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생의 성인 무대 데뷔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
성인 무대에 데뷔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요.
한때 이를 허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90~91농구대잔치
대학 팀이 선수 부족으로 기권하는 사태가 많아
허용했었는데 이때 데뷔했던 선수가
91학번 고교 랭킹 1위로 평가받던 이상민입니다.
< 무명의 홍대부고를 이끌었던 이상민 >
트리플더블 개념이 생소할 당시
고교생으로 트리플더블
37득점 11리바 10어시
연세대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
고교 졸업 예정자 신분으로
농구대잔치 2차대회에 참가해
연세대가 농구대잔치 역사상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꺽는데 공헌합니다.
당시 대학 팀은 1차 대회에서
실업 팀에 18전 전패를 당할 정도로 약세였는데
연대가 문경은, 정재근에 이상민이 가세하면서
이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17연승의 기아까지 이기는
최대 이변을 연출하며
대학 돌풍의 서막을 알립니다.
당시 3차 대회는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출전 경기는 많지 않았지만
고등학생 신분으로
평균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2. 고등학생 서장훈은?
< 고교생 2호 트리플더블 >
36득점 15리바 11어시
당시 고교 기록 전산화가 안된 시절이라
80년대 기록을 확인할 순 없지만
당시 기사에서는
고교생 트리플더블 기록을
1호 이상민, 2호 서장훈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농구대잔치 트리플더블 기록
허재 84년 26득점 17리바 13어시
이원우 87년 23득점 12리바 10어시
서장훈 94년 21득점 20리바 10블록
이상민 96년 13득점 17리바 10어시
이상민 96년 11득점 11리바 10어시
대학, 실업 함께 뛴 대회에서는 5번 밖에 없습니다.
희소한 이유는 어시 규정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서장훈은 블락으로 달성한 거라 놀랍고
이상민은 5일 사이에 2번 달성해
당시 언론이 뜨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단했던
고등학생 서장훈의
농구대잔치 데뷔전은 어땠을까요?
결론은 고교 졸업 예정자 신분으로는
이상민 처럼 데뷔하지 못합니다.
왜냐? 못 뛰게 했기 때문에
당시 실업 팀이
고등학생 서장훈을 무서워했다는
재미있는 기사가 있습니다.
< 성차별 >
우리가 기억하는
농구대잔치 역사상 최초의 대학 팀 우승은
서장훈의 대학 입학 후 1학년 때입니다.
당시 서장훈은 개인 상을 독식합니다.
< 정규리그 >
< 정규리그 + PO >
득점 1위 문경은
어시 1위 이상민
리바 1위 서장훈
3점 1위 김상식
수비 1위 서장훈
MVP 서장훈
우수선수 허재
신인상 서장훈, 오성식
지도상 최희암
베스트5 이상민 허재 문경은 정재근 서장훈
수비5 이상민 허재 강동희 양경민 서장훈
1학년 서장훈이 아닌
고등학생 서장훈의 활약은 어땠을지
궁금하긴 합니다.
첫댓글 산왕공고 실사판이군요
저는 슬램덩크를 못 봐서 ㅎ 어떤 면에서 비슷한 건가요?
@LaDivina 아! 거기서 고등학생인 산왕공고 선수들이 졸업한 프로 선배 선수들을 이기거든요ㅎㅎ
@페야 스토야코빛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페야 스토야코빛 연습경기에서 산왕 선수들이 이긴 선배들은 대학 선수들이었습니다. 대학 올스타급 레벨이었죠. 참고로 당시 일본은 프로 농구가 없었죠.(이건 슬램덩크 작품내에서도 언급이 되는 부분…)
정말 귀한 신문기사와 사진 자료네요~ 저시대에는 쓸데없이 한자가 넘 많아서 읽을때도 쓸때도 머리 아팠을듯 ㅠㅠ
네이버 라이브러리에서 가끔씩 레전드들 찾아보면 재미있어요. 한글로도 나옵니다.
근데 남녀 경우가 다른게 고교 졸업 전 취업해 월급받는 경우는 있지만 대학은 입학 전이니 ㅎㅎ지금도 여농여배는 다 졸업 전 지명받으면 훈련도 하고 경기를 뛰네요
그렇네요. 여대생이 아니라 실업팀이라. 근데 저때 남녀 모두 허용했다가 남자만 불허해서 저런 돌려까는 기사를 쓴 것 같아요. ^^
90년대 신문기사는 한자를 많이 써서 그런지 그때의 추억이 돋네요.. ㅎㅎ
여자농구 소식은 최경희 3000득점 달성으로 깨알같이 하나 나왔군요.. ㅎㅎ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수비 4개 부문으로 5위까지 놓은 자료도 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요.. 저기 나온 수비라는 부문이 지금으로 치면 블록슛 기록 같네요..
여자 농구 기사도 많았는데 편집 상 캡쳐하는 과정에서 잘렸을 겁니다. 수비는 블락 + 스틸 기타 수비 공헌 지표 같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실업팀입장에선 엄청 쪽팔린 일이죠 ~
지금은 제도 다시 바뀌지 않았나요?
03년이었나 04년이었나... 삼일상고 하승진이 연대 예비입학생으로 농구대잔치 참여해서 nba가기전에 보고싶어서 경기보러간적 있었는데요....
서장훈은 성인무대 데뷔하자마자 우승 ㅎㄷㄷㄷ..
연대 출신 오성식도 좋아하던 선수였는데 신인상 받았었군요. 림어택 능력은 엄청났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런 재밌는 자료 정말 감사합니디.
귀한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