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운명일까요, 스스로 만드는 것일까요? 누구나 한번 쯤 생각해보는 질문입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른단다. …" 사실 어쩌면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선물인지, 운명인지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종교적인 답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야말로 풀어야 하는 숙제입니다. 평생 답을 얻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답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답을 알아내려 애쓸 필요도 없이 사는 인생도 많을지 모릅니다. 시간이 해결하겠지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허리 모양이 정상과는 달라서 일단 다리 교정장치를 했습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견뎌봐야 알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냥 걷기도 힘들게 보입니다. 비뚤어진 것을 억지로 바로잡으려니 그것을 지탱하며 움직이는 것도 큰일입니다. 게다가 아이큐는 75입니다. 일반학교에서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꾸 특수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보통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지내기를 희망합니다. 결국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아들을 일반학교에 입학시킵니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함께 지내야 할 아이들이 받아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통학버스 안에서부터 차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인생의 친구이자 애인을 만납니다.
우리 옛말에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일단 태어난 생명은 살아가게 마련이라는 뜻일 겁니다. 남들 보기에 부족하여도, 모자라도 살아갈 나름의 특기나 재주는 있는 법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도망을 칩니다. 힘껏 달리지요. 자전거로 뒤쫓던 아이들이 자동차로 따라붙습니다. 그만큼 빠르게 달음박질을 하는 것이지요. ‘검프, 달려!’ 하는 소리를 들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립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그 재능으로 대학까지 다닙니다. 미식축구에서는 달리기가 매우 유익한 장점이니까요. 그 재능과 능력이 군에 가서도 발휘됩니다. 베트남 전쟁터까지 누빕니다. 그리고 훈장까지 받습니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하는데 또 다른 재능을 알게 됩니다. 탁구의 귀재가 됩니다. 그 전쟁터에서 두 사람을 만납니다. 새우잡이 꿈을 가진 동료 ‘바버’는 그만 전사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어받고 돌아옵니다. 또 한 사람은 직속상관인데 ‘댄’ 중위는 큰 부상을 입고 하반신을 잃습니다. 왜 살려놓았느냐고 한 동안 원망과 불평을 들으며 감수합니다. 참으로 묘하지요. 탁구 귀재가 되어 외국에까지 가서 이름을 날립니다. 그리고 그 덕에 광고해주고 거액을 받아 드디어 새우잡이 배를 구해 선장이 됩니다.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상관이었던 댄이 일등항해사라고 동행합니다. 같이 일하는 것입니다. 쓸모없다고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검프와 함께 하며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새로운 기술의 의족을 착용하여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을 새롭게 살게 되지요.
어려서 버스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던 ‘제니,’ 모두가 따돌리고 받아주지 않았을 때 유일하게 받아준 친구입니다. 또 한편 제니는 아버지로 인해 폭력을 당하며 자란 가엾은 아이이기도 합니다. 서로 이웃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두 아이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착하게 곧이곧대로 가는 검프와 달리 제니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입니다. 어쩌면 억압당하며 자란 삶의 반항인지도 모릅니다. 마음대로 다니며 노래하고 즐기며 사는 인생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무리 속에서 어울리지요. 검프와 제니는 그래서 만나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다시 각자의 삶의 자리로 이동합니다. 검프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어울리기 어렵지요.
오랜 이별 후 다시 만납니다. 꿈같은 하룻밤을 지내지만 제니는 또 다시 자기 길을 떠납니다.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 만났을 때는 한 아기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방랑을 끝내고 집으로 가자. 그러나 제니는 이미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아들은 바로 검프의 자식입니다. 아들 하나 남기고 제니는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옛날 엄마가 자기를 학교 보내려 통학버스 기다리던 곳, 이제 그곳에 다시 검프의 아들이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하지요. 엄마의 자리를 지금 검프가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른단다. …" 엄마의 그 말을 이제 아들에게 해줍니다.
검프를 통해서 20세기 미국의 시대가 흘러갑니다.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고 베트남 참전을 하고 세월은 흘러갑니다. 제니를 통해서도 세대가 흐릅니다. 히피의 자유분방함과 참전 반대의 소용돌이를 지나갑니다. 혼돈 속에 검프가 무작정 달립니다. 정말 어떤 목적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이유를 갖다 대려고 합니다. 시간 속에 시대 속에 하다못해 개인의 인생 속에도 이유를 달려고 합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를 보았습니다. 1994년 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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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건강하심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