히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개인적인 죄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다루셨습니다.
마태복음 15:14 그들을 그냥 두라. 그들은 눈먼 자들을 인도하는 눈먼 지도자로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 다 도랑에 빠지리라, 하시매
마태복음 15:15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밝히 말씀해 주옵소서, 하니
마태복음 15:16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15:17 무엇이든지 입 안에 들어가는 것은 배로 들어가
뒤로 내버려지는 줄을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15:18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그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태복음 15:19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 증언,
신성모독이 나오는데
마태복음 15:20 이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이거니와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아니하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이 말씀이 마음에
심각한 부담으로 다가 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죄에 대한 관점은 외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내적인 관점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소경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성경적으로 지식이 많을 것 같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소경의 짓을 할까요?
그들은 교회세습과 종교통합과 음녀 카톨릭과 야합하여 교회직제제를 하고,
교황을 만나 꼬리치고, 성경에도 없는 온갖 이상한 교리 만들어
성도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며 그야말로 우리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그들은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그 대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5 : 19 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 가운데 해답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죄들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잘 따라 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은 모두 종교적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이며 종교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은 결코 내적인 죄와 허물의 심각성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외식에 취할 수밖에 없었고 외식에 취한
그들은 내적인 죄의 심각성에 대하여는 무감각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심각한 죄인이며 그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만이 소경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소경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에 대한 심각성을 가볍게 보아 넘기지 말고
천국 들어가는 그날까지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제목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하면 자신은 이미 회개했기 때문에
회개할 죄가 없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구원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도 천국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은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면 절대로 종교적인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됩니다.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전도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집사하고
장로가 되고 전도사 되고 목사를 한다면 그사람은
바리새인적인 신앙으로 흘러 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생활 즉 신앙생활은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죄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들은 죄와 싸워 이긴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2:1 그러므로 증인들이 이렇게 큰 구름을 이루며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죄와 싸우며 이 세상을 살다 간 사람들
그들은 지금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보며 이렇게 소리 치는 것 같습니다.
" 우리도 믿음으로 죄와 씨름하여 이겼습니다.
당신들도 반드시 죄를 이기고 이곳으로 오십시요!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죄는 그냥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여깁니다.
심지어 자신은 죄와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먼저 무거운 짐을 벗어 던져야 시작됩니다.
무거운 짐은 세상의 염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것은 타인보다 더 잘살기 위해 경쟁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경쟁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
믿음으로 나가는 길을 방해하는 무거운 요소입니다.
이런 경쟁은 또한 마음을 무겁게 할뿐 아니라 죄를 짓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런 문제에 대하여 경고 하셨습니다.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죄에 대하여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거운 마음에서 해방 되어야 됩니다.
생활의 염려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 가려면 우리 마음은 무겁게 되고
둔해지고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고 죄에 쉽게 얽매이게 만듭니다.
이렇게 무거운 것과 죄를 짓게 만드는 이런 유혹들을 떨쳐 버리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은 아직 믿음의 경주조차 시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도 아니며 그저 자연인입니다.
천국의 본향 그곳으로 가려면 세상과 죄의 쾌락을 뒤로 하고 인내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멀리하고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도 그냥 달려가면 안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만 바라 보라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병든 자를 고치신 예수님,
죽은 자를 일으키신 예수님, 등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만을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예수님을 생각하며 죄와 싸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런 모든 신적인 능력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은 모든 대적들로부터
모독을 받으시면서 끝까지 인내 하시고 참으신 그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피를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벌거벗고 올라가야 하는 수치까지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한이 없으신 완전하신 성자 하나님이셨지만 그는 모든 능력을 내려놓고 올라가셔서 그를 못 밖고 대적하는 무리들에게
"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 마 27:40 )
는 모욕을 견디셨습니다.
히브리서 12: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런 고난을 왜 견디셨을까요?
말씀과 같이 " 자기 앞에 놓인 기쁨 " 즉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수치와 고난을 통해 통해 구원받을 우리들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
좋은 경기를 하려면 일류 선수가
좋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면 많은 도움을 줍니다.
죄와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모든 죄를 지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도 앞으로 다가올 예수님과 같은 그 영광을 얻기 위해
십자가의 수치 조차 멸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죄와 싸워야 합니다.
죄와 싸울 때 지치지 않으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실 때
자신을 대적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인내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3 죄인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이처럼 거역한 것을 견디어
내신 분을 깊이 생각할지니 이것은 너희가 너희 생각 속에서
지치고 기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죄와 싸우기 위해
피흘리도록 대항하지 않으면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는 아니하였노라.
수많은 사람들의 죄와 싸운다고 하지만 죄와 싸움은 말씀과 같이 피를 흘리며까지 대항해야 죄와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죄와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죄와 싸움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와 싸움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와 싸워야 할 이유는 죄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파괴하고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습니다.
우리 인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은혜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두손두발 다 놓고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교회만 왔다갔다 하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구원 받는 것이 그런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진심으로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들에게 다시한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죄는 우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결코 옛날과 같이 죄를 즐기거나 죄를 좋아하며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며 죄에 대항하여 피흘리며 싸우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죄와
생활 속에서 짓는 모든 죄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한
애통이 없다면 당신은 아직까지 믿음의 경주에 들어서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또한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가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님께서 완성 하셨지만
구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시려면 회개하고
무거운 삶의 요소와 죄를 떨쳐버리고
죄에 대항하여 피흘리기까지 싸워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직 예수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