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칠
김윤이
책에 침칠을 하지 맙시다
도서관 자료 책에 누가 침칠을, 혀 끝끌 차며 소설로 돌아갔지. 침은
길 찾는 표식이나 다름없었지. 사전에 마음먹었더 글이 쿵, 구덩이 빠질
때면 무거운 머리부터 사렸지. 카프카 『변신』처럼 사과가 흉기로 등장
하는 소설. 등에 사과 박힌 주인공이 내 얼굴로 나타나는 소설. 콜록, 본
의 아니게 침 묻는군. 끌탕 끓인 소설엔 둘씩 비유로 맞춰지는 사회적인
죽음 있었지. 아버지는 등 돌리고 여동생은 야만스런 식충 본 듯 사과를
집어던졌네.
도서관 벵갈고무나무처럼 노트북에는 자소설 스펙 무럭무럭 커가고
있는데 한갓진 시간에 써지는 글이 어디 있나. 하루 사십 잔 커피를 마
셔댔다는 발자크, 먼지 뒤집어쓴 노무자처럼 난 소설 써댔지. 쥐뿔도 없
는 분주한 마음만 생략과 비약으로 껑충 뛰고 그러자 손가락 끝에서 태
어난 신대륙의 사람들, 타액 묻은 군상들은 지문부터 덜컥 뼈까지 붙이
고 피가 돈 욕망과 노기 띤 피곤으로 어련히들 변해갔네. 소설가는 여남
은 채씩 붙은 빌라에서 사과로 입맛 다시며 세상을 살았네. 도서관 고서
대출카드에 적힌 다소 비장한 문구. 책에 침칠을 하지 맙시다에 마음 쓰
이더군. 쫙 그어서 되작이니, 인편으로 누군가도 책에 빠져 산다는 소식
주고받는 듯했지. 그렇게 열 밤 자고 백 밤 지나 한 해가 끝났네.
소설의 도입부는 회상으로 시작되었지. 열린 결말이 소설가다운 삶
의 대목일 테지. 연말 모임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공존하며 사는 DMZ
멸종위기 겨울동물들. 수달, 산양, 담비, 두루미, 긴점박이올빼미, 반달
가슴곰, 사향노루가 크리스마스실로 등장했다는 따뜻한 소실들. 소설에
집어넣어도 추운 소설小雪, 의자 등받이에 박힌 내 몸 침 묻혀가며 누구
에게든 우편 띄우고 싶었네.