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아파트 우리 라인 앞에 커다란 이삿짐 화물차 한대가 현관문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1,2라인상에 있는 16층에서 이사를 가는 모양이다. 이사온지가 벌써 2년이 됐던 모양이다. 임차인이 원하면 2년 더 있을 수가 있는데 연장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화물차 벽면에는 '이사연구소'란 큼직한 글씨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사연구소'라?
무슨 연구소라면 어떤 대상을 놓고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곳을 지칭하지 않는가?
가령 대학에서 연구소를 둘려면 연구소장 이하 연구인력과 행정인력 통신 공간 집기 등과 운영 예산이 동반되어야 한다.
나도 우리대학에서 '북극항로 연구소장'으로 한동안 지냈었다. 세미나도 열고 논문 발표회도 몇번 가졌었다.
기업체에서도 연구소를 두면 몇가지 인센티브를 주는데 연구소 설치기준에 합당해야 하고 비용이 들어가므로 대기업에선 몰라도
중소기업에서는 꺼린다.
얼마전 정부가 내년도 예산에서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였다. 그러자 정부산하 각 연구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정부에서는 그 동안 이사연구소와 같이 명목만 연구소지 제대로 연구실적을 내지 않고 예산만 축내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잠시 영국 카디프 대학에 나가 있을 때 같은 연구실에 있던 우크라이나 출신 아템이란 교수는 소련 과학자로
특허가 68개나 되었다. 그런데 정작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실용적인 것 보다는 실적이 중요하므로 연구를 위한 연구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였다. 문정부에서도 털원전 기치 아래 재생에너지와 관련하여 연구소를 통한 예산 빼 먹기에 혈안이 됐는지도 모른다.
비아그라가 나오기 전엔 정력에 좋다고 뱜텅집이 몇군데 있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적엔 시내 변두리에 뱀탕집과 영양탕집이
더러 눈에 띄었다. 뱀탕집 앞에는 큰 유리 병안에 큰 구렁이등을 넣어 놓고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었다. 어떤 집에서는 뱀탕집 간판을 '독사연구소'라고 이름을 붙인 곳도 있었다. 연구소가 연구를 하는 곳이 아니라 단지 상호 이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